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극우·보수 개신교인들의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역사를 톺아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째 방해 행위를 일삼는 개신교인들은 이제 '혐오 세력'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습니다. 혐오 세력이라는 말에 기분 나빠하기 전에, 이들이 과연 어떻게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해 왔는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10년간의 방해 역사를 정리하는 한편, 현재 퀴어 문화 축제를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서울·대구·인천·춘천·광주·제주·부산·경남 등 8개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한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사는 6월 26일(월)부터 30일(금)까지 매일 저녁 6시 2~3개씩 총 12개를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으로, 지난 10년간 자행돼 온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가 시민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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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기억을 애써 밀어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임신규 공동집행위원장은 5년 전 열린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의 기억을 힘겹게 떠올렸다. 그는 당시 축제 조직위원이었다. 2013년 홍대에서 열린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 처음 참석한 뒤 매년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오가면서 '인천에서도 이런 축제가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8년 초, 임신규 위원장을 포함해 소셜미디어에서 만난 10여 명이 조직위원회를 꾸렸다. 그해 9월 8일, 인천광역시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렸다.

이날 광장에서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보수 개신교인 수천 명이 축제를 막기 위해 광장에 드러눕고, 참가자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광장을 둘러싸 봉쇄했다. 개신교 혐오 세력은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들이 '사탄 마귀'인 양 때리고, 넘어뜨리고, 깃발을 빼앗았다. 개신교인인 임신규 위원장도 혐오 세력의 광기 어린 모습을 눈앞에서 마주했다.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저는 사실 그때 그런 일을 겪고 나서 한동안… 아마 참가자들이 다 겪었을 겁니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었고. 그래서 인천에 있는 게 싫어서, 어떻게든 인천을 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하기도 했습니다."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 당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광장을 봉쇄한 보수 개신교인들. 사진 제공 김민수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 당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광장을 봉쇄한 보수 개신교인들. 사진 제공 김민수
왜 이렇게까지 할까

2018년 9월 8일 동인천역 북광장은 아비규환이었다. 이날 퀴어 문화 축제는 오전 11시에 열릴 예정이었다. 개신교인들은 전날 밤부터 광장 입구를 대형 버스로 봉쇄하고 무대를 점거했다. 당일에도 오전 7시부터 광장에 드러눕거나 자리를 차지해, 축제 장비 차량과 준비팀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정오가 되자 상황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순식간에 수천 명으로 불어난 혐오 세력은 참가자들이 광장에 들어가거나 나오지 못하도록 고립시키기 시작했다. 곳곳에서는 통성기도와 함께 참가자들의 팔을 물거나 휠체어를 넘어뜨리는 등 온갖 폭력 행위가 난무했다. 당시 현장에는 경찰도 있었지만, 양측을 분리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아침에 축제를 준비하려고 광장에 갔는데, 반대하시는 분들이 여기저기서 참가자들이 행사장으로 못 들어가게 하려고 완전 다 둘러싸고 있었어요. 안으로 들어가려 하면 절대 못 들어가게 막았고, 그 안에 계신 분들은 아예 갇혀서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 와중에 경찰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고.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죠. 실제로 현장에 있으면서 저도 넘어지고 다쳤는데, 나중에 끝나고 보니 몸 여기저기에 다 멍이 들어 있더라고요.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팔을 물리기까지 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혐오 세력의 방해 때문에 결국 축제는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그들은 오후에 예정된 퍼레이드도 끈질기게 방해했다. 참가자들이 퍼레이드를 하려고 하자 행진 차량의 바퀴에 못을 박아 펑크를 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참가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거리에 드러누워 행진을 막는 사람들 때문에 가다 서다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한 걸음씩 계속 내디뎠다. 결국 400m를 행진하는 데 5시간이나 소요됐다. 이날 20분으로 계획했던 퍼레이드는 늦은 저녁 무렵에야 끝이 났다.

