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 지탄 대상이 될 정도로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면서, 교회로 가는 발길을 끊는 개신교인이 늘고 있다. 이 사실과 맞물려, 교회 교육에 참여하는 어린이·청소년 수는 인구 감소율을 넘어서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교회학교 없는 교회도 증가하고 있다.

이런 위기를 감지하며 교회 교육 방향을 새롭게 하려는 시도는 다양하게 진행되어 왔다. 근본적으로 성서와 교회에 대한 이해, 성서관과 교회론의 변혁적 성찰 없이 방향을 전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기대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더더욱 문제이기에, 최근 시도된 교육개혁을 위한 나의 작은 경험을 소개하고 여기에 기반했던 짧은 생각을 나눈다. 그 경험이란, 미국 장로교가 후원하고 평화교회연구소가 장을 열어 주어 <올리브유(ALL-LIVE YOU): 나의 이야기, 우리의 하나님나라>(평화교회연구소)라는 교재를 생산한 일이다.

<올리브유>는 기독교 청소년이 볼 수 있는 평화교육, 성경 공부 교재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합동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목사와 전도사들이 초교파적으로 모여 함께 만들었다. 3시간씩 한 주에 한 번 7회를 만나 교회 교육에 대한 시선을 맞추며 교재에 실을 주제어를 발견하고 집필했다. 그 후 원고에 대한 상호 비판적 대화와 수정 작업을 5번 더 거쳤다. 참여자 모두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모였다. 교사 없이 혼자서도 볼 수 있는 교재를 만들어 보자며 2019년 하반기에 작업했는데, 코로나19 상황에 도움을 주는 준비된 교재로 쓰이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코로나19 상황으로 교재 워크숍이나 교사 교육 스케줄은 모두 취소됐지만, 곧 가능해지리라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에서 중심 주제로 삼은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해요',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요'가 표현과 다르게 드러내는 외연을 비판적으로 보자고 했다. '우리'라고 하지만, '우리'라는 표현은 △경제력 △교육 정도 △젠더 특성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학교 △신체 기능 △가족 형태 △직제 형태 △직위 △유사 경험 등을 근거로 이합집산하며 만들어 가는 배타적 친밀 공동체 속에서 소비되는 '우리'였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를 '생명 가진 모든 존재'로 확장하고자 했다.

나아가, 구체성 없이 막연하게 선포되는 '사랑'과 '믿음'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쓸수록 모호해지는 이유를 살피고자 했다. 10대가 교회 안/너머 현실 세계에서 발견하고 질문하며 씨름해야 할 이슈나, 그들이 당연히 맞잡아야 할 우정 나눔과 평등한 연대 경험을, 해도 그만 아니어도 상관없는 선택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막연한 사랑과 믿음 강조에서 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 책은 전근대적 사고에 고착된 '남의 고백'을 되뇌지 않고, 10대가 자신의 마음과 입으로 "생명 가진 모든 존재(ALL)가 함께 예수님 뜻(YOU)을 살아갑니다(LIVE)"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라는 집필자들의 마음을 담고 있다.

<올리브 유(All Live You): 나의 이야기, 우리의 하나님나라> / 올리브프로젝트팀 지음 / 평화교회연구소 펴냄 / 68쪽 / 5000원
<올리브유(ALL-LIVE YOU): 나의 이야기, 우리의 하나님나라> / 올리브프로젝트팀 지음 / 평화교회연구소 펴냄 / 68쪽 / 5000원

선교 초기, 선교사 국내 이주에 의한 미국식 교회 교육이 조선 근대화 과정에서 새로움을 준 시기가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식민지 해방과 한국전쟁 종식이 어처구니없이 남북 분단으로 종결되면서, 많은 혹은 일부 교회가 종교 탄압을 근거로 기계적 반공주의를 외쳐 왔다. 또한 선택적 정교분리를 근본주의에 함몰된 교회의 영적 순수성을 지키는 방편으로 삼고, 신학 없는 '부흥'과 '선교'를 교회 물질 자본과 인적 자산 팽창을 위한 도구로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영유아·어린이·청소년 교육은 속죄론·구원론에 필요 이상으로 몰입하게 되었고, 질문 불가, 순종 만능으로 축약되는 무신학 맹신의 정서적 교리를 만들어 냈다.

이런 개운치 않은 정서는 성인이 돼서도 '죽어서 갈 지옥'이 두려워 당분간 발을 교회에 묶어 두는 효과로 이어졌다. 더욱이 모여서는 예배하지만, 흩어져서는 하나님나라 증언자로 살아가지 못한 자들의 양심 크기는 값싼 은혜/용서의 강단 메시지 덕에 작아져 갔다. 안 그래도 살기 힘든 세상에서 주일에라도 위로받고 축복까지 더해지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생각하며 안주해 온 성인들은, 교회 교육 시설과 학생당 교사 수만 많으면 교회 교육의 전근대성은 사라진다고 믿고 있겠지만, 교육 내용은 참여자들에게 새로움이나 행복감, 도전을 주지 못하고 있다.

