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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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보시죠.

민규 앞을 앞장서서 걷던 김인철이 어딘가로 들어갔다.

예배가 끝난 뒤 김인철은 강단 뒤편에 마련된 대예배실을 나오면 바로 연결되는 귀빈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그가 멈춘 곳은 5층 교육관실이었다. 하지만 5층이 교육관실이란 기억은 민규 혼자만이 품은 오래된 기억이었다.

민규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의 교회에서 지냈다. 그것도 율주제일교회에서의 추억만이 민규의 조금은 지루한 학창 시절을 메워 버렸다. 교회학교에서부터 시작해 주일학교 교사, 대예배 이후 성경 공부에서부터 청소년 특별 찬양 예배까지. 민규는 교회가 싫지 않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가진 것이 특별히 많지 않아도 교회에서는 그런 외적 요건들이 큰 흠이 되지 않았다. 특별히 어렸을 적에 아버님을 잃은 일로 인한 가난과 외로움을 겪어야 했던 민규에게 교회는 그야말로 깊은 위로의 장소였다. 동시에 교회는 자신을 지탱하게 해 주는 존재 기반과 같은 곳이었다. 그런 민규의 아지트는 늘 이곳, 5층 교육관실이었다. 각종 건축법규 탓에 증축 공사가 더디게만 진행되는 중이던 5층은 명목은 교육관실이었지만 텅 빈, 폐허처럼 남겨진 커다란 다락방 같은 공간이었다. 약간은 낮은 천장이 돋보이는, 늦은 오후만 되면 석양의 붉은 빛살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틈새를 뚫고 파고드는 매혹적인 운치로 가득한 5층의 기억이 민규를 설핏 미소 짓게 했다. 미소가 지어짐과 동시에 자연 발생적으로 한 사람, 대예배 시간 때 보았던 김정은에 대한 기억도 떠올랐다. 동갑내기 고등부 찬양부 회장과 부회장이던 둘은 일요일, 모든 공식적인 행사를 마치고 나면 한창 공사 중인, 이곳 5층에 올라와 날이 저물 때까지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 다시 찾은 5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층고는 훨씬 더 높아졌으며 공간의 폭도 확장되었다. 무엇보다 이제 5층은 민규의 고등학교, 대학 시절 때처럼 여러 건축법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공사 현장이 아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화려한 외관을 과시하는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공간이었다. 그중에서도 김인철이 민규를 데리고 들어간 곳은 5층의 다른 공간과도 확실히 차별되는 공간이었다. 벽 전체가 화려하고 고가의 대리석으로 세련되게 마감된 사면 벽면에 모던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집무실이었다. 그 공간에 먼저 들어선 김인철은 곧이어 민규를 데리고 들어왔다. 공간 안으로 들어오기 전 민규는 이 공간의 정확한 명칭을 먼저 확인했다.

'담임목사 집무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 어때요? 맘에 듭니까? 정… 민규 목사님.

부러 그러는 걸까. 김인철은 집무실 책상 위에 미리 마련해 놓은 명패에 적힌 '담임목사 정민규'란 명패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민규의 이름을 호명했다. 민규는 어색하게 웃음 지으며 답했다. 집무실이라 이름 지은 서른 평은 훨씬 넘어 보이는 공간을 크게 둘러보면서.

- 당연히 맘에 듭니다. 과분할 정도예요.

- 과분하다뇨. 이래 보여도 율주를 대표하는 정신적 지주인 교회의 담임목사를 모시는 곳인데 이 정도 격식은 갖춰야죠.

김인철이 말하는 동안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구두굽 소리였다. 조금만 짐작해도 한두 사람의 발소리가 아니었다. 구두굽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곧이어 열린 집무실 문 사이로 양복 차림의 교우들이 대열을 갖춰 서 있었다. 그들 모두 방금 전 예배를 함께하던 헌금위원들과 대표 기도 등 예배 순서를 나눠 진행하던 교회 장로들이었다. 민규는 그들 중 한 명을 알아볼 수 있었다. 중간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그는 고동식이었다.

김인철이 문가에 서 있는 그들을 보며 중간에 서 있는 고동식을 향해 손짓했다.

- 왜 그러고 서 있어요? 모두 들어오라고 해요.

김인철의 손짓이 신호가 되었다. 문가에 서 있던 사람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손님 접대용 소파는 넓고 컸다. 넉넉히 양옆으로 여덟 명 이상은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 안팎으로 서 있기만 할 뿐, 소파에는 김인철과 민규 둘 뿐이었다. 민규가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설 뻔했다. 김인철이 손짓으로 제지하지 않았다면 분명 일어섰을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이용해 5층까지 빠른 걸음으로 올라온 교우들이 민규를 향해 예의를 갖춰 인사했기 때문이다. 김인철이 그들을 한데 묶어 설명했다.

- 저희 교회 장로, 안수집사들입니다. 인사 받으시죠.

민규는 김인철이 보인 무언의 압박에 짓눌렸던 걸까. 끝내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한 채 인사를 했다. 그들 중엔 민규의 눈에 익숙하게 들어오는 이도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보아 왔던, 어머니 양 권사와 잘 알고 지내는 동네 사람들도 있었다. 김인철이 서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민규에게 말을 건넸다.

- 이번에 목사님을 모시는 데 힘을 다한 이들입니다.

- 감사합니다.

김인철의 공치사에 민규는 한마디 반발도 하지 않았다. 청빙의 경위나 이유를 묻거나 할 수 있는 의지 자체가 민규에겐 남아 있지 않았다. 민규는 잘 알 수 있었다. 자신 앞에서 여봐란듯이 족히 오십여 명이 넘는 장로와 안수집사들의 줄을 세운 이유를. 김인철은 이 한 장면으로 민규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그리고 무언의 압박이 실감되는 힘을 실어 짧게 한마디했다.

- 목사님.

- 예. 말씀하시죠.

- 앞으로 우리 잘해 봅시다.

김인철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민규는 별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김인철의 서늘한 미소를 지켜보았다. 김인철이 말했다.

- 목사님은 좀 말이 통할 것 같네요.

- 예?

- 오늘은 저녁 같이 먹읍시다. 지난번에 결례도 씻는 겸 해서.

-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 내가 괜찮지 않아서 그래. 지난번에 그곳. 싱싱한 게 많은 그곳으로 갑시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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