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스텔라데이지호는 2017년 3월 31일 대서양 한복판에서 침몰했다. 어느덧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시점으로부터 1276일이 지났다. 한국인 8명을 포함한 22명이 실종됐지만, 유해 수습과 침몰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2019년 2월, 1차 심해 수색을 실시하면서 선체 위치와 보존 상태, 유해 위치를 찾아내는 등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지만, 정부는 유해로 추정되는 잔해를 발견하고도 건져 올리지 않고 수색을 종료했다. 여기에 정부와 국회가 2차 심해 수색 예산을 전혀 배정하지 않으면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 가족들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다.

불행 중 다행으로 21대 국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2차 심해 수색의 필요성을 절감한 의원이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박홍근·김영호·서삼석·송갑석·황희·오영환·이탄희·조오섭·허영 의원, 국민의힘 김기현·한기호·김석기·이만희·추경호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 등 17명이 주최한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 수색 추진을 위한 국회 공청회'가 9월 25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렸다. 이태규·오영환·허영 의원이 현장을 찾아 축사하고, 우원식·이탄희·강은미·한기호 의원은 영상으로 인사말을 보내, 심해 수색에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영국 더비셔호, 미국 엘파로호 등
심해 수색 성공한 우즈홀연구소
수색 준비부터 사후 분석까지 2년
예산 800만 달러 소요 추정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 수색 가능성을 모색하는 국회 공청회가 열렸다. 국내 전문가들은 스텔라데이지호가 해저 3000m에 가라앉아 있지만 기술적으로 수색과 수습, 사고 원인 규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 수색 가능성을 모색하는 국회 공청회가 열렸다. 국내 전문가들은 스텔라데이지호가 해저 3000m에 가라앉아 있지만 기술적으로 수색과 수습, 사고 원인 규명이 가능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공청회 발제자들은 3년 6개월 전 대서양 해저 3000m에 가라앉은 스텔라데이지호이지만 기술적으로 수색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미국 우즈홀연구소를 통해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도 입을 모았다.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 수색의 기술적 가능성과 의미를 주제로 발표한 강희진 책임연구원(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은, 스텔라데이지호 선체 일부가 수압에 의해 내파(implosion)되면서 잔해가 72조각 이상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는 스텔라데이지호 사고와 가장 유사하다고 평가되는 더비셔호(Derbyshire) 내파 잔해 2500개보다 현저히 적으며, 조타실은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연구원은 우즈홀연구소가 더비셔호뿐 아니라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등 대형 선박 수색 경험이 풍부한 전문 업체라고 했다. 그는 "타이타닉도 침몰한 지 한참 지났지만, 잔해를 3차원으로 촬영하고 어느 부분이 손상됐는지 정밀하게 유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즈홀연구소가 보유한 라이다(LiDAR) 기술(레이저를 이용해 물체 거리와 형상을 측정하는 기법)과 멀티 렌즈 카메라 등을 통해 스텔라데이지호 잔해를 촬영하고, 합성해 3차원 모자이크 이미지를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2차 심해 수색의 필요성과 기술적 가치도 충분하다고도 했다. 강 연구원은 "정밀한 사고 원인을 분석해 기술적 진보를 이뤄 낼 수 있다.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개조 선박 52척이 운행 중이다. 더비셔호의 경우도 아주 작은 선체 덮개가 침몰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미 1차 심해 수색 때 조타실과 유해 등 해저 상태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촬영만 했을 뿐, 유해를 수습하거나 침몰 원인을 분석하지는 못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우즈홀연구소가 보유한 라이다 기술 등으로 선체 전체를 3D 스캐닝하고 블랙박스를 회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텔라데이지호가족대책위 유튜브 갈무리
정부는 이미 1차 심해 수색 때 조타실과 유해 등 해저 상태를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촬영만 했을 뿐, 유해를 수습하거나 침몰 원인을 분석하지는 못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우즈홀연구소가 보유한 라이다 기술 등으로 선체 전체를 3D 스캐닝하고 블랙박스를 회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텔라데이지호가족대책위 유튜브 갈무리

