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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이는 목회자들①] '그루밍'이란 무엇인가
[연중 기획 #교회_내_성폭력_OUT] 신뢰 관계 이용, 성욕 충족 패턴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8.01.31 21:03

남성 목회자와 여성 교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교회 내 성폭력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취재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언론 보도 등으로 알려진 사례가 극히 일부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상담소와 법원에서 목회자의 교인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교회 내 성폭력 해소를 위한 작은 실마리를 찾고자 #교회_내_성폭력_OUT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는 주제로 연중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목회자의 성폭력에는 '패턴'이 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반복되는 패턴을 분석하고 예방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최근 한국 사회에 소개된 '그루밍'을 살펴봅니다.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사건은 전형적인 그루밍입니다. ①그루밍이란 무엇인가 ②교회에서 나타나는 그루밍들 ③타 기관에 비해 그루밍에 취약한 교회 구조의 문제점 ④그루밍과 교회 내 성폭력을 막기 위한 방안을 차례로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교회 내 성폭력은 알고 지내던 사이에서 발생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해 목회자는 피해 교인과 인간적 관계를 유지하며, 그 사람이 자신을 믿게 되는 순간까지 기다린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뢰할 때 성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패턴은 특정 목회자 성폭력 사건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교회 내 성폭력 사건 대부분에서 비슷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그루밍'(grooming)이라고 말한다.

가랑비 옷 젖듯 시작된 관계
그루밍에도 단계가 있다

인터넷에 '그루밍'을 검색하면 고양이가 자기 몸을 핥고 있는 사진이 나온다. 고양이가 자기 몸을 씻기 위해 구석구석을 핥는 행위를 그루밍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패션과 미용에 관심 있는 남성을 '그루밍족'이라 부르기도 한다. 모두 groom(그룸)의 첫 번째 뜻 '손질하다, 다듬다'와 관련 있다.

교회 내 성폭력은 처음부터 폭력적인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교인이 저항할 수 없는 사소한 행동에서 시작한다. 뉴스앤조이 경소영

영어 단어 groom의 두 번째 뜻은 '특별한 목적이나 행동을 위해 누군가를 준비시키거나 교육함'이다. 그루밍은 여기서 파생한 단어다. 성범죄자가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피해자를 고르고, 피해자 신뢰를 얻고, 성폭력을 가한 후 피해자를 통제하는 모든 과정을 그루밍 혹은 길들이기라고 부른다.

청소년 지원 기관 탁틴내일(이현숙 대표)은 지난해 11월, 그루밍이라는 개념을 정리해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는 탁틴내일은 2014년 7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의뢰받은 20세 미만 성폭력 피해 상담 78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의 행동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했다.

탁틴내일이 주목한 패턴이 바로 그루밍이다. 성적 학대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전에 가해자가 취하는 일련의 행동 단계다. 잠재적 가해자는 피해자 신뢰를 얻기 위해 필요를 충족해 주고, 신뢰를 쌓으면서 학대 기회를 노린다. 이 과정을 통해 성적 학대가 쉽게 이뤄지도록 하며, 나중에 피해자가 학대를 폭로하는 것도 통제한다.

범죄과학자이자 법정신의학 박사 마이클 웰너(Michael Welner)는 성 학대에 이르는 여섯 단계를 소개했다. ①피해자의 취약성 파악해 피해자 고르기 ②피해자의 욕구를 파악하며 따스함 드러내기 ③피해자의 욕구 채워 주기 ④일대일로 만나는 상황을 만들어 피해자 고립시키기 ⑤관계를 성적(sexual)으로 만들기 ⑥피해자를 회유·비난해 통제하기 순이다.

탁틴내일이 소개한 사례를 접목하면 그루밍의 단계는 더욱 명확해진다. 탁틴내일이 발표한 20세 미만 성폭력 피해 상담 78건 중 43.9%가 그루밍 성범죄로, 아는 사이에서 발생했다. 가해자는 피해자 친구의 지인, 친부, 고모부, 학원 교사, 교회 교사, 고용주, 선배 등 다양했다.

