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극우·보수 개신교인들의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역사를 톺아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째 방해 행위를 일삼는 개신교인들은 이제 '혐오 세력'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습니다. 혐오 세력이라는 말에 기분 나빠하기 전에, 이들이 과연 어떻게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해 왔는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10년간의 방해 역사를 정리하는 한편, 현재 퀴어 문화 축제를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서울·대구·인천·춘천·광주·제주·부산·경남 등 8개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한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사는 6월 26일(월)부터 30일(금)까지 매일 저녁 6시 2~3개씩 총 12개를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으로, 지난 10년간 자행돼 온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가 시민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기자 주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잔혹사' 기획 기사 모아 보기(클릭)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읭(활동명)은 울고 있었다. 2017년 7월 15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제18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처음 참석해 보는 퀴어 문화 축제였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는 건데, 그걸 왜 이렇게까지 외쳐야 하는 것인가…. 1년에 하루 이렇게 자신들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성소수자들이 겪는 이 상황이 서글펐다. 축제였지만, 그는 울었다.

몇 년 전까지는 '혐오 세력'이었다. 읭은 대학 시절 한 선교 단체에서 활동했다. 졸업하고 나서도 간사로 몇 년을 일했다. 간사로 학생들을 만나면서 '동성애는 죄'라고 열심히 가르쳤다. 동성애는 치료가 가능한데, 그걸 하지 않는 것 또한 죄라고 가르쳤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평화운동에 관심이 있어 대학원도 가고, 그곳에서 '피스모모'를 소개받아 교육도 들었다. 피스모모의 실천평화학 수업에서 병역거부나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보수적인 신앙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했다.

"솔직히 저는 개신교인인데요. 동성애가 수간이랑 다른 게 뭔가요?"

지금 생각하면 혐오로 가득한 질문을 마구 던졌다. 에이즈는 어떻게 할 거냐, 도덕적으로 너무 더러워지는 것 아니냐…. 정말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읭은 지금도 얼굴이 벌개진다. 하지만 그때 강사였던 비온뒤무지개재단 한채윤 이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런 질문들에 모두 답해 줬다. 그동안 너무 많이 받아 본 질문이라는 듯이, 아주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읭의 질문들이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 던진 것이라는 걸 알아주는 듯했다.

"오래된 이야기라 구체적으로 기억나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문제다'라고 답해 주신 것 같아요. 폭력이 들어가면 사랑이 아니라고. 수간은 동의가 없는 것이니 폭력이라고.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남자와 남자가, 여자와 여자가, 혹은 다른 성별 간에도 서로 동의가 있고 사랑을 한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저는 너무 쇼크를 받았어요.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했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게 죄가 될까?', '하나님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으실 것 같은데, 그러면 이건 죄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읭을 5월 25일 제주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읭을 5월 25일 제주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직접 눈으로 보기로 했다. 성소수자들의 축제에 가서 정말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음란하다면 그 음란의 정도가 어떤지 직접 보고 싶었다. 그리고 현장에 갔을 때,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뿐이구나.' 눈물이 나왔다.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는 감격? 그간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며 살았다는 죄스러움? '동성애는 죄'라고 가르쳐 왔던 것에 대한 후회?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현재 읭은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이다.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서의 경험은 그를 크게 바꿔 놨다. 이후 제주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접하고 제주에서 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친분이 생겼다. 제주 퀴어 문화 축제에 한 번씩 참가했다가, 아예 거처를 제주로 옮기게 되면서 올해부터 조직위원회에 합류하게 됐다. 성소수자에 대해 오해만 쌓고 있었던 몇 년 전과 비교해 보면 말 그대로 환골탈태다. 혐오 세력이 앨라이가 되는 역사는 분명히 있다.

도대체 우리를 뭘로 생각하길래

제주 퀴어 문화 축제는 2017년 시작됐다. 당시 대선 후보들의 '동성애 반대' 발언으로 성소수자 이슈가 부각됐다. 이후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군대에서의 항문 성교 등을 처벌하는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안을 발의했다. 이때 제주의 한 활동가가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온라인에 게시해, 제주도 내 시민사회 활동가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게 됐다. 제주에서 평화운동, 인권 운동, 정당 활동 등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다가 이참에 제주에서도 퀴어 문화 축제를 열어 보자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2017년 10월 28일 제1회 축제가, 2018년 9월 29일 제2회 축제가, 2019년 9월 28일 제3회 축제가 열렸다. 2020년과 2021년은 코로나19로 쉬어 갔고, 2022년 10월 22일 제4회 축제가 열렸다. 네 번의 축제를 하는 동안, 매번 혐오 세력이라는 불청객이 등장해 참가자들을 괴롭혔다.

