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편집국장] 교회 공과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청소년용 '평화교육' 교재가 나왔다. 평화교회연구소(황인근 소장)가 올해 2월 말 펴낸 <올리브유(ALL-LIVE YOU): 나의 이야기, 우리의 하나님나라>다. 하필 코로나19가 확산된 시기와 맞물려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기존 교리 주입식 공과책과는 다른 패러다임을 내세운다.

<올리브유>는 총 8과 11주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나와 이웃을 존중하며 살아가기 △다시 듣는 가족 이야기 △성폭력과 힘의 악용 △내 편/네 편/쟤네 편의 경계를 넘어 평화의 나라로 등 기존 교재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주제들을 다룬다. 성경 본문과 해설도 있지만, 주입식 설명보다는 자기 삶의 이야기를 성경 이야기에 비춰 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집필진들이 쓴 '나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진솔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돕는다.

공간엘리사벳 대표 오현선 전 호남신대 교수를 비롯한 8명이 집필에 참여했다. 모두 현장에서 청소년을 만나는 교회학교 교사 및 사역자들이다. 이들은 작년 10월 1일부터 7주간 '올리브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마음을 맞추고 교재 집필에 착수했다. 프로젝트는 오현선 교수가 주관했지만, 이것 역시 주입식 교육이 아닌 집필자들 먼저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교육'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뉴스앤조이>는 집필진 중 닉네임 나무그늘, 도라희년, 웬디 3명을 만나, 어떻게 집필에 참여하게 됐는지, 어떤 마음으로 교재를 만들었는지 등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이들은 <올리브유>가 교회학교 교재의 대안이라기보다는, 평화교육, 평화로운 교육의 가능성을 여는 첫 시도로 여겨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좌담은 5월 7일 서울 충무로 카페바인에서 진행했다.

<올리브유> 집필진 중 세 명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올리브유> 집필진 중 세 명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교리 주입식 교재는 한계 있어
가르치는 방식도 문제
다른 사람 존중하라고 가르치면서
아이들 존중하지 않으며 가르쳐"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교회학교 교사 경험을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다.

나무그늘 /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 소속 목사로 전통적인 교회를 섬기고 있다. 대학 때 전공도 기독교교육이었고, 그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교사로 봉사했다. 신학대학원에 가서부터는 전도사로 아이들을 만났다. 3년 정도 미션스쿨에서 중·고등학생도 가르쳤다. 지금 있는 교회에서도 교육부를 담당하고 있으니, 20년 정도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친 셈이다.

도라희년 / 믿는페미에서 활동하고 있고 현재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스무 살 신학대학교 입학하면서 아동부 교사로 봉사한 것을 시작으로, 교육간사·교육전도사 등을 맡아 왔다.

웬디 / 나도 예장통합 소속 목사로 나무그늘과 같은 교회에서 고등부 사역을 맡고 있다. 나는 학부에서 신학을 전공하지는 않아서, 20대에는 교회 중등부 교사로 5~6년 봉사했다. 사역자가 된 후에는 7년 정도 청소년들을 지도했다.

- 올리브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나무그늘 / 기본적으로 현장 사역자로서 교회의 평화교육이나 교회학교 교육에 문제의식이 있었다. 대부분 성경 공부 시간은 교리적 지식을 주입·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적용 파트가 있지만 피상적이다. '서로 사랑하자', '왕따 친구들 받아 주자' 정도다. 이게 현실에서는 적용이 안 된다. 아이들도 그냥 '네, 좋은 말씀 감사해요', '교회에서는 좋은 말 하는 거지 뭐' 이렇게 반응한다. 가르치는 방식 자체도 문제였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자고 가르치면서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평화교회연구소에서 교재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했다. 7주간 내가 먼저 많이 배웠다. 단순히 교재를 펴내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프로젝트 자체가 새로운 교육 방식을 배우는 장이었다. 오현선 교수님의 인도 방식이 그랬다. 섬세하게 누구도 배제하지 않았다. 참여자들은 그 안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고 존중받는다고 느꼈다. 사실 교재 자체는 '뭐가 그렇게 다른가'라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부터 이런 경험을 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게 됐다. 우리도 아이들을 인도할 때 덜 폭력적이고 덜 배제하고 다양성을 더 존중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도라희년 / 나는 교회학교 교재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좋은 교재를 찾기 힘들어서 1년 정도 직접 만들어서 쓴 적도 있다. 어린이용은 그럭저럭 만들 수 있었는데, 청소년용은 만들기가 힘들더라. 어느 날에는 작정하고 기독교 서점 가서 교재들을 쭉 훑어본 적도 있었다. 교단에서 나온 책들, 대형 교회 목사들이 쓴 책들, 큐티책까지 다 봤다. 모두 내용이 맘에 들지 않았다.

