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 이메일,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모든 사람은 박해를 피해 다른 나라에 피난처를 구하고 그곳에 망명할 권리가 있다."

[뉴스앤조이-김은석 사역기획국장]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쓰인 세계인권선언 14조 1항이 가장 먼저 맞아 주는 곳.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인하대학교 인근 주택가에 위치한 조그마한 카페 가버나움이다. 노랑색 페인트가 말끔하게 칠해진 정면 벽으로 시선을 돌리면 이 카페의 정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버나움은 우리 곁의 보이지 않는 작은 사람들을 위한 Social Venture로 이주(난)민 여성들을 돕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애초에 난민을 도우려고 만든 공간과 사업체라는 이야기다. 서울이 아닌 인천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새롭고 반가웠다. 아무래도 난민 지원 단체와 활동가들이 주로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 지역에 흩어져 사는 난민들은 일상적으로 기댈 곳이 부족하고, 도움이 급할 때 손 내밀 곳을 찾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버나움 박정민 대표(28)는 인천 지역 난민을 돕기 위해 크게 세 가지 일을 펼친다. △카페를 기반으로 난민 여성 자립을 돕기 위한 수익 사업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아랍 문화 체험 및 인식 개선 활동 △난민들과 주기적으로 만나 친구 되기다.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난민 여성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카페 가버나움 박정민 대표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난민 여성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카페 가버나움 박정민 대표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화요일에서 토요일, 점심 식사 후 커피 한잔이 생각 날 만한 오후 1시에 카페 문을 연다. 보통 카페라면 배경 소음으로 깔리는 커다란 에스프레소 머신 돌아가는 소리가 가버나움에서는 안 들린다. 대신 곳곳에 놓인 길쭉한 더치 커피 추출 기구들이 열심히 '눈물'을 떨어트린다. 주메뉴가 더치 커피인 맛집이다. 처음 만났을 때 박 대표가 건넨 아이스 더치 커피 맛이 잊히지 않아, 이 커피는 <뉴스앤조이> 후원회원 선물용으로도 쓰고 있다. 예쁜 병에 포장해 온라인으로도 판매하는데, 구입 후기 대부분이 5점 만점이다.

주말에는 주로 아랍 음식 쿠킹 클래스를 연다. 11월 21일 토요일 오후 2시에 연 쿠킹 클래스에 직접 참가해 봤다. 이라크에서 온 난민 유스라 씨가 서툰 한국말을 써 가며 조리법을 알려 준다. 참가자 3명이 유스라 씨를 도와, 중동 지역 전통 빵인 피타 브래드와 병아리콩이 주재료인 후무스(Humus), 고로케랑 비슷한 팔라펠, 파슬리와 각종 야채를 곁들인 총천연색 타불레 샐러드(Tabbuleh Salad)를 함께 만들었다. 함께 야채를 썰고 밀가루 반죽을 하며 아랍 음식과 문화에 대해, 유스라 씨가 살아온 삶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랍 음식 쿠킹 클래스 참가자들은 함께 요리를 하며 아랍 문화와 난민 여성의 삶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아랍 음식 쿠킹 클래스 참가자들은 함께 요리를 하며 아랍 문화와 난민 여성의 삶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쿠킹 클래스에서 만든 후무스, 타불레 샐러드, 팔라펠. 뉴스앤조이 김은석
쿠킹 클래스에서 만든 후무스, 타불레 샐러드, 팔라펠. 뉴스앤조이 김은석

쿠킹 클래스는 난민 여성들에게 수입을 만들어 주면서 한국 사람들도 아랍 문화와 난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사업이다. 박 대표는 사전에 주문이 들어올 경우 쿠킹 클래스에서 만드는 아랍 음식들을 배달하거나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했다.

더치 커피 판매, 아랍 음식 쿠킹 클래스
난민 관련 도서 책 모임, 인천 지역 난민들 친구 되기

매달 '낯선목요일'이라는 책 모임을 1년 넘게 진행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잘 몰라서 가지는 난민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 등을 해소하기 위해 난민 관련 도서를 선정해 함께 읽는다. 기회가 될 때마다 영화 모임도 진행한다. 작년 말에는 '우리 곁의 난민'이라는 기획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올해는 난민 관련 보드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지역 난민들과 교류하며 일상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도 중요하다.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고 신분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난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일상을 살며 겪는 소소한 어려움이 많다. 박 대표는 가버나움을 시작하기 전인 2018년부터 세 난민 가정과 주기적으로 만나며, 크고 작은 도움을 제공한다.

