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디지털 성범죄 n번방 사건이 드러나면서 사회가 들썩였다. 가해자들은 '성'을 매개로 여성을 도구화하고 인격을 훼손하며 폭력을 저질렀다. 가해자 숫자가 무려 몇십만+@지만, 대부분 디지털 플랫폼 딥 웹 세계에 숨어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억울함마저 호소하고 있다.

인간의 인성이나 윤리, 성 인식 및 의식 수준은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 특히 성 인식은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교육·법·제도·문화 등의 문제로 가장 몸살을 앓는 부분이다. 끔찍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체감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몰라 피상적 대책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뿌리 깊은 엄숙주의 영향을 받아 성 관련 논의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곳도 많다. 대표적인 곳이 교회다. 사회문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지닌 신자들이 모였지만, 몇몇 목회자 외에는 공식적으로 성을 주제로 이야기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곳이다.

그러나 교회들도 안팎에서 연일 터지는 성 문제 앞에 책임감과 무력감을 느끼며, 근본적 해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교회는 건강한 성 인식 회복을 위해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가. 교회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지금 우리가 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떠올리면 좋겠다. 막연하게 남의 일로 보지 않고, 모두가 구체적인 나의 일처럼 심각하게 여긴다. 연일 보도되는 확진자·사망자 현황을 확인하며 나와 이웃이 안전하기를, 전염병 사태에 취약한 사회적 약자들이 제대로 도움받기를, 큰 피해 없이 코로나19가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를 넘기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도 이어 가고 있다. 개인적·사회적으로 신체적 거리 두기, 마스크 쓰기, 자가 격리 등 다양한 예방법을 준수하며 서로를 배려하자고 강조하고 있다. 교회 모임도 예외는 아니다. 나라 안팎으로도 백신 개발, 바이러스 발생 원인 분석, 향후 사태를 대비한 시나리오 구성 등 다각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성범죄도 팬데믹 상황이다. 전염병처럼 성범죄는 오랫동안 인간 역사와 함께해 왔다. 피해도 심각하다. 오랫동안 방치돼 왔다는 측면에서는 더 피해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종교 세계도 안전하지 않다. 모두가 내 일처럼 구체적으로 심각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기술 발전에 따른 디지털 플랫폼의 일상화는 편리한 삶뿐 아니라 더 다양한 방법으로 성을 착취하고 소비할 수 있는 장 역시 제공했다. 범죄를 저지르기는 더 쉬워졌는데, 처벌은 여전히 어렵다.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반응과 대처는 왜 이렇게 다르고 더딜까. '성'이 지닌 특별함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사실 '성' 자체가 특별하다기보다, 사람과 사회가 성을 특별하게 여긴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수 있겠다. 내 몸, 정체성, 타인과의 관계, 사회·문화·정치·법 등과 관련해서 성은 어디에나 있고 일상적이며 다양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런데도 성을 향한 우리 인식은 일상과 평범함이 아닌 금기와 터부다. 성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일이 껄끄럽고 민망해져 버렸다. 금기와 터부는 성에 대한 부정적 통념과 견고하게 얽혀 우리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중 하나가 성범죄 가해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성'의 성적인 본능과 욕구를, 피해자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보다 크고 당연하게 여기는 뿌리 깊은 통념이다.

이 통념은 범죄자들의 교묘한 덫에 걸려, 성 착취를 당해도 성과 관련한 범죄라는 이유로 여성 피해자 행실과 책임을 먼저 의심하는 사회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피해자들은 누구에게도 쉽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게 된다. 성을 금기·터부시하는 사회에서, 남성보다 성적으로 수동적이고 순진할 것을 요구받기 때문에 받는 비난과 정죄가 두렵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로부터 썩어 없어질 육체보다 영원할 정신과 영혼에 더 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해 왔다. 성을 주로 육체 영역으로 여기고 금기·터부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더디지만 다양한 층위에서 성 의식과 성 인지 감수성을 갖추려 노력하는 사회와 다르게, 대다수 보수 교회는 여전히 혼전 순결과 금욕주의 등을 주장하고 있다. 성과 선을 긋고 정체도 아닌 퇴화를 보이고는 한다. 그러다 보니 사회와도, 사람들과도 괴리만 더 깊어진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상에 나타나는 성 관련 이슈와 현상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각하고 고민하고 영향을 받는다. 신자들 중에서는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생각을 궁금해하면서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통제와 절제를 말하는 교회에서 성 관련 이야기를 꺼내기는 어렵다. 문제가 생겼을 때 죄책감에 더더욱 말할 수 없다.

이제라도 교회가 성의 일상성에 주목하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성에 대한 욕구와 관심이 죄가 아니며, 성의 도구화·상품화·범죄화 등이 문제임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신자들 간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하다. 입체적으로 성을 바라보며 그와 관련한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죄책감 없이 성의 즐거움을 누리되 왜곡된 가치관과 문화, 범죄는 분별하면서 자기 자신과 서로를 지킬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성의 일상성에 주목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해 나갈 수 있을까? 이야기한 내용에 혼자만 책임질 수 없어 교회 공동체 내외의 다양한 사람 서른 명을 만났다. 신앙이 있는 사람, 신앙이 없는 사람, 교회는 떠났지만 예수님은 믿는 사람, 성 문제로 상담을 요청했다가 교회에서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 등에게 위 질문을 공유하고 공통된 생각과 인상 깊은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아래 번호는 우선순위와 상관없다.)

