[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베트남에서 태어난 응웬응옥감(44·Nguyễn Ngọc Cẩm) 씨는 1996년, 베트남에 파견 나온 한국인을 만나 결혼했다. 남편과 함께 1997년 한국에 입국했고 이듬해 국적을 취득했다. 귀화하면서 베트남 이름과 발음이 유사한 '원옥금'이라는 한국어 이름을 택했다. '한국인' 원옥금 씨는 24년째 한국에 살고 있다.

한국인으로 살면서도 베트남인 정체성을 놓지 않은 그는 이주민 인권 현장에서 오래 활동해 왔다. 현재는 결혼 이주 여성과 이주 노동자를 상담하는 '이주민센터 동행'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영입 인재로 발탁하기도 했으나, 국민 참여 경선에서 떨어져 여의도에는 입성하지 못했다.

이주민센터 동행은 그동안 여러 차례 차별금지법 지지 의사를 밝혔다. 원옥금 대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이주 인권 단체 모임 '차별금지법제정이주연대'와도 함께하고 있다. 이주민 정체성을 갖고 십수 년간 다른 이주민을 도와 왔던 원 대표는 누구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체감한다고 했다.

원옥금 대표를 9월 4일 서울 마포구 동행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일터인 이곳은 '주한베트남교민회' 사무실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그는 이주민을 상담하는 상담가이기도 하고, 베트남 교민들과 울고 웃으며 고충을 나누는 큰언니 '회장님'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인종차별에 무뎌진 건 아니다. 원 대표는 최근 일어난 '블랙 페이스' 같은 사건을 마주하면 여전히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특히 인종차별을 온몸으로 받아 내고 있는 이주 2세들 상황을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이주민센터 동행 원옥금 대표를 만나 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주민센터 동행 원옥금 대표를 만나 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들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그는 일상적·제도적 인종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좀 더 촘촘하게 차별 금지를 보완하는 법안, 즉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전에 전달한 질문에 답을 빽빽하게 적어 온 것 외에도 이주민 차별 사례를 줄줄이 쏟아 냈다. 차별 사례는 그만큼 다양하고 많았다. 원 대표와 1시간 30분간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이주 인권 활동가로서 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현행법으로는 이주민 개개인이 지니는 복합 차별을 해소하지 못한다. 이주 여성은 여성, 즉 성별로 인한 차별 요소와 출신 국가나 인종으로 인한 차별 요소를 동시에 갖고 있다. 상담했던 한 여성의 경우, 공장에서 한국인과 똑같이 일해도 여성이라서 또 한국인이 아니라서 임금을 차등 지급받았다. 남성 이주 노동자와 비교해도 임금 격차가 벌어진다. 이중, 삼중으로 차별받는 셈이다.

한 이주 여성은 서울에서 미싱 공장에 다녔다. 일주일에 60시간 가까이 일하는데도 한 달에 150만 원밖에 못 받았다. 수년간 공장에 다녔으니 업무 숙련도도 높다. 그럼에도 매해 월급은 150만 원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지방노동위원회에 진정하자고 했더니 오히려 나를 말렸다.

알고 보니 이 여성은 이혼했는데 한국인 남편이 아이 양육권을 가져갔다. 아이가 공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돈을 적게 준다고 해도 아이를 자주 만나기 위해서는 그 공장에 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장은 이 사실을 알고 최저임금조차 주지 않았다. 그 사람 아니어도 쓸 사람은 많으니까. 억울하면 그만두라는 식이다. 이 여성은 어쩔 수 없이 차별을 선택하게 됐다. 현행법이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도 실제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결혼 이주 여성의 경우, 한국의 전통적 가족 문화 속에서 차별받는 것에 더해 출신 국가 때문에 재차 차별받는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가정 내에서 제일 낮은 서열이 된다. 가족 대소사를 논의할 때 제외되는 건 기본이고 발언권도 얻지 못한다.

