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극우·보수 개신교인들의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역사를 톺아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째 방해 행위를 일삼는 개신교인들은 이제 '혐오 세력'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습니다. 혐오 세력이라는 말에 기분 나빠하기 전에, 이들이 과연 어떻게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해 왔는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10년간의 방해 역사를 정리하는 한편, 현재 퀴어 문화 축제를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서울·대구·인천·춘천·광주·제주·부산·경남 등 8개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한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사는 6월 26일(월)부터 30일(금)까지 매일 저녁 6시 2~3개씩 총 12개를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으로, 지난 10년간 자행돼 온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가 시민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기자 주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잔혹사' 기획 기사 모아 보기(클릭)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민김종훈(자캐오) 사제는 2014년 6월 7일 열리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를 물리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개신교인 수천 명이 집결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대한성공회 사제가 되었지만, 과거 보수 교단 신학교를 다닌 그였기에 그쪽 네트워크에서 떠도는 소문을 접한 것이다. 마침 민김종훈 사제는 이번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처음으로 연대할 예정이었기에, 소식을 듣는 순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지?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그는 임보라 목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후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와 대응책을 논의했다. '퀴어 대 개신교'라는 구도는 좋지 않았다. 애초에 퀴어 문화 축제 측은 개신교와 대립할 생각이 없었고, 개신교 전체가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여 주기 위해 임보라 목사와 민김종훈 사제는 축제에서 그리스도교 예전禮典으로 '축복식'을 열기로 했다. 성소수자들이 그리스도교를 '혐오'가 아닌 '축복'의 얼굴로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급하게 기도문을 작성했다.

퀴어 문화 축제에서 처음 진행된 축복식. 임보라 목사와 민김종훈 사제, 그리고 또 한 명의 목사가 나섰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시작된 지 2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때까지 개신교·가톨릭 모두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정죄'의 태도를 보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성소수자들의 축제 한복판에 개신교 목사와 성공회 사제가 가운과 스톨을 갖춰 입고 선 것이다. "주님께서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축복하시는 성소수자,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과 춤추며 웃고 떠드시는 우리들의 하느님…." 입에서는 축복의 말이 흘러나오고, 손에서는 성수와 꽃잎이 뿌려졌다.

2014년 6월 7일 열린 제15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서는 혐오 세력의 조직적 방해도 시작됐지만, 그리스도교 목회자들의 축복식도 시작됐다. 사진 제공 박김형준
2014년 6월 7일 열린 제15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서는 혐오 세력의 조직적 방해도 시작됐지만, 그리스도교 목회자들의 축복식도 시작됐다. 사진 제공 박김형준

"그 눈빛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어떤 사람들은 약간 공격적인 표정을 짓기도 하고…. 사실 주최 측에서 사전에 광고를 많이 해 주셨거든요. '이분들은 우리 편'이라고.(웃음) 그전에도 많은 현장에서 축복식을 해 봤지만… 퀴어 당사자분들은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종교를 축복의 이름과 얼굴로 만나는 시간이 된 거예요. 끝나고 나서 정말 많은 분이 오셔서 '고맙다',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교회 안 다니는데 축복기도 받아도 되냐'고 하시는 분도 계셨고요. 그런 반응을 보면서 임보라 목사님과 정말 많이 울었어요."

기도와 찬송이 혐오의 칼로

축제 당일, 우려했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개신교인 수천 명이 집결해 온갖 혐오 발언을 쏟아 냈다. 개신교인들은 퀴어 퍼레이드를 막으려 행진 경로에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웠다. 2020년부터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홀릭(활동명)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그는 2008년부터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해 왔다. 이전까지 개신교인들은 퀴어 문화 축제에 아무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2014년이 되자 갑자기 수천 명이 집단적으로 '동성애 반대'를 외치며 축제를 방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1시간이면 끝날 퀴어 퍼레이드가 5시간 넘게 걸렸던 것을 그는 기억하고 있다.

홀릭 위원장은 스스로 "너무 예수쟁이"라고 말할 정도로 크리스천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사람이다. 한때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 다녔고 그 교회 담임목사를 마음을 다해 존경했다. 2014년 당시 교회에 다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던 그에게는 개신교인들의 방해 행위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왔다.