임최도윤(사진 왼쪽)·현태림 공동조직위원장을 5월 24일 제주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임최도윤(사진 왼쪽)·현태림 공동조직위원장을 5월 24일 제주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현재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현태림·임최도윤 위원장은 2018년 처음 제주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했다. 이들이 참여한 2018년 제2회 제주 퀴어 문화 축제에서는 유독 혐오 세력의 방해가 심했다. 이때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축제 장소인 신산공원 입구에서 혐오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퀴어 문화 축제로 들어가는 참가자들을 방해하는 한편, 1km 떨어진 제주시청 앞에서 '제1회 제주 생명 사랑 축제 & 선교 대회'라는 맞불 집회를 열었다. 현태림 위원장은 이들의 방해로 전날부터 밤새 고생을 했다.

"축제 전날 밤부터 혐오 세력들이 와서 축제 장소에 진을 치고 앉아 있었어요. 방해하려고 밤새 찬송가를 부르고 그랬어요. 저희 조직위원들과 활동가분들이 와 주셔서 밤새 돌아가며 공원을 지켰던 기억이 있어요. 다음 날 방해가 격해질 것 같아서 경찰이 펜스를 둘렀어요. 그래서 그들이 축제장 내부로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저희가 축제를 준비하는 아침부터 계속 통곡 기도? 그런 걸 했어요. 축제 진행할 때도 출입로에서 피켓을 들고 서서 지나가는 조직위원이나 참가자들을 붙잡고 험한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방해는 극렬했다. 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100여 명이 출입로를 막고 앉아 통성기도를 하고 찬양을 불렀다. 경찰도 난감해했다. 결국 퀴어 퍼레이드 행렬은 출입로 옆 잔디밭 쪽으로 우회해서 도로로 뛰어나가야 했다. 개신교인들은 퀴어 퍼레이드를 따라 다니면서 혐오 발언을 내뱉는 것은 물론, 삼삼오오 행진 경로에 드러누웠다. 퍼레이드는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했다. 퍼레이드 차량이 잠시 멈춰 있는 사이 한 반동성애 개신교인이 차량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 임최도윤 위원장은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행진 경로를 바꾼다는 건 축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엄청 큰일이에요. 집회 신고를 할 때 행진 경로를 미리 다 세팅하고 경찰과 소통해 놓은 상태인데, 행진 경로가 바뀐다는 것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거거든요. 그쪽에는 펜스나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방에서 손이 막 뻗어 나왔어요. 팔을 붙잡히고, 머리채가 잡히고, 깃대가 부러지는 상황들이 있었어요. 도로로 나가서 행진할 때도 트럭 밑에 사람이 들어가서 행진을 못하게 하고.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그 어떤 안전사고도 나지 않았는데, 가짜 뉴스가 퍼졌죠."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경찰에 끌려 나왔다가 다시 드러눕기를 반복했다. 사진 제공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경찰에 끌려 나왔다가 다시 드러눕기를 반복했다. 사진 제공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당시 <크리스천투데이>와 <국민일보>, 반동성애 블로그 GMW연합은 각각 "퀴어 축제 차량이 반대 시민을 덮쳤다", "반대 시민이 차량에 깔렸다", "퀴어 축제 차량이 목사님을 밀고 지나갔다"는 허위 정보를 내보냈다. 다들 현장에 없었으면서 사진만 보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차로 사람을 깔고 지나갔다니, 그들은 도대체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하는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죠. 사람으로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고. 어느 정도까지 윤리의 선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고…. 혐오라는 것이 단지 혐오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선동 행위, 나아가서는 정치적인 행위로까지 넘어가면서, 퀴어들을 이 세계 안에서 같이 살고 있는 사람으로 느끼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시도하는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저는 단지 감정적으로 슬프고 안타깝고 그런 걸 넘어서, 그런 정치적인 전략들을 하나하나 끊어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임최도윤)

"저는 그 사람이 차량 밑으로 들어가는 걸 옆에서 봤거든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너무 위험했고, 저도 놀랐는데…. 그 순간 저는 어느 정도 내려놓은 것 같아요. 그때까지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에게도 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거든요. 다른 방법을 찾아서 더 열심히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근데 이들의 혐오는 이미 너무 공고하더라고요. 그걸 제가 정면 돌파할 수 있는 방법은 솔직히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태림)

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되려 하자 개신교인들은 입구를 막고 앉아 통성기도를 했다. <제주경제신문> 유튜브 갈무리
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되려 하자 개신교인들은 입구를 막고 앉아 통성기도를 했다. <제주경제신문> 유튜브 갈무리

두 사람 모두 살아오면서 개신교와 별다른 연이 없었다. 퀴어 문화 축제에서의 경험은 교회와 크리스천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첫인상이 혐오였다. 물론 개신교가 다 그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임최도윤 위원장은 어떤 집단이라도 프레임화하는 것을 우려한다. 성소수자야말로 프레임화의 부당함을 가장 많이 겪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만난 개신교가 좋은 인상일 리는 없다.

