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가 극우·보수 개신교인들의 퀴어 문화 축제 방해 역사를 톺아보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째 방해 행위를 일삼는 개신교인들은 이제 '혐오 세력'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습니다. 혐오 세력이라는 말에 기분 나빠하기 전에, 이들이 과연 어떻게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해 왔는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10년간의 방해 역사를 정리하는 한편, 현재 퀴어 문화 축제를 진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서울·대구·인천·춘천·광주·제주·부산·경남 등 8개 지역에서 퀴어 문화 축제를 준비하고 참여한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기사는 6월 26일(월)부터 30일(금)까지 매일 저녁 6시 2~3개씩 총 12개를 보도할 예정입니다. 이번 기획으로, 지난 10년간 자행돼 온 퀴어 문화 축제 방해 행위가 시민사회에서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기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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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문화 축제에 맞서 '진짜 사랑'을 알리겠다는 취지의 '제2회 레알 러브 시민 축제'가 2018년 10월 13일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광장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퀴어 문화 축제에 맞서 '진짜 사랑'을 알리겠다는 취지의 '제2회 레알 러브 시민 축제'가 2018년 10월 13일 부산 해운대구 구남로광장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우리는 평화 집회를 해야 합니다! 물리력 행사를 하지 말아 주세요! 만일 주변에서 그렇게 하면 말려 주세요!"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함성과 함께 '퍼레이드'가 시작했다. 교계 연합 단체, 유아차를 끈 가족, 이성 부부·커플, 교복을 입은 학생, 군복을 입은 군인이 다섯 대의 트럭 뒤에서 차례로 출발했다. '술=간암 담배=폐암 동성애=에이즈', '그릇된 성도착 에이즈 감염이란 총알이 장전된 위험한 자해 행위' 같은 자극적인 문구가 담긴 현수막이나 깃발이 곳곳에서 펄럭였다. 출발 전, 단상에 선 사회자가 "환하게 웃어 달라"고 당부했지만, 동성애 반대 구호를 외치며 1시간 넘게 행진한 이들의 표정은 대부분 굳어 있었다.

2018년 10월 13일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구남로광장에서 열린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 이름은 '제2회 레알 러브 시민 축제'였다. 개신교인 2000여 명이 참석해 부스 행사부터 공연, 퍼레이드까지 퀴어 문화 축제를 그대로 모방한 것처럼 진행됐다. 시민들에게 '진짜 사랑'을 알리겠다는 축제 취지를 강조하려는 듯, 단상에 선 사회자는 수시로 "충돌하지 말라", "우리가 가진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얼굴과 몸짓으로 보여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나가던 한 시민은 '항문 성교'라는 말이 들어간 문구를 보고 헛웃음을 쳤다. 여기저기에 놓인 성소수자 혐오 문구들은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2018년 레알 러브 시민 축제 맞은편에서 열린 제2회 부산 퀴어 문화 축제. 사진 출처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
2018년 레알 러브 시민 축제 맞은편에서 열린 제2회 부산 퀴어 문화 축제. 사진 출처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

경찰 병력을 사이에 두고 구남로광장 반대편에서는 제2회 부산 퀴어 문화 축제가 열렸다. 혐오 세력 집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지만 참가자들은 개의치 않은 듯 무지개색 깃발을 두르거나 흔들며 축제를 즐겼다. 이전과 달리 축제장에 난입하는 개신교인들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현장을 둘러보던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 하람(활동명)과 김혜연 사무국장은 '제2회 레알 러브 시민 축제'의 등장이 심상치 않았다. 이전까지 보수 개신교인들은 참가자들에게 린치를 가한다거나 돌발적으로 폭력을 저지르며 축제를 방해해 왔다. 모든 걸 치밀히 계획하고 제대로 형식을 갖춰 '축제'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되게 전략적이구나, 혐오 세력이 작정을 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퍼레이드도 풍선 같은 걸 만들어서 저희보다 훨씬 더 화려하게 했거든요. 코스도 실제로 저희랑 반대로 도는 경로로 거의 똑같게 짜 놓고요. 본인들 이미지를 잘 챙기면서 혐오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느낌이었어요. 예전처럼 저희를 압박하고 일방적으로 찍어 내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더 합리적이고 우리 말이 더 맞으니까 우리 얘기 한번 들어 봐' 이런 형태가 된 거죠. 그러니까 사실 누가 봐도 혐오 집회인데, 그냥 의견이 다른 집회처럼 보이는 느낌을 줬죠. 저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까 되게 치밀하다는 생각도 했고, 한편으로는 소름이 돋았어요." (하람)

"축제를 통해 '우리는 당신들을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걸 드러내려고 하더라고요. 2017년과 2018년의 간극이 컸던 것 같아요. 혐오의 방식이 처음에는 피켓을 들고 하는 1인 시위의 형태였다면, 2회부터는 정말 축제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어요. 우리 축제처럼 정말 무대에 올라가서 공연도 하고, 팸플릿도 만들고, 그 안에 부스를 만들어서 기독교 관련 서적 같은 것도 판매하고, 퍼레이드도 하고.

