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극우·보수 개신교인들의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역사를 톺아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째 방해 행위를 일삼는 개신교인들은 이제 '혐오 세력'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습니다. 혐오 세력이라는 말에 기분 나빠하기 전에, 이들이 과연 어떻게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해 왔는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10년간의 방해 역사를 정리하는 한편, 현재 퀴어 문화 축제를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서울·대구·인천·춘천·광주·제주·부산·경남 등 8개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한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사는 6월 26일(월)부터 30일(금)까지 매일 저녁 6시 2~3개씩 총 12개를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으로, 지난 10년간 자행돼 온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가 시민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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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요청에 따라 제출받은 민원 사항 내용을 보니까 음란물 전시 사진이라든지 뭐 이런 것들, 자위행위 기구, 유해 물건들을 전시했던 내용들이 있고요. (중략) 여기 그 서울광장에서 있었던 이 행사에 참여하셨던 분들과 그 주변에 그 인근에서 바로 옆에서 이를 반대하는 시위가 또 대규모로 있으셨어요. 저는 어떻게 보면, 시민들의 그 의견이 다르셔서 표출하셨던 상황들인데, 이게 논란이 있다는 거죠. 서울시민의 광장이라는 게, 시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공성이 되게 강해야 한다는 거죠. 판단 기준에 있어서."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5월 3일, 서울시청에서 제4차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안건은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또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의 광장 사용 신고 수리 결정 건'. 같은 날 두 행사가 신고되면서, 어떤 행사에 광장 사용을 허가할 것인지 선정하는 자리였다. 안건을 설명하는 시청 공무원의 발언이 끝나자, 한 위원이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를 허락하는 게 맞다는 취지로 발언을 시작했다.

이날 참석한 심의위원 9명 중 퀴어 문화 축제의 의미·역사를 언급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대신 '민원'을 근거로, 퀴어 문화 축제가 청소년들에게 유해하다는 편파성 짙은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한 위원이 "평일에 이것 때문에 학부형들에게 전화 엄청 받았다"고 말하자, 여러 위원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대신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에 광장을 내주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반대 민원을 이유로 지자체가 퀴어 문화 축제에 장소 허가를 내주지 않은 건 올해 서울시만의 일이 아니다. 2014년 보수 교계의 조직적인 축제 방해가 시작된 이래, 각 지역의 시·군·구청과 경찰 등이 퀴어 문화 축제 장소 사용을 불허하거나 집회 금지를 통고한 경우는 14회에 달한다. 행사 장소 사용을 허가할 권한을 지닌 지방자치단체들은 퀴어 문화 축제 개최를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보수 교계의 입김에 따라 비일관적으로 장소 사용을 불허해 왔다. 이러한 지자체의 결정은 어떤 면에서는 보수 개신교계의 방해보다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2015년부터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올해 광장 사용 불허를 통보받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2015년부터 코로나19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서울 퀴어 문화 축제는 올해 광장 사용 불허를 통보받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혐오 세력, 지자체를 겨냥하다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곳은 광장, 공원, 대로 등 지역사회의 중심부다. 지역민들에게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함께 살아가는 시민임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 같은 공공장소에서 축제를 열기 위해서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하면 된다. 다만 광장·공원의 경우, 부스 설치 등을 하기 위해서는 통상적인 집회 신고에 더해 장소를 관리하는 지자체나 공단으로부터 '장소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지자체에서 처음으로 장소 사용 불허 결정을 내린 것은 2014년 3월 대구였다. 대구 동성로 일대에서 축제를 열어 오던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제6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를 2·28기념중앙공원 청소년광장에서 열기로 하고, 이를 관리하는 대구광역시시설관리공단에 장소 사용을 신청했다. 그런데 공단은 장소 사용을 불허했다. 청소년광장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곤란하며 "도심 공원은 모든 시민의 휴식처로서 일부 소수인을 위한 특정 행사는 사용 불가하다"는 이유였다.

조직위와 인권 단체들은 성소수자를 청소년에게 유해한 집단으로 매도한다며 대구시청에 공개 질의서를 보내고 면담을 요청하는 등 대응했다. 그러자 공단은 대구시와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5일 만에 불허 결정을 철회했다. 당시 공단 관계자는 "인권의 차원에서 성소수자를 다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허가 이유를 밝혔다.

그때까지만 해도 보수 교계는 퀴어 문화 축제 개최에 대해 조직적인 반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구시의 장소 허가 과정 이후 지자체의 장소 승인 절차를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6월 7일에는 신촌 연세로에서 서울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보수 개신교인들이 주축이 된 신촌동성애반대청년연대 등은 서대문구청 홈페이지 민원 게시판을 반대 의견으로 도배하고, 관계 부처에 집중적으로 항의 전화를 돌렸다. "에이즈를 확산시키는 동성애 축제에 반대한다", "당신의 자녀가 동성애자가 되면 좋겠느냐" 같은 왜곡된 주장과 혐오 발언이 대부분이었다.