이들은 피해자의 부족한 면을 파악하고 이를 채워 주면서 환심을 샀다. 이것은 물질적 부분일 수도 있고 정신적 부분일 수도 있다. 권현정 소장(탁틴내일 아동·청소년성폭력상담소)은 "가해자는 피해자의 취약한 점을 이용해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루밍이 무섭다. 피해자는 가해자를 좋은 사람,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라고 인식하는데, 가해자는 나쁜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루밍 성범죄,
아동·청소년 정신 건강에
막대한 피해 입혀

그루밍 성범죄는 평소 믿고 따르던 사람이 성적 학대를 가했다는 점에서 피해자에게 큰 상처를 남긴다. 가해자가 처음부터 악인의 얼굴을 하고 접근하지 않기에 충격이 배가 되고, 사람의 신뢰를 이용한 성범죄이기에 죄질이 더 나쁘다.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를 상담해 온 권현정 소장은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향해 양가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많아 피해가 크다고 했다.

평소 믿고 따르던 존재가 성폭력을 가하면 피해자는 양가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그루밍 피해자는 가해자가 이전에 잘 대해 준 부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모르는 사람에게 갑자기 당하면 그렇게까지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루밍에 의한 경우, (가해자를) 믿은 만큼 크게 상처받고 혼란스러워한다. 가해자를 신고하고 처벌받게 할 때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이때 생긴 트라우마를 치료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처음부터 강압적으로 성적 학대가 일어나지 않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환심을 사는 행위에서 성적 행위로 가는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점도 피해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배승민 교수(가천의대 정신건강의학과)는 "나쁜 사람인 줄 뻔히 알면 잘 당하지 않는다. 가해자는 여러 책략(선물, 감언이설, 미래 계획 등)을 총동원해 피해자를 속이려 한다. 그루밍 과정에서 가해자가 계획한 긍정적 상황에 여러 차례 노출되고 이런 좋은 기억이 쌓이면 (성적 행위가 발생해도) 즉각 대응하기 힘들다. 대다수 피해자가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거나, 알고도 가해자의 행동을 과소평가한다"고 말했다.

특히 아동·청소년 대상 그루밍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광범위한 정신적 타격을 입힌다. 배승민 교수는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충격을 "영혼의 살인"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성인기에 입는 외상은 인격을 손상시키지만, 아동기에 입는 외상은 병적인 상태로 인격을 발달시킨다. 즉 뇌 발달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아 발달 축이 훼손된 채 성장하게 된다. 외국의 한 연구는, 장기간이 지나도 피해자에게 자살 위험성이 여전히 높은 상태로 남아 있다는 걸 보여 준다"고 말했다.

교회에서 발생하는
그루밍 성범죄

그루밍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정립해 발표한 단체가 아동·청소년 지원 단체지만, 그루밍 성범죄는 아동·청소년에 한정되지 않는다. 전문가들 말을 종합해 보면, 그루밍은 성인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모든 연령대, 권력 불균형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된 '연예 기획사 대표 청소녀 성폭력 사건'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연령, 경제, 권력 관계 등의 하위에 있는 사람이 우위에 있는 사람을 길들이는 건 쉽지 않다. 그런 모든 관계에 있어 우위를 점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길들이는 것이 그루밍"이라고 말했다.

장애 여성 성폭력을 상담하는 민들레 활동가(장애여성 공감)는 "발달장애·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도 그루밍이 나타난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권력이 불균형한 곳이라면 그루밍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교회 내 성폭력도 그루밍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성폭력 상담 전문가들은 한국교회에서 목회자가 차지하는 절대적 위치를 고려할 때, 교회에서 그루밍이 더 손쉽게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수년간 <뉴스앤조이>가 보도한 목회자 성폭력 사건들에서 그루밍 사례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음 기사에서는 기존에 발생한 교회 내 성폭력 사례를 이 개념에 비추어 볼 것이다. 여러 사례에서 동일하게 반복되는 패턴이 그루밍에 해당한다는 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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