 

저희와 똑같은 형태로, 그러니까 '사랑하는 것 혹은 우리 존재는 잘못되지 않았고 문제도 되지 않는다'라는 걸 베껴서 '너라는 존재는 잘못됐다'라고 하는 건 혐오를 선택 사항으로 만드는 거잖아요. 실제로 지역 언론에서도 혐오하는 분들의 축제와 저희 축제를 하나의 의견이나 선택 사항으로 많이 그렸죠. 이게 부산에 살고 있는 성소수자·시민들의 생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걱정됐어요. 이게 다툴 만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 아닐까. 우리가 퀴어 문화 축제를 여는 이유는 성소수자의 존재와 우리가 옳다는 걸 드러내는 거였는데, 어떻게 보면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고민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김혜연)

2018년 레알 러브 시민 축제장 곳곳에 걸린 현수막. 이는 비과학적일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문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2018년 레알 러브 시민 축제장 곳곳에 걸린 현수막. 이는 비과학적일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혐오를 조장하는 문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레알 러브 시민 축제의 등장

부산 퀴어 문화 축제는 2017년 처음 시작했다. 부산성소수자인권모임 QIP를 주축으로 꾸려진 제1회 부산 퀴어 문화 축제는 2017년 9월 23일 해운대역 구남로광장에서 열렸다. 집회 신고는 700명을 했는데 실제로 온 건 수천 명이었다.

이 당시 보수 개신교인들은 퀴어 문화 축제 장소 인근에 모여 '레알 러브 시민 축제'를 열었다. 단상에서는 청소년들의 난타, 재즈 댄스, 태권도 등 공연과 반동성애 강사·목회자들의 혐오 발언이 한데 뒤섞여 진행됐다. 축제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방해 집회를 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몇몇 사람은 퀴어 문화 축제 장소에 들어와 손에 든 부채로 참가자들의 머리를 때리고 지나가기도 했다. 성조기와 태극기를 건 승합차와 트럭은 축제장 인근을 돌며 "동성애를 하면 에이즈에 걸립니다"라는 멘트를 줄줄 반복했다.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방해는 더 극심해졌다. 행진 경로에 일렬로 붙어 선 개신교인들은 피켓을 들고 동성애를 반대한다며 소리를 질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행렬에 난입하려는 시도도 몇 차례 있었다. 곳곳에서 혐오가 빗발쳤지만 그중에서도 하람 사무국장이 기억하는 장면이 있다. 한 아이가 도로 한복판에서 안대를 하고 헤드셋을 낀 채로 혐오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보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표시였다.

"그게 과연 그 아이의 의사였을까…. 너무 불안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퍼레이드를 하면 보통 못해도 1~2시간이 걸리는데, 그 시간 내내 아이가 그걸 끼고 도로에 서 있을 걸 생각하니까 '괜찮을까' 걱정이 많이 됐어요. 저희가 싫어서 본인들이 그렇게까지 나와서 반대하겠다는 건 알겠는데, 아이한테까지 굳이 그렇게 했어야 하나. 너무 심하지 않나. 그거야말로 아동 학대 아닌가. 저한테 좀 충격적이었던 장면이었어요."

1회 부산 퀴어 문화 축제 당시 보수 개신교인들은 1인 시위를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일렬로 붙어 서서 축제를 방해했다. 사진 출처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

이날 보수 개신교인들은 혐오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축제를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무지개 옷을 입고 무지개 깃발을 든 참가자들의 눈앞에서 위협적으로 사진을 찍어 갔다. 기획단 사람들이 수시로 경찰과 소통하며 이들을 제지했지만 손쓸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결국 하람 사무국장은 1회 축제가 끝나고 아웃팅을 당했다.