"교회라는 건, 크리스천이라는 건 저런 건가 생각했죠. 저는 살아오면서 어떤 종교랑 가깝게 지낸 적이 없거든요. 저에게는 개신교의 첫인상이 반대 집회였고, 누군가를 혐오하는 모습이었던 거예요. 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집단으로 인식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일상에서 기독교인을 만나면 경계하게 되고 속 이야기를 하지 않게 돼요."

하지만 그들 역시 성소수자들의 친구가 되어 준 개신교인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퀴어 문화 축제에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교계에서 따돌림과 징계를 당한 사람들도 있다. 어떤 무리에서 혼자 떨어져 나온 것 같은 그 기분은 성소수자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 크리스천들에게는 "끝없이 감사하다". 누군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주 퀴어 문화 축제에 찾아와 준다면 너무 반가울 것 같다.

"와서 축복식을 한다거나 이러지 않으셔도, 무언가를 특별하게 하지 않으셔도 충분히 감사하고 따뜻할 것 같아요." (현태림)

"그런 분이 제주에 계신다는 걸 알게 된다면 이상하게 든든하고 힘이 될 것 같아요. 제주의 기독교 쪽은 정말 내 편 하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주는 너무 좁으니까, 그분의 안위가 걱정되죠. 삶이 힘들어질 가능성이 크니까요." (임최도윤) 

스스로 생각하라, 힌트는 줄 수 있다

제주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하러 온 혐오 세력도 '음란 축제'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퀴어 문화 축제가 '공연음란죄'에 해당한다는 피켓을 든 사람도 있었다. 지금까지 제주 퀴어 문화 축제는 9월 말이나 10월 말에 열려 노출이 그렇게 심한 옷을 입은 사람도 별로 없었다. 임최도윤 위원장은 퀴어 문화 축제를 음란하고 선정적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고 악질적인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서는 분노하지만, 퀴어 문화 축제가 선정적이지 않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언가를 매도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대상을 악마화·타자화하는 거잖아요. 실제로 '그렇다, 아니다'를 떠나, 이건 그냥 퀴어를 타자화하고 혐오하기 쉽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모두가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로 분노가 있는 거지, 퀴어 문화 축제가 선정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면 어때'라는 생각이 있어요. '입고 싶은 대로, 먹고 싶은 대로 사는 게 뭐 어때'라는 생각이.

 

저는 퀴어 이론이나 퀴어라는 정체감은 '몸'이랑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몸의 해방'이라는 관점으로 노출하시는 분도 많이 봤어요. '나는 여성의 몸이 아니야, 근데 네가 나를 여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걸 선정적으로 보는 거야' 하는 운동적인 의미로 행동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애초에 단편적으로 '벗었으니까 야해' 이럴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읭은 우물 안을 벗어나자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그는 퀴어 문화 축제에서 성소수자들이 노출하는 것을 '울부짖음'이라고 느꼈다. 얼마나 억눌려 있었으면, 얼마나 온전히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으면, 이날 하루 옷차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려 할까. 한편으로는 그들의 자긍심이 느껴졌다. 그것은 차별의 세상에서 자신을 숨기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이것을 단지 '음란하다', '선정적이다'라고 일축해 버리는 보수 교계 언론의 보도는 문제라고 느낀다.

"일부만 발췌해서 '이번 축제도 음란했다'고 말하는 건 정말 악의적인 보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치사한 짓이죠. 또 그들이 올리는 사진에 나오는 사람들의 동의는 받았나 싶어요. 모자이크 처리를 했더라도, 그 사람은 '내 사진이니까 지우라'고 하기 어렵단 말이에요. 자기를 언론사에 드러내기가 어려운 거죠. 이런 행태는 너무 폭력적이고 치사해요."

현태림 위원장은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대응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현태림 위원장은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대응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개신교인이 아니더라도 퀴어 문화 축제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든 그저 '논란'이 싫은 사람들이다.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릴 때마다 맞불 집회가 열리니, 이것도 저것도 보기 싫다는 것이다. 이를 아는 듯, 반동성애로 무장한 개신교인들과 언론은 퀴어 문화 축제와 관련해 늘 '논란'을 일으키려 한다.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어디 들어가서 조용하게 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퀴어 문화 축제를 왜 하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저는 '왜 하면 안 돼?'라는 물음표가 생기더라고요. 한국에 정말 다양하고 많은 축제가 있는데, 그 축제마다 찾아가서 '이거 왜 하는 거예요?' 이렇게 질문하지 않잖아요. 대화라는 건 상호작용인데, 일방적으로 뭔가 원하는 대답이 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너를 지지해. 근데 이건 아닌 것 같아' 이런 태도죠. 그런 사람들과는 대화가 성립되지 않아요." (현태림)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말할 때 기초가 되는 건 '모든 것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인식이에요. '굳이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하느냐'는 문장이 나오는 그 사고의 틀이 어디서 만들어진 것인지 되물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자꾸 지적하고 싶어져요. 당신이 그런 말을 쉽게 하게끔 한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에 대해 한번 되물어 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깨져야 한다고 봐요. 저희가 뭔가를 설명하고 설득할 포지션은 아닌 것 같아요. 다만 힌트는 줄 수 있죠.

