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의 시간] 김혜령,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IVP)

김혜령 교수(이화여대)가 2023년 <뉴스앤조이>에 투고한 '페미니스트 신학자와 치매 아버지' 연재를 기반으로,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더해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IVP)를 발간했습니다. - 편집자 주
그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지만,
치매가 자꾸 우리 집에 들어온다

"만약 당신이 85세까지 살게 된다면 당신은 절반의 확률로 알츠하이머 환자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다른 절반의 확률인)알츠하이머 환자의 간병인이 될 것입니다."

알츠하이머에 관한 소설 <스틸 앨리스>(세계사)의 저자 리사 제노바(Lisa Genova)가 강연에서 한 말입니다.

과장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이 말은 현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2024년 연말에 우리나라의 노인 비율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섰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약 10%가 넘는 105만 명 정도가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초로기 치매 환자(65세 미만의 치매 환자)'와 치매 진단을 받지 않고 집에서 돌봄받는 '통계 미포함 환자'를 합하면 그 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신다면 확률상 그중 한 분은 치매 환자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라면 앞으로 20년이 채 지나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 내에서 치매 환자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치매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어리석다'라는 뜻의 한자를 두 개나 겹쳐 놓은 '치매(癡呆)'라는 단어마저 두려움을 더욱 강화합니다. 그런데 치매에 대한 공포와 거부감은 매우 큰 반면, 치매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나 치매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방식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가령 치매를 예방하는 운동이나 음식에는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지만, '치매 환자를 대하는 방법'이나 '집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정보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점점 커지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출간은 대단히 반가운 소식입니다.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IVP)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신학자의 이야기입니다. 반갑다고 표현한 것은 이 책이 삶의 자리에서 치매와 맞서 싸우고 있는 치매 가족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가족 안으로 들어와 버린 치매 때문에 겪은 숱한 사건들과 그 과정에서 느낀 점들을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진한 경험들에 관한 고마운 나눔이자, 현시대에 가장 필요한 목소리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고통받는 이들이 스스로 일어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 내는 것만으로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감에 짓눌려서 그저 잠들고 침묵해 버리는 다수의 사람과는 달리, 그 순간을 기록하고 자신들이 여전히 버텨 내고 있음을 외치는 사람들이 존재했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많은 사람의 시선을 소외된 곳으로 향하도록 만들었고, 역사에 의미 있는 균열을 불러왔습니다.

최근 들어 치매 환자나 그 가족 가운데서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58세에 치매에 걸린 웬디 미첼(Wendy Mitchell)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일상을 블로그에 기록하면서 그것을 토대로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문예춘추사)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일본의 뇌과학자인 온조 아야코는 <뇌과학자의 엄마, 치매에 걸리다>(지호)라는 책을 통해,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이자 딸의 입장에서 어머니를 관찰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치매 당사자들이 서서히 자신들의 생각을 책과 블로그,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펼쳐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들이 치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바꿔 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치매 예방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만, 치매 환자를 돌보는 방법에 대한 정보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치매 예방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만, 치매 환자를 돌보는 방법에 대한 정보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치매'라는 렌즈로 바라본 나, 너 그리고 우리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입장에서 써 내려간 이 책은 치매를 '기억의 문제'로 생각하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치매는 '감정의 문제'이며 '공존의 문제'임을 가르쳐 줍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통해 큰 위로와 실제적인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매우 많을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치매 환자와 가족들을 만나 온 입장에서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세심한 시선과 깊은 생각의 실타래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짜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치매 환자가 겪는 일상의 어려움, 그리고 그 거친 파도 사이에서 한 번씩 내쉬게 되는 감사의 호흡들이 페이지마다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힘은 "그러니 아직 더불어 살아야 한다"라는 저자의 말처럼(15쪽), 생존을 위한 가장 날것의 몸부림과 발버둥의 목소리를 신학자의 사유와 약자를 변론하는 옹호자의 담담한 음성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저자가 찾아보고 정리한 정보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치매 지침서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실용적입니다. 가령, 치매 증상인 '배회'에 대한 내용을 담은 1장('배회의 병 치매')이나 치매 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장기 요양 보험 제도의 서비스 가운데 하나인 데이케어센터를 설명하는 5장('치매 환자의 슬기로운 사회생활')과 6장('가장 고마운 사람들, 그러나 고마움의 이유를 다시 물어야 한다') 같은 부분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실제 사례들을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어서 이제 막 치매 가족이 되었거나 치매에 대해 미리 알아보려는 이들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일선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치매 환자와 보호자의 관계가 부부 사이인지, 부모와 자녀 사이인지에 따라 문제 행동과 갈등 양상이 무척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일 경우에는 성별(어머니-딸, 어머니-아들, 아버지-딸, 아버지-아들)에 따라 완전히 다른 돌봄 상황에 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래도 부모와 자녀의 성별이 다를 경우에 돌보는 일이 더욱 어렵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 곳곳에서는 평생을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에 대한 저자의 존경과 사랑, 그리고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발견됩니다. 대표적으로, 표지를 넘겼을 때 처음 나오는 헌사에서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향한 저자의 마음이 향기처럼 배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조차 잊어가는 중에도 벗은 신발을 가지런히 신발장에 정리하시는 아버지에게 존경과 사랑을 담아 이 책을 바칩니다."

