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극우·보수 개신교인들의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역사를 톺아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째 방해 행위를 일삼는 개신교인들은 이제 '혐오 세력'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습니다. 혐오 세력이라는 말에 기분 나빠하기 전에, 이들이 과연 어떻게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해 왔는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10년간의 방해 역사를 정리하는 한편, 현재 퀴어 문화 축제를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서울·대구·인천·춘천·광주·제주·부산·경남 등 8개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한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사는 6월 26일(월)부터 30일(금)까지 매일 저녁 6시 2~3개씩 총 12개를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으로, 지난 10년간 자행돼 온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가 시민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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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지금 동성애자들이 행진 경로를 바꿨답니다! 저기로 가서 막아야 합니다! 모두 일어나세요!"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덩치 큰 남성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집회 참석자들은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갔다. 집회 사회를 보고 있던 권 아무개 씨는 우락부락한 남성에게 마이크를 뺏긴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수천 명이 앉아 있던 좌석은 순식간에 텅 비었다. 권 씨는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이해는 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2014년 6월 7일 토요일 오후 6시경 서울 신촌 연세로 '차 없는 거리'. 권 씨는 '세월호 추모 공연'이라고 이름 붙인 집회의 사회자로 무대에 서 있었다. 전날 아는 목사에게 섭외 연락을 받았을 때, 세월호 추모 공연 사회이고 "동성애를 반대하는 부분도 있다"고 들었다. 정작 집회에서는 '세월호 추모'는 온데간데 없고 온통 '반동성애' 구호뿐이었다. 이날 연세로에서는 제15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루 전 섭외 전화를 받은 권 씨는 그저 작은 규모의 추모 공연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연세로 '차 없는 거리'가 시작되는 오후 2시가 되자, 곧바로 무대 차량과 좌석이 일사불란하게 세팅되기 시작했고 이어 수천 명이 자리했다. 공식적인 사회자는 권 씨였으나, 처음부터 덩치 큰 남성이 단상에 올라와 '국민의례'를 진행했다. 명색이 세월호 추모 공연이라 현수막도 있고 음악 공연 순서도 있었는데, 몇 되지도 않는 팀이 반복해서 무대에 올라오는 것 같았다. 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될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그 응원 구호 있잖아.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그거 좀 해 줘."
"…목사님, 아무리 그래도 추모하는 자리에서 응원 구호는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차라리 묵념의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떨까요?"
"아니 그런데 저쪽 기세가 지금 엄청 세잖아. 거기에 밀리면 안 된다고. 그리고 종교적인 구호를 외치면 집회·시위법에 걸릴 수도 있으니까 '대한민국' 구호를 꼭 해 줘."
"…."

집회를 주최한 목사에게 이 말을 들었을 때, 권 씨는 이 집회의 목적이 세월호 추모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당장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에게 한 가지 걸리는 말이 있었다. 주최 측이 "이 자리에 세월호 유가족이 와 있다"고 한 것이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으나, 혹시 그분들이 상처받을까 봐 권 씨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단상에 올라와 마이크를 뺏어 든 덩치 큰 남성 때문에 그조차도 의미 없게 됐다. 참석자들은 자리를 떠나 어느새 반동성애 구호를 외치며 퀴어 퍼레이드 차량을 온몸으로 막고 있었다.

약 3000개의 의자를 가득 채웠던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행렬을 막으러 뛰쳐나갔다. 표면적으로는 '세월호 추모 공연'이라 공연이 이어졌지만 좌석은 이미 텅텅 빈 후였다. 사진 출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약 3000개의 의자를 가득 채웠던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행렬을 막으러 뛰쳐나갔다. 표면적으로는 '세월호 추모 공연'이라 공연이 이어졌지만 좌석은 이미 텅텅 빈 후였다. 사진 출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2014: 잘못 끼운 첫 단추

한국에서 '퀴어 문화 축제'는 2000년 처음 시작됐다. 1년에 한 차례 열리는 퀴어 문화 축제는 말 그대로 성소수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축제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억눌린 성소수자들이 이날 하루만큼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다. 또한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역할도 한다. 퀴어 문화 축제는 2000년 서울을 시작으로 2009년 대구, 2017년 제주·부산, 2018년 광주·인천·전주, 2019년 경남, 2021년 춘천 등으로 퍼져 나갔다.

