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의 시간] 그레이엄 조지프 힐, <더 건강한 교회를 위한 성평등 수업>(IVP)
| 어머니 교회, 그리고 교회 안의 여성 |
성장기를 보낸 교회를 가리켜 '출신 교회'나 '고향 교회'라는 말보다, 흔히 '어머니 교회' 혹은 '모(母) 교회'라고 부른다. 이러한 어휘 사용에는 한국교회 다수를 이루는 성별과 역동의 주체가 누구인지 드러난다. 한국교회는 단연코, 많은 여성의 희생과 헌신으로 숱한 시련을 이겨 내고 여기까지 왔다.
어머니들의 자녀들이 자라나 교회를 섬긴다. 일부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된다. 그들은 어린 시절 즐겁게 뛰놀던 교회 풍경의 이면을 마주한다. 어머니 품처럼 마냥 아늑할 줄만 알았던 교회의 냉기를 느낀다. 더욱 쓰라린 사실이 있다. 어머니의 아들과 딸들이 지닌 냉점(冷點)의 밀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욱 불합리한 차별에 노출되곤 한다. 소속 교단 신학교 학부부터 여러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만난 여학우들, 목회 현장에서 동역한 여성 목회자들의 토로는 지금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분명 나뿐만 아니라 교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 대부분이 함께 인식하는 문제일 것이다. 해결을 위해 미비하나마 각 교단 총회에서 매년 대안을 제시하지만, 매번 어려움에 부딪힌다. 여기에는 복잡한 난제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최근에는 예민한 '페미니즘 논쟁'이나 '젠더 이슈'로 연결되기 쉬워 더욱 난해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 까닭에 '성평등'을 제목에 적은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용기 있는 일이다. 섣부른 오해를 받으며 본래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가려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 호주연합교회 소속 신학자 그레이엄 조지프 힐이 쓴 <더 건강한 교회를 위한 성평등 수업>(IVP)이 그러하다. 원제 "Holding Up Half the Sky"와 달리 한국어판에만 '성평등'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 책을 만든 이들의 절박함을 느꼈다. 그만큼 평등이 한국교회에서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교회다움을 이루는 데는 여러 요소가 있겠으나, 저자는 우리가 '성평등'이라는 영역에서 '더 건강한 교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걸음을 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회의 절반 이상의 구성원들을 배제한 채로는 결코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같은 주장을 성경에 기반하여 펼친다는 것이 이 책의 훌륭한 덕목이다. 저자는 이념 논쟁이나 상대편 주장과 맞서 싸우려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 대신 평등과 관련해 성경이 진정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를 통해 우리가 참으로 이루어야 할 교회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포용적인 어조로 그려 간다.
| 현실 타개를 위한 철저하게 성경적인 탐색 |
우선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교회 내 여성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가 속한 호주도 예외가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다.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뼈아픈 현실을 드러내는 통계를 인용한다(202~203쪽). 그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 미국 개신교에서 담임 혹은 전임 목사 가운데 10퍼센트만이 여성이다.
- 남성 담임 목사는 동년배 여성 담임 목사보다 27퍼센트 더 많은 보수와 수당을 받는다.
- 미국에 있는 아홉 개의 주요 종교 단체 중 두 곳만 여성이 이끌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에 몹시 마음 아파하며 진지하게 대안을 모색한다. 따라서 호주 남성 목회자인 그의 통찰은 한국 교회에도 상당히 유의미하다. 우리가 기꺼이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이 책은 세 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우선 제1강에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선 사전 작업을 한다. 그런 다음 제2강에서 책의 가장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성경적 평등'에 관한 성경 본문을 해설한다. 마지막으로 제3강에서 구체적인 실천을 제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도 철저히 성경 본문에 근거해서 논지를 밝힌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저자는 철저히 '성경주의자'다. 그는 교회를 어렵게 하는 첨예한 문제 해결의 길을 우선 진지한 성경 연구를 통해 찾는다.
이와 같은 저자의 입장을 책의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의 증언에 충실해야 한다. 우리는 틀린 주장과 '이기고 싶은'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34쪽) 매우 동의가 되는 성숙한 신학적 자세다.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하고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는 바람직한 신학 작업의 모범이라 할 수 있겠다.
| 더 건강한 교회를 위한 성실한 성경 이해 |
저자의 성경 해설을 본격적으로 살펴보자. 그는 갈라디아서 3:28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족의 모습으로 이해한다. 바울은 창조된 질서를 폐지하거나 여성과 남성이 구분되지 않는 무성(無性)의 교회를 주장한 게 아니다(103쪽). 여기서 바울은 갈라디아교회가 유대주의 영향으로 유대인과 남성에게 특권을 주려는 것에 맞서고 있다. 저자는 스캇 맥나이트를 인용해 이 구절이 단순히 구원론이 아니라, 새로운 한 가족으로 화합하는 '교회론'에 관한 것이라고 정리한다(105쪽).
