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극우·보수 개신교인들의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역사를 톺아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째 방해 행위를 일삼는 개신교인들은 이제 '혐오 세력'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습니다. 혐오 세력이라는 말에 기분 나빠하기 전에, 이들이 과연 어떻게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해 왔는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10년간의 방해 역사를 정리하는 한편, 현재 퀴어 문화 축제를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서울·대구·인천·춘천·광주·제주·부산·경남 등 8개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한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사는 6월 26일(월)부터 30일(금)까지 매일 저녁 6시 2~3개씩 총 12개를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으로, 지난 10년간 자행돼 온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가 시민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기자 주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잔혹사' 기획 기사 모아 보기(클릭)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300, 1500, 2800, 8000. '광주인권지기 활짝' 활동가 서유(활동명)는 2018년 10월 21일 열린 제1회 광주 퀴어 문화 축제를 숫자로 설명했다. 광주에서 처음 열리는 퀴어 문화 축제였기에 조직위원회는 300명 정도만 와도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축제 당일 예상 인원의 5배가 넘는 1500명이 모였다.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축제가 열린 5·18민주광장에는 2800명의 경찰이 배치됐다. 광주 시내에 있는 경찰로는 부족해서 전국에서 지원을 왔다. 300명 집회 신고를 했고 많이 왔어도 1500명인데, 왜 이렇게 많은 경찰이 필요했던 걸까.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들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바로 보수 교회들이 퀴어 문화 축제를 반대하기 위해 8000여 명을 동원했기 때문이었다. 광주는 물론 목포·여수·순천·광양 등 전남 지역 교회들이 오후 예배도 마다한 채, 버스를 타고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하러 왔다.

"1회라서 더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혐오 세력은) '한번 시작되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무법천지였다.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스피커가 찢어져라 혐오 발언을 해 대며 소음 공해를 일으킨 것은 물론, 축제장에 돌과 계란, 쓰레기를 던지고 축제 참가자들에게 욕설과 저주를 쏟아부었다. 접근을 차단하는 경찰들 사이로 손을 뻗어 참가자들의 팔을 잡아끌고 머리채를 잡았다. 행진 트럭 앞을 가로막고 차량의 와이퍼를 뜯어 버렸다. 몇몇은 핸드폰으로 유튜브 라이브를 하고, 연예인을 찍을 법한 대포 같은 망원렌즈로 참가자들을 불법 촬영했다. 경찰이 곳곳에서 막은 게 이 정도였다.

서유에게는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혐오 세력은 축제를 들쑤셔 놓고 있었다. 화가 났다. 저들의 아우성은 나의 존재를 없애는 말이었다. 성소수자들을 지우고, 존재를 드러내는 것 자체를, 광장에 나오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였다. '눈에 띄지 마라',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게 해라' 끊임없이 비가시화하라는 요구였다. 무엇보다, 너무 시끄러웠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소음을 3~4시간 듣고 있자니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서유 자신은 조직위원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견뎌 내겠지만, 마음이 약한 참가자들에게는 긴급한 상담이 필요할 정도였다.

혐오 세력의 드러눕기 시전으로 행진이 막히자 경찰은 퀴어 퍼레이드 행렬에 반대쪽 차선을 터 줬다. 그러자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다시 반대쪽으로 뛰어가 드러누웠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혐오 세력의 드러눕기 시전으로 행진이 막히자 경찰은 퀴어 퍼레이드 행렬에 반대쪽 차선을 터 줬다. 그러자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다시 반대쪽으로 뛰어가 드러누웠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찍지 마!"

퀴어 퍼레이드 중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불법 촬영을 일삼는 혐오 세력에게 누군가 크게 소리를 지른 것이다. 이 말은 이내 행진 참가자들의 구호가 됐다. "찍지 마! 찍지 마!" 참가자들이 연호하자 경찰들이 카메라를 든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제지하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른 사람은 깨비(예명)였다. 그는 그냥 성소수자 친구를 따라 퀴어 문화 축제에 놀러 온 사람이었다. 친구가 혼자 가기 무섭다고 해서 같이 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제야 친구가 '축제'를 가는데 왜 무서워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장은 심각했다. 말도 안 되는 불법 촬영을 당하고 있자니 본능적으로 찍지 말라는 소리가 나온 것이다.

