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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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은 머릿속에 선명히 기억되지 않았다. 다만 한마디 경고만이 민규의 머릿속에 처치 곤란한 오물처럼 잔류되어 떠돌았다.

'생사여탈권'

가장 근본적인 고민이다. 원론적으로는 이미 답이 나온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민규는 최근에 들어 더 빈번이 교회의 주인은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렸을 적만 해도 교회의 주인은 당연히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 교회가 허름하고 비좁은 가건물에서부터 시작할 때만 해도 그 하나님은 너무나 작게 보였다. 하지만 민규의 키가 자라고 생각의 무게가 깊어지는 것만큼 교회는 커져만 갔다. 민규는 그것이 당연한 하나님의 은혜, 혹은 축복이라 여겼다. 신은 전능하다고 들어 온 민규에게 성장과 축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받아야만 하는 당연한 축복이라고 수많은 교회의 집사, 장로, 권사님들이 믿어 온 신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민규의 생각은 달라졌다. 신학대학과 대학원을 거쳐 오면서 민규는 교회의 주인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예수님의 생애를 곰곰이 짚어 나가면 나갈수록 그 생각은 단단해졌다. 그럼에도 민규는 자신이 속한 교회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율주제일교회는 양적으로만 성장한 게 아니라 내실을 다지는 측면에서도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돌보는 예수님의 정신을 잃지 않았으니까. 민규는 그렇게 믿었다. 율주제일교회는 오갈 데 없는 가난한 이웃들에게 '밥퍼'란 개념조차 희박했던 시절부터 무료 급식 봉사를 실천했다. 또한 누구도 돌보지 않는, 그래서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정부 시설에만 의존해야 했던 지역 내 정신지체 아이들을 최상의 시설에서 양육할 수 있기 위해 교회 차원에서 장애인 시설을 자비로 운영해 왔기 때문이다. 민규는 자신의 청년부 시절 당시의 담임목사와 교회 핵심 멤버들의 의미 있는 활동을 지켜보며 율주제일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 속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14년이란 시간을 지나쳐 온 뒤, 다시 율주제일교회로 돌아온 민규의 머릿속에서 맴도는 한 가지 질문과 답은 처참할 정도로 달랐다. 유년과 청년 시절을 겪으며 품어 온 본래 생각과 완전히 달라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른 점이 민규를 힘들게 했다. 민규는 자조 섞인 독백도, 넋두리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말을 보고하듯, 자신의 내면을 향해 독백했다.

'지금. 이 교회의 주인은 김인철이야… 스스로 악마임을 자처한 김인철.'

혼자 있기엔 너무도 사치스럽고 거대하기만 사택으로 돌아온 민규는 두려운 마음을 품고 안방에 들어섰다. 낮 시간 동안에 가사도우미가 다녀간 모양인지 집안은 마치 호텔처럼 전 날, 어지럽게 놓아두었던 정리하다 만 책이며 얼마 되지 않은 생필품들이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안방에 들어온 민규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나이트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검은색 바탕에 금박의 테두리가 인상적인 스마트폰이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민규는 액정이 바닥을 향하도록 내려놓았었다. 그런 자신의 의지에서 드러나듯 민규는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스마트폰을 확고하고픈 욕망으로 들끓어 올랐다. 두려움과 반드시 봐야만 한다는 필연성이 뒤섞이는 자신의 심리를 민규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민규는 두려움이란 강한 의지에 굴복하고 말았다. 침대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던 민규가 결국 스마트폰 액정을 열고 하루 동안 접속해 온 통화 내역과 메시지를 확인했다.

예상했던 결과인가.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른 누구의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 한 사람. 불륜이라는 또 하나의 주홍글씨를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게 된 연주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민규를 찾지 않았다.

민규는 연주의 메시지를 확인하지도 않고 삭제부터 하려 했지만 결국 그 설명할 수 없는 심리에 의해 단어 한 개까지 점검하듯 바라보았다. 주로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때론 절망이나 때론 회복을 원하는 갈망들이 혼란스럽게 뒤엉킨 독설과 애원의 글들이었다.

연주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민규는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이란 존재가 이 세상에서, 그리고 교회라는 공간에서 철저히 삭제되는 느낌이었다. 아내와 자식으로부터 버림받은 자신이 드높은 강대상 위에 올라선 꼴은 그야말로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는, 하지만 언제까지라도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허수아비 같다는 생각이 미친 것이다.

그런데, 그런 허수아비와 같은 자신을 발견해 준 이의 목소리가 다시금 복원되고 있었다. 나이트 테이블 밑에는 정리를 하다 만 책들이 두서없이 쌓여 있었다. 안방으로 갖고 들어온 책들은 민규가 중요하게 취급하던 책들이었다. 그것들 속에는 민규가 직접 쓴 박사 논문도 포함되었다.

민규가 자신의 박사 논문을 손에 집은 이후였다. 그 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앉아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400페이지가 넘을 정도로 방대하고 광역의 학문적 연구의지가 담겨 있는 논문을 들여다볼수록 자신이 허수아비만이 아니란 생각이 조금씩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치솟았다. 동시에 한영호 장로가 말한 것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정말 무엇이었을까, 교회의 주인은 이제 누구인가, 하는 질문들도 함께 떠올랐다.

민규는 그렇게 두어 시간을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댄 자세 그대로 자신이 쓴 논문을 읽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민규는 402쪽에서 끝나는 자신의 논문 결론을 다시 한 번 정독하고 난 뒤, 머릿속을 투명하게 만드는 어떤 힘을 실감했다. 그 힘은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또렷한 답이었다. 교회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 민규는 논문 속 한 문장에서 그에 대한 그 자신만의 답을 찾았다고 믿었다.

교회의 주인은 신을 간절히 찾는 한 비루한 영혼이야.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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