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반동성애 진영의 인권 정책 개입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각종 인권 관련 조례를 폐지시키는 데서 멈추지 않고, 아동·청소년 성교육까지 걸고넘어집니다. '성평등' 단어가 들어가면 무조건 '동성애 조장'이라며 반대합니다. 이들의 반대는 단순한 의견 표명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①최근 반동성애 진영이 어떤 패턴으로 청소년성문화센터를 공격하는지 ②그들이 원하는 청소년 성교육은 무엇인지 ③청소년성문화센터의 역할과 구체적 활동,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떤지 ④기독교교육 관점에서 성교육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짚어 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 기자 주

"중학생에게 성기 모형을 왜 보여 주나. 너무 사실적인 그림도 문제다. 게다가 청소년에게 피임법을 가르친다. 피임만 하면 아무 때나 마음대로 섹스해도 된다는 것이냐. 이런 악한 성교육 이제는 끝장내야 한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 학부모 단체 회장이 피 토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청소년 성교육에 사용하는 교과서나 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진행하는 강의에 "성적 문란함을 부추기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에게 성교육할 때 최대한 구체적이지 않게 설명하고, '혼전 순결'도 빼놓지 않고 가르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정해 놓은 범주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성 해방주의자', '섹스 자유주의자'라고 낙인찍는다. "기독교인은 당연히 우리처럼 성교육해야 한다", "세속적 성교육은 악한 것이니 거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금욕주의', '혼전 순결 만능주의'를 참된 기독교적 청소년 성교육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반동성애 진영이 가르치려는 성교육 내용을 '기독교적', '성경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두 사람을 만났다. 심에스더 씨는 크리스천이자 현직 성교육 강사로 학교·교회·기관·단체 가리지 않고 강의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최은경 기자와 함께 아동·청소년 성교육 관련 주제로 1년간 연재한 내용을 엮어 올해 11월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오마이북)를 출간했다. 이주아 박사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부모이기도 한 이들은 성교육과 관련해 할 말이 많아 보였다. 대화는 두 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두 사람은 적나라한 이야기에 폭소를 터트리기도 했고, 답답한 현실에 테이블을 치며 격앙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이 말하는 성교육을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하면 '미세 먼지'다. 미세 먼지와 성교육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 두 사람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심에스더 씨(왼쪽)와 이주아 박사는 '혼전 순결'만 강조하는 성교육이 아닌 전인격적인 성교육,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을 아는 성교육, 왜곡된 성 문화를 분별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생식기적 성기 결합'만 강조하는
성교육이 오히려 비기독교적

- 반동성애 진영에서 열심히 활동하던 이들이 성교육 강사까지 배출하기 시작했다. 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면 청소년들이 망가지는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심에스더 / 청소년 성교육 현장에 있는 많은 강사가 다양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성이라는 게 잘못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있으니 개방적인 친구에게만 맞추다 보면 그렇지 않은 이들은 소외된다. 이 얘기도 해 주고 싶고 저 얘기도 해 주고 싶은데, 조심해야 하고 현실에서 주어진 시간도 짧다.

반동성애 진영의 성교육 강사들은 확신하고 밀어붙이더라. 저렇게 막 얘기하면 강의하기는 쉽다. 뭐든 확신에 찬 상태로 간단명료하게 하는 말이 주목받지 않나. 우리는 이렇게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얘기하려고 노력하는데, 저 사람들은 어쩜 저렇게 확신에 차서 이야기할까. 성생활을 '성관계', '섹스'로만 보기 때문이다.

- 청소년 성교육에서 '성생활'이라고 말하는 순간 반발에 직면할 것 같다. '애들한테 성생활을 가르치라는 거냐'고 항의받을 것 같은데.

이주아 / (정색하며) 그건 성생활·성관계를 '생식기적 성기 결합'이라고만 생각해서 그렇다. 원래 기독교적 성은 그렇지 않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성적인 존재다. (심에스더 씨와 손을 잡으며) 이것도 성이다.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친밀감을 느끼는 이런 모든 행위가 성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감각을 느끼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은 급진적이면서 보수적이고 입체적이다. 입체적이라는 말은 상대와 어디까지 전인격적 통합을 이룰 수 있을지 고민한다는 것이다. 상대와의 관계성·연대성 안에서 서로를 친밀하게 아는 것. 여기서 '알다'는 히브리어로 '야다'다. 하나님이 우리를 안다고 하실 때 쓰는 단어다.

생식기적 성만 말하는 건 오히려 비성경적이다. 존재를 기뻐하는 게 성경적 성이다. 상대를 성적 착취 도구, 쾌락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사랑하고 친밀감을 누려야 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성적 행위로 얼마나 돈독해질 수 있는가를 얘기하는 게 기독교적 성이다. 얼마나 급진적인가.

