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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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난 말이요. 하나님이나 예수님이 하는 말들이 제일 싫어.

도코모토 2층. 14년 만에 귀국한 첫날, 민규에게 그토록 시린 낯섦을 안겨다 준 특실이었다. 저녁을 대접한다고 민규를 데리고 온 김인철이 정식을 기다리며 꺼낸 첫마디가 바로 그랬다. '제일 싫다'는 말에 민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김인철을 바라봤다. 김인철은 내내 민규를 바라보았다. 뜨거운 차를 한 모금 삼킨 김인철이 말을 이었다. 민규를 향해 소름 끼치는 비웃음을 함께 흘리며.

- 이유는 간단해. 지루하잖아. 사랑, 평화, 용서, 이게 도대체 오늘 우리 사는 세상에서 무슨 소용이야. 안 그렇소?

- ……

- 게다가 설상가상 십자가? 희생? 빌어먹을.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민규가 확인한 김인철의 표정엔 진심 어린 역겨움이 묻어 있었다. 그 대상이 누굴까. 누구를 향한 역겨움일까. 민규는 차마 김인철과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본능으로 충만한, 대상을 확정할 수 없는 일상적 분노에 사로잡힌 김인철의 눈은 민규의 눈에 분명 사람의 눈이 아닌 독기에 찬 맹수의 눈으로 보였다.

김인철의 시선을 피한 건 민규 혼자만이 아니었다. 김인철이 최대한, 더 정확히 말해 일방적으로 데리고 온 율주제일교회의 장로회 핵심 장로들이 함께했다. 민규의 눈에 익숙하게 들어온 고동식은 나이 지긋한 장로회 일원에서 스스로 한 걸음 물러선 끝자리에 앉아 서빙하는 종업원들에게 서빙 순서를 지시하는 데 바빴다.

- 정민규 목사.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솔직히 관심 없어. 날 더러운 탕자나 술이나 처먹고 방탕한 그 뭐야… 타락한 장로로 볼지도 모르지.

그렇게 말한 김인철이 정식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스스로 자신의 술잔에 사케를 따라 한 잔 마셨다. 그리고는 바로 자신이 비운 잔을 민규에게 건넸다. 순간, 당황한 민규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반백의 머리와 그 나이대에 봄직한 검버섯과 주름 가득한 장로들은 부러 민규를 바라보지 않았다. 자신의 자리에 놓인 찬거리나 스푼으로 낫또를 퍼먹는 데 분주했다.

민규가 망설이자 김인철이 쓴 웃음을 지으며 건넨 잔을 다시 자신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사케 한 잔을 자작했다.

- 사람들은 내가 아버지 후광 제대로 입고 꽃길만 걸었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에 말씀이야. 우리 잘난 아버지 김성일 장로, 아니 김성일 의원이 어떻게 4선 코앞에서 물먹었는 줄 잘 알 거 아니요. 응? 아니 그래요? 장로님들. 말씀 좀 해보세요.

김인철은 분명 취하지 않았다. 민규는 분명히 확신했다. 연속 석 잔을 빠른 속도로 털어 넣긴 했지만 김인철의 독충 같은 눈동자는 선명하게 번들거렸다.

장로들은 좌불안석이었다. 민규가 보기엔 분명 그랬다. 하지만 뭐랄까. 이곳 도코모토에서의 술자리가 빨리 작파하기를 고대하는 염증의 태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김인철이 날카로운 독설을 날리는 대상이 자신들인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한사코 김인철의 주정, 혹은 패륜에 가까운 독설을 피하려 애쓰는 건 분명한데도 커다란 2층 일식집 귀빈석을 차지하고 앉은 장로들은 김인철이 따로 마련해 둔 성찬을 기다리는 애증 섞인 갈망에 몸이 달았다. 민규의 눈엔 그들의 그 미련이 또렷하게 보였다. 김인철의 푸념, 강한 한풀이성 성격의 말들이 거침없이 이어졌다. 말의 시작과 끝에 특별한 말 습관처럼 '빌어먹을'을 되풀이하며.

- 빌어먹을. 비리 의원으로 낙인찍힌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내가 얼마나 개지랄을 떨었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아. 그런데, 말이요. 정 목사.

- 예. 말씀하세요. 장로님.

- 이런 눈물 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을 딛고 내가 이곳 율주시에만 국회의원 노릇한 지가 이제 벌써 12년이요. 율주시장까지 합치면 14년을 율주시에서 왕 노릇했다고. 응!

그때였다. 마치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2층 귀빈석의 미닫이문이 일제히 열렸다. 한옥식 형태로 마련된 미닫이문, 다섯 개가 일제히 약속이라도 하듯 열리자 민규의 눈과 코로 끔찍할 정도의 강한 이미지와 향취가 파고들었다.

일식집 도코모토의 벽마다 여백을 주지 않고 꾸역꾸역 채워 넣은 강한 외설로 무장한 춘화의 주인공, 유난히 하얀 피부를 배신하듯이 최대한 붉게 그려 넣은 입술이 돋보이는 게이샤를 닮은 열 명 남짓한 여성들이 귀빈석 미닫이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왔다. 이후 접대부로 보이는 여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이미 지정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신속하게 앉기 시작했다. 민규의 옆자리에도 부드럽게 찰랑거리는 생머리에 유난히 큰 키가 돋보이는 여자 접대부가 깍듯이 목례하며 앉았다. 민규의 옆에 여성 접대부가 앉는 때와 맞춰 김인철이 마치 외치듯 말했다.

- 내가 만약 사랑, 용서, 십자가, 그 뭐야. 희생. 그런 거나 외치고 있었다면 과연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절대 아니야. 이 시대에는 말이요. 악마가 필요해. 강하고 독한 악마 말이요!

'악마'란 두 낱말을 힘주어 말하는 순간, 김인철과 민규의 자리에 커다란 도미 한 마리가 등장했다. 김인철이 싱싱하게 난도질당한 도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그 악마가 이곳 율주시를 살기 좋은 지방 자치도시 영순위로 만들었고, 그 악마가 가난과 무지에 허덕이는 율주시 촌놈들을 강남 벼락부자들 부럽지 않은 부자로 만들었소. 그 악마가 말이요! 그 악마가!

자연스럽게 침묵이 흘렀다. 민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성 접대부들도 침묵 속에서 오직 한 사람, 김인철의 결단을 기다렸다.

깊은 한숨을 내쉰 김인철이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 얼굴을 했다. 그리고는 무언의 경고처럼 자신의 저분에 집은 도미 생선의 한 토막을 민규의 접시 위에 올려놓으며 한마디했다. 부탁의 말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경고에 가까웠다.

- 그러니 나한테 제발 기도 같은 건 시키지 마쇼. 예?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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