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 지금도 후회하고 있어요?

연주는 여전히 전화를 끊지 않았다. 먼저 전화를 끊을 법도 했지만, 민규 역시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임에도 통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연주가 거듭 물었다.

- 그때 일을 후회하느냐고 물었어요.

- 그게 뭐가 중요해. 우리에게 중요한 건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야.

- 목사님. 저한테는 지금이란 시간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 연주 씨. 제발 이러지 마. 이제 난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 목사님에게 뭘 바라는 게 아니에요. 사실, 저. 목사님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어요. 아니, 정말 잘 모르겠어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이 파도치고 있어요. 내 머릿속은 온통 목사님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어요. 목사님이 날 기쁘게 한 순간, 아프게 한 순간, 날 힘들고 병들게 했지만, 너무나 힘들지만 황홀할 수밖에 없는 그 순간으로만 내 남은 인생이 온통 채워질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무서워요.

- 연주……난 힘들어.

- 그래도……그래도 다행이에요.

- 뭐가?

- 원하시는 바를 이루셨잖아요.

- ……

- 저 들었어요. 율주제일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받아 가신 거라면서요?

연주의 그 말에는 절반의 진심에서 비롯한 축하와 동시에 절반의 질투, 허망함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안타까움과 절박함이 민규의 귀와 심장에 오롯이 전달되었지만 민규는 단호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이제는 끝내야 한다. 다 잃었고, 다 태워 버렸다. 더 이상 뭘 기대한단 말인가.'

- 연주 씨도 알다시피 난 이미 모든 걸 잃었어. 당신과의 스캔들을 겪은 이후, 아내로부터 이혼당했고, 뉴욕제일교회에서는 불명예 사퇴할 수밖에 없었어. 14년 동안 봐 온 교인들의 얼굴을 더 이상 쳐다볼 수 없게 되었고, 아내와 딸, 장인 목사님과 장모님과는 어쩌면 영원히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몰라. 이런 내가 원하는 걸 이루었다고? 지금 농담해?

지금 누구에게 화풀이하고 있는 걸까. 민규는 문득 자신이 누구에게 흥분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언성이 높아진 민규가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연주의 침묵도 이어졌다. 화를 낸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었지만 민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만히 연주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어지는 연주의 목소리는 말이 아니라 바닥을 긁는 호소를 닮아 있었다.

- 미안해요. 목사님.

- ……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앞으로의 삶을 이야기한 건 우리 서로를 위한 일을 말한 거야. 그뿐이야.

- 미안해요. 제가 정말 미안한 건 아직도 목사님을 잊지 못한다는 사실이에요.

연주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의 흐느낌이 들려오는 순간, 민규는 그날, 그때의 기억으로 되돌아갔다. 고난주간 성 금요일의 새벽, 인생의 마지막에서, 영혼의 모든 것이 태워 없어질 듯한 절규의 밑바닥과 조우하던 연주를 바라보던 그때 그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연주의 그 오열과 마주한다면 난 어떤 선택을 했을까. 난 어디로 갔을까. 지금 난 어디에 있는 걸까.'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하지만 민규의 기억은 그 순간의 절박함에서 쾌락과 정염으로 달아오르던 벗은 몸의 한순간으로 이행되었다. 민규는 다시금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지켜봤다. 자신의 몸은 통화 속 연주의 절박한 오열에 아파하는 몸이 아닌 정염에 타올라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비루하고 초라한 몸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연주는 흐느낌을 멈추지 않았다. 민규 또한 전화를 끊지 않았다. 울고 또 우는 연주의 통곡 너머로 내내 시달려야 하는 정염과 욕망, 자신의 비겁함을 향한 안타까움이 뒤엉켰지만, 민규는 한사코 전화를 끊지 않았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낯선 하루가 지나갔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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