기독교 역사적으로 이걸 잘못 받아들였다. 자기가 살던 시대의 한계로만 해석해 온 교부들, 신학자들 때문에 성이 부정적인 게 됐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을 악한 것으로 정죄했다. 히브리 사회에서 성은 그렇지 않았다. 구약에서는 성을 기뻐한다. 혼전 순결 개념도 없었다. 구약시대에는 13살만 되면 결혼했는데 혼전 순결 개념이 있었겠나.

이게 헬라 철학, 그리스·로마 시대로 넘어가면서 이원론에 영향을 받았다. 몸은 악하고 정신은 숭고하고. 이 이원론이 이단이다 뭐다 해도 없어지지 않았다. 교부들의 성경 해석을 거치고, 중세 금욕주의를 지나 핵가족 담론을 설파한 종교개혁 이후 시대까지 지나오면서, '성은 부정적인 것'이라는 담론이 '기독교적인 것'으로 포장된 셈이다. 따지고 보면 '사랑의 결정체로서의 결혼' 개념도 근대 이전에는 없었다.

흔히 '성생활'이라고 하면 바로 생식기적 성기 결합만 떠올린다. 두 사람은 그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외에도 이야기해야 할 것이 많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심에스더 / 생식기 결합, 사정, 쾌락만 말하는 이들은 성관계가 품고 있는 전인격적 결합, 친밀한 소통, 육체가 할 수 있는 애정 표현으로서 성을 경험해 본 적 없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에게 성기 결합 섹스를 언급하는 건, 혹시라도 잘못된 성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거나 포르노 등을 통해 왜곡된 성 문화만 경험한 아이들에게 잘 설명해 주기 위해서다. 성관계를 성기 결합 혹은 성공과 실패로만 생각하지 말고 다양한 소통 방법이 있다는 걸 알려 주려고 한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 곧 성관계?
"편협한 시각"
스스로 생각·판단하는 능력 키워야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어

- 청소년에게 '성적 자기 결정권'을 설명하는 성교육이 청소년들을 문란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심에스더 / 성적 자기 결정권을 곧바로 성관계와 연결 짓기 때문에 그렇다. 편협한 시각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해서는 성교육 진영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성교육 강사마다 이야기도 다르다. 단순히 동의·비동의만 가르치는 게 아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 뭔지 아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게 먼저다. 능력은 키워 주지 않으면서 권리가 있다고 행사하라는 것도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 보습 학원 원장이 만 10세 아이에게 술을 먹이고 성폭력을 가했는데, 아이가 거절하지 않았다고 '합의에 의한 관계'를 주장해 이것이 감형 요인이 됐다.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고, 성 인지 감수성에 기초해 어떻게 10세 아이가 성관계를 동의하게 됐는지 파악해야 하는데, 재판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성적 자기 결정권은 입체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런 내용은 싹 무시하고 행위 중심적 성교육에만 집착하면, 이런 판단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주아 / 시대 흐름에 맞는 성교육을 반대하는 이들은, 이를 '성애화' 교육이라고도 부르더라. 그 말이 다 틀린 건 아니다. 지금 성교육은 현상을 따라가고 있다.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 있으니까, 하다못해 최소한의 피임법이라도 알려 주려는 거다. '너네 빨리 섹스해야 하는데, 섹스하면 아기가 생길 수 있으니까 피임을 가르쳐 줄게.' 누구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심에스더 / 복잡하고 세세하게 설명하면 학생들은 듣기 싫어하고 교육 현장을 관리하기도 힘들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확신에 찬 것처럼 명확하게 얘기한다. 몇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들에게 전달해야 할 가치는 단순히 '성관계해라, 마라'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만나고, 사랑하고, 관계 맺고, 결합하는지, 이 모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이런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그냥 "결혼 전에는 섹스하지 말라"고만 하면 얼마나 편한가.

이주아 / 단순히 혼전 성관계만 얘기할 게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의 성관계를 얘기해야 한다. 기독교적 성이 본질적이고 급진적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결혼 후 배우자 모르게 하는 성매매, 배우자를 성적으로 착취하고 억압하는 것 등 모든 관계에서의 성행위까지 얘기해야 한다. 그렇게 교육하려면 복잡하고 힘드니까, 자꾸 혼전 순결이라는 단순한 율법을 찾는다. 그것만 하지 말라고 하면 간단하니까.