"막 유튜브 라이브를 하고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너네 얼굴 다 찍혔다. 인터넷에 올리겠다', '네가 다니는 학교를 알아내서 학교에 뿌리겠다', '너희 부모님에게 보내겠다'고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그들이 던지는 쓰레기에 맞기도 했고요. 경찰이 제지해도 막무가내였어요. 오히려 경찰 멱살을 잡고 소리를 치더라니까요. 상식적인 사람들이라면 그러지 않잖아요. 그런데 퀴어 문화 축제에서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어요." 

"퍼레이드에서 찍지 말라고 하는 게 정말 강력한 요구이기도 하거든요. 아웃팅을 하지 말라는 요구잖아요. 자기 신변을 위협하는 사람들에게 저항하는 멘트인데. 물론 퀴어 당사자가 하는 것도 의미가 깊지만, 비퀴어가 이 상황에 분노하고 연대하면서 화를 내 줬다는 게 저에게는 굉장히 의미가 있었어요." 

"그때는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인데도 참가자들이 마스크를 많이 쓰고 왔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맨 얼굴이었죠. 사람들이 저한테 되게 용감하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런 게 아니었어요. 몰랐기도 했지만 제가 그렇게 마스크를 벗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저는 혐오 세력에 핍박받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기독교의 정신은 사랑과 포용일 텐데

제1회 광주 퀴어 문화 축제는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방해 속에서 진행됐다. 이들은 퀴어 문화 축제 장소 인근에서 맞불 집회를 열었다. 집회 도중 퀴어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이들은 행진 경로로 우르르 몰려갔다. 경찰의 제지에도 길바닥에 드러눕고 참가자들에게 혐오 발언을 내뱉었다. 퀴어 퍼레이드는 200m도 가지 못하고 경로를 바꿔야 했다. 혐오 세력은 퍼레이드 이후에도 퀴어 문화 축제 장소를 둘러싸고 참가자들을 비난·위협했다.

이듬해 10월 26일 제2회 광주 퀴어 문화 축제는 금남로4가 일대에서 열렸다. 이때도 1회 때 못지않게 혐오 세력이 몰렸다. 이들은 똑같이 인근에서 반대 집회를 열고, 집회가 끝난 후에는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장소에 접근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접근해서 욕설을 퍼붓고 쓰레기를 던졌다. "너희는 죄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라는 유의 저주성 발언들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쏟아부었다. 불법 촬영도 여전했다. 그나마 경찰이 잘 막아 줘서 다행이었다. 서유는 만약 경찰이 잘 협조해 주지 않았다면, 제1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 때처럼 축제가 제대로 열리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집요했고 악랄했다.

"물론 개신교 전체가 그렇지 않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근데 체감상… 99%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80% 이상은 같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낯선 사람들과 만날 때 어떤 분이 기독교 신자라고 하면 '말을 좀 아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돼요."

서유는 모든 크리스천이 그렇지는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경계심이 생겨 버린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서유는 모든 크리스천이 그렇지는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경계심이 생겨 버린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성소수자가 아닌 깨비는 1회 때 상상하지 못했던 일을 당하고도 2회 퀴어 문화 축제에 참여했다. 이번에도 성소수자 친구와 같이 갔다. 또 위협적인 일이 벌어질 거라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분노가 컸다. 절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반응하고 싶지 않았다. 또 그런 일을 당할까 봐 퀴어 문화 축제에 가지 않는 것은 혐오 세력이 딱 원하는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들은 더 득의양양할 것이다. '또 오겠거니' 각오하고 갔는데, 역시나 작년 1회 때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제가 충격 먹은 일이 있어요. 이 사람들이 아이들까지 대동한 거예요. 한 6~7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동성애는 죄악이다' 이러고 있더라고요. 자기가 말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외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었어요. 저도 부모님이 개신교인이라 어렸을 적에는 교회에 다녔거든요. 그때는 교회에서 뭐 동성애에 대한 것을 배운 적도 없었어요. 근데 지금은 이러고 있으니까… 누구를 탓해야 하나 싶어요.

