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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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술을 마실 수가 없다. 특별한 종교적 신념 때문에 마실 수 없는 게 아니었다. 바로 옆에 앉은 여자의 지분 냄새가 너무 짙었다. 이른바 매문의 냄새가 가혹할 정도로 거센 탓에 머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민규는 술을 마실 수 없었다.

민규가 눈을 들어 일식집 귀빈실을 크게 둘러봤다. 방 안엔 고즈넉한 일본 전통 음악이 흘러나왔다. 모여 있는 율주제일교회 핵심 장로들은 해맑게 키득거리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의 유희에 흠뻑 빠져 있었다.

전형적인 한국 사회를 경험한 한국 남자들의 술자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이런 분위기에 어느 정도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민규는 이들의 풍경이 너무나 낯설었다. 자신에게 어떤 무례한 행동을 해도 웃기만 하는 젊은 여자들, 그렇게 젊은 여자들을 곁에 두고 그녀들이 따라 주는 술을 받아 마시며 아주 잠시, 왕이 된 듯한 유치한 공상에 사로잡힌 남자들을 바라보는 건 민규에겐 도무지 견디기 힘든 역겨움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덧붙여지는 알아들을 수도 없이 저속한 음담패설을 듣는 고역 속에서 민규는 한 잔의 술도 넘기지 못했다.

민규의 옆에 앉은 여자는 내내 불안해했다. 민규의 굳고 경직된 표정이 그녀를 안절부절못하게 한 것이다. 자신이 술을 따를 기회를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민규에게도 전달되었다. 여자가 말문을 열었다.

- 한 잔 안 드실래요?

민규가 손짓으로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여자가 말을 이었다.

- 저기. 제가… 마음에 안 드세요?

그 말을 들은 민규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바로 앞을 향했다. 맞은편에 앉은 김인철이 보였다. 김인철은 여자와 민규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했다. 그는 거의 광적으로 자신의 자리 앞에 놓인 도미 생선 발라먹는 데에만 집중했다. 김인철의 곁에는 오히려 여자가 앉지 않았다. 그는 상왕(上王)처럼 자신의 물량 공세에 흠뻑 취해 버린 장로들의 꼴사나움을 관음증 환자처럼 관조하는 데 몰두했다. 민규가 김인철을 바라보며 여자에게 말했다.

-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아니에요. 이런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게… 아니, 아니야.

민규가 술 대신 물 잔을 손에 집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 뒤 여자를 보며 말했다. 그때 민규는 처음으로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진한 메이크업 속에 가려진 어리고 풋풋한 모습이 비쳐졌다. 여자는 민규의 생각보다 훨씬 더 어리고 미성숙해 보였다.

- 저 자리가 비어 있는데. 저기로 가 앉으면 안 되나요?

민규가 말한 빈자리는 바로 김인철의 자리였다. 하지만 민규의 질문에 대한 여자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여자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바로 답했다.

- 안 돼요. 그건.

그제야 김인철도 젓가락을 손에 쥔 채 생선 먹기를 중단하고 민규와 여자의 대화에 시선을 할애했다. 일식집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기모노 차림의 옷을 입은 종업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상 위에 빈 음식들을 채워 넣었다. 민규가 말했다.

- 난 당신이 필요 없어. 빈자리로 찾아가요.

- 저한테 정해진 자리는 여기에요. 제가 싫으세요?

- 자꾸 싫다 싫다 하는데, 싫고 말고가 어디 있소.

그때, 김인철이 민규와 여자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 왜… 덜 싱싱해서 그런가?

그 말을 듣자 민규의 표정이 붉어졌다. 불쾌함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김인철의 저속한 말을 더 이상 곱게 들어줄 수 없다는 분노가 강하게 치밀어 올랐다. 김인철은 민규의 표정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며 말을 이었다.

- 우리 목사 양반. 뉴욕 물 좀 먹어서 그런가. 눈이 꽤 높으시네. 이전 목사는 20대 중반만 붙여 줘도 주무르고 터뜨리고 아주 장난 아니던데.

김인철의 말이 끝나자마자 곁에 있던 장로와 여자들이 일제히 키득거렸다. 민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문 앞에 앉아 자리를 지키고 있던 고동식도 함께 일어섰다. 민규는 고동식을 잠깐 의식한 뒤 다시금 김인철을 내려다봤다. 옆에 앉은 여자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어 있었다.

-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군요. 그만 가 보겠습니다.

민규의 말이 험하게 흔들리고 떨렸다. 그렇게 말을 멈춘 뒤 바로 등을 돌려 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 앉아. 이 개새끼야!

김인철의 카랑카랑한 고성이 터져 나왔다.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음악이 그쳤다. 장로들과 여자들 모두 침묵했다. 일식집 도코모토의 귀빈실 전체가 정적에 사로잡혔다.

민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김인철이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는 교회 장로라 해도 청빙받은 목사에게 이런 욕설을 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을 때, 이어지는 김인철의 말은 민규가 잘못 들은 게 아니란 절망만 안겨다 주었다.

- 너. 당장 다음 주에 짐 싸 들고 미국 가고 싶어? 내가 그렇게 못 할 것 같아?

- ……

- 너 미국으로 갈 수는 있냐? 뉴욕에서도 계집 후리다 사고 치고 잘린 주제에 어디서 고상한 척이야. 빌어먹을.

민규의 얼굴이 순간 굳어 버렸다. 주위를 둘러봤다. 장로들이 민규를 바라보는 표정엔 경멸과 조소만이 가득했다.

'이미 다 알고 있단 말인가. 뉴욕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김인철이 말을 이었다. 세차게 몰아치는 야생동물의 으르렁거림 같았다.

- 여기 있는 사람들, 나를 포함해서 네가 보기에 그 뭐야… 소돔의 음란한 백성 같아 보이냐? 착각하지 마. 너처럼 고상 떨다가 뒤로 호박씨 까는 목사 새끼들이 천만 배는 더 역겨우니까.

- ……

- 그러니 더 이상 목 아프게 올려다보게 하지 말고 빨리 앉아! 그리고 술 처마셔!

민규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은 이상하게도 옆자리에 앉은 진한 화장을 한 여자에게로 옮겨 갔다. 끔찍했다. 민규의 두 다리는 미동도 할 수 없었다. 다리에 자석이라도 붙은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그의 몸을 붙잡았다. 김인철의 경고가 가혹하게 이어졌다.

- 짐 꾸리기 싫으면 지금 결심해. 안 그러면 너도 잘리고, 오늘 네 옆에 앉은 계집도 잘리는 거야.

여자까지 볼모로 잡은 순간, 민규는 비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어머니 양 권사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막막한 수치스러움이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게 만들었지만 결국 민규는 다시 자리에 앉아야 했다. 그리곤 술병을 쥐고 있는 김인철을 떨리는 눈동자로 바라보며 잔을 비웠다. 김인철이 민규의 빈 잔을 채워 주며 한마디했다.

- 오늘 이 술병. 다 비우고 나가세요. 담, 임, 목, 사, 님.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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