"크리스천들은 보통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다면 누구랑 같이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잖아요. 근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서 굉장히 험한 말들을 하고 피켓까지 만들어서 혐오 선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저희를 마치 보수 기독교의 적처럼, 없어져야 할 사람들처럼 대하니까. 한편으로는 저들도 뭔가 믿음에 의해서 행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더 속상하기도 하고…."

홀릭 위원장을 5월 3일 서울 신촌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홀릭 위원장을 5월 3일 서울 신촌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한때 보수 개신교계 몸담았던 민김종훈 사제에게도 이들의 극렬한 방해는 더 아프게 다가왔다. 축복식 후 바로 행진이 시작돼 그는 얼떨결에 퍼레이드 선두에 서게 됐다. 행진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드러누우며 혐오 발언을 내뱉는 수백 명을 바로 앞에서 마주했다. 성직자인 그에게는 욕설과 저주보다 기도와 찬송 소리가 더 가슴을 후벼 파는 듯했다.

"삶을 위로받고 저와 하나님을 이어 주던 그런 찬송가들, 복음성가들이 반대편에서 혐오의 노래로 불리고 있는 거죠. 끔찍하더라고요, 진짜. 그들이 '십자가', '예수의 보혈로' 이러면서 찬송을 하는데, 그게 가슴에 칼처럼 꽂히더라고요. 좀 과장된 표현일 수 있겠지만 마치 염산 테러를 맞는 것처럼, 그 말을 뒤집어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내게 그리스도의 보혈은 그런 게 아닌데….

 

동시에 '아, 이런 건가. 성소수자들은 이보다 더한 아픔을 받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보혈이 이렇게 다가오겠구나 싶었어요. 어떤 분이 저에게 '신부님,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면서요. 근데 왜 저렇게 저를 저주하고 욕하는 걸까요?'라고 했던 말도 비수처럼 박혔어요. 그때도 임보라 목사님과 많이 울었죠. 참가자분들이 오히려 우는 저희를 많이 위로해 주셨어요."

민김종훈 사제를 6월 8일 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민김종훈 사제를 6월 8일 대한성공회 용산나눔의집·길찾는교회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그날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실체를 가장 가까이서 본 사람 중 한 명이 권 아무개 씨다. 개신교인들은 '동성애 반대 집회'와 동시에 '세월호 추모 공연'을 한다는 비상식적인 일을 벌였다. 공연 도중 퀴어 퍼레이드를 막으려 모두가 달려 나간 것을 보면, 세월호 추모 공연은 퀴어 문화 축제 방해를 위한 허울에 불과했다. 행사 전날 급하게 사회자로 섭외된 권 씨는 이런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는 결국 행사 도중 주최 측에 "더 이상 못 하겠다. 페이는 안 주셔도 된다"는 뜻을 밝히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이틀 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모태신앙으로 평범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던 그가 어떻게 최초의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 사회를 보게 됐는지, 거기서 벌어진 비상식적인 일들은 무엇이었는지 상세히 적었다. 무엇보다 어찌 됐든 이런 일에 연루된 것에 대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사죄하는 내용이었다. 글이 일파만파 퍼지자 집회를 주도했던 목사들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권 씨를 찾아와 해명하며 글을 내려 달라고 했다. 권 씨는 한동안 이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제가 열이 받았던 핵심은 뭐냐면, 그때가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는 거예요. 대부분 사람들은 그날이 아마 기억나실 거예요. 세월호 참사가 터졌던 그 순간, 뉴스에서는 계속 오보가 나오고…. 저도 그날의 기억이 되게 생생한 사람이었단 말이에요. 근데 결국에는 세월호 추모를 가장해서 반동성애 집회를 한 거잖아요.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주최한 목사들이 '거기에 세월호 유가족분들도 계셨다'고 했던 거예요. '그분들도 허락한 건데 무슨 상관이냐'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들은 동성애가 문제이고 탈동성애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수단을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탈동성애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완전히 믿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세월호는 그 당시 최고 이슈였잖아요. 그 이슈를 그냥 써먹은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근데 써먹을 게 있고 써먹지 말아야 할 게 있지 않나…. 그게 가장 큰 분노의 이유였어요.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봐도 선을 너무 세게 넘었죠."

