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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된 뒤로 가장 정신없고 어지럽던 설교였다. 어떻게 강대상 아래로 내려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긴장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설교를 마치고 대기석 자리로 돌아온 뒤에도 민규의 머릿속엔 그와 같은 자문이 떠돌았다.

민규의 설교가 끝나감과 동시에 헌금을 위한 찬송이 이어졌다. 파이프오르간의 웅장한 음악이 시작됨과 동시에 성가대석에 앉아 있던 성가대원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리고 한목소리로 봉헌의 감격을 알리는 헌금 찬송을 시작했다.

이 순간 문득, 민규는 율주제일교회의 예배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이 어디인지를 간파했다. 헌금 찬송이 화려하게 이어짐과 동시에 대예배실 정문이 열렸다. 이윽고 정장 차림의 헌금위원들이 일제히 예배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손에 쥐고 있는 십자가 자수가 수놓아져 있는 붉은색 헌금통이 장의자에 앉은 신도들 사이사이 어느 한 명 빼놓지 않고 훑고 지나갔다. 그 사이 찬송은 더 높고 거룩한 존전에 군림하듯 앉아 있는 듯 신을 향한 절정의 감격을 쏟아 내었다.

이 순간, 민규는 신도들의 눈빛이나 표정을 제대로 살필 수 없었다. 그 대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헌금위원들의 움직임과 검붉은 헌금통의 규칙적인 이동, 거기에 헌금통 안으로 무언가에 빨려 들듯이 파고드는 신도들의 새하얗거나 적당히 태워진 손등이나 팔만 보였다. 민규는 연신 식은땀을 닦으며 다시금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감상적인 생각 따위는 집어치우자. 교회가 어떤 독특한 전통을 가졌든 말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야. 난 어차피 장로회에 의해 추대된 청빙 목사다. 그저 흐르는 물처럼 바짝 엎드리며 살아가자.'

그 굳은 다짐이 민규를 다시금 살아 있게 했다. 정신이 돌아오는 걸까. 헌금 순서가 끝나고 강대상보다 한참 아래 있는 보조 강단에 한 사람이 걸어 올라왔다. 우측 끝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는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주의 깊게 살피면 지독한 거만함이 느껴질 정도로 느긋한 걸음걸이를 뽐내며 강단으로 올라섰다. 강단에 올라선 남자는 마이크 높이를 조정하며 모인 신도들을 둘러봤다. 대기석 자리에 앉아 있던 민규가 남자가 무슨 말을 할지 유심히 살폈다. 순서지를 보면 헌금 찬송 다음에 헌금 기도가 있었고, 그 이후 교회 소식란이 있었다. 기도와 교회 소식란의 참여자 이름이 민규의 눈에 들어왔다. 김인철 장로였다.

김인철 장로. 민규가 율주시에 입성한 첫날, 멋대로 약속을 불발시킨, 하지만 펜트하우스에 가까운 사택과 법인 명의로 등록된 마이바흐 차를 청빙받은 목사에게 무상으로 제공한 인물이 민규의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김인철 장로는 검게 염색한 숱 많은 머리를 하고 있어 정확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한눈에 50대로 보였지만 군림하듯 신도들을 바라보는 태도나 마이크 높낮이를 조절한 뒤 내보인 발언들로 미루어 보면, 노욕으로 가득한 60대 이상의 원로로도 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김인철 장로의 외모나 태도가 가진 특성이 아니었다. 그의 태도였다. 강단에 올라선 김인철 장로가 뱉어 낸 일성은 다음의 말부터였다. 그건 말이라기보다는 엄포에 가까웠다.

- 기도는 생략하겠습니다. 괜찮죠?

질문을 했지만 그 질문은 신도들의 동의를 구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질문을 끝낸 김인철은 신도들을 크게 둘러봤다. 신도들 모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거부도, 동의도 하지 않았다. 민규의 눈에 비친 그들은 어떤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 사물의 일부 같았다. 거룩한 경외심을 지속하려는 신도들의 표정과 절제된 동작은 대예배실 천창과 벽면 창문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벽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민규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렇게 강압적인 경외심에 사로잡힌 신도들을 둘러본 김인철이 무슨 이유에선지 입맛을 한 번 크게 다신 뒤 말을 이었다. 그때, 김인철이 강단 대기 좌석에 앉은 민규를 뒤돌아봤다. 처음으로 김인철 장로와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민규를 바라보는 김인철의 시선은 한마디로 무정했다. 자신과 같은 부류의 짐승을 바라보는 야수의 눈빛이었다. 비약에 휘어 감긴 추측이겠지만 김인철과 눈이 마주친 순간 민규는 약육강식 세계에서 처음부터 김인철의 하위종임이 결정되었다는 강한 위계 의식에 사로잡혔다. 언제든 이유 없이 잡아먹힐 수 있다는 공포가 민규의 정신과 몸 전체를 뱀처럼 휘어 감았다. 민규는 김인철의 그 역시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섬뜩한 광기에 본능적으로 치를 떨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민규를 그렇게 무정하게 지켜본 김인철이 시선을 다시 신도들에게 향했다. 한없이 순하고 고분고분한 어린 양과 같은 신도들을 향해.

- 보시다시피 이번 주엔 우리 율주제일교회가 한 단계 도약되는 계기를 맞았습니다.

이어지는 헛기침. 김인철의 요란한 헛기침이 마이크 바로 앞에서 부딪히듯 터져 나온 탓에 마이크에선 갑작스러운 잡음이 일어났다. 김인철이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 지난달 장로 회의에서 의결된 대로 율주제일교회의 새로운 목사를 모셨습니다. 바로 음… 정민규. 그래. 정민규 목사입니다.

김인철의 소개를 받은 민규가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서서 인사했다. 신도들 중에 가장 열렬히 감격적으로 민규를 받아들이는 이는 단 한 명, 그의 어머니 양 권사밖에 없어 보였다.

어색한 인사를 하던 때, 민규는 다시 한 번 11시 대예배에 참석한 신도들의 면면을 살필 수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시선을 붙잡는 한 명이 보였다. 시선의 붙잡힘은 어쩔 수 없는 본능에 가까웠다.

내내 긴장했던 탓에 보지 못했던 자리, 파이프오르간이 위치한 강대상 뒤편이었다. 대기 의자에서 일어나 둘러보고서야 겨우 눈에 들어온 파이프오르간 연주자의 모습이 민규의 시선에 와 박혔다. 피아노 반주자에 대한 거의 본능에 가까운 두려움 탓에 눈도 돌리지 않았던 그였지만, 그녀, 율주제일교회의 파이프오르간 연주자 앞에서는 어떤 두려움도, 머릿속 계산도,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법한 대범함을 민규에게 허락했다. 인사를 마친 뒤 자리에 앉은 민규는 그녀의 이름을 입가에 담아 중얼거렸다.

'김정은…'

'정은이구나…'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