보수 개신교계는 애초부터 '동성애는 죄'라는 기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정치적·사회적으로 활발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다 2007년 국회에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자, 보수 교계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개신교계의 반동성애 주장은 한국 사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는 시점과 맞물려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퀴어 문화 축제는 꾸준히 열리고 있었는데, 2013년까지는 개신교인들이 축제 장소에 찾아가 물리적으로 훼방을 놓는 일은 없었다.

개신교인들이 남의 잔치에 재를 뿌리기 시작한 것은 2014년 6월 7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제15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처음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권 씨의 경험과 같이,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는 '세월호 참사 추모 공연'을 가장해 진행됐다. 집회를 주도한 단체는 에스더기도운동본부, 예수재단, 신촌동성애반대청년연대, 홀리라이프, 탈동성애인권기독교협의회 등이었다. 이들은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하고 퍼레이드를 저지하기 위해 국민적 참사인 세월호를 이용했다. 상식 이하의 파렴치한 행동이었지만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는 듯했다. "동성애가 너무 큰 문제이기 때문에 그래도 된다는 듯이 이야기하더라고요." 권 씨는 올해 5월 30일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퀴어 퍼레이드 경로에 드러눕기는 이때 처음 시작됐다. 사진 출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퀴어 퍼레이드 경로에 드러눕기는 이때 처음 시작됐다. 사진 출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웹진

이 단체들이 '차 없는 거리' 시간이 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무대와 좌석을 설치한 곳은 퀴어 퍼레이드 경로였다. 애초부터 퀴어 퍼레이드를 방해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퀴어 문화 축제 측이 마찰을 피하기 위해 행진 코스를 바꾸자, 반동성애 집회 참가자들은 또다시 일사불란하게 퀴어 퍼레이드 행렬을 쫓아가 행진 차량을 막아섰다. 스크럼을 짜고 드러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경찰이 비키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넘어 온갖 욕설과 비방, 저주가 난무한 것은 물론이다.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과 개신교인들의 방해로 퀴어 퍼레이드 차량은 몇 시간 동안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한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은 행진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후 5시부터 시작해 1시간 남짓이면 마무리됐을 퍼레이드는 밤 10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예정대로 행진을 마친 참석자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환호했다. 그야말로 축제 슬로건에 걸맞은 행진이었다.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

2014년은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동의 원년이라 불릴 만하다. 반동성애 사상으로 무장한 개신교인들은 서울뿐 아니라 6월 28일 열린 제6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도 방해했다. 보수 교단에 속한 교회들이 모인 대구기독교총연합회와 예수재단, 에스더기도운동본부 등에서 동원된 개신교인 약 1000명이 대구 퀴어 퍼레이드 행진 경로를 막았다. 행진 차량 앞에 압정을 깔아 놓기도 했다. 개신교인들의 막무가내식 방해에 퀴어 문화 축체 측은 행진 코스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개신교인은 행진을 쫓아가면서 혐오 발언을 지속했다.

애초에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서 출발했기에 정당성은 없지만, 집회를 열어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는 행위는 현행법상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축제를 반대하는 것과 방해하는 것은 다르다. 신고를 마친 다른 집회를 방해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다. 개신교인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하기 위한 의도로 반대 집회를 시작했다. 첫 단추부터 단단히 잘못 끼운 것이다.

2015~2016: 대형 교회·교단의 합세
2015년부터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렸다. 이때부터 대형 교단과 연합 기관들이 서울시청광장 인근에서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5년부터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렸다. 이때부터 대형 교단과 연합 기관들이 서울시청광장 인근에서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퀴어 문화 축제 방해는 2015년부터 더 조직적이고 극렬해졌다. 2014년에는 몇몇 반동성애 기독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방해 행위가 있었다면, 2015년부터는 한국교회 주요 연합 기관들이 참여하면서 이들이 큰 우산이 돼 주는 모양새가 됐다. 퀴어 문화 축제가 진행되는 6월을 앞두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국교회연합·한국장로교총연합회·미래목회포럼·한국교회언론회 등 보수 교계 단체들은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등 대형 교회 목사들이 참여하면서 인적·물적 동원이 더 용이하게 됐다.