"축제가 끝나자마자 집에서 전화가 왔어요. 제가 그때까지 어머니한테 커밍아웃을 안 했었거든요. 어떻게 알게 됐냐고 하니까 개신교인인 외숙모가 제 얼굴이 나온 사진을 보고 바로 어머니한테 연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왜 걔가 거기 있느냐', '이러이러한 축제인데 아느냐'라고요. 소름이 돋았죠. 그분은 축제에 오신 게 아니었거든요. 저희 얼굴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이 실시간으로 돌아다닌다는 얘기였죠. 다행히 누나들이 어머니께 설명을 잘해 줘서 이해를 받긴 했는데, 제가 의도하지 않은 채로 아웃팅이 된 거죠. 그때 혐오 세력의 사진이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알게 됐어요. 실제로도 1회 축제가 끝나고 나서 청소년분들이 집에서 쫓겨났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하람 사무국장은 이전까지 개신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사랑을 이야기하는 종교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축제에서 혐오 세력을 마주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개신교인들의 행태는 사랑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성소수자로 살면서 일상적으로 차별을 느껴 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혐오를 표면으로 드러낸 건 개신교인들이 처음이었다.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건 '이웃하고 잘 지내야 해', '사랑해야 해' 이거잖아요. 그래서 처음 이 혐오를 마주했을 때 '이게 개신교에서 봐도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성경도 찾아봤죠. 보니까 생각보다 안 되는 게 많더라고요. 죄지은 사람은 돌로 찍어 죽이라고 하고, 무슨 고기, 어떤 섬유는 안 된다고 하고. 반면 성소수자가 나오는 내용은 전체로 치면 한 페이지도 안 될 정도로 짧았어요. 이분들이 과연 다른 내용들은 다 지키고 있나 싶더라고요.

 

안 되는 것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성소수자만 걸고넘어지나요.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해서 차별과 혐오를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돼요. 필요하면 취하고 아니면 버리고, 요즘 말로 '내로남불' 아닌가요. 그리고 반대 집회에는 저희가 흔히 말하는 '역사적 퀴어'의 작품들, 예를 들면 차이콥스키 노래가 나온다든지 하거든요. '왜 퀴어들이 만들어 낸 걸 쓰면서 퀴어들을 거부하는 거지' 이런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되게 웃기고, 모순적이라고 느껴져요."

하람 사무국장은 개신교인들의 행태가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제1회 때부터 부산 퀴어 문화 축제에 참가하고 있는 운주(활동명)는 다른 지역 축제들도 여러 번 다니며 혐오 세력을 대하는 내공이 쌓였다. 혐오 세력이 욕을 하거나 위해를 가할 때는 직접 대응한다. 불법 촬영을 하고도 발뺌하는 이들과 몸싸움을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는 이들이 허위·왜곡 정보를 바탕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축제에 참가할 때면 항상 혐오 세력을 마주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던 개신교인 친구가 있었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를 하다가 개신교인들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을 보여 줬어요. 거의 뭐 맨날 '게이 찜방' 이런 동영상이 계속 올라오더라고요. 반동성애 집회가 언제 열리는지 일정을 공유하고 되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봤어요. 그때 그 친구가 했던 말은 '사실 나는 그나마 너라는 접점이 좀 있어서 이렇게 얘기를 나눌 수는 있겠다'였어요. 근데 자기 주위 사람들은 이 동영상을 정말 곧이곧대로 믿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축제에서 저희를 위협하는 사람들하고는 같이 엎치락뒤치락해요. '왜 당하고만 있어야 하지' 싶어서. 근데 무서운 건 맞는 것 같아요. 누가 저를 해치려고 하는데 당연히 무섭죠. 한편으로는 퍼레이드를 하다가 혐오 피켓을 들고 계신 분들을 빤히 쳐다볼 때가 있어요. 그러면 그분들은 십중팔구 눈을 돌려 버려요. 저는 그 심리가 뭔지 항상 궁금해요.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는 못하지만 반대한다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뭐가 있는 건지 궁금한 거예요. 퀴어 문화 축제에 가면 항상 보수 개신교인들이 자기가 뭘 말하는지, 뭘 욕망하는지, 어떤 욕망을 반대하는지도 모르고 무언가를 외치는데, 온갖 난잡한 게 다 섞여 있잖아요. 그분들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 같은 느낌이 들죠."

운주는 청소년 시절 강제로 아웃팅을 당한 후 가정에서 폭력을 겪었고, 일상이 분절되는 경험을 하며 성인이 됐다. 그렇기에 그는 1년에 단 하루지만, '광장'에서 열리는 퀴어 문화 축제가 큰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공적인 공간에서 '성소수자인 우리가 있다'는 걸 계속 이야기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랑'을 외치며 퀴어 문화 축제를 방해하는 개신교인들이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한다.