 

어떤 사람을 앨라이로 만드는 방법 같은 게 있다고 한다면, 저는 그게 '되물음'이라고 생각해요. 제 주변에는 그렇게 앨라이가 된 분이 많거든요. 제가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100이면 100 그래요. '근데…' 이러면서 자기 의견을 말씀하세요. 그랬을 때 하나씩 되물어 가면서 이야기를 죽 진행하면 아주 선량한 앨라이가 되시더라고요.(웃음) 앨라이가 꼭 선량할 필요는 없지만, 굉장히 퀴어 프렌들리하게 변한 사람이 많아요." (임최도윤)

"저는 그냥 퀴어에 대한 인식이라기보다, 시위 문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집회의자유, 시위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거라고 봐요. 누구라도 자기 권리가 침해당하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것에 연대해야 하는 게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민이 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시민교육이 덜 돼 있다고 느껴요. 잘사는 나라가 되기는 했지만, 시민 의식은 천박한 국가 공동체가 된 것 아닌가 싶어요." (읭)

안전하게 숨 쉴 공간이 있다는 것

현태림 위원장은 제주가 고향이다. 2017년 육지에 있을 때 고향에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설렜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은 조직위원장으로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혐오 세력은 마치 싸움터처럼 만들고 싶어 하지만 퀴어 문화 축제는 '축제'다. 그는 퀴어 문화 축제가 어떤 커다란 논쟁의 장이 아니라 그냥 축제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러 와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다는 건 내가 안전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게 저에게 되게 크게 다가올 때가 많거든요. 일상 속에서 계속 대면하게 되는 혐오와 차별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 큰 버팀목이 되는 것 같아요. 주변에 내가 나일 수 있게 지지해 주는 이들이 없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럴 때 내가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을 지켜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불안하지 않게 해 주는 것 같아요. 1년에 한 번뿐이라도 있으면 너무 좋을 것 같고, 그래서 어떤 형태가 되든 매년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평화운동에 관심이 많은 읭은 제주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육지에 살다가 제주로 거처를 옮긴 이유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투쟁 때문이다. 제주는 역사적으로도 많은 아픔을 겪었던 곳이다. 정체성을 숨기고, 자기 생각을 숨겨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곳이다. 그런 보수적인 분위기가 강한 곳에서, 퀴어라는 존재는 더욱 자신을 숨기고 위장하며 살아야 할 것 같다. 마치 아버지가 목사인데 아들이 게이인 것처럼, 제주에서 퀴어라는 것은 더욱 자기 정체성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퀴어 퍼레이드가 퀴어들이 조금이라도 숨 쉬는 구멍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돌고래가 물 위로 숨 쉬러 2분에 한 번씩 나오는 것처럼요. 근데 제주의 돌고래들도 이제 여기는 해상 풍력발전소가 생겨서 안 되고, 여기는 해군기지가 생겨서 못 지나가고, 여기는 선박이 많이 다니니까 모터 소리 때문에 시끄럽고…. 그래서 지금은 대정읍 신도리 앞바다에 모여 사는데, 제주 전역을 돌아다녔던 그 자유를 되찾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퀴어도 제주 전역을 돌면서 퍼레이드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잠깐잠깐 숨 쉬러 나와야 한다는 게 너무 안타깝죠."

임최도윤 위원장은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약자들끼리 연대해 흐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임최도윤 위원장은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약자들이 서로 연대해 흐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성소수자에게는 일상이 비일상과 같을 수 있다. 내가 나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일상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퀴어 문화 축제는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경험을 하는 곳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 주는,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시민임을 보여 주는 장이다. 임최도윤 위원장은 그래서 퀴어 문화 축제가 계속돼야 할 뿐 아니라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퀴어 문화 축제는 단지 성소수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다.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라는 감각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사회가 점점 경쟁적으로 변하잖아요. 저는 청년 세대로서 또 살기가 각박하단 말이에요.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아무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게 진짜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퀴어 문화 축제를 통해서 그런 인식이 더 공유됐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연대의 힘을 꾸준히, 열심히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많은 앨라이가 생기고 더 많은 차별에 저항하는 사람이 생기면 좋겠어요. 그게 시민 의식으로 굳어졌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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