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의 시간] 권연경 <오늘을 위한 히브리서>(IVP)
| 최애가 히브리서라고? |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신약성서 27권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책은 무엇일까? 아마도 '히브리서'라고 답하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듯 히브리서는 "같은 반이지만 한 번도 대화를 나눈 적 없는 친구"(42면)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연경 교수의 <오늘을 위한 히브리서>를 읽으면 최애가 '히브리서'라고 답할 사람들이 늘 것 같다. 왜냐하면 낯설고 복잡할 것 같은 내용을 아주 쉽게 이해하도록 인도할 뿐 아니라, 피곤에 지쳐 몽롱한 정신으로 살아가던 그리스도인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고 정신 차려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도 그렇게 설득되었다. 복음서 전공자인 내가 '히브리서'가 없었으면 기독교 신학이 어떡할 뻔했나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히브리서는 구약에 나타난 율법의 전통,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의 의미, 예수님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삶의 관계를 수직적이면서 수평적인 파노라마로 통합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히브리서의 신학은 구약과 신약,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적 의미를 심도 있게 풀어내는 기독교의 대표 신학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구약의 제사 전통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연결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의 삶의 제사로 체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연속성은 시대를 달리하며 패러다임 전환을 하지만 나선형과 같은 연결로 그리스도인에게 손을 내밀며 히브리서의 복음을 깨달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길 도전한다. 결국, 책 제목에서 드러난 것처럼 "오늘을 위한" 히브리서가 되는 것이다.
| 구성과 개요 |
저자는 신약학자답게 헬라어 원문 전체를 직접 번역하는 것으로 이 책을 시작한다. 이어 히브리서의 저자 문제와 시대적 상황 및 저술 목적, 바울 신학과의 관계성을 포함한 전반적 내용을 설명한다. 전통적으로는 바울이 저자로 인식되기도 했으나 역사비평 방법으로 히브리서가 연구된 이후에는 바울 저작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고, 현재는 오리게네스의 말처럼 '누가 썼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할 정도로(53쪽) 저자의 정체는 미궁에 빠져 있다. 본문 자체로 살펴볼 때 저자는 율법과 유대 전통에 능통하며 헬라철학 및 수사학에 잘 훈련된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히브리서가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떨치고 기독교 신학의 우수함을 설명하며 배교를 경고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견해가 너무 좁다고 보고, 실제로는 이방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압박과 박해 속에서 믿음을 지키도록 권면하는 책이라고 주장한다(62쪽). 그는 히브리서가 단지 유대인뿐 아니라, 삶이 힘들고 지친 모든 사람들, 나태에 빠질 위험에 처한 모든 독자를 위한 것이라며, 그 신학의 지평을 보다 보편적으로 확장한다.
| 그리스도의 탁월하심 |
총 13장으로 구성된 히브리서를 저자는 한 장씩 주석한다. '그리스도의 탁월함'을 히브리서의 핵심 주제로 보면서 1장은 천사보다 더 탁월하신 예수님으로, 2장은 그러한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천사보다 낮아지신 하나님의 아들로 대조하여 그리스도의 인격을 설명한다. 구약에서 천사는 율법을 전달해 주는 존재로 여겨 왔다. 그런데 예수님은 율법의 중재자인 천사보다 더 탁월한 분으로 그려져 예수님을 통한 새 언약의 우수성을 암시하는 한편, 그러한 천사보다 낮아지셨다는 것은 사람이 되셔서 고통과 죽음을 맛보시고 모든 인간의 "선구자"가 되시기 위함이다. 선구자가 되신다는 것은 우리가 가야 할 인생 트랙의 선두 주자가 되신다는 것으로(102쪽),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의로운 행위의 모범이 되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사람의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도우시기 위해 자녀의 존재에 동참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뜻이다.
