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의 시간]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뉴스앤조이)

같은 개신교인이라 하더라도 교회에 얼마나 스며들어 신앙생활을 하는가에 따라 교회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형 교회에서 유명한 목사의 설교만 듣고 예배만 참석하는 교인들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바로 발길을 끊을 수 있고 그렇게 큰 상처를 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일평생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며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교회 내에 형성된 교인의 정체성은 사뭇 다르다. 교회가 곧 자신의 신앙생활의 근간이 되며 모든 아름다운 추억과 일상의 가장 큰 축이었던 교인들은 교회가 직면한 '분쟁 상황'과 그로 인한 혼란, 더 나아가 자신이 사랑했던 교회와 교인들로부터 버림받고 비난받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면,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와 신앙의 전부가 부정되는 것 같은 큰 충격을 받는다. 이 책에는 이런 충격과 상처를 받은 이들의 고백과 아픔이 가득하다.

"계속 회개만 했어요. 그 방법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그 교회에서 못 나온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아마 지금 기성 교회에 다니고 있는 저희 또래 사람들 중에도 다른 교회에 갈 수가 없어서 그냥 거기에 있는 분이 참 많을 거예요. 떠나면 그 교회에 다녔던 세월이 다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 같은 경우도 23년, 제가 관계했던 사람들, 섬겼던 시간들, 그런 것들이 다 없어 져 버리는 거 같았거든요. 그게 무서운 거예요." (독단적인 목회자와의 불화로 20년 넘게 다녔던 교회에서 나와 '뜰교회' 공동체를 세운 김정자 집사의 이야기)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뉴스앤조이)에 나온 5개의 교회 이야기는 주로 목회자의 범죄와 독단적 권력과 소통 부재로 발생한 문제들을 바로잡으려던 교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은 큰 상처를 받았지만 절망 속에 주저앉거나 신앙을 떠나지 않고 결국 새롭게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나도 10여 년 전, 그 당시 청년 목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유명했던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로 인해 교회 내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경험으로, 책 속의 이야기들이 아주 낯익은 기시감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잊고 싶었던 과거의 상처와 분노가 떠올라,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었음에도 읽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그때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책에 나오는 다섯 교회가 구체적인 상황은 다를지라도 대부분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한 이야기들이 진행되었다. 대개는 이런식이다.

1. 범죄를 저지르거나 권력을 전횡하고 있는 목사의 비리가 밝혀짐.
2.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된 교인들이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직언을 하며 목회자의 진정한 회개와 사과나 사퇴를 요구함.
3. 그러나 목회자는 회개도 사과도 하지 않고, 자신을 옹호하고 추종하는 성도들을 규합해 교회가 본격적인 분쟁 상황에 돌입.
4. 교단에 도움을 요청해도 교단은 대부분 목회자 편을 들며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듦.
5. 결국 문제 제기한 교인들이 출교되거나 비난받으며 교회를 떠나거나 새로운 교회를 만듦.

아마 앞으로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간다 하더라도 이런 교회 분쟁의 패턴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비슷한 일들이 무수히 반복될 것이다. 그때마다 많은 신앙인이 교회를 떠날 것이고, 참된 신앙과 교회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는 이가 많아질 것이다. 교회 분쟁의 패턴과 타락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한국교회에는 희망이 없는 셈이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이 책의 특별한 가치가 있다. 이 책은 교회 분쟁과 목회자의 타락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도리어 지옥 같은 그 혼돈의 시간 속에서 참담한 현실에 압도되지 않고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직접 만들어 내고 있는 교인들의 고군분투와 교회를 세워 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더욱 부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로 인한 상처받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고, 그의 진정한 사과와 회개를 요구하며, 교단의 합당한 징계와 면직을 요구하는 활동을 수년간 열심히 해 왔다. 그 과정은 너무 힘들었고 평범한 신자인 내가 왜 이런 소모적인 싸움을 수년간 해야 하는가 후회한 적도 많았다. 당시엔 그것이 내 신앙에 부끄럽지 않기 위한, 하나님 앞에서 최소한의 몸부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년간의 투쟁이 무색하게도 결국 교단은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고, 도리어 노회와 교단이 나서 서슴없이 피해자들을 매도하며 2차 피해를 가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순진하게 믿어 왔던 '신앙의 상식'과 '목회자들에 대한 기대'가 무참히 박살 나는 체험을 반복하며, 신앙에 대한 냉소가 마음 한편에 켜켜이 쌓여 갔다. 

제도 교회에 대한 기대가 거의 바닥을 치며, 과연 어떻게 매일 매일 '하나님'을 입에 담으며 예배를 인도하는 자들이 저렇게 비신앙인들보다 야비하고 사악하며 양심에 화인 맞은 것같이 뻔뻔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지,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혐오스러웠고 항상 분노에 가득한 상태가 되어 갔다.

다행히도 분노와 냉소의 상태가 내 신앙을 잡아먹을 수도 있던 상황을 막아 준 것은, 같은 마음을 품고 같이 싸워 준 동료 교인들과 교회의 기도와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삼일교회는 전병욱 목사 성범죄로 인한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한 TF팀을 만들어 교단에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피해자들을 돕고 지원하며, 전병욱 측으로부터 고소당한 교인들을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개신교 내의 성범죄 문제 대응을 위한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설립의 산파 역할을 했다).

