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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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맞이하는 율주에서의 주일예배, 주일 첫 설교를 맡게 된 민규가 맞이하게 된 그 주간은 고난주간이었다. 민규는 작년에 맞이했던 고난주간에서의 악몽을 어떻게든 잊기 위해 주일 하루 전 내내 설교 준비에만 몰두했다.

뉴욕에서 율주로 건너와 악몽을 닮은, 마음의 격동을 겪은 뒤에 민규는 제공받은 사택에 틀어박혀 성서를 보는 일에만 몰두했다. 목요일에 율주로 도착한 뒤 금요일과 토요일 내내 성서를 들여다보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잡념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성서의 깊이에 집중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작년 고난주간부터 터져 나왔던 스캔들 문제가 생긴 이후로 민규에게 있어 성서는 불편하기만 한 윤리, 도덕 교과서로 다가오기만 했다. 뉴욕 교회에서의 주일예배가 있을 때마다 강대상 위에 올라서서 교우들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에 커다란 돌을 얹혀 놓은 기분이었다. 설교를 위해 말을 떼어 놓을 때마다 그 설교의 말들이 자신에게 비수가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교회의 직을 내려놓게 된 계기도 마음의 무거운 방향 탓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설교 준비에 몰두한 뒤 올라서게 된 율주제일교회에서의 첫 설교. 이전보다 더 한층 높아진 강대상부터 민규의 정신을 혼미케 했다. 강대상은 분명 14년 전과는 더 고압적인 위용으로 높아져 있었다. 솟은 바위처럼 올라서 있는 강대상 위에서 내려다본 예배 공간은 너무나 낯설었다.

돌이켜 보니 민규는 한 번도 이 높은 곳에 올라선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강대상이 아닌 피아노가 놓여 있는 넓은 단상 위에서는 찬양 인도를 위해 자주 오르곤 했지만 대형 파이프오르간을 등지고 높게 솟은 강대상 위에 오르는 일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소문에 듣기로는, 아니 공식적으로 기록된 사항만으로도 민규가 이곳, 율주제일교회를 떠나온 14년 동안 담임목사만 9번 넘게 교체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했다. 율주제일교회 초대 개척자였던 유재환 목사를 제외하고는 10년은 고사하고 5년 이상 교회를 맡아 이끌어 온 목사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청빙된 목사들의 잦은 교체가 이뤄졌는지는 일종의 불문율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가장 많이 그 혐의를 의심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장로회가 보이는 무언의 압력이라는 말이 왕왕 있어 왔지만 그 역시 증명된 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잦은 담임목사 사임과 새로운 청빙이 계속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설교단의 높이도 조금씩 올라갔다. 율주제일교회 담임목회자로 청빙된 민규가 올라서게 된 설교단은 목사 교체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더 높아졌다. 설교단은 상승의 전리품이었고, 그 전리품 위에 올라선 민규는 그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질식감을 호소해야 했다. 한 교회의 카리스마를 담임목회자가 대표해야 한다는 강박이 낳은 구조물인 높이 솟은 설교단은 도리어 그 자리에 오른 이에게 콜로세움에 홀로 갇혀 버린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노예의 심정을 닮게 했다. 언제든 죽어 없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노예, 거대하고 그만큼 막막한 콜로세움에 갇혀 버린 노예를 기다리고 있는 건 익명의 군중들처럼 콜로세움의 관중석에 숨죽여 지켜보는 익명의 교우들이었다. 1,000여 명 가까이 넉넉히 수용 가능한 대예배실을 가득 메운, 지방 소도시 단위로는 가장 큰 인적 규모를 자랑하는 율주제일교회의 교우들이 숨조차 제대로 쉬지 않는 혹독한 침묵, 그 기다림으로 민규의 입을 바라봤다. 민규는 그 수많은 교우의 시선을 갇힌 콜로세움에서 맹수들과 맞서 싸우는 노예를 지켜보는, 조용한 쾌락과 흥분에 들떠 있는 군중들의 시선으로 느꼈다.

홀로 떨어진 외기러기가 된 듯한 낯선 느낌을 민규는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몰랐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그럼에도 민규의 시선에 분명히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 양 권사의 모습이었다. 장의자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는 양 권사는 기도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약간 고개를 숙인 뒤 두 손을 모아 침묵 속에서 아들의 설교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이곳에서만큼은 다른 담임목사들과 다른 자생력을 갖기를 바라시겠지.' '그런데… 그런데…'

민규의 머릿속은 더욱 캄캄해져 갔다. 이틀 내내 준비해 두었던 설교문을 아무리 똑바로 들여다보려 해도 이상하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좀처럼 풀어내기 어려운 답답함, 두려움이었다.

설교 시간 내내 민규는 입으로는 기계처럼 설교 원고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지만 머릿속, 두 눈으로는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느낄 수 없었다. 영혼을 잃어버린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설교하는 기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그럼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설교도 끝이 났다. 민규는 높디높은 설교단에서 내려온 뒤에야 대예배실의 풍경을 보다 명확하고 평안하게 살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궁금한 건 교우들의 반응이었다. 자신조차 무슨 얘기를 지껄였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설교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표정을 살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더한 의문부호만이 예배가 끝나는 내내 민규의 머릿속을 따라붙었다. 데스마스크처럼 장의자에 앉아 있는 교우들에게선 아무런 표정 변화도 읽을 수 없었다. 정해진 순서대로 설교가 끝나자 헌금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고 교회 소식을 나누고 다시 폐회 찬송을 하는 예배 진행 과정에서 교우들은 매주 습관처럼 다가온 정례 모임처럼 무표정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민규는 그들을 보며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에 휘말렸다. 그럼에도 민규는 다시 한 번 설교단 위로 올라서야 했다. 교우들을 축북하고 신의 대리자임을 재확인하는 축도 의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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