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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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호 장로요?

보통 호칭 뒤에 붙일 수 있는 '님'을 생략하는 경우를 민규는 잠시 헤아려 봤다. 상대에 대해 지극히 편하게 생각하는 경우와 불편한 상대를 애써 지워 내려 할 경우. 두 경우가 있을 텐데 지금 민규의 질문에 답한 행정목사인 이황우의 경우는 단연 후자였다.

한영호와의 예배 후, 짧지만 강렬한 만남이 있은 뒤의 주일 오후. 민규는 행정목사 이황우와 면담했다. 이황우와의 면담은 약속된 것이었다. 전날 토요일, 민규의 새롭게 지급받은 휴대폰으로 걸려 온 전화. 이황우였다. 그는 민규에게 업무 영역과 관련되어 보고드릴 게 있다고 그 역시 짧고 간단하게 통보식으로 말했다.

주일 오후 행정목사 이황우는 직접 민규가 있는 담임목사 집무실을 찾았다. 응접실용 소파에 앉으라는 민규의 권유에도 이황우는 한사코 따르지 않았다. 대신 직장 상사보다도 클래스가 훨씬 높은 담임목사를 예우하겠다는 의지에서일까, 이황우는 집무용 책상에 앉은 민규 앞에 선 채 결재 서류 비슷한 것을 펼쳐 보였다.

행정목사가 보고하는 내용은 그처럼 극진한 담임목사에 대한 예우가 담긴 태도와는 다르게 건조할 정도로 제한적인 담임목사 권한에 대한 거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이황우는 서두의 말에서 짧게 보고에 대한 취지를 못 박고 들어갔다.

- 청빙 의뢰받고 계약하실 때, 계약 조항 확인하셨죠. 목사님?

- 예. 대충은.

민규가 답하자 이황우가 담임목사 청빙 계약서 사본을 보여 주며 말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 여기 나와 있듯이 목사님께서는 1년 계약직이시구요. 연봉 액수 안에 전별금이 별도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서 조항에 적힌 대로 추후 전별금을 따로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조항에 서명하셨으니 나중에 다른 말씀하시면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고…

그렇게 말해 놓고 난 뒤 이황우가 짐짓 망설였다. 자신의 말한 수위를 스스로 검열하는 듯 했다.

- 아. 죄송합니다. 담임목사님. 이전 목사님들께서 이 조항에 예민하게 반응하셔서 불미스럽게도 법정 다툼이 두어 번 있던 전력이 있어서요.

- 전 그런 일 없을 겁니다. 안심하셔도 돼요.

- 예. 그럼… 1년 계약 갱신 여부는 신도들의 권한 위임을 받은 장로회의에서 의결해 정족수 3분지 2 이상이 찬성할 경우 갱신 가능하시다는 거 알아 두시구요.

민규의 표정이 서서히 체념하는 듯한 모습이 되어 갔다. 고작 이런 걸 말하려고 날 만나려고 하는 걸까. 하지만 한편으론 이해도 되었다. 열 명 이상의 담임목사 교체가 반복되는 동안 여전히 진행 중인 소송도 있다고 들은 바 있는 민규였기에 추후 불미스런 일을 겪지 않으려는 의지의 일환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황우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가장 강조하고 싶은 담임목사의 업무 범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황우는 유독 건조하고 짧게 말을 마무리하려 했다. 민규는 그 의도를 충분히 짐작했다. 이황우는 민감한 사안일수록 오히려 더 무심하게 말하는 게 통보하는 입장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오랜 시간 행정목사를 경험해 오면서 느낀 노하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 청빙 요청받으셨을 때 실무진으로부터 얘기 들으셨겠지만 율주제일교회의 담임목사님직의 업무 범위는 주일, 수요, 금요 예배 설교와 축도권 행사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외에 심방 스케줄은 저희 행정팀이 마련한 별도 스케줄에 맞춰 진행하시게 되구요. 교회 외적인 행사 참여의 경우, 불미스런 정치적 발언을 일삼는 종북, 좌파 세력 집회나 모임에 참석하셔선 절대 안 되며, 인문학을 빙자한 시국 모임이나 기타 미풍양속을 해치는 별도 모임 역시 절대로 규합하시면 안 되며…

- 저기. 잠깐만요.

그때, 민규가 말을 가로막았다. 순간 이황우가 말을 멈추고 민규를 바라봤다.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민규는 다른 의도로 말을 자른 게 아니었다. 민규에겐 담임목사의 권위 따위를 주장하려는 어떤 의욕도 없었다. 민규는 뉴욕에서의 악몽을 다시금 떠올리며 이곳, 율주에서의 목회 기회를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다잡았다. 그 마음으로 한마디했다.

- 이미 다 알고 왔어요. 행정목사님도 아시잖아요. 제가 어떤 처지인지. 저 이 정도 사리 분별 못 하는 목사 아닙니다. 얌전히, 조용히 있을 거에요. 이끼처럼.

- 죄송합니다. 담임목사님. 무례를 용서하세요.

- 무례하지 않아요. 그건 그렇고…

- ……?

*

민규가 그렇게 화제를 돌려 한영호에 대해 물었을 때였다. 한영호 장로의 말을 듣자마자 이황우는 경계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지는 이황우의 말은 진심으로 민규의 신변을 위하는 말처럼 들려왔다.

- 사실 한영호 장로가 이번 청빙 건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건 사실입니다.

-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 청빙 목사 후보로 몇몇이 물망에 올랐는데, 모두 사정이 생겨 고사했어요. 김인철 장로님 쪽에서 추천한 인사였는데 불미스런 일들이 많았죠. 그래서 한영호 장로가 추천한 인물이 낙점되었는데 그게 바로 목사님이세요.

- 그분이… 절 추천했다구요? 전 그분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요.

-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 교회… 사실 현실적 실권은 김인철 장로가 꽉 쥐고 있지만 그 뭐랄까. 상징적 지분은 한영호 장로도 무시 못 할 정도죠. 그런데, 좀처럼 청빙 추천 일에 나서지 않던 한영호 장로가 나서니 이번 한 번은 들어주자는 분위기였어요. 그렇게 목사님께서 청빙받게 된 데 한영호 장로의 공헌이 결정적이라고 해야겠죠.

민규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인과관계가 짚어지지 않은 것이다. 민규가 기억하는 한영호 장로는 어렸을 적부터 율주시 구시가지 사거리에 위치한 한의원 원장님으로만 기억할 뿐이었다. 어떤 특별한 친분 관계도 없는 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스캔들로 얼룩진 자신을 추천하고 게다가 출판되지도 않은 자신의 영문 박사 논문을 페이지 수까지 틀리지 않고 외우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납득되지가 않았던 것이다.

생각에 잠긴 민규에게 이황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그런데요. 담임목사님.

- 예. 말씀하세요.

- 아무리 그가 목사님을 추천했다고는 하지만 너무 가깝게 지내시진 않으셨음 좋겠습니다.

- 어째서죠?

- 이 교회 목회자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건 한영호가 아니라 김인철이니까요.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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