2015년 6월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제16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와 7월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제7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 때도 개신교인들의 반대 집회가 열렸다. 특히 이때부터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퀴어 문화 축제를 아예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경찰에 먼저 집회 신고를 하려는 전략을 짰다. 축제 장소가 알려지자 개신교인들은 집회 신고가 가능한 날로부터 2~3일 전, 길게는 일주일 전부터 경찰서 앞에서 노숙을 했다. 어쩔 수 없이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는 조직위원회 차원에서도 집회 신고를 위해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 퀴어 문화 축제와 퍼레이드는 6월 28일 열렸다. 이날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 홀리라이프, 탈동성애인권기독협의회, 에스더기도운동본부, 나라사랑&자녀사랑운동연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성 등이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서울시청광장을 에워싸듯 주변 곳곳에 자리를 잡고 반대 집회를 진행했다.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도 단상에 서서 혐오 발언을 쏟아 냈다. 경찰이 서울시청광장을 펜스로 두르고 퍼레이드 경로를 확보해 물리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개신교인 약 1만 명이 모여 곳곳에서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들에게 언어폭력을 자행했다.

그다음 주 토요일 열린 제7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에도, 대구기독교총연합회 등에서 동원한 개신교인 1000여 명이 축제를 방해했다. 이들 역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동성로 주변 곳곳에 집회 신고를 내고 진을 쳤다. 퀴어 퍼레이드 때는 행렬을 따라다니며 혐오 발언을 내뱉었고, 몇몇 개신교인은 달려들어 행진을 방해했다. 교회 장로라고 밝힌 사람은 '인분 테러'를 하기도 했다.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내부를 결속시킨다.' 2016년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에 대거 참석한 총신대학교는 이를 증명해 주는 듯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내부를 결속시킨다.' 2016년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에 대거 참석한 총신대학교는 이를 증명해 주는 듯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2016년부터 보수 교계는 '동성애·이슬람 반대'를 교회의 사명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으로 꼽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통합·고신,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장들은 신년 좌담회에서, 동성애와 이슬람 확산을 한국교회 위기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국교회언론회·미래목회포럼 등도 2015년 말부터 공공연하게 동성애 조장·확산을 적극 저지하겠다고 발표했다.

2016년 6월 11일 열린 제17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는 전년과 비슷하게 전개됐다. 약 1만 2000명이 모여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서울시청광장을 에워쌌다. 특이했던 점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직영 신학교인 총신대학교 교직원과 학생 500여 명이 대대적으로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당시 총신대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총신대 내 성소수자 모임 '깡총깡총' 회원들을 색출하고 있었다. 학교 내 성소수자는 용납할 수 없다며 동성애를 절대 반대한다는 의미로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에 대거 참석한 것이다. 당시 김영우 총장과 이사회는 총회 및 학생들과도 갈등이 있었는데, 이날만큼은 동성애 반대로 하나가 된 모습을 보였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6월 27일 제8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기 전 맞불 집회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규모 반대 집회로 주목을 받는 것이 오히려 퀴어 문화 축제를 부각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축제 당일, 개별 단체나 교회에서 반대 집회를 열어 양상은 전년도와 비슷했다. 인분을 투척하거나 연좌 농성을 벌이며 퍼레이드 행진을 막는 극단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행진 코스 옆에서 혐오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거나 큰 소리로 설교를 하는 등 방해 행동에 적극적이었다.

2017~2019: 확산하는 퀴어 문화 축제에 방해 극심

2014년에 시작된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는 개신교계에서 연례행사처럼 자리 잡았다. 서울과 대구에서는 집회 신고부터 개신교인들의 방해에 시달려야 했다. 매년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장소 인근에서 반대 집회가 진행됐고, 성소수자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혐오와 비난, 위협과 폭력이 난무했다.

하지만 보수 개신교계의 극렬한 방해에도, 퀴어 문화 축제는 오히려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2017년에는 서울과 대구 외에도 부산과 제주에서 퀴어 문화 축제가 시작됐다. 부산과 제주에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축제를 예고하자 지역 교계는 들썩였다.