교회 교육에 신학이 부재하므로 방향성이나 내용 측면에서 변화된 것은 많지 않다. 다양한 교재가 나오고 있지만, 총천연색 옷으로 변장해도 1970년대 공과 주제들이 등장하고, 신자로서 정체성 인식이나 성서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일은 매우 기본적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단순한 예를 들자면, 성경 첫 장인 창세기 1~2장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가 두 가지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해하며,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17년간 교회학교를 다닌 교인 가운데 몇이나 될까. 하지만 신학은 필요 없고 문자주의와 성서무오설에 근거한 성경 공부면 된다고 생각하는 일부 목사가 여전히 존재하고, 무슨 본문을 선택해도 믿음과 순종으로 귀결되는 표준화한 설교가 쏟아지는데도 교인 수를 유지하는 교회가 적지 않다. 이런 추세는 교인 입장에서의 '얻을 위로와 드릴 감사', 교회 지도자 입장에서의 '줄 위로와 받을 감사'가 등치 교환되는 지점까지는 계속될 일이다.

무/비신학적 교회를 신학자들이 비판하면 "목회 현실을 모른다"고 비하하는 일부 목사, 목회자가 택한 어려운 삶보다는 그럭저럭 괜찮은 대안 직업인으로서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가는 신학교 일부 교수, 그러면서도 신학교에서 강의 하나라도 하면 자의식이 팽창되는 일부 목사, 일부 교수가 이직하는 교회 사이즈를 보고 있자면, 현재 한국교회의 교회 교육이 유지되고 있어도 유지되는 것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들을 모델로 삼아 존경을 표하며, 어쨌거나 그 사이에서 줄서기/줄타기하는 목회 준비생, 신학생도 없지는 않으므로. 교회·교단·신학교 주체들의 근원적 회개와 진지한 개혁 노력이 생겨나지 않는 한 결국 교회 교육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

시중에 나와 있는 교회학교 교재들. 뉴스앤조이 이은혜
시중에 나와 있는 교회학교 교재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차별을 당연시하며, 위계 서열화한 군사 문화를 교회의 의전으로 생각하고, 생명 가진 모든 존재를 이웃으로 여기고 환대하기는커녕, 혐오 표현의 정도를 신앙과 교회를 수호하는 척도로 생각하는 교회를 향해서 할 말은 없다. 그래서 신학교 밖으로 나와 건물 없이 교회로 모이는 교회의 목사로 살면서, 한 사람이라도 볼 수 있는 평화교육 교재를 만들며, 교회 교육개혁 운동을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운동의 핵심적 선언을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회 교육은 평화교육이다. 교리 교육으로 접근하는 성경 공부를 넘어서야 한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사랑과 구원의 언어를 평화교육으로 전환하면 좋겠다. 영유아·어린이·청소년 스스로 표현하고 싶어 하고, 그들이 발견한 언어와 주제를 평화교육 관점으로 안내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왕따와 환대 △자존감과 사랑 △가족 테두리의 변형과 이웃 사랑 △성폭력과 인간에 대한 예의 △맹종과 동의 △자기 결정권과 존중 △신앙 공동체의 특성 △경청과 평화 △경계 넘어 평화 등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매우 많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궁금해하며 알고자 하는 내용을 교회의 평화교육 주제로 발견하고, 그 주제를 성경의 정신으로 성찰하며, 성찰을 다시 현실에서 실천해 가는 그런 교회 교육을 시도하자.

둘째, 교회 교육은 참여자 모두의 교육이다. 학생-교사로 나뉘는 일 없이 모두가 '참여자'로 함께하는 평등 교육으로 변하기를 바란다. 교회에는 출석을 체크하는 자, 지식(성경)을 주는 자, 예배를 이끄는 자가 한편에 있고, 출석을 체크받는 자, 지식을 받는 자, 예배를 구경하는 자가 다른 한편에 있다. 전통적 예배 형식을 불변하는 교리처럼 받들고 그 어떤 작은 변화의 시도도 죄를 짓는 양, 지옥에라도 떨어질 양 두려워하는 교회에서 모두가 예배 주체, 성경 공부의 평등한 참여자로 존재하기는 어렵다. 교회 교육 지도력들이 교리를 율법화하고, 지위를 권력화하면서 그들의 사고와 신념을 신앙 교육 원칙으로 고수하려는 한, 어린이와 10대가 행복한 주인이 되는 교회 교육은 불가능하다.