정작 당시 세월호 가족들이 원하던 특별법 제정 1000만 서명운동은 퀴어 문화 축제에서 했다. 사진 출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정작 당시 세월호 가족들이 원하던 특별법 제정 1000만 서명운동은 퀴어 문화 축제에서 했다. 사진 출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축제 방해하면 개신교인들은 좋을까?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이후 매년 반동성애로 무장한 개신교인 수천 명의 혐오와 맞닥뜨린 채 진행됐다. 2015년부터 2022년까지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매년 6월 혹은 7월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렸다. 보수 교계는 마치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는 게 교회의 사명이라도 되는 양 퀴어 퍼레이드 날과 장소에 맞춰 연중 최대 규모 집회를 열었다. 경찰이 시청광장과 행진 경로를 에워싸고 있었기에 물리적인 방해는 줄어들었지만, 축제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늘어선 피켓 든 개신교인들과 반대 집회 스피커들의 혐오 발언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이들은 축제를 전쟁터처럼 만들었다.

현재 정의당 마포구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현주 위원장도 말로만 듣던 혐오 세력의 등장이 생경했다. 오래전부터 인권 운동에 몸담았던 그는 2013년 홍대 앞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열었을 때 장소 섭외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떤 집단이 퀴어 문화 축제를 적극적으로 방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퀴어 문화 축제 주변 광경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서울시청광장에서 축제를 할 때 일반 참가자로 몇 번 갔어요. 저는 그냥 놀러 간 거예요. 축제잖아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얘기도 하고, 부스 구경도 하면서 요즘에는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 있는지 보기도 하고, 굿즈 같은 것도 사고, 공연도 보고, 춤도 추고, 사진도 찍고. 너무 즐겁죠.

 

근데 혐오 세력은, 우선 너무 시끄러웠어요. 뭔가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 위축되기도 했죠. 실제로 몇몇 기독교인과 대거리를 하기도 했고요. 왜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그들은 심각한 혐오 발언도 많이 했고 침을 뱉거나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좀 촌스럽다? 무섭다기보다는 촌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시대에 아직도 저러고 있다니…. 맹목적으로 동원된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했죠."

오현주 위원장을 5월 4일 서울 혜화동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오현주 위원장을 5월 4일 서울 혜화동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생각해 보면 보수 개신교계가 퀴어 문화 축제로 눈을 돌린 건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현주 위원장은 2011~2012년 서울시에 학생 인권조례가 발의됐을 때 조례 제정을 위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때 보수 개신교계는 학생 인권조례 내 차별 금지 사유에 임신·출산, 성적 지향이 있다는 사실 등을 문제 삼아 조례를 공격했다. 임신·출산을 조장하고 동성애를 확산한다는 억지 주장이었다. 그런데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이런 억지 논리로 공청회를 무산시켰다. 오현주 위원장이 처음으로 혐오 세력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저는 그게 시발점이었다고 생각해요. 혐오 세력이 항의 전화 정도가 아니라 눈앞에 등장해서, 어떤 밀폐된 공간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면서 단상을 점거하고 마이크를 뺏고 폭력을 행사하고 종이를 찢고…. 이런 것들이 고스란히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 사람들이 일종의 성취감을 느끼면서 점점 사람이 늘어났다고 봐요. 그게 모체가 되어서 그렇게 성장한 이들이 퀴어 문화 축제에도 등장하고 전국으로 퍼져 나간 거죠."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서는 지난 몇 년간 신촌에서처럼 수백 명이 행진 차량을 가로막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퀴어 문화 축제는 퀴어 문화 축제대로, 반대 집회는 반대 집회대로 나뉘어 진행됐다. 그렇다고 혐오 세력의 존재가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홀릭 위원장은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참가자들의 안전이 우려된다.

"참가자들이 걱정되더라고요. 광장에 나와서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구나', '내 주변에 이렇게 많은 성소수자가 있구나', '나를 지지하는 많은 앨라이가 있구나' 이런 것을 느끼고, 내가 나로 산다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 퀴어 문화 축제인데. 수많은 혐오 세력을 접하면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이렇게 많이 있구나'를 먼저 보게 될까 봐 그게 걱정이죠.