개신교 반동성애 단체들은 축제가 열리는 지자체의 민원 게시판을 반대 의견으로 도배하고, 관계 부처에 집중적으로 항의 전화를 돌렸다. 에스더기도운동본부 이용희 대표 페이스북 및 서대문구청 민원 게시판 갈무리
개신교 반동성애 단체들은 축제가 열리는 지자체의 민원 게시판을 반대 의견으로 도배하고, 관계 부처에 집중적으로 항의 전화를 돌렸다. 에스더기도운동본부 이용희 대표 페이스북 및 서대문구청 민원 게시판 갈무리

보수 교계의 포화를 맞은 서대문구청은 축제를 일주일 앞둔 2014년 5월 27일, 장소 사용 승인 취소를 통보했다. 표면적으로는 세월호 참사의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퀴어 문화 축제 개최가 적합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지만, 실은 보수 교계의 과도한 민원 때문이었다. 당시 서대문구청은 다른 축제나 행사에는 별다른 제한 없이 허가를 내 주고 있었다. 축제 일주일 전, 같은 장소에서는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두 배 규모 행사인 '유니브엑스포 서울'이 열리기도 했다. 조직위는 퀴어 문화 축제가 인권 행사로서 세월호 참사 애도·추모와 일맥상통하고, 축제 부스에서도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관련한 서명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했지만 구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대문구인권위원회는 이 같은 결정이 성소수자 차별 행위라며 철회하라고 권고했다. 2014년 6월 5일 서대문구인권위원회 결정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민원 발생과 갈등이 예상되는 행사를 승인하는 것에 부담을 가질 수는 있으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그러한 갈등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회적 소수자가 불합리한 차별과 억압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고 소수자에 대한 불합리한 편견과 혐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서대문구청은 끝내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경찰에 집회 신고를 마친 조직위는 6월 7일 연세로에서 예정대로 축제를 열었지만, 구청의 갑작스러운 '브레이크'에 축제 시작 시간을 오전에서 오후로 미루는 등 혼란을 겪어야 했다.

'불법 집회'라는 빌미를 제공하다

대구시와 서울시의 장소 불허 결정을 경험한 보수 교계는 지자체가 퀴어 문화 축제 장소를 내주지 않도록 더욱 결사적으로 나섰다. 축제가 처음 개최되는 지역에서는 이러한 방해가 더욱 극심했다. 이들은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들이 과다 노출을 한다",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물품을 배부·전시한다", "불법 상행위가 벌어진다"는 등의 왜곡·과장된 내용으로 지자체에 민원을 넣었다. 지자체들은 보수 교계의 압박에 그대로 굴복하거나 반대 논리에 기대 퀴어 문화 축제 장소 사용을 불허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은 2017년 9월 23일 해운대역 앞 구남로광장에서 제1회 부산 퀴어 문화 축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하지만 해운대구청은 광장 내 원칙적으로 무대 설치가 불가능하고, 당일 '아트마켓'이 열린다는 이유로 도로점용을 불허했다. 한 달 전에는 아트마켓이 열리는 가운데 서병수 당시 부산시장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토크쇼를 허가한 해운대구청이었다. 결국 진짜 이유는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민원이었다. 당시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해 반대하는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기독교 단체에서 반대 집회를 예고했고, 양측이 충돌할 경우 이들의 안전을 담보할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은 경찰에 집회 신고를 해 뒀기에 예정대로 퀴어 문화 축제를 진행했다. 그러자 해운대구청은 기획단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다음 해인 2018년에도 마찬가지였다. 해운대구청은 퀴어 문화 축제 장소 사용을 불허했고, 기획단이 그대로 축제를 열자 또다시 과태료를 부과하고 기획단장을 형사 고발했다.

해운대구청은 2019년에는 한술 더 떠, 축제를 강행할 경우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2019년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은 참가자들의 안전을 고려해 제3회 부산 퀴어 문화 축제를 취소했다. 기획단은 2019년 8월 16일 성명에서 "해운대구청의 부산 퀴어 문화 축제 도로점용 불허는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 등 혐오 세력의 축제 방해를 방관하는 교묘하고 정치적인 차별 행위다. 이는 곧 혐오 세력으로 하여금 축제를 '불법'이라고 허위 선동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으며, 혐오 세력의 물리적인 폭력과 혐오에 붙여 축제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해 부산에서는 9월 21일 '제2회 전국 퀴어 총궐기'가 열렸고 참석자들은 구남로광장을 행진했다.