1. 교회가 지닌 성 인식을 재정의해야 한다. 교회가 말해 온 음란·문란과 거룩의 정의, 순결의 개념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해야 한다. 교회 권위자가 정하는 일방적 정의와 판단이 신자 개개인과 공동체의 성 인식과 행동 등의 옳고 그름이 되지 않도록 고민해야 한다.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와 지켜야 할 약속을 정할 때는 함께 모여 서로 이야기를 듣고 합의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2. 성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해 금욕과 통제를 강조하기보다 하나님이 주신 성의 긍정적 측면(친밀하고, 따뜻하고, 기분 좋고, 건강하게 야하고 등)을 더 풍성히 드러내, 사람들이 스스로 건강하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을 지켜 나가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자연스러운 성적 호기심, 고민, 어려움, 취향 등을 수용하는 분위기 역시 중요하다. 교회가 인간이 건강하게 성을 누리고 살아가는 데 '불필요한' 죄책감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3. 교회가 사회 안팎에 존재하는 다양한 성 담론을 이야기할 장을 마련해 줘야 한다. 어떤 주제든 이야기를 꺼내고 배울 수 있는 인격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정해진 답을 강조하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다른 생각과 의견이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신앙과 일상이 분리된 채로 괴로워하는 신자들이 사회와 교회 사이에서 깊은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도록 고민해야 한다.

4. 개개인이 다양한 성 담론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성을 지닌 교회가 사회의 변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번 n번방 사건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와 다양한 성폭력 현실에 대해서도 우리끼리 분개하고 안타까워하는 데 그치지 않아야 한다. 성범죄 문제가 사라지고 왜곡된 성 인식과 성차별에 따른 성적 대상화 문제 등에 대한 확실한 대책인 법과 제도를 마련하도록 적극 목소리를 내야 한다.

5. 사회는 지금 성평등하고 현실적인 성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보수 기독교는 더욱더 근본주의적이고 금욕과 절제를 강조하는 성교육을 주장한다. 그동안 성의 부정적 측면이 강조된 사회에서 솔직한 성교육이 낯설고 두렵게 느껴지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성 담론을 억압하는 방식의 성교육은 성을 음성화하고 성에 대한 부적절한 죄책감을 내면화시킨다.

일상적이고 건강하고 즐거운 성을 누리려면, 편견이 최대한 배제된 현실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다. 성을 제대로 알고 배울 수 있어야 스스로 생각해서 왜곡된 정보를 구분하고, 죄책감 대신 자발적 책임감을 키울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나서서 현실적 성교육의 필요성을 지지하고, 공교육이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적 성교육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역할을 해 준다면, 이 시대에 맞는 빛과 소금이 되지 않을까.

6. 교역자는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가 아니다. 모르는 분야에 대해 권위와 성경을 들고 나서기보다 전문가에게 배우고, 지식과 정보를 새롭게 쌓을 필요가 있다. 신자 관리 및 성경 공부와 말씀 준비, 다른 행정적인 일이 많아 여유가 없다면 전문가를 불러 외주를 주는 방법도 있다. 특히 성에 대한 이야기들은 교역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분야다. (나와 같은) 전문가를 적극 활용해 신자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히히.

7. 위 제안들이 교회가 성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가장 완벽한 방법들은 아닐지라도 토대는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감당하기 어렵다면, 이 제안만은 지켜 달라. 아무것도 하지 말자. 그냥 가만히 있자. 성평등하고 건강한 성 인식을 향한 사회의 변화와 노력에 방해는 되지 말자. 정말 가만히 있자. 이 정도는 할 수 있다!!!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한 모든 성범죄 사건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인간을 성적 도구로 사용해서 인격을 파괴하는 일이다. 이 일은 갑자기 생겨나지 않았다. 쉬쉬하고 터부시하며 음지로 몰아넣어 오랜 시간 음지화한 성이 스멀스멀 배양된 세균과 곰팡이가 되어 퍼지고 튀어 나왔다.

교회 밖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니다. 교회는 공동체 안에 디지털 성 착취 범죄가 죄인지 모르는 '가해자'도, 정죄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피해자'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끔찍한 범죄가 일어날 때만 잠시 피상적 대책을 고민하지 말자. 많이 늦기는 했지만, 이제라도 디지털 성 착취 범죄를 포함한 '성범죄' 전반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면 좋겠다.

건강한 성 인식 배양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교회가 터부시하던 성을 입체적으로 논할 때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구상한 새로운 창조 세계에 부합하는 성행위는 어떤 것인지, 반드시 거부해야 할 관념은 어떤 것인지 분별"[<섹스 앤 더 처치>(한울)]할 힘도 생긴다. 더 미루지 말자. 성 인식 변화와 성범죄 문제를 구체적인 공동체와 교회의 문제로 생각하자. 지금이 사회와 함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고 협조할 우리 일로 여기고 행동해야 할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생각하자. (아니면 방해하지 말자.)

심에스더 / 7살 때부터 성 영재로 불리며 한 점 부끄럼 없이 자랐다. 성을 사랑하고 성 이야기를 즐거워하는 사람. 일상,성과 다양,성을 주제로 소통하는 성교육 강사.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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