셋째, 교회 교육은 한 사람,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는 교육이다. 모두를 위한 교육은 그 누구를 위한 교육도 될 수 없다. 획일적 교육을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해 보자는 초대이다. 교리 교육, 성경 지식 축적을 교육목표로 삼고, 개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학습자를 교육 대상으로만 삼는다면, 그들을 성숙한 신앙인으로 양육할 수 없다. 교회 환경(교회의 교리, 신학, 교육 비전 등)에 따라 교육 환경도 모두 다르다. 각 학급, 학년의 소모임들도 모인 사람들 특성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추상적 교리 중심, 성경 지식 축적을 위한 교사 중심, 획일적 내용 중심 교육에서, 참여에 동기를 부여하는 '참여자에 대한 정성스런 관심 교육'으로 전환해 가기를 요청한다. 상품을 내세워 경쟁을 부추기는 각종 경연 대회, 개인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손 번쩍번쩍 들고 정답을 말하면서 어른들이 기대하는 목표에 부응해 주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칭찬하며 상을 주는 교육은 속히 폐지될수록 좋다. 성경 암송, 성경 필사는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어서 암송하고 필사하는 그 자체가 이미 선물이다. 개인의 신앙적 수련에 좋은 방식이라는 이유로 집단적으로 격려·강요·동원할 일은 아니다.

넷째, 교회 교육은 '안전한 신앙 공동체'(Safe Church)가 전제돼야 가능하다. '안전함'이란 신체적·정서적·심리적·성적·영적 손상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상태이다. 교육 현장에서 성인 참여자(교사·전도사·목사 등)는 반드시 인권 감수성, 성평등과 성 인지 감수성, 문제 제기식 교육과 비폭력 평화 대화 가능성, 비상식을 초상식화하지 않는 기본 품성을 가진 사람들로 준비돼야 한다. 신앙 경력, 교사 소명을 앞세워 이런 내용과 태도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목사가 되는 신학 교육 커리큘럼에도 없는데, 너무 비현실적 제안이다"고 꾸짖는 목소리가 글을 쓰는 동안에도 들리는 듯하다.

다섯째, 교회 교육의 개혁은 신학 교육 변화와 신학생 지원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교회 교육은 대부분 신학적 사고와 성서 이해 방식을, 이제 신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한 신학생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의존도가 높을수록 교육적 한계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교회와 신학생 자신이 이미 경험하고 있다. 교단 목회자가 되려고 신학교에 입학한 사람들이 입학과 동시에 전도사가 되어 설교하고 성서를 가르치고, 심지어 교회를 개척하는 상황에도 문제 제기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 교회 교육 현장이다. 의대에 입학하자마자 개원하는 의대생이 있을 수 없듯이, 신학 교육과 교회 교육 현장의 관련성을 매우 신중하게 조정하고, 개혁적이며 대안적 구조를 찾아야 한다.

현재 교육전도사로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 영성 수련과 신학 수련에 도움을 받기 위해 기꺼이 전도사로 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직계 세습과 교차 세습이 보장/기대 가능한 중대형 교회 목사 아들 신학생들은 예외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신학생들은 교회에서는 학교 과제, 학교에서는 목회 돌봄을 하느라 3년간 피눈물 나게 어렵게 생활한다. 졸업과 동시에 그들 가운데 몇몇은 적당히 개인 역량과 인맥을 바탕으로 전임이 된다. 몇몇은 신학적으로 아는 것이 없다고 느끼며 대학원 진학과 파트타임을 병행하기로 결정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어려운 현실을 대부분의 신학생이 통과의례처럼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다. 교단·교회·신학교는 교회 교육을 위해서라도 양질의 신학적 사고를 하는, 품위를 갖춘 인격적 목회자를 양육하는 일에 책임져야 한다.

교회 교육의 변화는 이렇듯 교사 한 사람의 교육에 대한 개념 변화부터 교단 신학 교육의 개혁에 이르기까지 모두 함께 연동하여 변혁되고자 할 때 비로소 가시적으로 견고해질 것이다. 교단의 지속적 개혁, 신학교 교육개혁, 교단 교육부의 확장적 개혁과 지원이 없다면 지역 교회 교육이 달라지리라 기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특히 문자주의 성서 교육 및 교리 교육 체제에서 기독교 평화교육 체제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전문 인력 양성, 집필자 재교육 시스템 구축 등 교회·노회·교단 및 신학 교육 책임자들의 다중적 결단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런 총체적이며 근원적인 교육개혁을 위한 교회의 환경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이렇게 광장에서, 할 수 있는 일, 쓸 수 있는 글, 만들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실천하며 살고자 한다. 이렇게 기여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 더 많이 연결되기를 기대한다. 물론 '교회 교육과 다음 세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일을 위해 이전과는 다르게 지금 어떤 일에 애쓰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말이다.

오현선 / 장로회신학대학교와 클레어몬트신학대학을 졸업했다. 2년 전부터는 호남신학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두고, 현재 여울교회 담임목사와 '공간엘리사벳' 일인연구소 대표로 일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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