율법은 삶의 다양한 양태를 다 담을 수 없다. 한번 만들기 시작하면 계속 늘어나게 돼 있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 율법이 몇백 개씩 있던 거 아닌가. 하지만 예수님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셨다. 율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 율법이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행위를 통제하고 공포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성교육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세 먼지'가 떠올랐다. '성경적 성교육'을 주장하는 이들의 행동은 미세 먼지로 가득한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너희는 미세 먼지 피하고 깨끗한 공기만 골라서 마셔야 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공교육 혹은 각종 단체에서 주관하는 성교육은 어떻게 보면 방독면을 씌워 주는 거다. 미세 먼지가 옳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이주아 박사는 현재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왜곡된 성 문화를 '미세 먼지'에 비유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심에스더 / 우리는 아이들의 면역력을 키워 건강한 삶을 살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반동성애 진영은 아이들을 무균상태로 평생 있게 하는 게 건강한 상태라고 말하는 것 같다. 성교육이란 단순히 아이들에게 성관계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 생각할 능력을 키워서 스스로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가게 해 주려는 것이다.

어떤 학생이 나에게 혼전 순결에 대해 물어 온다면, 내가 "그거 완전 고리타분하고 쓸모없는 거다. 절대 지키지 마"라고 얘기할 것 같은가. 아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안에서 스스로 순결에 대한 의미를 찾고 지켜 나가는 것은 멋지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시대가 고리타분하게 본다고 해서, 잘못됐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너 섹스했어? 결혼 전에? 순결하지 못하네, 쯧쯧" 이렇게 판단하는 분이 아니라는 얘기도 같이 하고 싶은 거다. 하고 나서 죄책감에 질질 끌려가면서 '이제 나는 순결하지 않은 쓰레기야'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면 안 된다는 거다. 성기 결합 성교육만 강조하다 보면, 결국 결혼 전 성기만 결합하지 않으면 모두 괜찮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성교육, 인간에 대한 예의 가르치기
'혼전 순결'만 외치지 말고
왜곡된 성 문화 타파 위해 싸워야

- 반동성애 진영은 성교육에서 피임법을 가르치면 청소년들에게 섹스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관계를 '조장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주아 / 기독교교육에서 '성'이라고 하면, 관계성·통전성·연대성 세 가지를 전제로 상호 관계 속에 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이들은 "그럼 막 하라는 것이냐"며 두려워한다. 그것은 듣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 자녀를 못 믿는다는 말이다.

심에스더 / "막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혹시 막 하고 싶으신 것이냐"고 되묻고 싶다.(웃음) 누가 '막 해도 된다'고 말만 해 주면,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처럼 말한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 그동안 성 담론을 쥐고 있던 사람들이 남성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는 하고 싶은데 남 탓, 여성 탓을 하고 싶은 거다.

성교육의 기본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는 것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는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이라는 말 잘 안 쓴다. '인격적인 성 행동을 위한 기본적인 매너'라고 설명한다. 법에서 이야기하는 성희롱·성폭력만 아니면 막 해도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감각을 키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싫어하는지, 인격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기본 태도를 가르친다. 이게 더 기독교적이다.

성희롱·성폭력으로만 접근하면 강의하는 사람은 편하다. 매뉴얼대로만 강의하면 되니까. 성교육 강사마다 가치와 철학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굳이 이렇게 조심스럽게 설명하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누구를 만나도 인격적으로 대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교육하려 한다.

이주아 /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섹스는 관계성·통전성·연대성인데, 온전히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지 않을까.(웃음) 이미 세상 문화가 너무 성을 도구화·대상화·상품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싸우려면 미세 먼지와 싸워야 한다는 거다.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깨끗한 산소만 마시라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미세 먼지를 없애는 것이다.

심에스더 /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는 게임 중, 여성을 상품화, 성적 대상화 하는 게 너무 많다. 왜곡된 성 문화가 만연한 게 싫다면, 리얼 돌 생산하는 공장 앞에 가서도 집회해야 한다. 국회에서 리얼 돌 들고 나와서 이야기하는 국회의원은 왜 규탄하지 않는가. 35세 학원 원장이 10살 학생에게 술 먹여서 성폭력을 가했는데도, 동의했다는 이유로 징역 8년에서 3년으로 감형됐는데 왜 가만있는가.

이주아 / 나도 아이들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우리 아이들이 충분한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지기 전 이런 왜곡된 성 문화 때문에 상처받는 걸 전혀 원하지 않는다. 이건 내 힘만 가지고는 안 된다. 지금은 옆에서 이야기해 줄 수 있지만, 언제까지 아이와 붙어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문화는 그대로 두고, 아이들에게 "너희는 맑은 공기만 마셔야 한다"고 강요하면 어떻게 될까. 인격 해리가 발생한다. 아이들은 미디어를 보면서 성욕이 일어나고, 그런 자기를 보며 죄책감을 느낀다. 인격적 통합이 안 된다. 청소년부에서도 마찬가지 아닌가. "야동 보면 안 된다", "야동 끊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근본 원인과 싸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심에스더 씨는 교회가 율법만 가르칠 게 아니라 관계성 회복 교육에도 힘을 쓰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다양성 포용하는 공동체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질문을 가능하게 하는 곳

- 기독교적 성교육을 이야기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할까.