또한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바울은 에베소서 5:21-23과 골로새서 3:11-25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상호성'의 맥락으로 설명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상호 순종하는 규범과 규칙을 따라야 한다. 반대로 권력과 통제에 기반한 위계 질서는 복음에 반하는 것이며 병든 사회적·신학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교회에는 리더십이 필요하고, 우리는 교회와 가정에서 경건한 리더십을 행하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그 리더십은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신 사랑을 통해, 그리고 상호성 및 상호 순종에 대한 헌신을 통해 표현되어야 한다(129쪽).
이 외에도 저자는 교회 내 남녀 역할에 관한 다양한 본문을 최신 성서학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정리한다. 이를 통해 신앙 공동체 안의 성차별이 얼마나 반성경적인 행태인지를 드러낸다. 더 나아가 그 모든 경계를 넘어서 서로를 존중하며 품을 넓히는 것이 진정,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전히 따르는 것이라는 사실을 힘 있게 주장한다.
| 건강하고 성경적인 교회를 위한 균형 잡힌 교회론 |
이 책을 읽으며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 적은 "어디서나 불의는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라는 유명한 문장이 떠올랐다. 교회 안 여성을 향한 차별을 극복하는 것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교회 내 모든 사람과 모든 영역을 건강하게 하는 노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더욱더 본연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과정이다.
한 예로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2017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여교역자 사역 잇기 프로젝트'는 여성 목회자의 90일 출산휴가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해당 교회가 학교에 신청하면, 학교는 학생 중 대체 사역자를 선발하여 관련 과목의 학점을 인정하고 사역 지원비를 지급한다. 이는 출산휴가를 받는 여성 목회자뿐 아니라 그의 배우자와 가족, 더 나아가 해당 목회자가 쉼을 누린 후 복귀하여 사역할 교회 전체에도 유익을 주는 제도다. 이 프로젝트는 출산이 산모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더 나아가 남성 목회자의 육아 휴가를 비롯해, 가정 친화적인 조직 문화와 의사소통 개선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저자는 성경을 상세히 해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더욱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열다섯 개로 정리해 제시한다(204~216쪽).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여성 리더에게 실제로 권한을 부여하자", "여성이 테이블에 앉은 여성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자", "상호 멘토링을 수용하자", "기꺼이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를 질문하자", "여성과 소녀를 존중하는 것이 생활 방식과 제도적 가치가 되도록 하자." 세부 설명과 함께, 하나하나 새겨들을 만한 조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성차별이라는 문제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다루기 어려우나 반드시 극복해야 할 교회 안의 여러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근거로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지에 관한 건강한 방법론이다. 따라서 이 책은 '더 건강한 교회'를 두고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충분히 유익한 답과 희망을 안겨 줄 것이다. 교회 안에서 경험하는 부조리한 문제를 두고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목회자들은 물론이고, 성경이 알려 주는 균형 잡힌 교회론을 공부할 교재를 찾는 교인들에게도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특별히 남성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더욱 강력히 추천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이 알게 모르게 누렸던 여러 특권, 구조적인 모순의 혜택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불편할 수는 있지만 내면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지는 과정이다. 더구나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한 확장이라면, 성별을 떠나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거쳐야 할 분명 유의미한 성장이다.
끝으로, 신학교와 목회 현장에서 마주했고 마주하고 있는 여성 동문과 동역자들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감사를 보내고 싶다.
정대진
시편 131편 찬송처럼, 젖 뗀 아이와 같은 평온을 지닌 목사가 되길 꿈꾼다. 신학과 문학이 조화를 이루는, 정갈한 글쓰기로 빚어낸 설교를 하고자 애쓴다. 그 결실로 <하나님의 이름들, 그 맥락과 의미>(좋은씨앗, 2023)을 출간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구약학 석사(Th.M)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목회신학박사과정(Th.D. in Min.)에서 '목회와 성서' 전공으로 현장에 뿌리내린 성경 연구를 이어 가고 있다. 영남 지역 전통 교회들을 거쳐 현재 일산 승리교회 교구목사로 섬기며 배우는 중이다.
블로그 '여백 여정'(dektos0921.blogspo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