지금은 십수년 전의 그런 교회의 아픔과 분쟁으로부터 몇 걸음 떨어져 모처럼 평화로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 일 이후로 마음 한편에 '신앙과 교회에 대한' 냉소주의는 여전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깟(?) 교회를 위해' 열정을 다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교인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못마땅하기도 하다. 그런 상태로 자기방어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터에, 이 책에 나온 여러 교인의 눈물겹고 안타까운 사연들을 읽으면서 역설적이게도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목회자의 상상을 초월한 범죄와 거짓말, 그 모든 범죄를 덮어 버리려 애쓰는, 그들을 추앙하는 또 다른 목회자들과 교인들의 모습은 이미 너무 낯익은 모습이어서 신선할 것이 없었다. 그런 뻔한 죄인들의 모습보다 끊임없이 상처 받는 야만과 혼돈의 가운데서 도리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고민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참된 교회'를 향한 고민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묵묵히 내딛는 평범한 교인들의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감동적으로 와닿았다.

신학적으로 무지할 수 있고 목회자보다 성경을 모를 수도 있지만, 겸손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에 비추어 '이건 아니다'를 용기 있게 외치며, 교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위해 온갖 수모와 모욕을 감내하며 분투하는 그들은 결코 약하고 무지한 성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과 인간성의 밑바닥까지 보고 나서도 신앙의 동력을 잃지 않고 도리어 강해지며 성숙해지는 교인들의 생명력 넘치는 모습은 '교회에 무슨 선한 것이 있을 수 있나'라는 냉소에 빠진 나에게 건네시는 '하나님의 위로' 같았다.

"지상에 완전한 교회는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우리 교회가 지금의 문화를 잘 지켜 나가면 좋겠어요. 서로의 다름이 부딪쳐야 매끄러운 돌이 되는 것처럼, 서로를 통해서 배울 수 있고 갈고 닦일 수 있는. 그냥 '이 길이 맞다'고 해 버리면 그런 기회가 많이 사라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돌아보면 지나온 두 교회가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단 한가지 옳은 길이라는 건 없죠." (두 번이나 교회 분쟁을 겪고 남은 교인들이 세운 '이우교회' 김현수 집사)

한국의 많은 교회에서 '다름'은, 완전한 교회에 있어서는 안 될 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김현수 집사의 말처럼 '서로의 다름'을 통해 매끄러운 돌이 되어 가고 불완전한 가운데 성숙하고 건강한 교회로 다듬어지는 과정이란 걸 인정·포용하지 못하는 문화가 아쉽다.

불완전한 교회를 완전하다고(또는 완전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강박과 고정관념이 교회에서의 분쟁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지만 연약한 인간들이 모인 교회는 목회자부터 장로, 권사, 평범한 교인들,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불완전함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교회 내에는 언제나 갈등과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다른 의견과 생각이 있을 수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단일한 하나의 생각과 신앙관을 강요하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의 서로를 향한 존중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무리하게 공동체의 크기를 키워 나가다가 결국 그 권력의 정점에 있는 목회자들이 타락하는 것은 아닐까?

신앙인은 어쩌면 잘나가거나 성공했을 때 성공의 이유보다, 아픔과 절망 속에서 절망하지 않아야 할 이유들을 찾아내는 사람이 아닐까? 누구나 절망하고 혼란스러워하고 힘들 때, 절망하지 않고 꿋꿋이 교회를 재건해야 할 이유를 보여 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참된 신앙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교회 내 범죄와 갈등, 그로 인한 교회의 분열과 무너짐이 아프게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주의 몸 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신앙적 각성과 고백, 올바른 신앙으로 돌아가고 있는 험난한 여정이 진솔하게 기록되어 있다.

"다 버릴 수도 없고 다 취할 수도 없는 거니까요. 회의를 정말 많이 했어요. 시스템을 고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마음도 어루만져 주었죠. 결국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봐야겠더라고요. 누군가를 존경할 수는 있지만 결국 우리 리더는 하나님이라는 거. 그전에는 천 목사와의 관계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가 중요하구나 싶어요." (목회자의 성폭력과 재정 비리로 큰 혼란을 겪고 세워진 '새기쁨교회' 장시원 씨)

하나님은 참으로 역설적인 분이시다. 어쩌면 교회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보여 주는 현장에서 교회가 다시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이런 작은 이들의 헌신을 통해 보여 주신다. 이런 역설로 인해 교회를 향한 기대와 희망을 접어 버린 나의 차가운 마음에도 이 책은 잔잔한 감동과 파문을 일으켰다. 날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흉흉하고 참담한 소식이 넘쳐 나는 시기에도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그 처참한 현장 속에서도 '교회를 바로 세우려는 작은 이들의 분투'가 언제나 있을 것이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잊고 있던 것은, 목회자의 타락과 교회 분쟁을 '하나님은 없다'는 비신앙과 냉소의 근간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완전하지 않은 교회를 더욱 성숙하고 바른 교회로 만들려는 '하나님의 개입과 열심'으로 바라보는 신앙적인 해석도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일들은 성경 속에서도 계속 반복해서 기록되어 왔다. 하나님은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의 패역과 범죄로 무서운 심판을 선포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줄기 희망의 메시지를 남겨 놓으셨다. 

"주민의 십분의 일이 아직 그곳에 남는다 해도, 그들도 다 불에 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에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다." (이사야 6:13)

내가 믿는 역설의 하나님은 항상 그러셨다. 심판과 파멸의 현장 속에서도 한 줌의 거룩한 씨는 남겨 놓으신다. 그리고 우린 그것만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어 가는' 작은 이들이야말로 한국교회의 그루터기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한국교회의 타락과 절망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루터기 같은 희망을 기록한 책이다. 

타락한 한국교회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절망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교회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은 참담한 현실에 아프고 쓰라리겠지만, 그런 모습에 굴하지 않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빚어 가는 참된 신앙인들의 꺾이지 않는 열정과 생명력이 '신앙의 냉소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고 다시 조심스럽게 '교회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다.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 / 구권효 지음 / 뉴스앤조이 펴냄 / 224쪽 / 1만 5000원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 / 구권효 지음 / 뉴스앤조이 펴냄 / 224쪽 /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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