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일상생활에서 '오지랖'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타인의 일에 지나치게 참견하거나, 쓸데없이 과한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오지랖이 넓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을 '오지라퍼'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오지라퍼를 자처하는 것도 모자라 우리 모두 오지라퍼가 되자며 캠페인을 시작한 이들이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푸르른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송경호 목사(좋은씨앗교회)와 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로 구성된 '드림아이중창단'이다.

송경호 목사는 2007년부터 푸르른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며 동네 아이들과 호흡하고 있다. 푸르른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 중에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가 더러 있다. 아빠·엄마·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 범주에 들지 않는 아이는 물론, 경우에 따라 가정 폭력 등 학대 상황에 놓였던 아이도 있다.

센터와 송 목사는 노래라는 매개체를 통해,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은 아이들이 꿈을 찾아 나아가도록 울타리가 되어 주고 있다. 센터 아이들은 '드림아이중창단'을 만들어 여러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2016년 '마음을 담은 노래' 1집을 발매했다. 아이들은 세월호 유가족 기록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못난 아빠>(더이룸출판사)를 함께 읽고 '왜', '울지 마요'라는 노래를 작사해 세월호 참사 2주기 공연에서 불렀다.

송경호 목사(가운데 모자 쓴 사람)와 드림아이중창단. 송 목사는 초등학생 때 만나 중고등학생이 된 아이들과 함께 '아동 학대 예방 캠페인'을 진행한다. 사진 제공 송경호
송경호 목사(가운데 모자 쓴 사람)와 드림아이중창단. 송 목사는 초등학생 때 만나 중고등학생이 된 아이들과 함께 '아동 학대 예방 캠페인'을 진행한다. 사진 제공 송경호

송경호 목사와 아이들은 얼마 전 '아동 학대 예방 캠페인 - 시선: 시작하세요, 선한 오지랖'을 시작했다. 체벌·방임·감금 등 상상을 초월하는 뉴스가 잊히기도 전에 또 다른 아동 학대 뉴스가 들려오는 요즘, 우리 모두 아동 학대의 '감시자'가 되자는 취지로 진행하는 캠페인이다.

드림아이중창단은 캠페인 일환으로 '지켜 줄게, 너를'이라는 앨범 발표를 계획하고 있다. 몇몇 곡은 아이들이 직접 가사를 썼다. 앨범 제작을 위해 필요한 자금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모금하고 있다. 약 3000만 원이 있어야 하는데, 24일 남은 현재(12월 7일 기준) 모인 금액은 1721만 원. 아직 갈 길이 멀다.

아동 학대 예방 캠페인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송경호 목사를 서면과 전화로 만났다. 서면 인터뷰에는 나윤미·김민(고2), 송에스더·김민지(중3), 나서인(중1) 학생이 참여했다. 10대 아동·청소년이 어쩌다 '아동 학대'에 마음을 쓰게 됐는지, 왜 앨범 제작이라는 방식으로 캠페인을 진행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아동 학대 다룬 영화 '미쓰백' 보다가
아이디어 얻은 아이들이 직접 제안
"관심 보이는 한 사람만 있으면,
학대받는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 가능"

아이들은 2018년 개봉한 '미쓰백'이라는 영화를 본 후 아동 학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피해자 곁에는 주인공 백상아(한지민 분)가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를 보며 송경호 목사가 떠올랐다고 했다. 한 학생은 "목사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도 학대받는 아이가 됐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계속 지켜보고 손을 잡아 주고 그 사람이 괜찮은지 확인하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알게 됐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울다가도 목사님 생각이 났던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은 송 목사 덕분에 자신들이 잘 성장할 수 있었던 만큼, 학대받는 아이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려고 직접 나섰다. 단 한 사람의 꾸준한 '오지랖'으로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를 구하고 꿈을 심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한 아이들이 낸 아이디어다. 드림아이중창단의 경험을 살려 이번에도 노래를 통해 세상에 말을 걸기로 했다.