"원래대로라면 오전 11시에 부스 행사가 시작하고, 오후 3~4시쯤에는 행진하고, 오후 5~6시에는 모든 게 마무리돼야 했거든요. 근데 그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안 지켜졌어요. 그분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계속 (광장을) 봉쇄했다고 보면 돼요. 그때 행진도 원래 예정된 코스대로 하지 않고 북광장에서 굴다리를 지나서 동인천역 남쪽 역까지 가는 걸로 바꿨어요. 걸어가면 정말 5분밖에 안 되는 거리를 3시간인가 4시간인가 걸려서 왔어요. 행진하려고 다들 서 있는데 한 발짝도 못 나가는 그런 상황이었죠."

거리에 드러눕는 보수 개신교인들 때문에 400m 거리를 다섯 시간이나 걸려 행진했다. 사진 제공 김민수
거리에 드러눕는 보수 개신교인들 때문에 400m 거리를 다섯 시간이나 걸려 행진했다. 사진 제공 김민수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임 위원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과거 서울·대구 등에서도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하는 개신교인들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극심하게 언어적·물리적 위해를 가한 적은 없었다. 심지어 보수 개신교인들은 성소수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와 연대하기 위해 참여한 지지자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걷잡을 수 없이 분노가 치밀었다. 고등학생 시절 선교사를 꿈꿨고, 한때 신학대학교 진학을 희망했던 임 위원장이 개신교에 반감을 품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전까지는 '저분들이 좀 반대하시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어떻게든 교회에 연을 계속 두고 싶어서 진보적이라는 교회에 찾아가 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퀴어 문화 축제를 겪고 나서부터는 이제 '교회'가 적힌 간판이나 십자가만 봐도 외면하게 됐어요. 주변에서 누가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 그 사람은 저절로 이만큼 떨어져서 보게 되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서 더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더라고요. 저 같은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걸 넘어서 직접 폭력을 행사했으니까. 그건 범죄행위잖아요.

 

너무 화가 났고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후에도 그런 사람들을 계속 겪었거든요. 무슨 '인권'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행사가 열린다고 하기만 하면,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해서 반대한다고 외치고, 피켓 들고나오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든 그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고,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요. 이러다 보니까 개신교인들만 보면 그냥 정나미가 떨어져요.

 

만약 시간과 기회가 있고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대화는 한번 해 보고 싶어요. 하나님·예수님은 그렇게 믿으라고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그러고 계시냐, 정말 이렇게 하고 천국에 가실 수 있겠냐고요. 그분들이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알고 싶어요. 대화하다 보면 얘기가 통할 지점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라는 존재를 반대하는 사람과 같이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게 꼭 필요한 일인가 싶기도 해요.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것조차 사실은 괴로운 일이니까요."

임신규·조서울 위원장을 5월 10일 인천에서 만났다. 임신규 위원장은 한때 크리스천이었지만, 혐오 세력을 겪은 뒤 개신교에 반감을 품게 됐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임신규·조서울 위원장을 5월 10일 인천에서 만났다. 임신규 위원장은 한때 크리스천이었지만, 혐오 세력을 겪은 뒤 개신교에 반감을 품게 됐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혐오와 무지가 섞인 눈빛

지난해부터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서울 위원장은 당시 상황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대학원 생활을 하느라 직접 축제에 참가하지 못한 터였다. 조 위원장의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에는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가 급박하게 공유됐다. 참가자들이 집단 린치를 당하는 장면은 현장에 있지 않았던 그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 사실은 성소수자들이 평상시 혹은 살면서 겪는 혐오·차별이 물리적인 형태로 드러난 거죠. 인터넷 댓글 창에 달리는 혐오 댓글의 실사판 같은 느낌이었어요. 한국에 사는 성소수자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행해지는 혐오와 차별을 겪으면서 살아가고, 이를 겉으로 다 드러낼 수 없어서 정신적으로 질병을 앓는 분도 많아요.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축제에서 실제로 터져 나온 건….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죠."

이날 벌어진 개신교인들의 집단 린치는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조서울 위원장도 이때만 떠올리면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을 참가자들이 떠올라 눈물이 왈칵 터진다. 그는 지난해 열린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하면서, 당시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한 이들 여럿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조 위원장에게 "인천에 거주하지만 다시는 인천에서 열리는 축제에 가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수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 후유증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조서울 위원장은 1회 축제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를 떠올리며 울먹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조서울 위원장은 1회 축제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를 떠올리며 울먹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축제를 방해하고 경찰·참가자들을 폭행한 개신교인들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법원은 2019년과 2020년, 탁 아무개 목사 등 3명에게 각각 200만·300만·500만 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하지만 그 외에 폭력 행위를 저지른 수많은 사람과 축제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단체들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참가자가 너무 많아 특정할 수 없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2018년 10월 보수 개신교 단체 회원 7명을 고발했지만, 검찰은 모두 불기소처분했다.

