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극우·보수 개신교인들의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역사를 톺아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째 방해 행위를 일삼는 개신교인들은 이제 '혐오 세력'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습니다. 혐오 세력이라는 말에 기분 나빠하기 전에, 이들이 과연 어떻게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해 왔는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10년간의 방해 역사를 정리하는 한편, 현재 퀴어 문화 축제를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서울·대구·인천·춘천·광주·제주·부산·경남 등 8개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한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사는 6월 26일(월)부터 30일(금)까지 매일 저녁 6시 2~3개씩 총 12개를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으로, 지난 10년간 자행돼 온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가 시민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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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더웠던 5월 중순. 참가자들은 제대로 땀을 뺐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유난히 더웠던 5월 중순. 참가자들은 제대로 땀을 뺐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삐이익!' 호각 소리와 함께 줄다리기가 시작됐다. "하나, 둘! 하나, 둘!", "영차! 영차!" 양쪽에서 밧줄을 잡은 사람들은 서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밧줄을 잡아끌다 못해 드러눕는 참가자들의 얼굴은 한껏 구겨졌다. 팽팽하던 균형은 시간이 지나며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익!' 흙먼지 사이로 길게 울리는 호각 소리에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 참가자들은 이른 더위에 구슬땀을 흘리며 서로를 보고 웃었다.

5월 14일 춘천 의암공원에서 열린 제3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는 '소양강 퀴어 운동회'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준비한 제기차기, 신발 양궁,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줄다리기, 경보 계주, 박 터뜨리기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성별과 나이,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참가자가 함께 놀 수 있는 축제였다. 인권 단체와 정당 등이 참여한 부스에도 구경거리가 넘쳤다. '달고나'를 준비한 정의당 춘천시위원회 부스는 축제 내내 사람들로 붐볐다.

모두가 즐거웠던 줄다리기 시간, 축제장에서 20m 정도 떨어진 좁은 통로에서는 긴장감이 돌았다. 통로 반대편 인라인스케이트장에 반동성애 개신교인 20여 명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피켓에는 선정적인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프린트돼 있었고, 온갖 자극적인 문구가 즐비했다. 이 모습을 보고 인라인스케이트장을 이용하던 한 시민이 "아이들도 많은데 이게 뭐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이날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퀴어 문화 축제가 '음란 축제'라며 아이들에게 유해하다고 강조했는데, 정작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이들이었다.

연두(오른쪽 두 번째)는 혐오 세력의 기자회견이 보이지 않게 가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연두(오른쪽 두 번째)는 혐오 세력의 기자회견이 보이지 않게 가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이 기자회견 장소를 정하는 과정에서 축제 참가자들과 몇 번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이들은 퀴어 문화 축제에 연대·참석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진보당·정의당 등을 들먹이며 "퀴어 행사는 이들의 야유회 같은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말들을 내뱉었다. 하지만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들과 연대자들이 통로를 막고 서서 이들의 기자회견은 축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 연두(활동명)는 혐오 세력의 기자회견을 등지고 서서 줄다리기에 한창인 축제장을 바라봤다.

"사실 그 사람들의 반대 의견은 저한테 그렇게 와닿지 않아요. 왜냐하면 너무 사실과 많이 다르고, 그분들이 예시라면서 가져오시는 퀴어 문화 축제 사진들만 봐도, 제가 축제를 돌아다니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들이거든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사진들을 들고 와서 저희한테 '음란 축제니 물러가라'고 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죠. 그런 거 하나하나에 신경 썼다가는 아무것도 못 해요."

발전 없는 혐오 세력

춘천 퀴어 문화 축제는 2021년 시작됐다. 춘천에 살던 시민단체 활동가,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직업과 배경을 가진 4명이 어울려 이야기하다가 우연찮게 모두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이들은 춘천이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도시, 인권이 존중되고 실현되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해 2월부터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했다. 제1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는 11월 20일 소양강 처녀상 앞에서 열렸다. 200여 명이 참석해 춘천에서 열린 첫 퀴어 문화 축제를 축하하고 시내를 행진했다.

춘천에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은 보수 개신교계는 이날 소양강 처녀상 건너편에서 '제1회 춘천 생명·가정·효 대행진'이라는 맞불 집회를 열었다. 100여 명이 모여 퀴어 문화 축제, 차별금지법, 성소수자에 대한 왜곡되고 과장된 주장을 쏟아 냈다. 퀴어 퍼레이드 때는 한 사람이 행렬 앞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의 발빠른 대처로 행진이 방해받지는 않았다.