일단 너무 교리 교육 중심이었다. 이대로 가르치다가는 아이들이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게 무서워서 교회 다니게 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는 지나친 간증주의였다. 이런 책들은 삶의 문제나 동력이 모두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한다. 추상적이고 삶으로 와닿지 않았다. 다니엘 학습법 같은 '하나님 믿으면 잘된다'는 내용도 여전히 소비되고 있었다. 이런 걸 복음이라고 할 수 있나 싶었다.

아이들이 성경 공부를 싫어해서 반년 넘게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서클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하나님 얘기, 성경 인물 얘기보다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효과는 드라마틱했다. 아이들이 역동적으로 변했다. 그런데 이것도 반년 넘게 하니까 앙꼬 없는 찐빵처럼 느껴지더라. 이 모임을 굳이 교회에서 해야 할까. 그때쯤 되니 아이들이 또 성경 좀 공부하자고 하더라. 갈급함이 있는 거다.

이걸 어떻게 채워 갈지 고민하던 중 담임목사님에게 올리브 프로젝트를 제안받았다. 나 역시 그 7주간 커리큘럼이 좋았다. 환대받는 느낌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나를 포함한 참여자 모두가 펜 잡고 '평화교육이란 무엇인가' 이런 걸 공부하려는 태도였다. 오현선 교수님이 완전 패러다임을 바꿨다. 자연스럽게 모임에 스며들었고, 하다 보니까 교재까지 만들게 됐다.

웬디 /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시중에 많은 교재가 나와 있고 그중에는 물론 훌륭한 것도 있겠지만, 아이들 삶을 잘 담을 수 있는 교재는 없는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어린이 교재는 조금씩 발전하는 것 같은데, 청소년 교재는 정체된 느낌이었다. 지금 아이들 상황은 다양해지고 빨리 바뀌는데, 아이들 삶은 이렇게 치열한데, 정작 교재는 오히려 후퇴하는 느낌이었다. 정답에 갇힌 것 같은 교재가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화두와는 맞지 않는, 마냥 행복한 나라를 꿈꾸는 것만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지루할까. 현실적으로 교회에서 교육 시간은 아주 짧다. 과연 그 안에서 아이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얼마나 담을 수 있을까. 게다가 교재까지 이렇다면. 그러던 중 이런 교재를 만들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회에서 쓸 수 있는 평화교육 교재를 만드는 게 정말 가능할까'라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참여하게 됐다.

도라희년은 기존 교재 내용이 지나치게 교리주의·간증주의적이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도라희년은 기존 교재 내용이 지나치게 교리주의·간증주의적이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교회학교 교재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성경 공부'를 떠올린다. 그런데 <올리브유>는 기존 교재와는 좀 달라서, 성경 공부용은 아닌 것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도라희년 / <올리브유>는 성경 공부 교재가 맞다. 본문도 있고 주석 작업도 다 했다. 그런데 왜 성경 공부용이 아닌 것처럼 보일까라고 고민해 봤다. 우리에게 '성경 공부'에 대한 견고한 이미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권위적인 사람 한 명이 좍 풀어서 강해하고, 아이들은 받아 적고 외우는 이미지. 물론 이런 자세를 무조건 비판하는 건 아니다. 나는 진리를 탐구할 때 외우는 시간, 거기에 머무는 지루한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견뎌야 진짜 이해하게 되고 자기 것이 된다. 문제는 성경 공부는 꼭 그래야만 한다는 인식이다.

