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4년 기도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3월 31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4년 기도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죽은 애를 살려 내라는 것도 아니고, 뼈다귀 한 조각이라도 내 품에 안아 보고 싶다는데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해야 합니까. 이 늙은 애미를 길바닥에 세워 놓고 언제까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수수방관만 하실 겁니까. 유세장마다 쫓아다니며 내 손을 잡고 약속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늙은 애미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신발이 꽁꽁 얼어 터지도록 서 있어도 어떻게 응답 한마디가 없습니까. 대통령님, 제발 수색 좀 재개해서 이 늙은 애미 죽기 전에 소원 한번 들어주십시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올해 73세가 된 이영문 씨(스텔라데이지호 이등항해사 허재용 씨 어머니)가 3월 31일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을 애타게 부르짖었다.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진상 규명 약속을 믿고 기다린 지 4년이 흘렀다. 어머니는 한 손으로 연신 가슴을 쥐어뜯었다. 떨리는 몸은 끝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스텔라데이지호대책위원회(대책위) 허영주 공동대표와 허경주 부대표가 달려와 어머니를 부둥켜 안았다. 이 씨는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다"며 오열했다.

아들은 4년 전 이유도 모른 채 실종됐다. 유조선을 개조한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는 2017년 3월 31일 철강석을 싣고 중국 칭다오로 항해하던 중 우르과이 인근 해안에서 침몰했다. 배에는 허 씨를 포함한 한국인 8명과 필리핀인 16명이 타고 있었다. 이 중 필리핀 선원 2명만 구조됐고, 남은 선원 22명은 실종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선박 침몰 원인 규명과 유해 수습을 요구했다. 참사 2년 만인 2019년 2월, 정부는 1차 수색을 실시했다. 하지만 회수한 블랙박스 데이터 칩이 훼손돼 진상을 밝히지 못했다. 유해로 추정되는 잔해도 계약 조건 누락으로 바다 속에 두고 왔다. 작년 12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2차 수색을 위한 예산 100억 원을 편성했지만, '민간인 사고에는 국가 예산을 투입할 수 없다'는 기획재정부의 의견에 0원으로 삭감됐다.

가족들은 여전히 애가 탄다. 이영문 씨는 평일 점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대통령의 약속 이행을 요구하는 피케팅을 진행한다. 대책위 허영주 공동대표는 이 싸움이 단순히 가족들의 원한을 풀어 주는 게 아니라 지금도 운항 중인 개조 선박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년간 싸워 1988년 진상 규명을 이뤄 낸 영국 더비셔호처럼 끝까지 진실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허 대표는 "마음껏 추모하고 싶다"며 참사 5년을 맞기 전에 추모할 수 있는 5주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이등항해사 허재용 씨 어머니 이영문 씨(73)는 증언을 마치고 바닥에 주저 앉아 절규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스텔라데이지호 이등항해사 허재용 씨 어머니 이영문 씨(73)는 증언을 마치고 바닥에 주저앉아 절규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대책위는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4년 저녁 기도회를 열었다. 31일 기도회에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목정평·홍성국 상임의장)와 그리스도인·시민 30여 명이 자리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코로나19 거리 두기로 광장에 둥글게 떨어져 섰다. 참석자들은 멀리서 "문재인 대통령님! '1호 민원' 스텔라데이지호를 끝까지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 수색으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참여했다.

목정평 전 상임의장 정진우 목사(서울 디아스포라교회)는 누가복음 7장 11~15절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그는 나인 성에서 죽어 간 약자처럼 사회에 억울한 죽음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에서, 스텔라데이지호에서, 공장과 공사장에서, 가습기로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다. 왜 억울한 죽음의 사연, 처절한 눈물의 사연은 넘쳐 나는데 대책은 없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느냐"고 했다.

정진우 목사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스텔라데이지호 2차 심해 수색을 시행하지 않는 정부를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 해 2000조 넘는 생산이 이뤄지는 나라에서, 정부 예산만 600조 가까운 나라에서, 국방 예산만 52조 8000억을 쓰고 외국 군대의 주둔비로 1조 2000억을 쓰는 나라에서 돈 100억이 없어 이 죽음의 질서를 존속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촛불의 명령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이 정권이 탄생하게 됐는지,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향해야 하는지 대오 각성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 목숨보다 돈이 우선인 세상, 죽음의 행렬을 온존시켜 온 방식, 지금까지의 법과 관행 말고 새로운 도전과 방법으로 생명 세상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설교를 맡은 정진우 목사(서울 디아스포라교회)는 "억울한 죽음의 행렬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설교를 맡은 정진우 목사(서울 디아스포라교회)는 "억울한 죽음의 행렬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증언을 맡은 이영문 씨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자리에서 절규했다. 어머니의 비명에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 씨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남은 임기 안에는 반드시 진상 규명을 마쳐 달라고 외쳤다. 그는 "오죽하면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하겠습니까. 뼈다귀 한 조각이라도 내 품에 안아 보고 사망신고라도 해야만 내 자식을 편히 보낼 수 있습니다. 눈이 있으면 돌아보시고 귀가 있으면 들어 주시고 대답 좀 해 주십쇼. 너무나도 지쳐서 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제가 마지막 생을 마감해야 되겠습니까"라고 애원했다.

최순화 씨(세월호 단원고 희생자 이창현 엄마)도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을 안고 위로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에 나선 최 씨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연대한다고 했다. 최 씨는 "엄마인데 어떻게 괜찮겠나. 억울하다. 발걸음 하나 뗄 때마다 억울함으로 눌리는 발자국에는 어머니의 피와 눈물이 들어 있다. 어머니의 저 절규는 우리를 향한 호소이자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게 호소하는 절규"라고 말했다.

기도회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 최영미 씨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이영문 씨를 안고 위로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기도회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은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이영문 씨를 안고 위로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그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의 억울함을 풀고 진상 규명을 이룰 힘이 시민들에게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응답해야 한다. 촛불의 힘은 여전히 살아 있고 시민들도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면 좋겠다. 세월호 7주기도 얼마 안 남았는데 같은 마음으로 힘을 내겠다"고 말했다.

목정평 총무 장병기 목사는 정부에 2차 심해 수색을 촉구했다. "기도회가 얼마나 간절한지 이 앞에 있는 돌들이 피를 토하며 절규하는 것 같다. 어머니들의 절규 찬 비명과 울음에 정부는 반드시 응답해 달라"고 했다. 또 "우리 모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도하고 연대하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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