 

계속 이런 식으로 가는 건 개신교계에도 좋지 않을 거라고 봐요. 일반 사람들은, 이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느끼거든요. 아무리 성소수자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있더라도, 보수 개신교인들은 너무 과격하게 행동하잖아요. '종교가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라고 계속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어요. 개신교인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 상황이 좋지 않을 텐데, 왜 동성애 혐오 프레임을 계속 가져갈까….

 

저는 교계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성소수자 혐오를 이용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정말 믿음으로, '동성애 하면 지옥 간다'는 그 교리 때문에 이렇게 목숨 걸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반대 집회에 모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기제로 동성애를 사용하는 거예요. 그전에는 아마 다른 기제를 사용했을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것을 이용하겠죠."

권 씨는 2014년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에서 사회를 봤던 경험 때문에 인생이 많이 바뀌었다. 이후로 페이스북에서 친구 신청이 물밀듯 들어왔고, 자신의 삶과는 다른 궤적을 가진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다른 삶들이 마구 침투해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마침 진지하게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고민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는 다른 삶들을 직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익숙하지 않은 곳에 밀어 넣었다. "부서져라" 밀어 넣었고, 벽이 부서지자 그는 더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우물 안'을 벗어나면서 비로소 보게 된 보수 개신교인들의 행태는 실망스러웠다.

"매해 그런 일이 계속되니까 정말 창피하더라고요. 교회 다니기도 싫고, 어디 가서 교회 다닌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정신적으로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거기에만 몰입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합리적인 판단을 잘 못 하는 것 같아요. 이게 꼭 신앙이 아니어도 여러 가지 상식의 선을 지키고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그렇게까지 막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거거든요."

권 씨를 5월 30일 서울 중구 희년평화빌딩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권 씨를 5월 30일 서울 중구 희년평화빌딩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퀴어 문화 축제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반동성애 개신교인들 때문에 교회나 크리스천의 이미지도 많이 바뀌었다. 오현주 위원장은 종교 활동을 하지는 않지만 종교에 대한 편견이 없고, 오히려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도 생각해 왔다. 개신교가 유독 타 종교에 관용적이지 못하고 전도에 대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식의 방해는 위험하다고 느낀다.

"제가 살면서 기독교인들을 보면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좀 심하면 경기를 일으키거나, 내가 저 사람한테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거든요.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주말에 꼬박꼬박 교회 나가고 되게 성실한 이미지가 있었어요. 근데 혐오 세력이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기독교인 누구라도 혐오 발언이나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겠다고 느끼니까…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이라고 했을 때 되게 경계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혐오의 분위기가 전체 기독교에 퍼져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초기에는 아주 소수였는데 이제는 다수가 된 느낌. 그러니까 기독교 전체가 그런 방식으로 가고 있다는 건 되게 심각한 문제라고 보죠. 그리고 혐오가 뭔가 교회의 헌금을 유지하고 세를 불리는 데 이용되고 있다는 생각도 되게 많이 들어요."

드러내는 것이 축제의 이유

보수 개신교인들이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방해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내세우는 것 중 하나는 '노출'이다. 소위 반동성애 강사들과 보수 교계 언론의 프로파간다로 퀴어 문화 축제는 '음란 축제', '팬티 축제'라고 비방받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왜곡·과장된 주장이 공적인 영역까지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는 서울시청광장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여는 것을 허용했으나, '과도한 노출'이 있다면 앞으로 광장 사용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16일 열린 제23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홀릭 위원장이 참가자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사진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지난해 7월 16일 열린 제23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홀릭 위원장이 참가자들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사진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홀릭 위원장은 퀴어 문화 축제가 '노출', '음란'이라는 말과 연관될 때면, 지금은 세상에 없는 한 친구가 떠오른다. 그는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였다. 가슴 수술을 한 그해 퀴어 문화 축제에서 윗옷을 벗고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처음으로 자기 자신의 몸이 불편하지 않게 됐을 때, 그 몸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로 선택한 것이다.