제1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 당시 건너편에서 맞불 집회를 벌인 혐오 세력. 사진 제공 김민수
제1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 당시 건너편에서 맞불 집회를 벌인 혐오 세력. 사진 제공 김민수

연두는 제1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대안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페미니즘이나 퀴어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 연두는 퀴어 당사자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퀴어 문화 축제에 한번 참여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면서는 축제에 참가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2021년 대학을 춘천으로 오게 됐고, 마침 그해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서 자원봉사를 신청한 것이다.

살면서 기독교와 별다른 접점이 없었던 연두는 크리스천들이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는 모습을 그때 처음 봤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근거로 저렇게 모여서 간절하게(?)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개신교에 대한 거부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 집회에서 활동하는 분 중에 되게 유명한 분이 있대요. 축제를 시작하기 전에 자원봉사자들끼리 밥 먹고 좀 쉬고 있는데, 갑자기 그분이 와서 인사를 하는 거예요. 조직위원들도 다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길래 저는 유명한 인권 활동가이신가 보다 했어요. 근데 반대쪽에서 유명한 분이더라고요.(웃음)

 

그분이 축제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쪽으로 넘어와서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기도를 하셨어요. 당시 저희 축제 장소인 소양강 처녀상 쪽과 건너편에 경찰들이 펜스를 친 상태였어요. 원래는 넘어올 수가 없어야 하는데, 그 펜스를 넘어서 온 거죠. 경찰이 끌고 나가려니까 막 '못 가겠다' 하면서 펜스를 잡고 늘어지고 그랬어요."

연두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연두는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한 악명 높은 반동성애 유튜브 채널 운영자는 전국에서 열리는 퀴어 문화 축제에 매번 나타난다. 그는 반대 집회를 실시간 중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멀리서 카메라를 확대해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들을 도촬한다. 지역 구성원이 크게 변하지 않고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연결돼 있는 소도시에서 성소수자들의 아웃팅은 더욱 위험하다. 혐오 세력의 불법 촬영은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제일 먼저 든 감정은 '화가 난다'였어요. '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봐 주지 못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도 많이 들었어요. 안타깝기도 했죠. 더 다양한 세상이 있는데 그걸 애써 모른 척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드니까…."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 마이농(활동명)은 제2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했다가 조직위원으로 합류하게 됐다. 그는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사춘기가 되면서 깨달았다. 중학생 때 퀴어 문화 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고등학생 때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가 보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성소수자임을 알리는 '오픈 퀴어'로 사는 마이농은, 고등학생 때부터 퀴어 관련 활동을 했고 춘천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서는 성소수자 동아리를 만들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미션스쿨을 다녔던 마이농은 보수 개신교계가 성소수자 혐오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했을 때도 혐오 세력이 서울시청광장을 둘러싼 상태였고,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폭력이 난무했던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 때도 그 자리에 있었다. 제2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 때는 반동성애 개신교인 20명 정도가 기자회견을 하며 혐오 발언을 일삼았다.

"혐오 세력을 처음 봤을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많이 났어요. 근데 퀴어 퍼레이드를 몇 번 참여하다 보니까 이제 뭔가 없으면 서운해요.(웃음) 나름의 내적 친밀감이 생겨서. 저희보다 저희 축제에 더 열심히 와 주시잖아요. 아예 생각이 없으면 안 올 텐데, 대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면 매번 와 주고 행진도 같이 해 주고 이러나, 이렇게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웃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저 사람들이 하는 말 하나하나에 관심 갖고 신경 쓰고 스트레스를 받다 보면 제가 너무 힘들어지는 거예요. 어차피 그 사람들의 레퍼토리는 똑같거든요. '음란 축제 물러가라', '동성애는 정신병이고 에이즈를 옮긴다'. 아직도 20~30년 전에 멈춰 있는 거죠. 동성애는 정신병 목록에서 사라진 지도 한참 됐고, 에이즈는 항문 성교를 통해서만 감염되는 것도 아니고, 성소수자는 동성애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제가 섹슈얼리티와 로맨틱 지향을 말하면 알아듣지도 못할 거면서. 저분들은 우리랑 몇십 년을 함께했으면서 아직도 발전을 못 했나, 차라리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요."

마이농은 춘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마이농은 춘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연두와 마이농은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하고 또 축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매번 반동성애 개신교인들과 맞닥뜨렸다. '안타깝다'고 생각하며 넘기려 해도 현장에서는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굳이 남의 잔치까지 와서 재를 뿌리는 개신교인들의 행태에 교회 자체가 싫어질 만도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의식적으로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으려 한다.