서울·대구·부산·인천·춘천·제주 곳곳에서 지자체의 축제 장소 사용 불허가 이어졌다. 사진은 2019년 8월 20일 열린 해운대구청 규탄 기자회견 모습. 부산퀴어문화축제 페이스북 갈무리
서울·대구·부산·인천·춘천·제주 곳곳에서 지자체의 축제 장소 사용 불허가 이어졌다. 사진은 2019년 8월 20일 열린 해운대구청 규탄 기자회견 모습. 부산퀴어문화축제 페이스북 갈무리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의 성명 내용대로,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지자체의 장소 사용 불허를 빌미로 퀴어 문화 축제를 '불법'으로 낙인찍었다. 인천광역시 동구청은 2018년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 장소인 동인천역 북광장 사용 허가 신청을 반려했다. 인천이 보수적인 지역이라 축제 개최가 부담스럽고, 주최 측이 안전요원 300명과 주차장 100면 등 안전 대책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안전요원·주차장 확보는 관련 조례에도 나와 있지 않은 터무니없는 요구였다.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이를 이유로 퀴어 문화 축제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전날부터 광장을 점거하고 축제 당일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2022년에도 인천광역시대공원관리사업소는 '심한 소음'을 이유로 제3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 장소인 인천중앙공원 사용을 불허했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14일 인천시 인권보호관회의는 이 처분이 '차별 행정'이라며 인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낸 인권침해 구제 신청을 받아들였다.

춘천시는 2022년 제2회 퀴어 문화 축제 장소인 의암공원 사용을 허가했지만, 공원 내 청소년 시설은 이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등 정치 행사가 공원 이용 제한 규정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이듬해에는 아예 의암공원 사용을 불허했다. 2022년 퀴어 문화 축제 당시 물품을 판매하는 등 공원 이용 유의 사항을 위반했고, 한 달간 지역 단체 및 교사회·부모회에서 다수의 반대 민원이 발생했다는 이유였다. 축제 당시 반대 기자회견을 연 극우·보수 개신교인들은 춘천 퀴어 문화 축제가 불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자체들이 반대 민원을 이유로 장소 사용을 불허하면, 보수 교계는 퀴어 문화 축제가 불법이라며 공격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퀴어 퍼레이드 길 터 준 법원

반동성애 단체와 개신교인들은 지자체에 축제 반대 민원을 넣는 한편,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릴 만한 곳마다 쫓아다니며 집회 신고를 하기도 했다. 집회 신고는 선착순으로 우선순위가 주어지는데, 같은 장소에 먼저 집회를 신고해 행진 또는 축제 개최를 막겠다는 전략이었다. 2015년 제16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당시 보수 교계는 6월 13일로 예정된 축제를 막기 위해 혜화경찰서 앞에서 일주일이 넘도록 텐트를 쳐 놓고 기다렸다. 이들의 방해로 퀴어 문화 축제 일정과 장소가 6월 28일 서울시청광장으로 바뀌자, 개신교인들은 또다시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일주일간 노숙을 벌였다.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와 활동가들도 집회 신고를 하기 위해 '무지개 줄서기'를 하며 밤을 지새웠지만, 남대문경찰서와 서울지방경찰청은 2015년 5월 30일 양측에 집회 금지 통고를 내렸다. 행진로 일부가 먼저 신고된 단체의 행진로와 겹치고, 교통에 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혐오 세력과 행정청이 막은 길은 법원이 터 줬다. 서울행정법원은 축제를 12일 앞둔 6월 16일,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서울지방경찰청을 상대로 낸 옥외 집회 금지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에서 "집회의 금지는 원칙적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될 수 있다"면서 "퀴어 문화 축제가 집회 개최 장소와 주변 도로의 교통 소통에 장애를 발생시켜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반동성애 단체들이 퀴어 퍼레이드를 방해하기 위해 중복으로 집회 신고를 하더라도 축제를 금지할 수 없다는 법적 근거를 얻은 것이었다.

보수 개신교인들은 '알박기' 식으로 집회 신고를 선점해 퀴어 문화 축제와 행진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은 퀴어 퍼레이드를 금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사진은 2015년 6월 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반동성애 집회 모습. 뉴스앤조이 최승현
보수 개신교인들은 '알박기' 식으로 집회 신고를 선점해 퀴어 문화 축제와 행진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은 퀴어 퍼레이드를 금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사진은 2015년 6월 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반동성애 집회 모습. 뉴스앤조이 최승현

같은 해 대구에서도 지자체의 '장소 사용 불허'와 경찰의 '집회 금지' 처분이 있었다.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6월 26일 제7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를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야외무대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러자 보수 개신교 단체들은 관할 구청인 중구청에 민원을 쏟아 내고, 인근에 집회 신고를 했다.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운동을 벌이던 대구기독교총연합회는 권영진 당시 대구시장과 윤순영 중구청장을 만나 장소 사용을 승인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결국 6월 2일 중구청은 "공익 목적에 어긋나거나 공공질서 유지와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을 경우 구청장이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을 들어 장소 사용을 불허했다.