"벗는 사람이 있을 수 있죠. 근데 벗는 의미가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그 친구의 경우는 선정적인 게 아니라, 내가 가장 나일 수 있는 몸을 사람들한테 보여 주는 용기였던 거예요. 그 사람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의 순간인 거죠. 근데 그분은 지금 안 계세요. 성소수자가 한국 사회에서 진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사실 별로 없어요.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별로 없죠. 나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성소수자가 당하는 가장 큰 차별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혐오하는 목소리가 옆에 있어도, 많은 성소수자가 퀴어 문화 축제에 오는 건 그래도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제가 성소수자 활동가로도 일하고 있으니까, 강의를 하면 간혹 노출에 대한 얘기가 나와요. 그럼 제가 질문을 해요. '퀴어 문화 축제에 한 번이라도 와 보셨나요?' 그러면 다 아니래요. 그렇다면 보도만 본 거거든요. 실제로 참여하신 분들은 생각이 많이 바뀌어요. 퀴어 문화 축제에는 아이를 데리고 가족 단위로 오시는 분도 많고, 성소수자 앨라이로 참여하시는 분도 엄청 늘었어요.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한 번이라도 참여하신 분이라면, 선정적인 모습이 어디 있는지 찾기 어려울 정도로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이 '선정적'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계속 축제 자체를 폄하하려고 하는데… 정말 유치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렇게 치면 머드 축제, 물총 축제 이런 게 더 선정적인 거예요. 계속 '선정적'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퀴어 문화 축제가 청소년한테 유해하다'고 하지만, 사실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많은 청소년이 축제에 와서 살아갈 힘을 가져가는 부분은 보지 않거든요."

한참 노출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왔을 때, 오현주 위원장도 친구들과 퀴어 문화 축제에서의 노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꼭 저렇게까지 입을 필요는 없지 않나'라며 참가자들이 좀 자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퀴어 문화 축제에서의 노출이 선정적이라는 것은 부당한 프레임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모두가 공감했던 것은 결국 보도가 과장됐다는 점이었다.

"실제 현장의 맥락이라는 게 있잖아요. 안전한 공간이기에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이고 거기서 그 문화를 즐기고 있는 건데, 그런 장면만 딱 따와서 보도하면 굉장히 선정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거죠. 한편으로는 참가자들이 일부러 선정적인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고 봐요. 근데 그게 현장에서는 크게 문제가 된다고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서 '한 번이라도 와 본 사람은 절대 그런 기사에 동의하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기사를 보고 문제라고 하는 사람한테는 '한 번이라도 와 봐. 절대 그렇게 느끼지 않을 거야' 이런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오현주 위원장이 2017년 제18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참석해 찍은 사진. 현장에는 혐오 세력에 대항하는 의미로 예수 코스프레를 한 사람도 있었다. 사진 제공 오현주
오현주 위원장이 2017년 제18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참석해 찍은 사진. 현장에는 혐오 세력에 대항하는 의미로 예수 코스프레를 한 사람도 있었다. 사진 제공 오현주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의식은 예전보다는 높아졌지만, 한편으로는 보수 개신교계의 허위 주장이 퍼진 탓인지 많은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SOGI)법정책연구회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한국의 '무지개 지수(Rainbow Index)'는 10.56%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한국 다음 순위인 러시아(8.45%)는 동성애선전선동금지법이라는 법률로 성소수자 활동을 차단하고 있다. 한국은 2019년에는 러시아보다 무지개 지수가 낮았다. '동성애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서울시청광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행진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홀릭 위원장은 말한다.

"그게 축제의 존재 이유예요. 성소수자가 드러내지 않으면 사람들은 다 이성애자라고 생각하니까요. 1969년 스톤월 항쟁(1969년 뉴욕 주점 '스톤월 인'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성소수자로 의심되는 손님들을 난폭하게 검문·체포한 사건에 반발해 일어난 항쟁 - 기자 주) 이후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간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도심에서 열리는 이유는 내가 나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예요. 성소수자가 너의 옆에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어디 들어가서 조용히 하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왜 보이는 데서 하느냐'는 말은 '왜 커밍아웃하느냐'는 말과 똑같거든요."

결국 사랑이 이길 거니까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올해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청광장 사용을 승인하는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대신 같은 날 장소 사용을 신청한 CTS문화재단의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에 광장 사용을 허가했다. 누가 봐도 보수 개신교계가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하려 하는 행위인데, 서울시는 이들의 행위에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이를 보는 권 씨는 기시감을 느낀다.

"이게 10년 전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도 뭐 청소년과 청년을 위한 공연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목적은 결국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왜 매번 이런 식인 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저는 되게 불만인 거예요. 교회라면 더 신중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하지 않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가 장사하는 사람보다도 심한 것 같아요. 요즘엔 장사도 그렇게 하면 망하잖아요."