"반대 세력에 대해 알아 가면서, 솔직히 말하면 개신교 자체에 거부감이 많이 들었죠. 근데 오히려 퀴어 퍼레이드 활동을 같이 하는 분들 중에서도 크리스천이 꽤 계시거든요. 그리고 이번 축제 때 대한성공회 춘천나눔의집에서 연대 단체로 참여하면서 도움도 많이 주시고 축복식도 해 주셨어요. 그런 걸 보면서 '세상에는 역시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넘어왔어요. 어떤 단체에 속해 있더라도 그 안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있는 거니까. 저 스스로도 편협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계속 노력 중이긴 합니다." (연두)

"제가 미션스쿨을 다녔을 때는 '기독교 정말 다 뜯어고쳐야 해' 이런 마음이 있었는데…. 제 주위 친구들 중에도 기독교인이 많고, 성소수자 당사자이면서 기독교인인 사람들도 있고 그런 걸 많이 보다 보니까, 기독교 자체를 싫다고 하는 거는 또 다른 혐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저분들은 뭔가 아직 덜 깨어 계시구나,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마이농)

무엇이 선정적인가

"이거 다 불법이잖아. 여러분, 이거 다 불법입니다!"

반대 기자회견 사회를 본 사람은 제3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가 '불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춘천시청이 퀴어 문화 축제 장소인 의암공원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해 놨기 때문에 모임을 할 수 있는 요건은 갖췄지만, 시청의 비협조로 끝내 장소 사용 허가를 받지는 못했다. 이처럼 지자체의 장소 사용 불허는 혐오 세력이 퀴어 문화 축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반대·방해하는 데 빌미를 제공한다.

춘천은 제2회와 제3회 퀴어 문화 축제를 의암공원에서 열었다. 구체적으로는 의암공원 내에서도 나무 무대가 있는 곳인데, 공원 자체는 춘천시청 녹지공원과가, 나무 무대는 여성가족과가 담당이다. 작년 2회 때는 녹지공원과의 허가는 받았지만 여성가족과의 허가는 받지 못했다. 이번 3회 때는 녹지공원과와 여성가족과가 모두 사용을 불허했다. '물품 판매 행위', '다수의 민원', '공공 목적상 사용 부적당' 등이 이유였다.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4월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퀴어 문화 축제 장소 사용 불허는 춘천시청의 성소수자 차별 행정이라고 규탄했다. 연두는 시청 관계자와의 면담을 떠올리며 말했다.

"관공서와 면담을 하면 진짜 많이 듣는 얘기가 이거예요. '퀴어 문화 축제는 선정적이니 개최하지 못하게 하라'는 민원이 계속 들어온다는 거죠. 저는 선정적이라는 기준이 애매모호한 것이라고 얘기했어요. (혐오 세력이) 애초에 퀴어 문화 축제를 폐지시키려고 드는 갖가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마이농과 연두를 5월 12일 춘천에서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마이농과 연두를 5월 12일 춘천에서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퀴어 문화 축제는 선정적'이라는 말은 왜 나오는 것일까. 어디가 '음란'하다는 걸까. 마이농은 많이 고민했다. 그러면서 2019년 8월 열렸던 제2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 때를 떠올렸다. 그때 민소매 상의를 입고 행진을 했던 경험은 그에게 특별하게 남아 있다. '내 몸이니 내 맘대로 할 거야'라고 말하던 그였지만, 한국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여기는 '마른 몸'이 아닌 그는 늘 마음 한편에 스트레스와 고민을 갖고 살았다. 퀴어 문화 축제에서는 민소매만 입어도 아무도 그의 몸과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때 엄청 편안함을 느꼈거든요. 퀴어 퍼레이드에서는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해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거라는 편안함이 있어요. 그래서 다들 날씨에 맞춰서 편안하게 의상을 입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노출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걸 보고 음란하다고 하는 건… 먼저 일상에서의 편견 어린 시선을 좀 없애야 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1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는 11월에 열렸는데, 그때는 추우니까 자연스럽게 노출이 줄었잖아요."

물론 공무원들이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말에 모두 동조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반동성애 주장에 경도되지 않았더라도, 딱히 동성애를 반대하지 않더라도, 성소수자들이 굳이 공공장소에 나와서 축제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안 보이는 데서 자기들끼리'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이는 '동성애 반대하지 않지. 그런데 내 주변에는 없었으면 좋겠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연두는 이런 인식이야말로 소수자가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권력이라는 걸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내 눈앞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건 이미 우리가 소수임을 표명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부터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우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은 날 중에서 하루만 표현한 것인데도, 단지 '눈에 보여서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니면 '거슬린다'는 이유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안타깝고 화가 나고 그렇습니다."