경찰도 조직위와 반대 세력 양측에 집회는 허가하되 행진은 금지하는 처분을 내렸다. 서울시 사례처럼 "심각한 교통 불편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조직위는 축제를 코앞에 두고 개최 장소와 날짜를 재고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법원이 길을 텄다. 대구지방법원이 6월 24일 "집회의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며 대구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가 대구지방경찰청을 상대로 낸 옥외 집회 금지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조직위와 인권 단체들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중구청이 야외무대 사용을 최종 승인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제7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들은 동성로 일대를 행진할 수 있었다.

제주에서도 퀴어 문화 축제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 판결이 있었다.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2017년 제1회 제주 퀴어 문화 축제를 제주시 신산공원에서 열기로 했다. 제주시청은 당초 이를 허가했지만 돌연 '민원조정위원회'를 소집했다. 축제 개최를 반대하는 민원이 다수 접수됐다는 이유였다. 2017년 10월 17일 민원조정위는 "개별 참가자들의 돌발 행위를 주최 측이 통제하기 어렵고, 성인 용품 전시 등으로 인해 성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 등에게 혼란을 줄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제주 지역 정서에도 부합되지 않는다"고 의견을 냈고, 제주시는 이를 받아 공원 사용 허가 철회를 통보했다.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제주시 결정에 소송으로 맞섰다. 제주지방법원은 10월 27일 "도시공원법 등 관계 법령을 살펴보아도 이용자들의 성적 취향 등만을 이유로 행정청으로 하여금 신청인들과 같은 일반 공중에 대해 도시공원의 사용 자체를 제한·금지하는 것을 허용하는 규정은 찾아볼 수 없"고 "'행사의 진행 도중 청소년 유해 물건으로 지정된 성 기구 등이 전시·판매되거나 돌발적인 과다 노출 행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우려에 근거한 일부 민원을 제외하고는 기존의 부스 설치 허용 입장을 철회할 만한 중대한 사정의 변화가 있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현행법상 공원은 모든 시민이 사용할 수 있고, 일부 민원인의 막연한 우려 때문에 축제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진영의 단골 메뉴인 "퀴어 문화 축제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주장도 이미 기각했다. 2019년 교계 반동성애 단체들은 서울 퀴어 문화 축제를 상대로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아동·청소년이 축제에 참가하면 '동성애자'가 될 우려가 있다"며 이들의 출입을 제한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19년 5월 30일 "집회에서 아동·청소년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집회의 의미, 성격, 참가 인원, 규모 등에 비추어 볼 때 아동·청소년만 집회의 참가를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볼 수 없다"고 했다.

법원은 이미 "퀴어 문화 축제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보수 개신교인들의 주장을 기각한 바 있다. 뉴스앤조이 
퀴어 문화 축제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주장 또한 이미 법원에서 기각됐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법원 판결이 연이어 나오면서, 이제 경찰은 더 이상 맞불 집회나 반대 민원을 이유로 퀴어 문화 축제를 금지하지 않는다. 지난 6월 17일 제15회 대구 퀴어 문화 축제에서는 축제를 막으려는 지자체 공무원들과 경찰이 충돌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퀴어 문화 축제는 도로점용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공무원 500여 명을 대동해 행정대집행을 벌인 탓이었다. 경찰들은 적법하게 신고된 집회를 보호해야 한다며 대치했고, 결국 홍 시장과 공무원들은 철수했다.

대구지방경찰청은 퀴어 문화 축제가 도로점용 '정당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는 "퀴어 문화 축제가 매년 열려 왔기 때문에 대구시는 관행적으로 장소를 내줘 왔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법원도 가처분을 기각하지 않았나. 검사 출신으로 법을 잘 알 만한 홍준표 시장이 왜 올해는 이렇게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올해에는 춘천·대구·서울 등 곳곳에서 지자체의 퀴어 문화 축제 장소 불허가 이어지고 있다. 영남 지역 성소수자 지지 모임 영남퀴어는 5월 7일 성명에서 "매년 성소수자의 축제, 성소수자의 명절이라고 불리는 퀴어 문화 축제의 광장 사용 및 집회 신고 때마다 지자체는 혐오 세력의 방해에 복종해 왔다"면서 "각 지자체는 성소수자가 문제가 아닌 성소수자 혐오가 문제인 것을 인식하고, 성소수자에게만 광장 사용을 불허하는 것이 아니라 혐오 세력의 혐오 행위를 제재하고 혐오 범죄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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