조서울 위원장은 이듬해인 2019년 부평역 북부광장에서 열린 제2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했다. 혐오 세력에 대한 두려움보다 나고 자란 동네에서 열리는 축제에 참가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는 익숙한 도로변을 무지개색으로 물들이며 벅차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보수 개신교인 수천 명이 축제 장소 인근에서 스피커를 크게 틀고 집회를 열며 축제를 방해했지만, 전년처럼 극렬한 양상을 보이지는 않았다. 경찰도 혐오 세력을 적극적으로 차단·분리했다. 그럼에도 몇몇 개신교인은 혐오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퍼레이드 행렬을 끈질기게 쫓아왔다. 이때 마주한 이들의 눈빛을 조 위원장은 지금도 기억한다.

"저희가 도로를 행진하면 경찰이 막아 줘도 그분들이 옆에서 계속 따라와요. 그분들은 앞을 보는 게 아니라 저희를 보면서 '회개해라' 등등 여러 가지 구호를 외치는데, 특유의 눈빛이 있어요. 뭔가 되게 괴기스러운 걸 본다는, 혹은 불쌍하다는 눈빛. 같은 레벨에서 대화하는 게 아니고 되게 안 좋은 쪽으로 대상화된 느낌이 들어요. 잘 모르지만 혐오하는 무언가를 보는 눈빛. 처음 받아 보는 눈빛이죠.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것 같달까요. 그런 시선을 받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고 힘들죠."

2022년 열린 제5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도 보수 개신교인들은 축제를 방해했다. 아동·청소년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2022년 열린 제5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도 보수 개신교인들은 축제를 방해했다. 아동·청소년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조 위원장도 퀴어 문화 축제에서 혐오 세력을 맞닥뜨리며 크리스천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그는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전까지는 개신교 문화에 익숙했고 좋은 점도 많다고 느껴 왔다. 하지만 이제는 크리스천을 만나면 '방어막'부터 친다.

"개신교인들을 만나면 가드를 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가능한 한 멀어지려고 하고. 접점을 만들면 인생이 피곤해질 것 같으니까요. 제 나름대로 미터법 같은 것도 있어요. 누가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는 걸 알게 되면, 그 사람이 어떤 교회를 다녔는지, 어떤 식으로 믿으면서 다녔는지 얘기를 나누면서 스스로 감별을 해요. '좀 안전하네'라는 생각이 들면 어느 정도까지는 친해질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는 판단이 서면 최대한 멀어지는 거죠. 물론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어요."

해를 거듭할수록 혐오 세력의 양상도 변화한다. 최근에는 반대 집회에 아동·청소년을 데려오거나 유아차를 끌고 나오는 개신교인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도 성인들을 따라 혐오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퍼레이드 행렬을 따라온다. 조 위원장은 그 모습이 너무도 슬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축제를 계속할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라도 아이들과 접점이 생기면, 언젠가 성소수자를 향한 왜곡된 편견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다 잘 알고 있어. 그런데도 반대해' 이런 눈빛이면 오히려 더 힘들 텐데, 그게 아니에요. 애들이 특히 그래요. 애들은 어리둥절해요. 일단 어른들 따라서 반대는 하는데, 자기가 여기 왜 있는지 모르죠. 그러다 보니까 또 조금은 희망적이기도 한 것 같아요. '몰라서 그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혐오 세력을 만나는 일 그 자체로는 기분 나쁘지만, 그래도 잘 모르는 눈빛이기 때문에 '축제를 통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계속해서 알리면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예 모를 때보다 접점이 생기고 성소수자를 제대로 알게 되면 그렇게까지 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5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 슬로건은 '무지개 인천, 다시 광장에서'였다. 조서울 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 출처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5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 슬로건은 '무지개 인천, 다시 광장에서'였다. 조서울 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행진하고 있다. 사진 출처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여기는 오히려 천국 같아요

퀴어 문화 축제는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성소수자들의 명절이자 축제다. 하지만 매년 조직위는 '군사작전'을 짜듯 축제를 준비한다. 보통의 축제라면 미리 날짜·장소를 알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축제에 참석하게 하지만, 퀴어 문화 축제에서는 '최후의 순간'까지 공개를 미뤄야 한다. 날짜·장소가 알려지면 혐오 세력이 '맞불 집회' 신고, 행정청 민원 폭탄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개최를 막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축제를 축제답게 열지 못한다는 점이다.

