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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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목사님.

율주제일교회의 부교역자인 김현태 목사가 소예배실 불을 켜고 난방을 점검하던 중이었다. 시간은 새벽 4시 50분. 5시에 시작되는 새벽 예배 준비가 이제 막 시작될 때였다. 그때, 소예배실로 제일 먼저 들어서는 새벽 예배 참석자가 김현태를 놀라게 했다. 민규였다. 새롭게 청빙된, 대예배실에 마련된, 그 공간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가진 담임목사인 민규가 새벽 예배에 등장한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목사가 자신이 섬기는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온 뒤, 거의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자신의 박사 논문을 정독하느라 기운을 모두 쏟아부은 민규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잠이 오지 않았다. 스마트폰에 한 가득 저장되어 있는,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더 이상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한 맺힌 유령의 핏빛 절규와 같은 연주의 말들이 머릿속을 떠돌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 다른 복잡한 심경들이 갑자기 깨져 버린 유리 파편처럼 곳곳에서 보였기에 그 날카로운 긴장감 역시 민규를 쉽게 잠들지 못하게 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을 잔 것 같지 않은 기분을 그대로 끌어안은 채 결국 민규는 새벽 4시가 되자마자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자신만의 세계를 독려해 주는 새벽 예배에 참석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맞이하는 부목사 김현태의 반응은 민규의 예상을 벗어났다. 의외의 돌출 행동으로까지 여겨졌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의아함은 이내 해소되었다. 김현태가 거듭 물었다.

- 목사님께서 새벽 예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민규가 들어온 이후로 한두 명씩 새벽 예배 참석자들이 들어서는 중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중년과 노년을 맞이한 여성 신자들이었다. 민규를 알아보곤 목례했지만 그들의 표정이 썩 밝은 건 아니었다. 경계심까지는 아니었지만 민규의 새벽 예배 참여에 대해 의아해하는 눈빛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 그냥. 예배 드리려고 온 겁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김현태가 워낙 경직된 표정과 자세로 자신을 맞이하는 게 못내 신경 쓰인 민규가 서둘러 장의자에 앉았다. 강단이 아닌 장의자에 앉는 게 김현태를 안심시키는 일일 거란 느낌이 순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민규의 느낌은 맞았다. 민규가 장의자에 앉자마자 김현태가 귀엣말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전 목사님께서 새벽 예배 용역까지 함께 맡으신 줄 알았습니다.

- 용역… 이요?

'용역'이란 말을 교회에서 들을 거라곤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랬기에 민규는 그 말에 생소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김현태는 자신의 발언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표정이 전혀 아니었다. 그는 천진한 얼굴을 하고서 말을 이었다.

- 목사님. 저는 월, 수. 이 두 번의 새벽 예배가 제가 맡은 용역입니다. 월급은 적게 받지만 그대로 다른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좋아했거든요.

- 그런데요?

- 그런데, 담임목사님께서 나오셔서 식겁하고 놀랐지 뭡니까.

- 제가… 목사님 일자리를 뺏는 거라고 생각하신 겁니까?

- 그렇게 사전 통보된 줄 알았습니다.

김현태는 진심으로 안심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5시 시간이 되었음에도 김현태는 신도들의 자리인 장의자에 앉은 민규의 곁을 떠나지 않고 서 있었다. 뭔가 한마디 더 확실한 민규의 다짐이 필요한 듯 보였다. 그런 직감을 느낀 민규는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는 김현태에게 한마디 확실한 말을 들려주었다.

- 확실해요. 전 오늘 평신도 자격으로 기도하러 온 것뿐이에요. 설교할 생각도, 예배 인도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러니 찬양하고 설교하고 다 하세요. 어서요.

-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

민규의 확답을 듣고 나서야 김현태는 자리에서 벗어나 강단으로 돌아섰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는 강한 집념을 엄포라도 하는 듯 두 손으로 강단 모서리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출정가를 연상케 하는 '십자가', '보혈' 찬송을 목청껏 부르짖기 시작했다.

김현태 목사의 새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들뜬 예배 인도에도 민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도하려 했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과거를 돌이키고 율주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구상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두 손을 맞잡았을 때였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민규의 시선이 피아노 쪽을 향했다. 우측 장의자에 앉은 민규의 자리에서 보면 대각선 방향에 놓여 있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는 반주자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반주자는 김정은이었다.

김현태가 생음악으로 찬송가를 부르고 있을 동안 반주자인 김정은은 피아노 의자에만 앉아 있을 뿐 반주를 하진 않았다. 대신 그녀는 민규가 소예배실로 들어와 우측 장의자에 앉아 마음을 정돈하고 있던 그 순간부터 그를 바라보았다. 김정은과 눈이 마주치자 민규 역시 그녀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말없는 침묵만으로 나누는 그녀와의 눈 마주침에서 민규는 그녀, 김정은이 정말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할 수 없는, 오랫동안 짓눌러 있던 고통, 슬픔, 회한, 원망, 그리고 애증이 자신을 바라보는 김정은의 눈빛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긴 김정은이 민규로부터 등을 돌렸다. 김현태가 준비 찬송을 멈출 생각을 않자 그에 장단을 맞추려는 듯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후로도 민규는 기도에 집중할 수 없었다.

시편 한 편 낭송한 분량에 지나지 않는 설교가 마무리된 후, 불이 꺼졌다. 개인 기도 시간이 찾아왔다. 그 사이 음악은 피아노 반주가 아닌 미리 녹음된 음악이 흘러나왔다. 민규는 두 손을 모으긴 했지만 기도를 할 수는 없었다. 불이 꺼지자마자 김정은이 자리에서 일어섰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도 김정은의 시선은 내내 민규를 향했다. 긴 생머리를 모양 없는 리본으로 질끈 동여맨, 체크무늬 남방에 청바지 차림의 김정은은 민규의 기억 속에서 청년부 시절의 모습 그대로 소환되었다. 그런 김정은이 개인 기도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소예배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잠시 민규는 망설였다. 그의 머릿속이 다시 어지럽게 움직였다.

'뭘 어떻게 하려는 거야… 다시, 정은이에게 말을 건다 해서 뭐가 달라진다는 거지?'

하지만 민규는 더 이상 눈을 감고 입을 열어 기도할 수가 없었다. 김정은이 예배실 밖으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민규 역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순간, 안심하고 진군가처럼 찬송을 부르던 현태가 긴장된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민규는 그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정은을 따라 소예배실 밖으로 나왔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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