2017년 9월 23일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광장에서 제1회 부산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렸다. 부산기독교총연합회와 단체들은 '건강한부산시민만들기시민연대'라는 단체를 만들어, 당일 축제 장소와 약 500m 떨어진 곳에서 '레알 러브 시민 축제'라는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레알 러브 시민 축제 본행사 전부터 퀴어 문화 축제 장소로 연결되는 해운대역 앞에 혐오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설치하고 1인 시위를 벌였다. 퀴어 퍼레이드 전까지 본 행사를 하다가,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일사불란하게 행진 경로에서 또다시 1인 시위를 했다.

제주에서는 2017년 10월 28일 제주시 신산공원에서 제1회 제주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렸다. 이때도 개신교인들은 제주시청 쪽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혐오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으로 제주시청 일대가 도배됐지만, 퀴어 문화 축제 장소와는 약 1km 떨어진 곳이라 축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이들은 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되는 오후 3시 30분부터 맞불 행진을 시작했다. 중간중간 실랑이는 있었으나, 퀴어 문화 축제 참여자가 2000여 명으로 월등히 많아 축제와 퍼레이드는 수월하게 진행됐다.

2018년 10월 3일 인천. 앞서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한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이 또다시 행진을 방해하려 드러누웠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8년 10월 3일 인천. 앞서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한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이 또다시 행진을 방해하려 드러누웠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8년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는 극에 달했다. 2018년에는 인천·전주·광주에서 퀴어 문화 축제가 시작됐다. 9월 8일 열린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는 반동성애 개신교인 수천 명의 장소 선점, 혐오 발언, 언어적·물리적 폭력으로 무대마저 설치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혐오 세력은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동인천역 북광장에 전날부터 진을 쳤다. 버스와 차량으로 입구를 막아 아예 무대를 설치하지 못하게 원천 봉쇄했다. 축제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자 이들은 참가자들을 모욕하고 조롱하며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가했다.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혐오 범죄가 명백했지만 이날 경찰의 태도는 소극적이었다.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행사 전부터 안전한 집회를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경찰은 이를 외면한 것이다. 이에 조직위는 10월 3일 인천 구월동 로데오거리에서 '인천 퀴어 문화 축제 혐오 범죄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때도 반동성애 개신교인 수천 명이 모여 집회 현장을 에워싸고 혐오 발언을 쏟아 냈다. 이날 집회에는 행진도 있었는데, 개신교인들은 행진 경로에 스크럼을 짜고 드러눕거나 행진 차량 밑에 들어가 운행을 막는 등 위험천만한 행동을 벌였다.

9월 29일 열린 제2회 제주 퀴어 문화 축제에서도 개신교인들의 방해가 극심했다. 1회 때는 반대 집회 장소가 떨어져 있어 직접적인 방해는 별로 없었는데, 2회 때는 제주시청 인근뿐 아니라 축제가 열리는 신산공원 입구에서도 반대 집회가 열렸다. 100여 명이 혐오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퀴어 문화 축제 참여자들을 향해 언어폭력을 일삼았다. 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되려 하자 이들은 공원 입구를 막아 버렸다. 퍼레이드 중간에는 행렬을 따라다니며 혐오 발언을 하거나 행진 차량 밑으로 들어가는 등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2018년 10월 21일 광주.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8년 10월 21일 광주.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이 드러눕는 바람에 광주 퀴어 퍼레이드는 급하게 행진 코스를 바꿔야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10월 21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제1회 광주 퀴어 문화 축제 때는 이를 반대하기 위해 광주·전남 지역 교계가 대거 움직였다. 축제 장소와 500m 떨어진 금남로4가에서 열린 맞불 집회에는 8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역시나 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행진 경로에 드러눕고 혐오 발언을 내뱉는 등 방해를 일삼았다. 일부는 동의 없이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신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퍼레이드 참가자들을 물리적으로 잡아끌거나 행렬에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2019년에도 각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 맞불 집회가 열렸다. 다만, 반대 집회 참석자들의 불법 행동이 전국적으로 계속되자 경찰은 이들이 퀴어 문화 축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지역 기독교연합회 등 큰 단위에서도 여론을 의식해 반대 집회 참가자들에게 직접적인 충돌은 피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물론 개인 혹은 삼삼오오로 퀴어 퍼레이드 행렬을 가로막거나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들에게 시비를 걸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퀴어 문화 축제는 크게 방해받지 않고 마무리됐다. 혐오 세력의 극렬한 반대로 축제를 제대로 열지 못했던 인천 퀴어 문화 축제도 2019년 2회 때는 경찰의 개입 속에 큰 탈 없이 진행됐다.

