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 - 18 <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 < 연재 < 기사본문

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예배가 끝났다. 민규를 바라보는 신도들의 시선은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예배가 끝난 뒤 정해진 순서처럼 민규는 대예배실 입구로 이동했다. 한 명, 두 명, 율주제일교회 신도들은 민규를 바라보며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인사했다. 민규는 그들에게 처음에는 악수를 건넸고, 조금씩 시간이 지나 사람들에 밀리게 되면 목례로 인사를 대신했다.

첫째 주에는 설교 이후, 민규는 신도들과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김인철 장로의 파벌인 장로회와 안수집사 일행이 민규를 서둘러 5층으로 데리고 갔기에 신도들과 제대로 인사할 틈이 없었다. 둘째 주가 되어서야 민규는 율주제일교회 신도들과 제대로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드높기만 한 강대상 위에서, 절대복종을 자발적으로 헌납한 땅의 백성들을 굽어 내려다보는 위치에서는 제대로 된 시선의 마주침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민규는 이렇게 정면으로 사람들을 마주 보며 인사하는 순간들이 담임 교역자 위치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믿었다.

더욱이 민규에게 율주제일교회 신도들은 낯설 이들이 아니었다. 14년 전에 떠나 시간의 공백이 있다 해도 이곳에는 교회에 평생 헌신하기로 작정한 어머니 양 권사가 있었고, 민규의 중·고등부와 대학·청년부 시절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늘 익숙하게 보아 왔던 신도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러한 익숙함과의 마주침만 있는 건 아니었다. 김인철 장로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그랬다. 민규는 김인철 장로를 14년 전, 교회에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신 그의 부친이던 교회 원로 김성수 장로만 기억할 뿐이었다. 김인철은 율주제일교회 장로의 아들이란 타이틀을 이용하는 것 외에는 교회 출석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김인철 장로의 돈·권력·명예에 자연스럽게 들러붙은 이들은 민규의 눈에 익숙하게 다가오던 이들이었다. 지난주 주일예배 후, 일식집 도코모토에서 만난 김인철 파벌 중 민규의 눈에 낯익게 들어오던 이들이 분명 있었다. 어느새 집사 직분에서 장로, 안수집사로 등극한 그들은 과거에 율주에서 오랫동안 논밭을 일구며 살아가던 소박한 농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식집에서 본 그들은 더 이상 순박하고 순수한 시골 촌부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었다는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듯 술 마시고 취하고, 음담패설을 뇌까리는 태도를 시종 견지했다. 그들의 표정은 여전히 순박한 농부의 그것이었지만, 지역 맹주로 자리 잡은 김인철이 하사한 단맛에 취한 눈빛은 맹수의 야생을 빼닮은 김인철의 눈빛과 다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민규를 절망케 했다. 아마도 그날, 민규가 사케 한 병을 모두 비우고 난 뒤 반복했던 과도할 정도의 구역질도 그 깊은 절망에서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

민규는 희망을 갖고 싶었다. 14년 전의 순수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민규는 설교를 통해 자신이 쏟아 내고 싶었던 신학적 소회, 인생의 소회를 죄다 쏟아 내었다. 그렇게 맞이한 예배 후 신도들과의 만남. 그 만남에서 민규는 반가움을 나누고 싶었다. 그건 어쩌면 오래전에 잊고 있던 목회자와 신도와의 무리 없는 교류에 대한 갈망이었다. 민규는 최대한 편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이 이곳의 일부였던 것처럼 스며들고 싶었다.

하지만 신도들 표정은 한결같았다. 무표정에 가까운 형식적인 웃음과 목례로 민규를 맞았다.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자신을 바라보는 신도들 모습에서 민규는 채 아물지 못한 낯섦을 느꼈다.

분명 14년 전만 해도 격의 없이 인사해 오던 사이였던 신도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담임목사로 청빙받아 온 민규를 대하는 그들의 모습은 서먹함 그 자체였다. 거기에 민규의 마음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또 하나의 감정이 있었다. 바로 불신이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신도들의 표정과 눈빛에 일관되게 흐르는 공통분모가 불신이라는 점이 민규를 힘들게 했다. 그 느낌은 단순히 주관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민규의 직관을 매섭게 파고드는 불길함이었다. 신도들의 표정에 묻어 있는 한마디, 한 문장이 민규의 머릿속과 심장을 아리게 파고들었다.

'당신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서 추방되고 말 거야.'

왜 그런 문장이 머릿속을 맴도는 걸까. 민규는 스스로도 해명하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신도들과의 인사가 거듭할수록 그의 마음속 불길함은 더해만 갔다. 그것은 단지 이곳의 담임목회자가, 공교롭게도 김인철이 장로가 되고 율주시 국회의원이 되고 율주시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고 대규모 국가 차원의 지원이 이뤄지는 것과 때를 맞춰 무수하게 교체되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도들 대부분이 민규를 낯선 이방인 취급한다는 점이 그랬다. 더 나아가 그들은 누군가 이곳 율주제일교회의 담임목사로 자리 잡는다 해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을 듯 보였다.

다만 한 남자. 한 남자가 민규의 눈에 들어왔다. 신도들과의 인사가 얼추 끝난 뒤 민규가 신도들과 함께 지하에 위치한 교회 식당으로 향하려던 그때였다. 설교 시간 내내 민규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던, 유난히 매섭고 총명한 눈빛을 보여 준 코르덴 양복 차림에 반백의 머리를 한 남자.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지만 쉽게 아는 척하기 힘든 남자가 입구 옆에 주춤거리고 서서 민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신도들이 얼추 빠져나간 틈을 빌려 민규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다른 신도들과 다르게 거의 얼굴이 맞닿을 정도로 최대한 가깝게 근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