또 한 가지는 교재에 '나의 이야기'가 들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보통 교재들은 하나님이나 성경 인물 이야기 비중이 절대적인데, <올리브유>에는 집필진 개개인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하나님 얘기가 들어가야 할 곳에 우리 얘기가 같은 비중으로 들어가니까 성경 공부용 교재라고 생각되지 않는 게 아닐까.

웬디 / 흔히 말하는 성경 공부, 교리 교육은 중요하다. 아이들도 거기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너무 그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삶과 교회가 분리되는 듯한 소외감을 느꼈을 것 같다. 이번에는 한번 반대편에서 바라보자는 생각이 교재에 반영된 것 같다.

우리 교회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교회에 새신자 청소년이 많지 않다. 특히 고등부 정도 되면 떠나는 사람이 많지, 새로 유입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남아 있는 사람은 직분자 자녀나 교회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 다녔으니 성경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일반 교재로 공부하면 자극이 안 되고 지루해하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성경 공부 자체가 아니라 성경과 삶을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 아닐까. <올리브유>는 다른 교재들과 접근 방식이 다르다. 교재에 나오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아이들 삶으로 들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재가 단순한 성경 공부용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나무그늘 / 아마 교회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거대한 주제가 아닌 것들을 선택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나에게 <올리브유>는 일종의 안내서라는 생각이 강하다.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가치 -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세심하게 배려하는 삶으로 안내하는 교재. 자기 이야기와 성경 이야기를 만나게 해 주는, 그래서 성경이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밀접하게 관련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는 안내서다. 물론 이 책 하나로 아이들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지는 않겠지만, 첫 발걸음을 떼게 해 준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올리브유(ALL-LIVE YOU): 나의 이야기, 우리의 하나님나라> / 올리브프로젝트팀 지음 / 평화교회연구소 펴냄 / 68쪽 / 5000원
<올리브유(ALL-LIVE YOU): 나의 이야기, 우리의 하나님나라> / 올리브프로젝트팀 지음 / 평화교회연구소 펴냄 / 68쪽 / 5000원
교재에 등장하는 '나의 이야기'
"모든 사람을 위한 교재가 아니라
한 사람을 위한 교재를 만들자"

- <올리브유>에는 집필진이 쓴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정상적이지 않은 가정, 친족에게 당한 성폭력 등 교재에 오픈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 주제들도 있다. 왜 이런 주제들로 글을 쓰게 됐나. 부담스럽지는 않았는지.

웬디 / 사실 '내 이야기를 어느 정도까지 교재에 써야 할까', '공감이 돼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많이 했다. 글을 쓰면서 지금 만나는 아이들을 생각해 보니 이런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았다. 어린 시절 나는 교회 잘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임원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았다. 그렇게 교회에서 열심이었는데 가정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 혼자 비밀로 가지고 있었다. 괜찮은 학생이라는 가면을 쓰고.

지금 교회에도 그런 친구들이 있겠다 싶었다. 마음을 열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겠구나. 프로젝트할 때 오현선 교수님이 "우리 교재가 모두를 위한 교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단 한 친구, 내 앞에 있는 한 친구에게 용기를 주는 책이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에 공감이 많이 됐다. 편향되고 누군가는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내 이야기를 통해서 나와 같은 일을 겪은 한 친구가 위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썼다.

나무그늘 / 나도 어렸을 적, 우리 가정의 문제점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해 본 적 없다. 지금 생각하면 누구나 겪는 일인데, 그때는 말할 수 없었다. 교회 공동체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들은 어떤가. 어렵게 이야기하더라도 돌아오는 건 평가다. 목사나 선생님들은 "그러니까 기도해야지", "네가 더 잘해야지" 이런 충(고)·조(언)·평(가)·판(단)을 한다.