원래 박정민 대표의 꿈은 해외 선교였다. 어려서부터 가족과 함께 다니는 교회가 후원하는 해외 선교사가 많았다. 어릴 때부터 선교사의 삶과 선교 현지 소식을 자주 접했다. 자연스럽게 미전도 종족, 타 문화 선교에 대한 관심이 쌓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중앙아시아 선교 여행에 다녀온 뒤 학교를 그만두고 선교지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입시 준비하며 평범하게 남은 10대를 보내기보다, 선교지에서 지내보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았다. 가족을 포함해 주변에서도 말리기보다 지지해 주는 편이었다.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인하대학교 인근 주택가에 위치한 카페 가버나움 외관. 사진 제공 박정민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인하대학교 인근 주택가에 위치한 카페 가버나움 외관. 사진 제공 박정민

막상 자퇴하고 선교지로 나가려고 하니, 오히려 해외 선교사가 멈춰 세웠다. 검정고시도 보고 미래에 대한 준비를 좀 더 해서 오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장 선교지로 떠나 남은 10대를 보낸다는 계획은 틀어졌지만 남다른 삶이 펼쳐졌다. 이듬해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학점 은행제를 통해 20살에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남들처럼 대학에 가는 대신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배낭 메고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자연스럽게 외국인과 타 문화에 개방적인 태도가 형성됐다.

해외 선교에 대한 관심과 열정도 놓지 않았다. MVP선교회에서 선교 훈련을 받았고 선교 관련된 책들도 열심히 찾아 읽었다. 미전도 종족들을 만나러 인도·태국 등으로 거의 매년 선교 여행을 다녔다. 그런 박 대표의 인생에 난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군대에 다녀온 후부터다.

"전역하고 교회에 가보니 아랍권 이주민들을 위한 아랍어 예배가 생겨 있었어요.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난민들에게도 환대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친하게 지내던 교회 동생이 난민들을 돕는 비영리단체에 취업해서 난민들이 한국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죠.

 

그해에 터키 선교 여행에 다녀오면서 처음으로 난민들을 구체적으로 만났어요. 터키 선교사님이 아프간과 이라크 등에서 터키로 온 난민들을 활발하게 섬기고 있었던 거예요. 선교 여행 일정이 끝나고 혼자서 남아 동유럽 배낭여행을 했어요. 의도치 않았지만 제 여행 루트가 중동 지역 난민들이 유럽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로와 겹쳤어요. 주로 저렴한 도미토리에서 묵었는데 장기 숙박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난민이더라고요. 여행에서 돌아온 후부터 교회에서 아랍어 예배를 돕기 시작했어요."

카페 가버나움 주메뉴는 더치 커피다. 예쁜 병에 포장해 온라인으로도 판매한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카페 가버나움 주메뉴는 더치 커피다. 예쁜 병에 포장해 온라인으로도 판매한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해외 선교 꿈꾸던 모험심 많은 청년,
난민을 만나다

10대부터 해외 선교에 고정되어 있던 박 대표의 시선이 한국 사회에 찾아온 나그네, 난민을 환대하는 활동으로 전환되어 갔다. 교회에서 아랍어 예배를 주관하고, 국내 난민들을 활발하게 섬기는 선교사를 열심히 도왔다. 2018년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대거 들어왔을 때에도 박 대표는 제주도로 가 이집트에서 온 의사와 예멘 출신 목사를 수행하며 난민 지원 활동을 펼쳤다.

활동을 하면서 아랍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 와서 겪는 어려움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가부장적인 이슬람문화와 육아 때문에 한국에서 사회생활하거나 자립하는 데 어려운 한계를 안고 있었다. 생존을 위한 실질적인 도움이 늘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교회 협력 선교사는 이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을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원래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몇 년간 선교 아웃리치를 떠날 준비가 거의 다 된 상황이었어요. 인격적으로 훌륭한 선교사님들을 도우면서 교회 후원도 받을 수 있는 나름 안정적인 길이었는데 어떤 길을 택할지 고민이 되는 거예요. 같이 아랍어 예배를 하면서 친해진 예멘 친구에게 고민을 나눴는데, 그 친구가 이렇게 묻더라고요. '정민, 어느 쪽이 더 좁은 길이야? 네가 하려는 그 일을 하려는 사람들 어느 쪽이 더 많아?' 그 질문 때문에 이 일을 선택한 거예요. 해외 선교 떠나려는 사람들보다 난민 돕는 일 하려는 사람이 훨씬 더 적을 게 뻔하니까요."