저자는 히브리서 3장이 예수님을 '사도'와 '대제사장'이라고 독특하게 지칭한다며 깊이 주목하고 생각할 것을 권한다(115쪽). 1~2장에서 소개된 예수님의 탁월성은 3장에 이르러서는 모세보다 더 출중한 분으로 서술되며 그 탁월성이 계속 강조된다. 이것은 새 언약의 우월성으로 연결된다. 한편, 4장에서는 이스라엘이 보여 준 불순종은 그들이 왜 하나님의 휴식에 참여하지 못했는가의 증거로 설명되고, 우리 역시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려워하도록 경종을 울린다.
| 대제사장 예수님 새 언약의 성취와 의미 |
5~10장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이 어떻게 유대교의 대제사장과 비교가 안 되는 뛰어난 존재인가를 설명하고 우리로 하여금 유대교의 제사 전통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돕는다. 예수님은 일반적인 유대교 제사장들처럼 레위 지파 출신이 아니라, 멜기세덱이라는 특별한 대제사장 계통을 따라오신 독특한 대제사장이다.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로서의 성막에서 섬겼다면, 멜기세덱 계통의 대제사장 예수님은 "소멸하지 않는 생명의 능력"(220쪽)을 토대로 육체의 죄를 용서해 주는 반복성 제사 의식을 뛰어넘어, 우리의 양심까지 새롭게 만들어 죄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새 언약을 제공하셨다. 이것은 일회적이며 우리에게 더 좋은 언약과 소망을 가져다준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탄탄한 소망"과 "견고한 인내"로 성숙해 가야 할 책임을 전가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제사가 일회적이고 결정적인 만큼 다시 반복될 수 없으므로 "오히려 신자의 책임은 더 무거워지는 원리"(293쪽)라는 것이다.
11장은 구름처럼 둘러싼 믿음의 증인들을 이야기하되 이들의 믿음은 "미래를 바라보는 믿음"이었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고 그 소망에 기대어 오늘을 살게 하는 것"(335쪽)이라고 설명한다. 12장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삶의 경주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훈육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며, 그 바탕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마지막 13장은 이제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우리 삶으로 드려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형제 사랑'이고, 돈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이 우리를 살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선한 양심을 바탕으로 선행과 찬송으로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권고하는 것으로 저자는 설명한다(396쪽).
| 구원의 감사에서 성숙한 책임으로 |
요약하면, 권연경 교수가 설명하는 히브리서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탁월성이 율법의 옛 제사를 뛰어넘게 하였고, 그 결과는 죄를 없애서 우리의 양심까지 새롭게 하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대제사장 예수님께서 이루신 새 언약의 성취는 우리로 하여금 감사의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게 한다. 오히려 선한 양심의 회복을 구원 사건의 증거로 삼아 그리스도의 성숙함에 다다를 책임을 시사한다. 그것은 형제 사랑과 손님을 대접하는 일, 갇힌 이들을 돌아보는 공동체의 삶 등에 헌신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행동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이기 때문이다.
이 메시지는 예수님을 통해 구원받았다고 안심하는 것이 아니라, 만일 우리가 다시 죄를 지으면 우리를 구속해 줄 제사가 더 이상 없다는 엄중한 경고다. 또한 우리를 대속한 그리스도의 은혜에만 머무르지 말고, 예수님을 우리 삶의 '대리자'가 아닌 '선구자'로 바라보며 그분을 따라 살고, 예수님의 삶을 내 삶 속에 체화시키도록 도전하는 것이다. 이는 혹, 가볍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기독교의 구원 메시지를 좀 더 엄중하고 책임 있게 받아들이게 하는 장점이 있다.
각주는 저자의 주해에 대한 전문성을 보여 주고, 본문의 내용은 평신도에서 목회자, 전문 연구자에 이르기까지 가독성 있게 읽을 수 있기에, 독자들은 책을 향유하는 가운데 오늘 우리 위한 히브리서의 말씀을 새롭게 발견할 것이다.
김성희 / 기독연구원느헤미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