지금도 분명 가정이 정상적이지 않은데도 교회에서는 나이스한 아이·부모 가면을 쓴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교재를 통해 자기 이야기를 펼쳐 놓고 그걸 성서의 빛에 비추어 보면 좋겠다. 모두가 아니라 누구 한 명이라도, 모든 내용이 아니라 어느 한 부분이라도 붙들고 치유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도라희년 / 나는 성폭력 부분을 썼다. 교재를 만든다면 이 주제는 반드시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성폭력 및 가정 폭력을 상담한 경험도 있고, 어떻게 교회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을까 연구하고 목소리 내려고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일상에서 많이 일어난다. 교회 교육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다. 교회는 하나님이 우리 삶에 함께하시고 개입하신다고 고백하는데, 그렇다면 그 삶이 어떤 삶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하나님의 현존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본다. 근데 이걸 뭉개 버리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목소리를 뭉개 버리는 일이다.

믿는페미 활동이나 교회 사역 중에 여자 성도들을 만나면, 80% 이상은 성적으로 침해받은 경험이 있다. 그럼 이들이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이 경험들을 소화하고 있다는 건데, 왜 교회에서는 이게 잘 드러나지 않을까. 남성 목사들은 '우리 교회에는 그런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반대로 이런 현상이 남성 목회자들의 성 인지 감수성을 보여 주는 반증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남자 전도사들은 이르면 20대 중반부터 청소년부를 맡는다. 20~30대 남자 전도사가 청소년부 아이와 연애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건 심각하게 지탄받아야 할 일인데 당사자나 담임 목회자나 성찰·반성이 없다. 이런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은 여성 교인이 성폭력 경험을 털어놓았을 때 어떻게 반응할까. 교인들은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나무그늘은 어른들이 '충조평판'하면 아이들은 입을 닫게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나무그늘은 어른들이 '충조평판'하면 아이들은 입을 닫게 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청소년들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느냐', '애들이 설명해 준다고 알아듣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나무그늘 / 누군가는 분명히 경험하는 일이다. '무슨 애들이 그런 일을!'이라고 생각하는 게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n번방 사건을 보라. 아이들이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느냐는 생각 자체가 어른, 관리자 마인드다. 어른들에게서 자꾸 이런 말이 나오면, 그런 경험을 한 아이들은 '아 나는 역시 정상이 아니구나', '이런 말 하면 안 되는구나', '우리 엄마·아빠·선생님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하며 말을 못 하게 된다. 이러면 n번방이 계속되는 거다. 어른들이 너무 모르고 있다.

교회 아이들이라고 교회 안 다니는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미션스쿨에 있었을 때가 10년 전인데, 그때도 임신하는 중학생들이 있었다. 선생님한테 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묻는 아이들이 있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 없을 텐데, 단지 교회가 안전한 공간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교회 다니는 아이들이 안 다니는 아이들보다 어떤 도덕적 기준은 더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지키는 아이도 있겠지만, 못 지킨 아이는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가면을 쓴 채로 살게 된다. 아이들을 그렇게 두지 않으려면, 어떤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되려면, <올리브유>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설명해 줘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말. '설명'과 '이해'라는 언어 자체가 대화하자는 언어가 아니다. 기존 교회학교 교육은 계속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써 놓은 이야기는 설명이 필요 없다.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이미 현재를 살고 있는 그 아이가 공감을 경험해 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도라희년 / 그런 거까지 알아야 한다. 이미 세상은 알지 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른들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보여 준다. 아이들이 통제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다. 차라리 정직했으면 좋겠다. '나는 두렵다', '잘 모르겠다'고 하면 대화의 여지가 있다. '너희가 무슨 이런 거까지 알아야 하냐'며 이상한 보호 담론으로 끌고 가면 안 된다. 왜 알면 안 된다고 생각하나. 문란해져서? 방탕해져서? 아니면 사탄이 틈타서? 이런 건 위압적인 언어다. 아이들 발화를 막을 뿐이다.