이주아 / 예수님은 누가 더 율법에 가까웠느냐가 아니라 진짜 율법이 무엇인가를 놓고 싸우셨다. "네 마음을 지키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셨나. 성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내 마음의 중심을 지키고, 상대방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구체적이지 않다고 불안해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자기도 못 믿고 남도 못 믿는 것이다. 그렇다고 율법주의로 돌아가려 하면 안 된다.

심에스더 / 결국 불신 사회와 연결된다. 거대한 구조 안에 자기 정체성 문제, 불신 문제 등을 신앙으로 붙들고 서 있고 싶은 거다. 그러려면 율법이 더 구체적이고 많아야 하니까, 더 좁고 두껍고 강하게 울타리를 친다.

교회가 율법만 가르칠 게 아니라 관계성 회복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 기독교가 뭔지도 제대로 알아야 하고, '순결'이라는 말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순결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면, 답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이주아 / 금욕주의에 기반한 성 담론은 결국 중세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기독교적 성교육을 이야기할 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옛날과 지금은 신학적 전제부터 다르다는 거다. 전통 신학에서는 여자·남자가 동등하다고 하면 이단이었다. 여성과 남성은 본질론적으로 달랐다. 종교개혁 이후, 남녀가 존재론적으로는 평등하나 기능적으로 위계가 있다고 정리했다. 본질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고, 여성은 남성을 돕는 자라고 이해하는 크리스천이 아직도 많지 않나.

여기서 '돕는 자'는 '에제르'라는 말이다. 이건 하나님이 인간을 도우실 때 쓰는 말이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나은 존재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석 차이가 크면 서로 소통이 안 된다. 소통이 안 되면 차라리 그냥 각자 믿으면 되는데, 자꾸 공적 영역에서 자기들 것만 강요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긴다.

다양성을 용인하는 사회는 그 공동체에 믿음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 사회에서는 누구나 배우고 발전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취한다. 주 양육자가 자기 아이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있으면, 아이를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통제는 자신이 없으니까 하는 거다.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구성원에 대한 믿음이 있는 공동체는 모든 이야기를 용인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이 질문하는 것을 막지는 않으셨다.

심에스더 / 교회든 학교든 성교육에 가서 항상 하는 질문이 있다. '섹스의 시작이 뭐라고 생각하니?' 대답이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손잡는 것부터, 어떤 사람은 눈 마주치는 것부터, 어떤 사람은 씻는 것부터라고 답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남성 성기와 여성 성기가 만나는 순간부터 섹스의 시작이라고 답한다.

사람마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가 갑자기 "여러분 혼전 순결 지켜야 해요. 결혼 전에 절대 섹스하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사람 강의를 들은 공동체가 구체적인 논의를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면, 사람마다 섹스 시작의 기준이 다르니까 혼전 순결을 지키는 기준도 다 다르게 된다. 소통의 통로를 막아 버리면 어떻게 좋은 관계 맺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겠나. 성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금기시하는 교육은, 인간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전인격적 관계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다.

- 성교육에 관심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주아 / 게임·소셜미디어 등에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게 너무 심하다. 정말 우리 사회에 미세 먼지를 없애는 성교육을 하고 싶다면,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도 해야 한다. 왜 모든 걸 개인 책임으로만 환원하는가. 하나님은 개인에게도 책임을 물으시는 분이지만 동시에 상황을 바꾸기 원하실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인터넷이 공급되지 않는 곳이 없다. 각종 미디어에 노출되지 않는 아이들 없지 않나. 더 많은 대중문화가 자본과 결합해 성을 쾌락의 도구로만 이야기할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클릭하니까. 이런 큰 흐름에 저항할 수 없으니 개인적 금욕주의 차원으로 환원한다는 건 그야말로 사회와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이다.

심에스더 / 성은 생활이고 관계다. 잘 생활하고 잘 관계 맺기 위해서 실질적인 교육은 필수다. 그런 성교육을 하지 말라는 건, 제대로 생활하지 말고 관계 맺지 말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성관계를 무조건 성기 결합 섹스로만 납작하게 보지 말고, 입체적으로 보고 일상적인 것으로 교육하면 좋겠다.

아이들이 솔직한 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해 주자. 내 아이만 깨끗한 공기를 마시라고 하지 말고, 방독면도 주고, 미세 먼지를 만들어 내는 근본 원인도 찾아 대응하고, 나무 심는 일도 다 같이 하면 좋겠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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