아버지를 돕는 분들과 주변에 살고 있는 이웃들에 감사하는 마음도 무척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해야 할 말들을 쿡쿡 새겨 넣은 저자의 단호함도 빛이 났습니다. 한국은 지금 '이중 돌봄'이라는 큰 허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중 돌봄은 현재의 경제활동인구가 떠안고 있는 '자녀 양육의 부담'과 '노부모 부양'이라는 이중고에 대한 심리적·경제적 부담을 뜻하는 말입니다. 기대 수명이 늘어나면서 앞으로 이 허들은 점점 높아질 것이며, 이로 인한 가족 해체와 양극화 현상은 우리 사회에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돌봄에 대한 부담을 가족에게 전담하도록 강요하거나 정부가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돌봄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도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사안들에 대해 저자는 여러 차례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지적한 문제점들은 지금보다 나은 한국을 위한 또 다른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합니다.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신학자의 이야기다. 사진 제공 IVP
누군가 치매에 걸리더라도…

이 책의 마지막 장은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리거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앞서 다른 장들을 읽을 때와는 책 안의 공기가 사뭇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아직 미성년인 자녀에게 남기는 엄마로서의 당부이기 때문일까요? 단어 선택과 여러 문장의 맺음에서 저자의 깊은 고민과 진솔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아버지의 외모와 성격은 물론 내성 발톱까지도 닮았다고 말하는 저자가 그 '닮음'의 연장선을 아버지의 치매와도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처럼 일상에서 치매를 마주하는 돌봄 종사자나 치매 가족들은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리면…'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생각은 그저 불쾌한 근심에 그치고 말 뿐이지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저자처럼 나를 돌볼 힘든 순간을 마주할 가족들을 위해 글을 남기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은 치매를 삶으로 마주하는 이들이 떠올리곤 하는 숱한 근심과 생각들이 곱게 정제된 편지이자 담담한 배려가 가득한 글처럼 느껴졌습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치매에 걸린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말과 부탁을 가족에게 남기고 싶을지 매우 궁금해지는 대목이었습니다.

책의 앞표지에는 제목과 저자의 이름 사이에 웃는 모양의 기호가 살포시 들어가 있습니다. 어쩌면 웃음을 뜻하는 기호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다시 표지를 보았을 때는 틀림없이 '웃음'으로 보였습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저의 대답은 '누구나 안심하고 치매에 걸릴 수 있는 공동체, 그리고 약한 이들을 함께 돌보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신앙 공동체를 포함하여 지역 내의 공공기관과 병원, 돌봄 센터, 기업과 학교가 고령 친화적이고 나아가 치매 친화적인 모습을 만들기 위해 협력해 나간다면, 지금보다는 치매 환자와 치매 가족들이 웃는 날이 더 많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치매 환자와 가족들이 붙잡을 수 있는 고마운 손들이 더욱 많아질 가까운 미래를 위해서 이 책이 멋진 역할을 해 주리라 기대합니다.

이우섭 / 주중에는 노인장기요양기관인 경주어르신종합돌봄센터를 운영하고, 주말에는 동안교회에서 유아부와 시니어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 신학, 사회복지를 전공했으며, 한국영성노년학 전과정(PCSG)을 수료했습니다. 노년 목회 가이드북인 <시니어목회 에센스>(사랑나눔)를 집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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