2019년에는 경남 퀴어 문화 축제가 시작됐다. 11월 30일 창원에서 열린 제1회 경남 퀴어 문화 축제에도 경남 지역 교계에서 동원된 3000여 명이 반대 집회를 열었다. 창원광장을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 약 300m 떨어진 곳에서 퀴어 문화 축제와 반대 집회가 진행됐다. 축제 도중 물리적인 방해는 없었지만 퀴어 퍼레이드가 문제였다. 원래 광장을 한 바퀴 도는 코스였는데, 광장을 돌면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난입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퀴어 퍼레이드 행렬은 광장을 우회해 돌아와야 했다.

보수 개신교의 방해는 더 조직적이고 극렬해졌지만, 퀴어 문화 축제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 8개 지역으로 퍼져 나갔고 참가하는 사람도 계속해서 늘었다. 2019년 6월 1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에는 역대 최다 인원인 약 15만 명이 참가했다. 경찰도 여러 지역 퀴어 문화 축제에서의 경험으로, 축제 당일 펜스를 치고 병력을 증강하는 등 혐오 세력이 아예 축제 참가자들에게 접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2020~2023: 물리적 폭력 줄었지만 다방면으로 괴롭혀

2020년과 2021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역마다 퀴어 문화 축제를 온라인으로 열거나 쉬어 갔다. 반동성애 단체들도 이와 같았다. 다행히 온라인으로 여는 축제까지 쫓아가 조직적으로 혐오 게시물을 올리지는 않았다. 일부 반동성애 단체는 반대 댓글보다는 자체 프로그램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2021년 제22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온라인으로 열렸고, 퀴어 퍼레이드는 6월 27일 오프라인으로 진행됐다. 당시 방역 수칙에 따라 50여 명만 참가하고 이를 중계하는 식이었다. 소규모로 진행해서인지 이날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개신교인들은 없었다. 혐오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퀴어 퍼레이드는 시종일관 평화로웠다.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조직적 방해가 시작된 후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2021년 11월 20일에는 제1회 춘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렸다. 보수 개신교계는 이날 '제1회 춘천 생명·가정·효 대행진'이라는 맞불 집회를 열었다. 맞불 집회에 참석한 100여 명은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소양강 처녀상 건너편에 진을 치고 혐오 발언을 계속했다. 한 사람이 경찰이 정해 놓은 선을 넘어와 통성기도를 하는 돌발 행동이 있기는 했지만, 이내 경찰에 제지당했다. 반대 집회는 몇 시간 동안 계속됐으나 물리적인 방해는 없었다.

2022년에는 엔데믹 시대가 되어 가면서 퀴어 문화 축제도 다시 오프라인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7월 16일 서울을 시작으로, 9월 17일 춘천, 10월 1일 대구, 10월 15일 인천, 10월 22일 제주에서 퀴어 문화 축제와 퍼레이드가 열렸고, 광주에서는 11월 21~26일을 퀴어 문화 주간으로 정해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반대 집회도 다시 시작됐다. 혐오 발언과 언어폭력은 여전했으나, 예전과 같이 축제 장소에 난입하거나 퍼레이드 경로를 막아서는 물리적 방해는 줄어들었다.