교재 쓸 때 일부러 '성폭력'이라고 정확하게 썼다. 피해를 겪은 사람은 먼저 정확한 용어를 알아야 자기 경험을 명명할 수 있다. 그때부터 비로소 치유 과정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좀 우회적으로 표현할까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현선 교수님이 "모두를 위한 교재는 누구를 위한 교재도 될 수 없다. 우리 한 사람을 위한 교재를 만들자"고 명확하게 이야기하시는 걸 듣고, 정확하게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웬디 / 그런 얘기 안 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n번방 사건만 해도 온 나라가 그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들은 이미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교회만 입을 싹 닫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나. 아이들은 교회에서 듣고 싶고 궁금해할 것 같다. 그리스도인은 이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하지만 현실 교회에서는 누구도 말하지 않고 말하면 안 되는 분위기다. 그럴 시간도 없고. 말할 기회를 교회에서 많이 열어 줘야 한다. 사실 교회 소그룹이야말로 누구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교재 뒷면에 있는 추천사 쓴 사람 중 한 명이 우리 교회 학생이다. 학생도 한 명 쓰면 좋겠다고 해서, 출간되기 전 원고를 다 보내 줬다. 전체 분량도 길고 주제도 어려워서 다 안 읽을 줄 알았는데, 다 읽었다더라. 어땠냐고 물었더니 낯설기는 했다더라. 이런 내용을 한 번도 본 적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어디서 성폭력과 하나님나라를 연관 짓는 걸 봤겠나. 낯설었지만 이런 이야기가 성경과 연결돼 있다는 게 신기하고 신선했다더라. 친구들과 꼭 해 보고 싶다고. 사실은 이런 게 아이들이 궁금해하고 듣고 싶은 이야기 아니었을까.

도라희년 / '애들이 이런 거까지 알아야 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교재를 보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먼저 좀 사서 보고 판단했으면 한다.

나무그늘 / 자꾸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아이들이 딴 데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교회는 항상 고상하고 우아하고 정상적인 이야기만 하니까. 아마 <올리브유>에 나오는 성경 본문도 낯선 게 많을 것이다. 주류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본문이니까. 아이들이 '성경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구나', '성경에 우아하고 고상한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구나'라고 깨닫게 됐으면 좋겠다.

웬디는 교회 소그룹이야말로 안전한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웬디는 교회 소그룹이야말로 안전한 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이야기를 듣다 보니 교재 자체도 중요하지만 인도자가 정말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존중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할 텐데.

도라희년 / 맞다. 원래 교재를 발간한 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워크숍을 기획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잠정 중단된 걸로 알고 있다. 이제 생활 방역 수준으로 내려갔으니 평화교회연구소에서 준비하지 않을까 싶다.

프로젝트할 때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모임 자리에 일찍 오는 사람도, 늦게 오는 사람도 있지 않나. 일찍 오는 사람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고, 늦게 온 사람은 대화의 중간부터 참여하게 된다. 보통 이런 경우 늦게 온 사람들은 이야기 들으면서 대충 알아들은 척한다. 그런데 오현선 교수님은 일단 대화를 끊고 "우리끼리 먼저 얘기해서 미안하다. 지금 무슨 이야기하고 있었냐면…" 이러면서 설명해 주더라. 어떤 사람도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작업을 자연스럽게 하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저런 식으로 배제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구나'라는 걸 배웠다.

"구체적인 평화, '만질 수 있는 평화'
아이들은 다음 세대 아닌
지금을 가장 그들답게 살아가는 세대
모두가 공동체 구성원이라고 인식해야"

- <올리브유>를 통해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웬디 / '평화', '사랑' 같은 이야기들 교회에서 정말 많이 한다. 중요해서 하는 것이겠지만, 그만큼 퇴색된 느낌도 든다. 아이들과 선생님들 모두 평화가 '만져질 수 있는 가까운 것'이라고 느꼈으면 좋겠다. 평화가 먼 나라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으면, 아이들의 삶 속에서 느껴질 수 있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럴 시간이 정말 없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이야기를 하며 '그랬구나', '몰랐다' 공감하고 치유가 일어나면 좋겠다.

나무그늘 / 나의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곧 성경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겠다. '만질 수 있는 평화'라는 말이 나왔는데. 추상적인 가치와 개념이 기독교에 많다. 아이들이 구체적인 자기 현실에서 나의 이야기와 성경 이야기를 연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존중받고 인정받고 제재받지 않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타인을 대하는 삶의 태도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친구를 대할 때도 존중받고 공감받은 경험을 흔적 삼아 행동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경험이 계속 축적되는 게 진짜 교육 아닐까.

