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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획사 대표 성폭력 사건' 판결 "피해자는 없었다"
대법원, '무죄' 확정…공대위 "21세기 최악의 판결"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7.12.0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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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대법원은 2017년 11월 9일, 15세 청소년에게 성폭력을 가해 임신·출산하게 한 연예기획사 대표 조 아무개 씨(42세)의 '무죄'를 확정했다. 조 씨는 2014년 1월 1심에서 징역 12년, 7월 열린 2심에서 징역 9년을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같은 해 11월,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듬해 10월 서울고등법원은 조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의 재상고에도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무죄가 확정됐다.

여성계는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2015년 10월, 전국 340개 단체가 모여 공동 대응했다. '연예기획사대표에의한청소녀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때마다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에 제출할 시민들의 의견서를 모았다. 하지만 공대위의 갖은 노력에도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두 사람의 관계가 강제성을 띠는 것이 아닌 서로 사랑하는 관계였다고 결론지었다. 피해자가 다른 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인 피고인을 자주 면회했고, 접견 시 대화 내용, 편지를 보낸 횟수, 편지의 내용과 형식 등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조 아무개 씨의 강요와 두려움으로 허위 감정 표현이 담긴 서신을 보냈다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전부 부인됐다.

12월 6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연예기획사 대표 성폭력 사건'의 문제점을 논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피해자 고통·경험 누락하는
남성 가해자 중심의 사법 체계

42세 조 아무개 씨와 15세 중학생의 관계가 '사랑'이었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많은 이의 공분을 샀다. 공대위는 12월 6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이번 사건의 의미와 판결의 쟁점이 되는 부분을 짚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대법원이 피해자의 경험과 관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판결을 내렸다고 했다.

이미경 소장(한국성폭력상담소)은 대법원의 판결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피해자는 조 씨에게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학교·친구·가족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폭력적인 성격의 조 씨가 모두를 해칠 것이라는 공포감 때문에,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했다. 이 소장은, 청소년 피해자가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 대법원이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대한민국 법은 '합리성과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사건을 판단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객관성'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남성 중심의 관점이라는 게 이미경 소장의 진단이다. 그는 "대법원은 피해자가 피해 후 겪었을 고통과 혼란, 갈등에는 무관심하다. 왜 피해자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맥락에 대한 고려는 없다"고 말했다.

최종 상고에서 피해자 변호인단에 참여한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도 '피해자 관점의 결여'를 이번 판결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성폭력 피해자가 청소년이었고, 피고인의 죄목은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이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피해자 관점 대신 폭력을 행사한 행위자 관점에서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김재련 변호사는 "판결문에는 피해자가 몇 살에 성폭력을 당했고, 일상에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지, 이 일로 어떤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살아가는지 등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사법부는 피해자 관점에서 판결문을 쓰고, 피고인이 자기가 한 행동이 어떤 의미인지 판결문을 읽으며 곱씹어 알게 해야 한다"며 한국 사법부가 피해자 관점에서 판결문을 써야 한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사건과 유사한 미국 사건의 판례도 소개했다. 의붓아버지가 12세의 의붓딸 A를 강간한 사건이다. A는 의붓아버지가 심한 폭력성을 띠는 것을 걱정한 나머지, 수년이 지난 뒤 어머니가 그와 헤어진 뒤에야 이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A는 강간 사실을 알리기 전 의붓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며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사랑한다', '아빠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즐거웠다'고 썼다.

이 유사 사건에서 미국 사법부는 한국 대법원과 전혀 다른 판결을 내렸다. A가 쓴 편지를 성폭행, 가정 폭행에 노출된 피해 아동의 관점으로 봤다. 김재련 변호사는 "미국 사법부는 편지에서 나타나는 피해자의 양가적 태도가 피해자의 나이, 성폭행 피해자가 겪는 감정 등을 고려할 때 일관된 것이라 판단했다"고 전했다.

김재련 변호사(오른쪽)는 "한국 사법부가 피해자 관점에서 판결문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피해자 대리인으로 활동해 온 이학용 목사는, 법원이 피해자의 진술을 거짓으로 치부하고, 거짓으로 일관해 온 조 아무개 씨 주장만 인정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다. 1·2심에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각각 징역 12년, 징역 9년을 선고했지만, 대법원에서 아예 무죄로 뒤집힌 것은 그만큼 조 씨가 치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현숙 대표(탁틴내일)는 이번 사건이 한국 사회에 안 좋은 판례가 될 것을 우려했다. 그는 "다른 유사한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따라서 이 사건을 더 이슈화하고 제도적으로 정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동·청소년 성범죄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그루밍(길들이기)'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이것을 어떻게 수사·재판 과정에 적용할 수 있을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이번 판결을 두고 "21세기 최악의 판결 중 하나", "역사의 오류로 기록될 판결", "누가 봐도 잘못된 판결"이라는 평을 내놨다. 그러면서 앞으로 공대위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재련 변호사는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사건을 고등법원에서 유죄라고 할 수 없다. 사법 시스템에서는 대법원이 이런 잘못을 저질렀을 때 대법원을 비판하지 못한다. 시민사회가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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