지난해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제23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뉴스앤조이 나수진
지난해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제23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뉴스앤조이 나수진

서울시청광장은 서울 시내 중심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공간이다. 일부 반동성애 개신교인도 이를 의식한 듯 '퀴어 문화 축제가 서울시청광장에서만 열리지 않으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서울 시내에서 10만 명 이상이 안전하게 축제를 진행할 수 있는 장소는 흔치 않다. 누군가는 여의도 같은 곳에서 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여의도에 있는 그 대형 교회가 가만있을까. 홀릭 위원장은 24번째 축제를 하는데 아직까지도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는 일부터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저는 좀 이해를 못 하겠어요. 저희가 20년 넘게 이 행사를 했고 서울시청광장에서 적어도 5년 넘게 했는데, 그리고 이 축제가 무슨 축제인지도 다 알 텐데, 그걸 매번 심의에 올려서 얘기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요.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사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오는 시민 축제로 이미 자리 잡았거든요. 외국에서도 저희 축제 오면 정말 좋아하시고요. 근데 지자체마저 퀴어 문화 축제를 시민 축제로 보지 않는 것 같아요."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집요한 방해와 지자체의 비협조 속에서도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계속된다. 올해는 7월 1일 서울시청광장 대신 을지로2가 일대에서 열린다. 민김종훈 사제는 이번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 보려 한다. 그리스도교 목회자들이 축제 현장 곳곳을 누비며 원하는 이들에게 작은 축복식을 열어 주는 것이다. 이름하여 '무지개축복단'. 축제장 밖에서 울려 퍼지는 저주와 혐오가 하나님의 메시지는 아니라는 것을, 하나님은 성소수자도 인정하시고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저는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하는 모든 인권 활동은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하는 것뿐이에요. 종교인이자 사회 활동가로 함께하는 거죠. 그 선후가 바뀐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반대편에 계신 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여기에도 당신들과 같이 성령에 대해 이해하고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그런데 퀴어라는 이유로, 퀴어와 연대한다는 이유만으로 당신들이 그렇게 손가락질하고 짓밟으려고 하는 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춰 봤을 때 맞느냐고.

 

그분들이 그 혐오와 차별, 무지의 길에서 벗어나, 언젠가 우리가 함께 퀴어 문화 축제에서 손잡고 축복하고 꽃잎을 뿌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요. 그때는 정말 우리가 부르는 찬송과 복음성가가 누군가에게 저주와 혐오의 칼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노래가 되기를 바라요. 너무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임보라 목사님과도 자주 이야기하고 그랬어요. 저는 그게 하나님의 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고 임보라 목사와 민김종훈 사제는 10년 넘게 퀴어 문화 축제에 연대해 왔다. 그들의 꿈은 이뤄질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고 임보라 목사와 민김종훈 사제는 10년 넘게 퀴어 문화 축제에 연대해 왔다. 그들의 꿈은 이뤄질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혐오 세력이 앨라이가 되는 역사가 정말 일어날 수 있을까. 1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희망은 너무나 작아 보인다. 올해도 혐오 세력은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했고, 현장에서 또 방해할 것이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홀릭 위원장도 때론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몇 년 전 축제 때 겪었던 일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계속 성경 말씀을 읊으면서 참가자들을 굉장히 힘들게 한다는 무전을 받고 현장에 달려갔어요. 가 보니까 아주머니가 계시는데, 우리 참가자들이 그 사람을 둘러싸고 계속 '사랑해'를 외치고 있더라고요. 정말 새로운 광경이었어요.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도 결국 웃으시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면서 '정말 뭐가 이길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지금 가장 힘들고 암흑기처럼 보이지만, 점점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이 혐오의 정점이라면 언젠가 달라지는 시점이 분명히 올 거니까. 여성 인권이나 흑인 인권, 장애인 인권, 난민 인권 등 여러 인권 운동들이 똑같은 결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언젠가는 그 굴곡을 넘어서 내려가는 시기가 분명히 오거든요. 그 역사의 힘을 믿기 때문에 계속 축제를 하는 거죠."

10년의 방해를 뚫고 온 서울 퀴어 문화 축제. 올해는 을지로2가 일대에서 열린다. 사진 출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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