 

처음에는 무서웠고, 다음에는 화가 났다가, 나중에는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들도 그냥 그렇게 배운 거잖아요. 아이들은 더 그렇고. 자신들은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거잖아요. 안타깝더라고요.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할 테니까."

성소수자도 아니고 크리스천도 아닌 깨비는 다른 각도에서 본 이야기들을 전해 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성소수자도 아니고 크리스천도 아닌 깨비는 다른 각도에서 본 이야기들을 전해 줬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깨비와 서유 모두 현재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의 정신이 사랑과 포용이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퀴어 문화 축제 당일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에게서는 전혀 사랑과 포용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정말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서유는 재미난(?) 이야기가 생각났다. 광주에서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기 전 해인 2017년 '퀴어 라이브'라는 행사가 있었다. 작은 행사였고 50명 정도가 모였다. 그때도 소소하게 혐오 세력이 왔다.

"광주 사람들이 하는 말이 '광주는 기독교의 성지다'라는 것도 있지만 '광주는 신천지의 성지다'라는 것도 있거든요. 엄청 큰 신천지 건물이 광주에 있어요. 신천지 신도들은 맨날 흰색 상의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다녀서 딱 알거든요. 퀴어 라이브 행사 때 그 사람들이 길 한쪽에 죽 서서 동성애 반대 피켓을 들더라고요. 근데 다른 쪽에서는 신천지가 아닌 개신교인들이 비슷한 피켓을 들고 서 있었어요. 개신교와 신천지가 '동성애 혐오'로 하나가 된 거죠."

맥락을 삭제한 '선정적'이라는 말

'5·18민주광장 팬티 축제 웬말이냐.'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피켓 문구였다. 실소와 불쾌함을 유발하는 이 문구는 역시나 퀴어 문화 축제가 선정적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딱히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닌 깨비의 눈에도,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의 혐오 메시지와 퀴어 문화 축제가 선정적이었다는 보수 교계 언론의 보도는 터무니없어 보였다.

"황당하죠. 직접 갔다 왔던 사람으로서. 그냥 다른 축제와 별다를 바 없어요. 저도 광주 퀴어 문화 축제가 선정적이었다는 보도를 봤어요. 저도 똑같은 장소에 있다 왔는데 (기사 내용이) 맞는 게 없더라고요. 이번 축제 때 사진도 아닌 걸 가져다 만든 기사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개신교인들이 이런 보도에만 노출되니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생각이 강화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유는 인권 운동 활동가로서 언론과 인터뷰할 때마다 퀴어 문화 축제를 '노출', '음란, '문란', '선정적'이라는 키워드와 연관 지은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런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문란함', '선정적'이라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게 궁금해서 인터넷에 '퀴어 축제 혐짤'이라고 검색해 보기도 했다. 그랬을 때 보이는 결과에서 그는 일정한 패턴을 발견했다.

"대부분은 남성으로 일컬어질 것 같은 분들이 여성이 입을 법한 옷을 입고 있는 사진들이 '혐짤'로 분류돼 있더라고요. 드래그 퀸이나 짧은 치마 혹은 망사 스타킹을 입었다거나 속눈썹을 길게 붙이는 화장을 했다거나. 그런데 이런 모습이 정말 선정적인가요? 이분들에게는 그것이 자기를 표현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인 거예요. 그리고 퀴어 문화 축제 당일 그렇게 입는 것은 축제를 즐기는 하나의 퍼포먼스일 수도 있는 거죠. 단순히 성별 이분법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보기 역겹고 선정적이라고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경우도 있어요. 광주에서는 본 적이 없지만 서울 퀴어 문화 축제 때 어떤 여성분이 상의를 탈의하고 계셨어요. 그분은 남성들만 상의를 탈의하는 게 용인되는 사회에서 여성에게도 상체를 드러낼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하는 일종의 인권 운동가였어요. 자기 몸매를 자랑하려고, 무슨 당장 성적인 행위를 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죠. 이런 이유를 이해하지 않고 맥락을 삭제한 채로 이야기하니까 선정적이고 문란하다고 하는 거예요."