올해에도 보수 교계의 선동과 반대 민원 때문에 춘천·서울·대구에서 장소 사용 불허와 행정대집행이 있었다. 조서울 위원장은 최근 들려오는 다른 지역 소식들이 남 일 같지가 않다. 인천도 거의 매해 황당한 이유로 지자체가 장소 사용 불허를 결정해 왔기 때문이다. 2018년 인천시 동구청은 안전요원 300명과 주차장 100면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퀴어 문화 축제의 광장 사용을 반려했다. 지난해 축제에서는 인천광역시대공원관리사업소가 심한 소음을 이유로 중앙공원 사용을 막았다.

"저희는 장소를 정할 때 교통이 얼마나 마비될 수 있는지, 대비책은 마련돼 있는지 등 고려하는 게 많아요.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고요. 상식적인 부분들을 최대한 고려해서 진행하는데, 오히려 행정청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판단을 하는 거죠. 공문에 담긴 장소 사용 불허 이유를 보면, 차별과 편견을 바탕으로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에요.

 

개신교인 1000명이 조직적으로 축제 반대 청원을 올려요. 그럼 공무원들한테는 공포인 거예요. '이거 봐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반대하지 않냐. 그러니까 우리 이거 못 한다' 이렇게 나오죠. 그런데 예를 들어 부평 지역만 해도 인구가 50만 가까이 돼요. 그중 1000명은 소수 아닌가요. 소수가 과대표 되어 있는데도 공무원들이 그걸 받아 주니까, 개신교인들도 계속 똑같은 패턴으로 방해하는 것 같아요."

2022년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 인천 중앙공원. 사진 출처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2022년 인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린 인천 중앙공원. 사진 출처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보수 교계가 주장하는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이유는 축제가 '선정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물총 축제'나 '워터밤' 등 노출을 기본으로 하는 다른 행사에는 같은 기준을 들이대지 않는다. 조·임 위원장은 이러한 주장이 결국 성소수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편견이자,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기 위한 궤변일 뿐이라고 했다.

"저는 퀴어 축제가 선정적이었으면 좋겠어요. 노출이 심하다고 하는데, 저는 최근 몇 년간 노출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어요. 참가자 몇천 명 중 한두 명이 약간 더 드러내는 정도? 그런데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수만 명이 참가하는 행사잖아요. 그런 행사는 주최 측에서 다 모니터링할 수도 없고, 그중 한두 명이 그랬다고 해서 그게 어떻게 선정적인 행사라고 할 수 있나요. 정말 오래된 사진을 갖다가 우려먹고 하는데, 저는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이 더 선정적인 것 같아요." (임신규)

"1년에 딱 한 번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모습을 공개된 장소에서 표현하는 게 퀴어 문화 축제예요. 그리고 만약 정말 참가자들이 선정적이었다면 풍기문란죄로 입건이 됐겠죠. 저는 오히려 성소수자 커뮤니티나 축제 참가자들이 이런 공격을 많이 받으니까 다들 조심하는 게 안타까워요.

 

지금 축제를 가 보면, 분위기가 진짜 뭐라 그럴까요. 천국 같아요. 너무 무해하고, 안전하고. 다들 그 자리에 모인 서로에게 되게 나이스하게 대하려고 하거든요. 한편으로는 신기하죠. 사회에서 자기를 있는 그대로 다 드러냈을 때 비로소 안전한 분위기를 느낀다는 게." (조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이러한 편견과 혐오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 더 거세게 행진한다. 그런 이들과 함께하는 개신교인들도 있다. 2019년 8월 31일 열린 제2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고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 김돈회 사제(대한성공회 인천나눔의집)는 연단에 올라 성소수자들을 축복했다. 이 목사는 이후 기독교대한감리회로부터 '정직 2년' 징계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지만, 그는 인천을 넘어 대구 등 다른 지역 축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성소수자를 환대하고 있다. 올해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에는 개신교계를 대표해 '대한성공회 인천나눔의집'이 함께한다.