남편 동생이나 그 배우자에게 폭행당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한 여성은 시동생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무보수로 일했다. 월급 준다고 하면서 계속 미루길래, 돈을 받고 싶다고 하니까 남편과 동생이 같이 폭행했다. 임금을 제대로 달라 요구하고 싶어도 근로 계약서 같은 게 있을리 만무하니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식당, 농축산업 종사자의 경우 이런 식으로 많이 당한다. 이 사람들이 외국인이 아니라면 이렇게 줄 돈 안 주고 일을 시킬 수 있을까. 한국인이라면 '그런 적 없다'며 잡아뗄 수 있을까. 이 모든 사례는 명백한 인종차별이다.

대구 지역 공단에 붙은 외국인 채용 공고. F비자는 주로 결혼 이주 여성, 재외 동포가 지닌 비자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대구 지역 공단에 붙은 외국인 채용 공고. F비자는 주로 결혼 이주 여성, 재외 동포가 지닌 비자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현재 한국에는 장애 유무, 성별이나 연령,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을 다루는 개별법이 있다. 하지만 이처럼 중첩하는 차별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 차별 구제 수단의 종류와 수준이 제각각이라 차별 사유에 따라 구제 조치에 차이가 생긴다.

발생 가능한 모든 차별 문제를 다루기 위해 각각의 법률을 계속 제정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이주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다양한 속성이 중첩되어 있다. 이 속성은 일상 속에 연결돼 있다. 차별을 정확히 발견하고 면밀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를 종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법률이 필요하다.

- 최근 '블랙 페이스' 문제를 지적한 방송인 샘 오취리 씨가 외려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블랙 페이스 자체가 인종차별이라고 지적해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타국에서 차별받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인종에 기반한 혐오 표현은 이주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주 여성 모두 한국 사회가 이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온 것이다.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산업에 노동력이 부족하면 기업은 정부에 인력을 요청하고, 정부는 외국에서 노동자를 데려온다. 이주 노동자가 없으면 몇몇 업종은 굴러가지 못 한다.

빌딩을 짓고, 돼지를 키우고, 상추를 재배하는 등 이주 노동자가 값싼 노동력으로 한국인 빈자리를 메우고 있다. 지금은 이주 노동자도 부족해서 계절노동자로 더 데려온다. 인력난이 심해 업체끼리 경쟁하는 상황이다. 결혼 이주 여성도 농촌 고령화·저출생 때문에 데려온 것 아닌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해서 한국 남성에게 지원금을 주기도 한다. 농촌 총각 장가 보내기 사업이다.

이런 사정은 언론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농촌에 사람이 없으니까 불러와 놓고, 사람대접 제대로 안 해서 문제가 생기하면 결과만 대서특필한다. 얼마 전에는 결혼 이주 여성이 본국으로 도망친 이야기를 한 언론이 과장 보도했다. 돈을 가지고 도망갔다는데 이 여성이 왜 도망갔는지는 묻지 않았다.

이 여성의 남편은 아내가 본국에 있는 오빠랑 통화하는 걸 보고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오해해 목을 졸랐다. 여성은 무서워서 도망가게 됐는데, 그런 사정은 전혀 보도하지 않고 한국 남성 주장만 실었다. 이런 것만 자극적으로 보도하다 보니 갈등을 부추긴다. 동남아시아 여성이 돈 때문에 남편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이미지를 심는 것이다. 한국 사회 안에서 혐오를 재생산하는 데는 미디어·언론 잘못이 크다. 기사 댓글은 또 어떤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

좋지 않은 말을 들으면 누구나 큰 상처를 받는다. 이주민도 마찬가지다. 인간 존엄성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사회적 소수자라는 위치, 언어 제약 때문에 항의조차 못하면 상처는 더 깊어진다. 특히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경우, 자기가 태어나 살고 있는 나라에서 자기 존재를 부정하는 표현을 듣는 것이 얼마나 충격이겠나. 두고두고 상처가 될 것 같아 걱정된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결혼 이주 여성의 자녀들을 '다문화'라는 단어로 구분지어 왔다.
한국에서는 그동안 결혼 이주 여성의 자녀들을 '다문화'라는 단어로 구분지어 왔다.

- 한국에는 이미 다문화 가정을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주 여성 인권 단체를 중심으로 이 '다문화' 개념 자체가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데,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원래 '다문화주의'라는 것은 이주민과 선주민 사이에 문화 차이를 존중하고 공존을 지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다문화 정책은 주로 결혼 이주 여성이 한국 사회에 빨리 동화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다문화 교육 프로그램은 한국어나 한국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등에 국한돼 있다. 쌍방으로 문화를 배우는 게 아니라 일방으로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밖에 안 된다.