전치형 교수(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는 우즈홀연구소가 스텔라데이지호와 유사한 사례의 침몰 선박들을 수색하는 데 참여해 모두 성과를 거뒀다고 소개했다. 1997년 수색했던 더비셔호 선체 길이는 294.2m고 침몰한 지점은 해저 4200m였다.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체 길이 321.95m와 침몰 깊이 해저 3460m과 비교할 때 유사한 사례로 볼 수 있다. 2016년 미국 플로리다를 출발해 푸에르토리코로 가다가 가라앉은 엘파로호(El Faro) 침몰 지점도 해저 4600m였다. 심해 침몰은 아니지만, 골호(Gaul)는 1974년 노르웨이 바렌츠해 인근 해저 280m에서 침몰했는데, 1997년 건져 올렸다.

전 교수는 우즈홀연구소가 더비셔호 인근 구역에서 사진 13만 5774장을 찍어 지도로 만들고, 이를 이어 붙여 모자이크화해 선체 수색과 침몰 원인 분석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는 이를 토대로 짠 침몰 시나리오 13개 중 하나를 가장 유력한 침몰 원인으로 지목했다.

전 교수는 "더비셔호 수색을 진행했던 1997년 이후 20년이 지났다. 기술이 계속 진보해 왔기 때문에, 스텔라데이지호 심해 수색을 위해 새 기술을 개발할 필요도 없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침몰 원인을 조사하려는 의지와 선박 안전을 증진하려는 의지"라고 말했다.

그는 2019년 3월 미국 보스턴에 있는 우즈홀연구소를 방문해 더비셔호와 엘파로호 수색 작업을 지휘했던 앤드류 보웬을 만나 면담한 내용도 소개했다. 앤드류 보웬은 "심해 수색은 수색 자체뿐 아니라 과학적인 침몰 원인을 조사하는 등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침몰 원인을 규명까지 이어지려면 다양한 전문가 그룹이 참여해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유해 수습 경험가도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이 모든 과정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즈홀연구소 같은 수색 업체는 기술적으로 실행하는 역할일 뿐, 정부나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가 책임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스텔라데이지호 2차 수색 기간은 약 18개월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전치형 교수는 심해 수색 계획을 수립하는 데만 18개월이고 이후 분석 기간까지 고려하면 2년 정도 잡아야 할 것으로 봤다. 예산은 수색 비용 400만 달러와 수색 준비 및 사후 분석 400만 달러 등 약 800만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전 교수는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이 결국 정부 의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더비셔호를 수색하기로 결정한 것은 침몰 원인 조사에 대한 영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 때문이었다. 이 의지가 우즈홀연구소의 전문성과 결합했고, 조사를 통해 희생자를 위로하고 침몰 원인을 밝혀낼 수 있었다. 또한, 국제 선박에 대한 안전 증진 의지도 국제적으로 천명하면서 국제해사기구(IMO) 규정을 강화하는 데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조선 강국으로 알려져 있는 한국이 스텔라데이지호와 같은 대형 선박의 사고 원인을 조사해서 보고한다면, 해양 안전 분야에서의 리더십을 보여 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사고나 재난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그 나라의 진짜 수준과 역량이 드러나며, 원인을 밝히지 않은 채 바닷속에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야말로 해양 선진국의 책무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2019년 1차 수색 과정에 동행한 김영미 PD(<시사IN>국제문제편집위원)는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놓여 있는 스텔라데이지호 상황을 소개했다. 심해라서 조류의 영향을 받지 않을뿐더러, 선체와 유해가 흐트러지지 않은 채로 그대로 가라앉아 있던 것이다.

김 PD는 오션인피니티사 수색 결과, 조타실 내부가 파손되지 않아 'SAFETY FIRST' 글자가 온전히 남아 있는 모습, 심지어 탄산음료 캔 12개 1팩이 찌그러지거나 터지지 않고 온전하게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모습도 카메라에 잡혔다고 소개했다.