제2회 광주 퀴어 문화 축제 전날 <전남일보>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의미로 제호를 6색 무지개로 발행했다. <전남일보>를 들고 있는 서유. 사진 제공 광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제2회 광주 퀴어 문화 축제 전날 <전남일보>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의미로 제호를 6색 무지개로 발행했다. <전남일보>를 들고 있는 서유. 사진 제공 광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또 한 가지 혐오 세력이 퀴어 문화 축제를 폄훼할 때마다 언급하는 것은 '성인 용품 전시 및 배부'다. 모든 축제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안전한 성생활을 위해 콘돔을 나눠 주는 부스가 있기도 하다. 반동성애 개신교인들은 "어떻게 청소년에게 콘돔을 나눠 줄 수 있느냐"고 민원을 제기한다. 이는 지방자치단체가 퀴어 문화 축제 장소를 내주지 않는 사유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청소년이 일반형 콘돔을 구입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성적인 행위들을 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규제가 돼 있는 것도 아니고, 그분들도 연애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몇 년 전에 청소년들이 콘돔을 구하지 못해서 비닐을 감아서 한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청소년들도 자신의 안전을 지킬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대한민국에 성교육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음란한 것이라고, 정숙하지 않다고, 더러운 것이라고, 감추고 덮기만 하는 게 오히려 문제죠. 퀴어 문화 축제는 다양한 인권을 이야기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청소년의 인권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예요."

차별을 차별이라 말할 수 있도록

광주는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에는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지 않았다. 2021년 제3회 퀴어 문화 축제는 영화제 형식으로 진행했다. 2022년에는 11월 21~26일 축제 대신 '퀴어 문화 주간'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 퀴어 문화 주간 선포식을 시작으로 토론회와 퀴어 영화 상영회, 디제잉 파티 등을 했다. 혐오 세력은 선포식 때 수십 명 정도가 차별금지법 반대 팸플릿을 나눠 주는 정도에 그쳤다. 극렬했던 1·2회 퀴어 문화 축제 때에 비하면 혐오 세력의 준동은 소소(?)했다. 주최 측은 광장을 빌릴 필요가 없었고, 1~2주 전 공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시대가 끝나 가는 지금, 다시 축제를 연다면 어떻게 될까.

"100% 아니 200% 또 몰려올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축제는 날짜와 장소가 정해지면 알리기 시작하잖아요. 저희는 숨기기 바빠요. 집회 신고가 확정될 때까지, 어디 경찰서에서 집회 신고를 할 건지도 극비예요. 이렇게까지 혐오 세력을 신경 쓰면서 축제를 준비해야 한다는 게 너무 슬플 따름이에요. 2회 때는 금남로4가 거리에 집회 신고를 끝내고 나니까, 혐오 세력이 윤장현 당시 광주시장 집무실까지 쳐들어갔어요. 무릎 꿇고 가랑이를 잡으면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할 정도였어요."

대형 무지개 깃발 아래로 '동의 없는 촬영 금지' 피켓이 보인다. 그러나 혐오 세력은 불법 촬영을 일삼았다. 사진 제공 광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대형 무지개 깃발 아래로 '동의 없는 촬영 금지' 피켓이 보인다. 그러나 혐오 세력은 불법 촬영을 일삼았다. 사진 제공 광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광주 퀴어 문화 축제가 좀 더 안전하게 열리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광주는 그나마 경찰이 퀴어 문화 축제 측에 협조적이라 혐오 세력을 잘 막아 주는 편이다. 주최 측은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고, 혐오 세력에게 피해를 당한 이들을 위한 긴급 상담을 지원하기도 했다. 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함께 '인권지킴이단'을 구성해 불법행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기도 했다. 깨비는 일반 참가자로서 말한다.