도라희년 / 산상수훈에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라고 나온다. 평화라는 건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실현해야 하는 가치다. 나도 '평화' 하면 남북 관계를 떠올렸고, 나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질 수 있는 평화'가 돼야 한다. '나에게 평화는 이런 거야'라는 개개인의 정의가 필요하다. '평화는 함께 밥을 먹는 것이다', '다른 옷을 입어 보는 것이다', '다른 색깔이나 촉감을 느껴 보는 것이다', 이런 구체성이 생기면 좋겠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를 보면, 결국 예수님이 떡을 떼어 주셨을 때 그들의 눈이 뜨이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제자들이 깨닫게 된 건 예수님이 말씀을 풀어 줄 때가 아니라 빵을 먹여 줄 때였다. 예수님은 참 한결같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말씀으로 우리 엉킨 마음을 풀어 주시되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말씀을 육신의 빵으로 먹여 주신다. 이 교재가 단지 말씀으로 끝나지 않고, 아이들 삶 속의 빵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 사람은 모두 7주간 프로젝트에서 포용과 환대, 공감을 배우며 새로운 교육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세 사람은 모두 7주간 프로젝트에서 포용과 환대, 공감을 배우며 새로운 교육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한국교회는 어린이·청소년들을 '다음 세대'라고 부르며 중요하게 생각한다. 구호는 많은데 구체적인 실천은 손에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교회학교 교육은 어때야 할까.

나무그늘 / 어떤 거대한 가치를 가지고 하나님나라 일꾼으로 만든다는 것보다는, 그저 지금 삶을 잘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좋아하지는 않는다. 옆에서 도와주는 정도다. 아이들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좀 더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역할이다. 어른 입장에서는 '살아 보니까 이게 중요한데'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아이들은 다른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기존 방법으로는 교육하지 않는 게 도와주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개인적으로 '다음 세대'라는 표현에 비판적이다. 그들은 지금 세대이고 현재를 가장 그들답게 살아가는 존재인데, 어른들이 자꾸 지연된 세대로 생각하려 하는 것 같다. 특별히 대안적인 언어가 없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언어가 사람을 규정하기도 한다. 다음 세대라고 하니까 '다음에 해라', '지금은 내가 한다' 이런 느낌이다.

도라희년 / 나도 '다음 세대'라는 말이 내포하는 의미와 맥락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지금을 살고 있고 세대·단체가 아니라 개인이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을 다음으로 미루고 개인을 세대로 묶어 버리는 걸 보면, 어른들이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드러난다. 기존 질서를 해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음 세대라는 말은 '나중 세대'라는 말로도 들린다. 다음 세대라면서 치켜세우기는 하는데, 정작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내거나 교회에 뭔가 요구하면 '너희들은 나중에'라고 말하며 들어 주지는 않는다. 이중적이다.

나는 지금 교회에서 힘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에게 말하고 싶다. 기존 질서가 통제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과 지적·실천적 게으름을 벗어 던지고, 상상력을 발휘하셨으면 좋겠다. 새로운 상황·사람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사고하는 것은 아프고 고통스럽다. 상처를 수반하는 일이다. 충분히 상처받으셨으면 한다. 정말 다음 세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견뎌 줘야 진짜 어른이지 않을까.

웬디 / 나는 교회에서 발표회 하는 날이 제일 싫었다. 좋게 생각하면 축제이고 흥겨울 수 있는 거지만. 내가 교육부서에 있다 보니 아이들이 동원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린이날 축제도 결국 아이들만 뭔가를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위에서는 또 몇 명 오는지 인원 체크하고….

우리가 아이들을 대할 때 나이와 부서, 역할이 다를 뿐이지 한 교회를 이루는 구성원이라고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 교회를 함께 세워 가는 공동체원이라고 받아들이려면, 서로 이야기 듣고 관심 가지고 양보해야 한다.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교회는 더불어 사는 곳이라는 걸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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