1차 심해 수색 때 블랙박스 일부를 회수했는데도 복구에 실패한 것은, 전문 인력이 수색에 동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봤다. 엘파로호나 에어프랑스 447기 블랙박스 수거 당시에는 철망을 이용해 훼손을 방지하고 인양 이후 곧바로 초순수액에 블랙박스를 보관하면서 산화 등 훼손을 막은 데 비해,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텔라데이지호 블랙박스는 총 2대이며 본체가 아직 심해에 있는 만큼, 전문 인력을 동원해 수색한다면 원인 규명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0년 관련 예산 0원
정부·국회 의지 부족 질타 이어져
"생명 존중이라는 선례 남겨야 할 때"
침몰하고 3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진상 규명은 지지부진하다. 2020년 관련 예산은 0원이다. 허경주 대표는 공청회에 참석한 국회의원과 공무원, 전문가들에게 "우리 어머니들이 제발 잠 좀 주무실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침몰하고 3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진상 규명은 지지부진하다. 2020년 관련 예산은 0원이다. 허경주 대표는 공청회에 참석한 국회의원과 공무원, 전문가들에게 "우리 어머니들이 제발 잠 좀 주무실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심해 수색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다는 발표들이 나오면서, 공청회에서는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생명안전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래군 소장(인권재단사람)은 "지난해 국회에서 예산이 전혀 확보되지 않았다. 외교부에서 의원실마다 가서 예산을 주면 안 된다고 말렸다. 또 1차 심해 수색에서 유해도 수습하지 못하고 3D 스캔도 하지 못한 것은 정부나 여당이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박 소장은 "올해 1월 히말라야 트래킹에 나섰다가 교사들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 정부에서 2차 수색까지 한 끝에 교사들과 네팔 가이드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이것도 역시 정부, 외교부가 한 거다. 교육부 소관은 되고 해양수산부 소관은 안 되는 건가 의구심까지 든다. 국가가 마지막까지 국민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국민도 국가를 믿고 애국심이 생기는 것이다. 이제는 생명 존중이라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까지 원인을 규명하려 노력하고, 시신과 유품을 수습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게 세월호 이후 달라져야 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청회 끝까지 자리를 지킨 허영 의원은 외교부가 안이하게 대응했다고 질타했다. 허 의원은 "영국 정부는 더비셔호 침몰 이후 18년간 책임지고 국가적 투자와 의지와 관심을 갖고 이 일을 했다. 스텔라데이지호 문제는 국가가 포기해야 할 일인가. 하루빨리 예산을 반영해서 찾아야 할 일이다. 유해가 뻔히 보이는데 유해 수습 계약조차 제대로 확인 안 한 엉터리가 어디 있느냐"고 외교부를 질타했다. 허 의원은 이날 외교부 강형식 기획관에게 1차 심해 수색 계약서와 2차 수색 예산 반영을 위한 외교부의 진행 현황을 의원실에 전달해 달라고 말했다.

가족대책위원회 허경주 공동대표는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2차 심해 수색 예산이 0원이 되고 나서 참담한 심정으로 9개월을 보냈다. 올해 상반기에는 코로나19와 21대 총선 때문에 정부나 의원실을 만날 기회도 없었다. 그런데 21대 의원들께서 마음과 힘을 모아 주셔서 공청회를 개최한 것 자체가 도약이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이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참사가 나면 대충 합의하고 정리하고 마음에만 담아 두고 시간을 보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왜 침몰했는지 왜 이런 재난이 발생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수순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월호 가족들이 그랬듯이, 끝까지 진상 규명하고 침몰 원인을 밝혀서 또 다른 재난 참사 피해자들이 발생하면 도울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 국회의원, 공무원, 전문가들께서 힘을 낼 수 있게 도와 달라. 빨리 과학적인 침몰 원인을 밝히고 유해를 수습해서 우리 어머니들이 제발 잠 좀 주무실 수 있게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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