마이농에게 퀴어 문화 축제는 '안전함'이다. 안전한 공간에서 맘껏 노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마이농에게 퀴어 문화 축제는 '안전함'이다. 안전한 공간에서 맘껏 노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혐오 세력의 방해, 이와 연결돼 있는 지자체의 비협조, 그리고 '반대하지는 않지만 내 주변에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시민들의 의식. 이 모든 것을 뚫고 춘천 퀴어 문화 축제는 3년을 달려왔다. 그리고 계속될 것이다. 마이농은 유쾌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희가 '성소수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보니까, 진짜 소수인 줄 알아요.(웃음) 저처럼 오픈하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은 많을 거란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진짜 많이 있다', '주위에 티가 나지 않아도 많이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퀴어 문화 축제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 원래 퀴어 동아리가 없었는데 제가 만들었거든요. 물론 중앙 동아리도 아니고 그냥 소모임 정도이지만, 그래도 학교 내에 이런 성소수자 인권을 다루는 동아리나 모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는 안정감을 느낄 거예요. 마찬가지로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 벽장 안에 있는 퀴어들을 위해서라도 축제는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그들이 언젠가는 벽장 밖으로 나와서 자기를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축제는 계속돼야 한다

혐오 세력과의 싸움터처럼 보이지만, 퀴어 문화 축제는 말 그대로 축제다.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기자회견이 있건 말건, 참가자들은 줄다리기를 했다. O·X 퀴즈를 하고, 드래그 퀸 공연도 보고, 부스를 구경하고, 더위에 지치면 잔디밭에 앉아 쉬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시내를 행진하고 구호를 외쳤다. "춘천을 퀴어하게! 소양강 퀴어!" 마이농은 여러 지역 퀴어 문화 축제에 가 봤고, 어떤 곳은 정말 투쟁의 장이기도 했지만, 퀴어 문화 축제는 그저 "기깔나게" 놀러 가는 곳이라고 말한다.

"퍼레이드, 축제잖아요. 그냥 오늘은 마음 편하게 놀자, 이런 마음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축제장에는 소수자성을 가진 당사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누구와 대화하더라도 안전하다는 게 가장 좋아요. 평소에는 주위에 커밍아웃 한 사람을 많이 볼 수 없다 보니까 어떤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뭔가 은은한 불편함을 항상 가지고 있거든요. 근데 여기서는 누구와 어떻게 만나서 이야기를 하든,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어서, 그냥 오늘 하루는 기깔나게 놀아 보자, 이런 마음으로 갑니다.(웃음)"

역시 운동회의 끝은 '박 터뜨리기'. 뉴스앤조이 구권효
역시 운동회의 끝은 '박 터뜨리기'. 뉴스앤조이 구권효

지방 소도시 축제를 만든다는 자부심도 있다. 강원도가 고향인 연두는 어렸을 적부터 강원도가 영동과 영서로 명확하게 나뉘어 하나가 되지 않는 곳이라고 느꼈다. 원체 보수적인 동네이기도 하다. 춘천 퀴어 문화 축제는 강원도 지역 인권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이 되고 있다. 도내 여러 단체가 '소양강퀴어연대회의'라는 이름으로 함께한다.

"퀴어 문화 축제는 강원도에서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 주는 것 같아요. 성소수자 인권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장애인·여성·청소년, 나아가 환경문제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축제예요. 지금 춘천 퀴어 문화 축제를 같이 준비하는 소양강퀴어연대회의 참여 단체들도 다 그런 마음이거든요. 퀴어 문화 축제는 인권 단체들이 좀 더 잘 연대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지역 내 성소수자들과 다른 소수자들의 인권 축제가 되어 주는, 그리고 내가 다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발판이 되어 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연두의 말처럼 퀴어 문화 축제는 성격상 성소수자뿐 아니라 모두를 위한 인권 운동의 장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도 차별·배제하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소양강 퀴어 운동회'도 그랬다. 각종 프로그램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성별과 나이, 국적과 가족 구성 등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마을 축제가 얼마나 될까? 그러나 지자체의 비협조와 혐오 세력의 방해는 춘천 퀴어 문화 축제에 큰 위협이다. 마이농은 안전한 퀴어 문화 축제가 되기 위해서 이 두 가지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래도 공공기관의 협조가 제일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번처럼 장소 사용을 불허하지 않고 당당하게 쓸 수 있게 해 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축제 당일, 아까 제가 기독교 혐오 세력이 없으면 좀 허전할 정도라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 없었으면 좋겠거든요. 혐오 세력이 없어져야 안전한 축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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