박 대표는 2018년 지인의 소개로 인천에서 '오버플로우'라는 모임을 만났다. 주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흘려보내자는 취지로 인천 지역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결성한 모임이었다. 이태원에서 난민 사역을 하는 선교사가 인천에 사는 난민 세 가정을 연결해 주었다. '오버플로우' 맴버들과 매달 정기적으로 난민 가정을 찾아가 먹고 놀고 대화 나누며 친구가 되었다. 그중 한 예멘 난민 여성이 아랍 음식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함께 사회적 기업을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버나움 설립 초기에 주력한 사업은 아랍 음식 배달 및 케이터링 서비스였다. 한국에 의료 관광을 온 아랍권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에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열심히 해서 입소문이 나면 난민 여성들을 더 고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함께 아랍 음식을 만들어 호텔에 배달했을 때 예멘 난민 여성이 뿌듯해하며 기뻐하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여성이 임신을 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아랍 음식 배달과 케이터링 서비스를 제대로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간을 모임이 가능한 카페 형태로 변경하고, 난민과 한국 사람들이 오가면서 만나는 플랫폼으로 삼았다. 2020년 인천시 문화 사업인 '천 개의 문화 오아시스'에 지원해 선정됐다. 코로나19 때문에 크게 활성화할 수는 없었지만, 지원받은 사업비로 쿠킹 클래스와 책 모임, 영화 모임 등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가버나움은 2020년 인천시 문화 사업인 '천 개의 문화 오아시스'에 선정됐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가버나움은 2020년 인천시 문화 사업인 '천 개의 문화 오아시스'에 선정됐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더치 커피도 그때부터 판매하기 시작했다. 가사와 육아로 시간을 사용하는 게 제한적인 난민 여성들도 더치 커피 만드는 일이라면 어렵지 않게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온라인 판매를 진행했다. 다행히 구매하는 사람들 반응이 좋았다. 올여름에 열심히 추출하고 팔아서 난민 여성 1명을 파트타임으로 고용할 수 있었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마음껏 카페 영업도 못하고 모임도 자주 열 수 없었다. 연고 없는 인천에서 자본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일이기에 재정적으로 힘들거나 정서적으로 고갈되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왔다. 그래도 버틸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

"지칠 때마다 찾아와 위로해 주고,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 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힘을 얻어요. 늦은 시간에 갑자기 집에 찾아갔던 어느 날 반갑게 맞아 주며 '너는 내 가족과 같아. 늦은 밤도 괜찮으니 언제든 찾아와도 돼'라고 하던 난민 친구의 말을 떠올리면 행복감이 몰려오죠. 쿠킹 클래스 참가자가 난민 여성과 소셜미디어 친구를 맺고 집으로 초대했던 일을 생각해도 너무 뿌듯해요. 난민에 대한 연극을 만들기 위해 몇 달간 책 모임에 참석한 연극인들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공연 후 뒤풀이에서 관객들에게 책 모임을 통해 변화된 생각을 전하는 모습을 봤을 때 느낀 보람과 기쁨을 잊을 수 없어요."

박정민 대표는 우리 사회가 난민을 대할 때 난민이나 무슬림과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리기보다 한 명의 사람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난민들도 사회 일원으로서 평범하게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꿈꾼다. 누구나 나그네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우리 곁의 나그네를 환대하려는 사람들이 언제든 난민을 도울 수 있는 연결 고리가 되고 싶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어떻게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만들어 내 계속해서 난민 여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싶다. 난민 여성들과 함께 일을 해 보니, 그들에게 일은 단순히 경제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집 밖으로 쉬 나올 수 없는 그들이 정서적 안정감과 자립심을 형성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월 60시간짜리 파트타임 일자리, 주 4회 쿠킹 클래스만으로도 그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경제적으로 숨통을 트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

박정민 대표는 우리 사회가 난민을 대할 때 난민이나 무슬림과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리기보다 한 명의 사람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박정민 대표는 우리 사회가 난민을 대할 때 난민이나 무슬림과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리기보다 한 명의 사람으로 그들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가버나움은 더치 커피 판매 수익으로 난민 여성의 일자리를 만든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가버나움은 더치 커피 판매 수익으로 난민 여성의 일자리를 만든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가버나움 더치 커피 판매 스토어
가버나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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