"더 없어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왜냐면 어지간한 건 다 하고 있거든요.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축제를 할 수 있을지, 그 방법을 한 사람이 아니라 조직위원회에서 얼마나 많이 생각했겠어요. 경찰도 있지, 만일의 사태에 필요한 일들도 조직위원회에서 다 하고 있는데…. 그냥 (혐오 세력과) 좀 더 거리가 멀었으면 좋겠다는 정도? 아예 버스를 대절해서 공간을 분리하든지 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경찰이 저희를 둘러쌌거든요. 저희 말고 그 사람들을 둘러쌌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가둬지는 게 너무 이상해요. 저희를 둘러싸고 있다 보니까 참가자들이 출입구 찾기가 힘들거든요. 경찰과 혐오 세력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으니까. 이 상황 자체를 타개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좀 더 근본적으로는 근거법이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평등법·차별금지법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더 근본적으로 차별과 혐오가 없어지면 좋겠죠. 그렇지만 지금까지 역사를 봤을 때, 어느 공간에서도 차별과 혐오는 빠지지 않았어요. 이런 차별과 혐오를 방지하고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문턱이 저는 평등법·차별금지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차별금지법으로 누구를 처벌하고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차별금지법이 있어야 '당신은 차별을 하고 있고, 나는 보다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법 제정이 지지부진하니까, 저희 인권지기 활짝에서는 일단 지역 단위에서라도 '차별 금지 조례'가 생기면 어떨지 제안해 보고 있어요. 법보다는 약하겠지만 일단 행정은 조례를 통해서 굴러가니까요. 행정적으로 차별을 금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거라고 기대하는 거죠. 저희 광주도 광장을 빌릴 때 되게 논란이 컸거든요. 이런 조례를 통해 행정적으로 거부할 만한 타당한 사유가 없도록 하는 것이 축제를 안전하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찰의 적극적 협조는 고마운 일이지만, 경찰은 언제나 퀴어 문화 축제 장소를 둘러싸고 있다. 서유는 경찰이 혐오 세력을 둘러쌀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진 제공 광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경찰의 적극적 협조는 고마운 일이지만, 경찰은 언제나 퀴어 문화 축제 장소를 둘러싸고 있다. 서유는 경찰이 혐오 세력을 둘러쌀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사진 제공 광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서유가 이야기한 것처럼 차별과 혐오가 아예 사라진다면 좋을 것이다. 더디지만 세상은 점점 퀴어 친화적으로 변하고 있다. 차별과 혐오의 시선 속에서도 자신을 드러내기를 택한 사람들, 그런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세상이 타락해 가는 것이 아닌 인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단지 법적인 제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별·혐오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안 된다. 차별과 혐오가 성소수자들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깨닫고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 서유와 깨비는 개신교인들에게 당부했다.

"저는 오늘 어느 퀴어 중 한 명으로 인터뷰에 온 거지만… 저 외에도 열 명 중 한 명은 있다, 당신 옆에 한 명은 있습니다. 내 주변에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내 가족, 내 지인이 성소수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그분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차별받지 않도록 한 번 더 생각하고 이야기해 주시고, 한 번 더 연대해 주시고, 한 번 더 함께 기도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건 제가 종교가 없어서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종교가 1순위가 아니셨으면 좋겠어요. 가치관을 바꾸라고 하는 건 너무 먼 얘기니까 그렇게까지는 못 하겠지만, 그 가치관을 드러내지만 않았으면 해요. 혐오를 생각할 수는 있지만 그걸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이런 말 해도 되나…. 예수님은 사랑으로 포용하라고 하셨으니, 그 정도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유와 깨비는 5월 17일 광주에서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서유와 깨비는 5월 17일 광주에서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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