또 동남아시아·서남아시아에서 온 이주민을 지칭하는 말로 '다문화'를 써서 낙인 효과가 생겼다. 서구 출신 백인에게는 다문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다문화 학생, 심지어 군대에서도 다문화 장병이라고 구분지으니 아이들이 다문화라는 말 자체를 싫어한다. 상호 존중을 촉진하는 순기능을 하지 못하고, 한국보다 못한 나라 출신 또는 피부색이 진한 이주민을 지칭하는 용어로 전락한 것이다.

다문화 교육의 핵심은 남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편견 없이 보고, 타문화에 대한 판단·차별 없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을 키워 주는 게 다문화 교육이다. 단순히 선주민의 문화만 가르치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다문화 교육은 가지만 무성하고 뿌리는 없다고 본다. 정부가 노력하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좀 더 올바른 교육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겠다.

-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 해도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주민이 직면한 다양한 차별을 한 번에 개선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럼에도 차별금지법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현재는 근로기준법, 외국인 고용 등에 관한 법률 등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법률'과 고용 허가제 등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제도', 긴급 재난 지원금에서 이주민을 배제하는 등 이주민을 차별하는 '정책'이 혼재하는 상황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이주민을 차별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차별을 바로잡는 출발점이 된다. 실재하는 차별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인식 자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주민을 차별하면서도 이를 개선할 구체적인 기준조차 만들지 못했다. 헌법 11조에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별하면 안 된다'고 나와 있지만, 실제 예시는 없다. 차별을 당해도 헌법에 나온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차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관의 인권 감수성에 따라 결정된다. 상당히 가변적이다. 그러면 안정적으로 모두에게 평등을 보장할 수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차별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게 차별을 정확히 인식하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처벌하는 게 우선이 아니다. 어떤 것이 차별인지 정확히 말해 주고 법적·사회적으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인식을 계속 확장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법에 근거해 인종차별적 요소를 지닌 또 다른 법들을 조금씩 개정할 수 있고,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의 공백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의 평등을 위한 법이다.

주한베트남교민회 회장이기도 한 원옥금 대표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무엇이 차별인지 인식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주한베트남교민회 회장이기도 한 원옥금 대표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무엇이 차별인지 인식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어떻게 보면 이주민 차별은 이주민만의 문제처럼 보일 수 있다. 이주민 차별을 해소하는 게 어떻게 한국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가.

고려시대·조선시대에는 사회 분위기가 외국인에게 개방적이었지, 배타적이지 않았다고 배웠다. 하지만 근대에 나라가 침략당하고 분단의 아픔을 겪으면서 단일민족 의식이 강화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다른 민족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일부 국민은 이주 노동자가 자신들에게 피해를 입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은 과거처럼 약소국이 아니라 세계적 강국이 됐다. 피해자도 되지만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위치다. 그런 위치를 인식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문제가 된다. 최근 서구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인이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혐오·차별당하는 사건이 많았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곧바로 뉴스가 된다. 한국인들은 분노한다. 하지만 한국 안에서 이주민이 겪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분노하지 않는다.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이주 노동자들은 거의 감금 생활을 한다. 심한 경우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는데도 사업주가 감염이라고 주장하면서 창고 같은 곳에 감금한다. 그런데도 그 이주 노동자는 이직할 수 없다. 사업주가 허락해 줘야만 이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주 노동자들에게 한국은 가해자다. 이주 노동자가 사업장을 이탈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사장 말 안 들으면 본국으로 내쫓는 식이다. 이주 노동자들이 일회용품처럼 여겨지는 한 한국 사회에서 그들의 인권은 없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은 점점 증가한다. 케이팝, 한류 덕에 한국어를 배우려고 한국을 찾는 이도 많지 않나. 이들이 한국에 왔는데 차별이 만연한 사회라면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좀 더 세계적인 한국이 되려면 의식을 바꿔야 한다. 이주민을 차별하지 않고 더불어 사는 방향으로 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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