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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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미루면서까지 민규는 한영호의 뒤를 따랐다. 율주제일교회의 구조물 중 14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교회와 약간의 거리를 둔 곳에 위치한 신애원으로 연결되는 이동 통로가 신설되었다는 점이다. 투명한 유리벽으로 만든 일종의 구름다리와 같은 시설물이었는데, 통로 길이는 얼핏 보아도 족히 100여 미터는 넘어 보였다.

구름다리는 율주제일교회 본관 건물 3층 복도 끝에 연결되어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선 한영호의 뒤를 따른 민규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한영호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이유는 잘 설명되지 않았지만 강한 자력 같은 힘의 이끌림과 같았다. 설교가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이었다. 그 순간, 눈이 마주친다는 것, 화자와 청자의 일치가 공감되는 것처럼 강렬한 체험은 아마도 다시없을 것이었다. 그 강렬한 인식의 충돌이 그 역시 강한 여운을 남긴 탓이리라. 그 자력과도 같은 여운에 이끌려 민규는 한영호의 뒤를 잠자코 따랐다.

한영호의 뒤를 따를 때, 문득 떠오른 짐작이 있었다. 바로 김인철의 부재였다. 김인철은 당최고회의 참석차 서울, 여의도로 향했다고 했다.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김인철을 따르던 장로회 파벌들도 긴장의 끈을 늦춘 모양새였다. 김인철이 예배에 불참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장로들 절반이 예배에 불참했다.

그 생각이 미치자 민규는 한영호가 김인철의 부재를 기다리고 자신과의 만남을 시도한 것으로 읽혔다. 둘 사이에 껄끄러운 어떤 것이 가로막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민규에게 그 짐작이나 실감은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14년 전 기억 속에 한영호. 민규에겐 한의원 원장님으로 알려진 그가 보여 준 인자함은 말 그대로 따뜻한 추억이었기에 그는 한영호와의 만남이 마냥 편안한 환대로 다가왔다.

3층 복도 끝은 두 세 개의 자물쇠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열쇠 꾸러미를 꺼낸 한영호가 말없이 자물쇠를 풀어내고 있었다. 자물쇠의 잠금장치가 풀릴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3층 복도에 둘밖에 없어서일까. 거친 철성이 메아리가 되어 3층 복도 전체를 서늘하게 했다. 민규가 질문했지만, 한영호는 답을 하지 않았다.

- 어디로 가시는 거죠?

- ……

3층 복도 끝, 페쇄된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신애원으로 연결되는 구름다리가 보였다. 철문을 연 한영호는 그제야 민규를 보며 말문을 열었다. 방금 전 묵묵부답이었던 탓에 비쳐지던 낯설고 차가운 무례함과 또 다른 차분히 정돈된 예의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 목사님이 오시면 함께 걷고 싶었습니다.

- 예?

- 잠시면 됩니다. 오랜 시간 뺏지 않겠습니다. 이 길을 한 번만 함께 왕복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라는 의구심이 순간 민규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무리 없이 한영호와 동행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통로는 사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외부의 경관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제법 단단한 장력을 가진 구조물 받침들이 설치되어 있어 100여 미터가 넘는 통로 길이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둘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민규가 원통, 혹은 정육면체 모양으로 구성된 다리를 둘러보며 말문을 열었다.

- 참 의미 있는 시설인데 왜 사용을 하지 않는 거죠? 잔뜩 낀 먼지들이 눈에 걸리네요.

민규가 둘러본 통로는 그랬다. 오랫동안 닦지 않은 탓에 유리벽 전체가 흙먼지와 들러붙은 오래된 나뭇잎들로 가득했다. 민규가 기억하기로 이곳 구름다리는 14년 전 율주제일교회가 새롭게 인수했던 장애인 복지시설 신애원을 가난한 자들을 보듬는 교회의 일부로 삼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공사였다. 민규가 떠나기 직전 첫 준공식을 했던 것으로 기억했고, 미국에 간 이후 구름다리가 여러 공사 중단 사태를 겪은 뒤 2년 만에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이런 식으로 미사용되는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한영호가 민규의 질문에 잠시 침묵을 지키다 무겁게 한마디 답했다.

- 탐욕과 이기심 때문이죠.

-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 복지시설을 이용하지 않아도 교회는 몇몇 장로들의 헌금 명목 기부금으로 잘도 운영되니 더 이상 시설이 쓸모없다고 느낀 겁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 다리는 두려움과 불길함의 다리예요. 이 다리를 열어 놓으면 미쳐 귀신 들린 자들이 언제라도 교회 안으로 들어와 자신들을 해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귀신 들린 자들. 한영호가 말한 그들은 신애원에 입주한 정신지체 장애아들을 말하고 있다고 민규는 짐작했다. 본래 다리를 건립한 참된 의미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이 없는 교회 정신의 구현이었다. 하지만 결국 다리는 현재 굳게 잠긴 자물쇠만큼이나 열리지 않는, 오히려 더 강고하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분리를 상징하는 장벽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한영호와 민규는 침묵의 힘에 견인되어 다리의 끝에 도달했다. 신애원으로 연결되는 철문은 더 비참한 장벽의 서슬 푸름으로 민규의 눈앞에 그 위엄을 드러냈다. 거대한 철문 사면 전체가 이중, 삼중으로 용접되어 있었다. 녹슬고 철저히 막혀 버린 철문 앞에 선 민규를 보며 한영호가 오랜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 전 목사님에게서 마지막 희망을 보았습니다.

-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한영호의 엄숙한 표정이 민규의 숨을 막히게 했다. 그 질식감은 놀라울 정도의 밀도의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아브라함의 설교만을 기다렸습니다. 목사님만을 기다렸어요.

- 저를요?

- 아울러 목사님의 논문만이 이곳, 율주제일교회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란 사실을 확실히 했구요.

- 논문……?

- 아브라함이 포악한 이교로부터 야훼이즘을 지켜 낼 수 있는 방법론 중의 최선은 그들의 종교행위의 극단성의 재연을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이를 초극하는 새로운 신성에 대한 무의식적 갈망을 도출해 내는 데 있었던 것이다. 75페이지 여섯 번째 줄, 두 번째 단락 말입니다.

한영호가 낭독하듯 말한 그 부분. 페이지에 줄 번호까지 기억하는 그 부분을 듣자 민규의 놀란 눈이 더욱 크게 열렸다. 그 구절은 민규의 박사 논문 75페이지 여섯 번째 줄, 두 번째 단락에 적힌 글이었기 때문이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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