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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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규가 술 한 병을 비우는 동안 김인철과 그 무리들은 서른 병이 넘는 사케를 빠른 속도로 비워 나갔다. 열 명 가까이 되는 장로와 안수집사들의 취향은 다양했다. 술잔만 비우는 데 열중하는 장로도 있었던 반면, 엽색에 가까울 정도로 옆에 앉은 여자를 괴롭히는 이도 있었다.

민규의 옆에 앉은 여자는 여전히 불안해했다. 여자를 안심시키는 방법을 민규가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민규는 그 방법을 연출하고 싶지 않았다. 술판이 깊어질수록 김인철은 입버릇처럼 민규에게 자신과 같은 과가 되길 강요했다. 민규의 술잔은 상대적으로 모인 이들에 비하면 느렸지만 꼬박꼬박 비워졌고, 김인철이 직접 따라 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민규는 술을 마셨다.

민규에게는 술을 마시는 습관이란 게 없었다. 어렸을 적부터 술과 담배가 사탄의 음료와 기호품이란 신앙 교육을 받아 온 민규가 술을 친숙하게 생각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국내의 신학대학교와 대학원이 가진 보수적인 색채가 그랬다. 대한민국에서 교리적으로 가장 엄숙한 보수 신앙을 표방하는 교단에 소속된 율주제일교회에서 보낸 청년 시절에도 민규에게 술을 접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한 전통은 자연스럽게 뉴욕한인교회 시절까지 이어졌다. 말 많고 탈 많은 것으로 유명한 교포 사회, 그것도 교회 안에서, 미국의 대중 스포츠로 자리 잡은 골프를 제외하고는 교포들이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윤리적 기대치가 상당히 높았다. 그 탓에 사람 보는 눈과 입이 무서웠던 민규에게 음주는 그야말로 먼 나라 얘기였다.

그렇게 쌓아 온 나름 경건하다고 믿어 온 전통의 벽이, 김인철의 촘촘한 사악의 그물에 걸려 일식집 공간에서 일시에 허물어 내리자 민규는 왠지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허탈한 기분만큼이나 가혹하게 파고드는 취기는 술과 전혀 친하지 않았던 민규를 순식간에 어지럽게 만들었다.

- 우리 목사님. 술은 좋아하는데 여자는 좋아하지 않나 보네.

김인철이 민규의 자리에 놓여 있던 사케 술병에 남은 마지막 술을 따라 줄 때 꺼낸 말이었다. 민규가 거칠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이제 다른 장로들은 민규의 행동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유희에 바쁠 뿐이었다. 술잔을 기울이던 김인철만이 민규의 잔뜩 오른 취기, 그로 인한 거친 행동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거기에 조롱과 냉소로 무장한 독설들이 덧붙여졌다.

- 역시. 이렇게 터프하게 나오셔야 담임목사지. 지금 보니 조금 사람 같네. 계집 마다하는 꼴은 여전히 유감이지만 말이야.

- 저. 가겠습니다.

- 어딜? 이 시간에? 모셔다 드려야죠.

김인철의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고동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민규의 바바리코트까지 잽싸게 챙겨 들고 일어서 있는 민규에게 다가갔다. 민규는 그런 고동식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 저리 비켜요!

- 목사님!

- 나 혼자 갈 수 있어. 나 혼자.

민규는 그렇게 비틀거리며 일식집 밖으로 나갔다.

*

무작정 밖으로 나온 민규는 그저 걸었다. 낯선 율주의 밤거리가 오히려 민규를 더 걷게 했다. 처음에는 취기를 잊기 위해 걸었다. 하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더 무섭고 맹렬한 취기가 민규의 온몸을 사로잡았다. 깊은 어둠과 대조적으로 도로를 환히 비추는 가로등 불빛을 피해 민규는 걷고 또 걸었다.

율주시의 밤은 적막했다. 말끔히 정돈된 도로는 새벽 시간대가 되자 정물의 일부로 전락했다. 신호등도 가동 중지된 상태로 깜빡거림을 계속하는 거리를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한 대의 차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유령도시의 한복판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기분의 끝에서 민규는 멈춰 섰다. 네거리의 정돈된 신도시 신호를 넘어서자 채 철거되지 않은 옥외 철로와 철로 표지대가 눈에 들어왔다. 노출된 철로와 표지대는 여전히 가동 중이었다.

철로 앞에 민규가 멈춰 섰다. 바리게이트가 내려져 있어서가 아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 아래 누군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철로 위에 있는 한 여자아이가 보였다. 그 여자아이를 보는 순간 민규의 취기는 빠른 속도로 달아났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민규는 그 아이를 기억했다. 아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유난히 입술만 붉게 칠한, 그래서인지 희디흰 낯빛이 더 창백해 보이는 여자아이는 민규가 처음 율주시의 철거 예정 역사에 들어섰을 때, 벤치에 앉아 있던 그 소녀였다.

소녀 역시 민규를 노려보았다. 노려보았다는 게 정확하다. 소녀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민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소녀의 눈빛은 형언할 길 없는 증오와 환멸로 차올라 있었다. 무엇을 향한, 누구를 대상으로 타오르는 증오였는지 민규로서는 가늠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소녀에게 눈을 뗄 수도, 다가갈 수도 없었다. 난생 처음 느끼는 공포가 민규의 온몸을 소름 끼치게 했다. 그것은 마치 추악한 자신의 범죄가, 하지만 오랜 시간 안온하고 나름 평정된 환경에 의해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일시에 수면 위로 떠올라 발각되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건널목에서 차임벨 소리가 들렸다. 소리와 함께 요란한 기차 소리도 함께 이어졌다. 민규는 반대편에서 굉음을 쏟아 내며 질주하는 화물열차가 소녀가 서 있는 철로를 통과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민규는 자신을 노려보는 소녀를 향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소녀의 증오가 그 자신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열차가 지나간 뒤, 민규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열차가 지나가고 난 자리를 멀쩡히 서서 지켜볼 자신이 없었던 탓이다.

다행인가, 불행인가. 소녀는 열차가 궤도 위를 짐승처럼 덮쳐든 그 순간, 궤도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열차가 떠난 뒤의 소녀도 민규처럼 철로 바로 뒷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소녀의 눈빛은 여전히 민규를 향했다.

잠시 후, 민규는 소녀로부터 시선을 떼고 다시 잘 정돈된 8차선 도로로 돌아섰다. 그때, 민규의 머릿속에 직감 하나가 떠올랐다. 소녀가 뭔가를 말하고 싶어한다고 느낀 것이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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