올해 대구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 현장. 이들은 반대 집회 후 퀴어 퍼레이드를 방해하러 갔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올해 대구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 현장. 이들은 반대 집회 후 퀴어 퍼레이드를 방해하러 갔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경찰의 개입과 여론 탓에 예전처럼 물리적 폭력은 일어나지 않는 추세지만, 언제든 다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보수 교계 목회자들과 반동성애 단체들은 6월 13일 영락교회(김운성 목사)에서 '3000인 목회자 대회, 희망의 대한민국을 위한 한국교회 연합 기도회'를 열었다. 이영훈 목사,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고명진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 등 대형 교회 목사들이 대거 참여한 이 행사에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학생 인권조례, 국가인권기본계획(NAP), 퀴어 행사'에 보수 교계가 공동 대응하기로 천명했다.

올해도 보수 개신교계는 퀴어 문화 축제를 다방면으로 괴롭히고 있다. 6월 17일 열린 대구 퀴어 문화 축제는 개최 전부터 상당한 방해에 시달렸다. 개신교계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라는 단체가 5월 18일, 지난해 대구 퀴어 문화 축제에서 '불법 상행위'와 '도로 무단 점용'이 있었다며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과 인권팀장을 경찰에 고발한 것이다. 조직위는 성명을 발표해 "실제 처벌보다는 대구 퀴어 문화 축제를 불법으로 낙인찍고 흠집을 내기 위한 시도로 혐오와 차별의 선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대구퀴어반대대책본부와 대구기독교총연합회, 동성로상점가상인회 등은 대구 퀴어 문화 축제를 아예 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법원에 집회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기도 했다. 법원은 축제 이틀 전인 6월 15일 이 사건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퀴어 문화 축제가 "정치적 약자나 소수자의 의사를 표현하는 유일한 장이 될 수 있다"며 "다양한 사상과 의견의 교환을 보장하는 표현의자유는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핵심적 기본권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표현의자유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퀴어 문화 축제 당일 피켓 시위자 모집 및 서명운동 동참, 후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소속 교회들에 발송했다. 실제로 대구 퀴어 문화 축제에서는 보수 개신교계 단체들과 대구 지역 대형 교회에서 나온 교인 수백 명이 반대 집회와 피켓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축제 장소와 거리가 있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퀴어 퍼레이드 때 몇몇 사람이 난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이내 경찰에 제지당했다.

올해 춘천 퀴어 문화 축제. 조직위원들과 연대자들이 뒤에서 열리는 반대 기자회견을 가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올해 춘천 퀴어 문화 축제. 조직위원들과 연대자들이 뒤에서 열리는 반대 기자회견을 가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올해 제24회를 맞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7월 1일, 예년처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서울시청광장 장소 사용을 허가하는 서울시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심의 끝에 같은 날 장소 사용을 신청한 CTS문화재단의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에 시청광장 사용을 허가했다. 보수 교계를 대변해 온 CTS가 굳이 서울 퀴어 문화 축제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콘서트를 연다는 것, 이 역시 퀴어 문화 축제를 원천 봉쇄하고 의지를 꺾어 놓으려는 개신교계의 방해 행위다.

결국 올해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7월 1일 을지로2가 일대에서 열리게 됐다. 이곳에 집회 신고를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와 자원봉사자들은 집회 신고를 안전하게 마치기 위해 경찰서 3곳에서 89시간 동안 릴레이로 줄을 섰다. 이 또한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방해가 없다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보수 교계는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리게 될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와는 별개로 또다시 대규모 반대 집회와 행진까지 예고해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처럼 반동성애에 경도된 극우·보수 개신교인들의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는 10년이 지나도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추모 공연'을 가장해 반대 집회를 시작한 이들은, 이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장소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불청객이 됐다. 사람들은 이들의 비상식적인 주장과 불법행위, 위협과 폭력을 수년간 경험하고,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을 '혐오 세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비신자들도 개신교의 중심 사상이 '사랑'이라는 것은 안다. 그런데 정작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사랑이 아닌 '혐오'의 대명사가 돼 버렸다.

보수 개신교는 퀴어 문화 축제 방해에 사활을 걸었지만, 정작 이들 때문에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참가자들이 축제를 포기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올해는 상반기에 춘천과 대구, 서울에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렸고, 하반기에 인천, 경남, 제주에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릴 예정이다.(계속)

극우·보수 개신교계의 집요한 방해 속에서도 퀴어 문화 축제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극우·보수 개신교계의 집요한 방해 속에서도 퀴어 문화 축제는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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