2019년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는 (사진 왼쪽부터) 고 임보라 목사, 김돈회 사제, 이동환 목사가 축복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9년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는 (사진 왼쪽부터) 고 임보라 목사, 김돈회 사제, 이동환 목사가 축복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퀴어 문화 축제를 계속 진행하다 보면,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은 조금씩 고취되는 반면 교회는 그저 퇴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조·임 위원장은 보수 교계의 축제 방해도 어느 순간 꺾일 것이라고 본다. 성소수자를 정죄하고 공격하는 개신교인들의 행태는 개신교의 역사와 교리와는 상반된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저는 기독교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기독교인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그 원인을 내부에 찾지 않고 자꾸 다른 데로 돌려서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시대에 맞게 교회도 변화해야 하는데,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다 보니까 교회는 더 어려워지고 있는 거죠. 교회 내부로부터 받는 비난이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성소수자나 퀴어 문화 축제를 적으로 만들고, 이게 계속 악순환이 되면서 교회는 점점 더 쪼그라들 거라고 생각해요. 저같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은 더 많아질 거고요.

 

하지만 사회는 계속 변화하면서 전진할 수밖에 없어요. 성소수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앞으로 10년이 될지 몇 년이 될지 모르겠지만,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한 교회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기를 성찰하고 돌아볼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임신규)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하는 기독교의 역사는 사실 소수자의 역사이기도 하잖아요. 현재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처한 위치나 차별은 기독교의 역사와 비슷한 면이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도 개신교인들이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신앙으로만 교인들을 결집하기는 너무 어렵잖아요. '이런 건 잘못된 거예요'라면서 교인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대표적인 게 성소수자가 된 것 같아요. 하지만 기독교의 역사와 교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이니까, 교회에 계신 분들도 그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 오게 될 것 같아요. 저희가 포기만 안 하면 되는 것 같긴 해요. 이건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시는 분들이 다 똑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조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이미 안전하다

인천 퀴어 문화 축제는 올해 6회째를 맞는다. 제1회 축제 당시 유례없는 혐오 세력의 폭력 범죄를 겪었지만, 이 일은 오히려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가 얼마나 극심한지 알리는 도화선이 됐다. 지역 시민사회 단체도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현재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에는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사회 단체 활동가가 참여하고 있다. 임신규 위원장은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이러한 연대 덕분에 축제를 계속 꾸려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저랑 같이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종인 국장님이 계시는데요. 이분은 장애 운동 활동가시거든요. 1회 축제 때 참가자로 그 현장에 계셨대요. 자기는 장애 운동을 하면서 장애인이 가장 차별받는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받은 충격이 너무 컸다고 하시더라고요. '장애인이 받는 차별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성소수자들이 차별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드셨대요.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 이후부터 계속 퀴어 문화 축제에 함께해 주시고 있어요. 그런 게 연대라고 생각해요."

2019년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참가자 안전을 살피고 있는 임신규 위원장. 사진 출처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2019년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참가자 안전을 살피고 있는 임신규 위원장. 사진 출처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축제 참가자들의 안전은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하지만 임신규 위원장은 왜 유독 퀴어 문화 축제를 열 때 안전을 고민해야 하느냐고 되묻는다. 퀴어 문화 축제를 안전하지 않게 만드는 이들은 혐오 세력이지, 참가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이미 자기가 가진 정체성이나 사회적 소수자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축제, 누구나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조서울 위원장은 "다른 집회나 축제와 똑같은 법률이 퀴어 문화 축제에 적용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가 집회 신고를 하고, 법에 따라 보호받고. 행사나 축제를 하려는 사람들이 공공 공간을 얻기 위해서 대관·신청을 하고, 조례에 따라 허가받고.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그게 제일 필요해요. 일단 지금은 그것부터 안 되니까. 퀴어 문화 축제 개최 절차가 행정청에서 안전하게 처리되는 게 안전한 축제를 열기 위한 제일 기본 요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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