아이들은 주말에라도 시간을 내어 서울에 있는 녹음실로 향한다. 사진 제공 송경호
아이들은 주말에라도 시간을 내어 서울에 있는 녹음실로 향한다. 사진 제공 송경호

아이들은 약 1년간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가사를 썼다. 'TV 속 울던 아이', '지켜 줄게, 너를'이라는 노래도 그렇게 완성됐다. 'TV 속 울던 아이'의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어둠 속 그 눈물은 / 어느새 그 눈물이 깊은 상처가 되어 / 그렇게 감추고 싶던 이야기가 TV 속으로 흘러나오네"라는 가사는, 아동 학대 뉴스에 나온 아이들의 아픔을 누군가 먼저 알아차렸다면 사건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썼다.

평범한 누구나 마음만 있다면 아동에게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걸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지켜 줄게, 너를'이라는 곡에는 이런 바람을 담았다. "니가 그렇게 아픈지 상처투성이인지 몰랐어 / 너를 외면했던 나를 용서해 / 내가 너를 지킬 수 있는 걸 몰랐어 / 누군가만 하는 줄 알았어 그냥 외면하지 않으면 되는 건데 / 지켜 줄게 내가 너를 / 나의 관심으로 지켜 줄게 / 평범한 나지만 너의 영웅이 되어 줄게"라고 가사를 지었다.

학생들은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많은 힘이 된다. 망설이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어른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동·청소년은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은 어른들에게 '선한 오지라퍼'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은 "학대받는 것으로 의심되는 아이를 발견해도, 어른들 입장에서는 '설마 학대받고 있을까'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관심으로, 아이들은 계속 고통받는 상황에 놓인다. 남의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 달라"고 했다.

"아동 학대 뉴스로 분노하는 건 그때뿐,
노래 통해 경각심, 일상에서 지속되길 바라"
송 목사 "다음 세대 중요하다는 교회,
생명 지킨다는 생각으로 관심 가져 주길"

아이들과 송경호 목사는 아동 학대 예방 캠페인이 삶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노래'라는 방식을 택했다. 이들은 노래의 힘을 믿는다. 송 목사는 "아동 학대 뉴스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그때만 분노하고 또 잊는다. 하지만 노래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계속 듣고 따라 부를 수 있다. 노래를 통해 지속적으로 아동 학대를 주위에 환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펀딩이 끝나면 '음원 듣기' 캠페인을 펼칠 예정이다.

송경호 목사는 특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아동 학대 예방 캠페인에 적극 참여하면 좋겠다고 했다.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교회들이 '아동 학대에 관심이 있다는 점'을 알리는 일만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아동 학대를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해자에게 '당신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고 알리는 것이다. 교회와 교인들이 아동 학대 예방 캠페인에 적극 참여한다는 사실을 외부로 알린다고 가정해 보자. 적어도 그 지역에 있는 아동 학대 가해자들은 경각심을 느끼게 된다.
 

혹시나 남의 집 일에 괜한 참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신고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아동 학대 신고가 된 집들의 경우를 보면, 문제 행동이 딱 한 번만 드러났다고 해서 바로 신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동 학대로 드러난 사건들에는 문제 행동이 '반복적·습관적'이라는 주변 이웃의 진술이 있었다. 의심이 들면 생각만 하지 말고 신고해야 한다. 가해자에게 당신의 행동을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가해자·피해자·방관자 중 한 명만 없어도 아동 학대 사건은 감소할 수 있다."

아이들은 아동 학대 예방 캠페인 홍보를 위한 영상도 직접 제작했다. 아동 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외면하지 말고 신고해 달라는 내용이다. 사진 제공 송경호
아이들은 아동 학대 예방 캠페인 홍보를 위한 영상도 직접 제작했다. 아동 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외면하지 말고 신고해 달라는 내용이다. 사진 제공 송경호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선한 오지라퍼'를 자처한다면, 지역 분위기까지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송경호 목사는 믿는다. 그는 "여전히 교회가 우리 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교회의 선한 움직임이 세상을, 악인을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아동·청소년 복음화율이 2%도 안 된다. 교회 안에 있는 아이들만 붙잡고 다음 세대를 걱정하면 안 된다. 아이들 생명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아동 학대 예방에 힘써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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