"예전에 사랑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어원이 궁금해서 찾아본 적이 있어요. 어원이 정말 다양했는데, 제가 눈길이 갔던 건 사랑이 '사량思量'이라는 말에서부터 나왔다는 거였어요. '생각할 사' 자에 '헤아릴 량' 자인데,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고 헤아린다, 지레짐작이라도 해 본다는 거겠죠. 상상하게 만들고 상대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힘,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근데 개신교 분들이 '사랑하니까 반대한다'고 하는 건…. 저는 솔직히 단호하게 '그건 사랑이 아니다'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당신들의 두려움을 투사하지 말라'는 얘기가 더 정확한 것 같아요."

운주는 1년에 단 하루지만 광장에서 열리는 퀴어 문화 축제가 큰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운주는 1년에 단 하루지만 광장에서 열리는 퀴어 문화 축제가 큰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부산의 한 대형 교회에 다녔던 김혜연 사무국장은 보수 개신교인들이 성소수자들에게 내비치는 혐오가 낯설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동성애는 안 된다', '성경에 나쁜 것이라고 적혀 있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라 왔다. 일찌감치 커밍아웃했던 것도, 성소수자 존재를 지우고 정죄하는 이들 사이에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축제장 인근에서 확성기를 들고 반동성애를 외치는 개신교인들의 모습을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신앙의 끈을 아예 놓지는 않았지만, 혐오 세력을 마주한 뒤로는 교회에 다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믿는 같은 신을 믿고 있는 분들이, 우리는 형제자매라고 하던 분들이, 저렇게 와서 성경에 쓰여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 모두를 부정하는구나 싶어서 참 슬펐어요. 제가 알고 있던 개신교는 역사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돕고자 선행을 많이 했거든요. 구호 활동도 참 많이 했고요. 근데 이제 그런 활동은 줄어들고, 자극적이고 교세를 결집할 수 있는 요소만 계속 찾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부산에서 살면서 여러 가지 집회나 행사를 보면, 보수 개신교인분들이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반대하시는 경우가 되게 많았어요. 노인·어린이 같은 취약 계층 또는 사회적으로 보호받고 더 논의해야 할 존재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개신교 목사님들이나 교회를 봤을 때 자동으로 '혐오 세력'이라고 치환되기는 해요. 제 주변에도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교회는 못 가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되게 많고요. 이런 모습을 볼 때, 지난 10년이 아니라 5년만 돌아보더라도 개신교는 모든 사회적 소수자들을 배제하고 있는 길로 가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그 결말은 절대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혜연 사무국장은 개신교가 사회적 소수자를 배제하고 있다고 느낀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국제 알몸 마라톤 대회는 선정적인가

1회 '불허'. 2회 '불허'. 3회 '불허'. 부산에서 보수 개신교인의 축제 방해 행위만큼이나 심각한 건 지자체의 차별 행정이었다. 해운대역 구남로광장은 차가 다니지 않지만, 지목상 도로이기 때문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구청의 도로점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해운대구청은 2017·2018·2019년 내내 부산 퀴어 문화 축제의 도로점용을 불허했다. 기획단의 연이은 구청 방문에도, 담당 직원은 '성소수자라서 안 된다'며 신청서를 아예 수리하지 않았다. 집회 신고를 마친 기획단은 예정대로 축제를 열었지만, 해운대구청은 기획단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김혜연 사무국장을 형사 고발했다.

"처음 저희가 생각했던 장소는 사실 해운대 또는 광안리 바다 앞이었어요. 함께 융합하고 즐길 수 있는 부산의 특색을 살리자는 취지로요. 장소를 선정하기 위해 구청 담당자와 여러 번 얘기를 했는데, 여기저기 뺑뺑이를 돌리더라고요. '그건 부산시민광장으로 가야 한다', '송상현광장으로 가야 한다', '그쪽에다 연락을 해 봐라' 하면서요. 그래서 모든 광장에 다 신청해 봤어요. 답은 똑같더라고요. '안 됩니다', '성소수자? 그건 안 됩니다'라는 얘기를 실제로 듣기도 했어요. 오랜 시간 품을 들였는데 단지 성소수자여서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정한 곳이 구남로광장이었죠. 여긴 버스킹을 신청제로 받고 있어요. 그동안 다른 축제도 여러 번 열렸고요. 그런데도 해운대구청에서는 구남로가 도로이기 때문에 축제는 안 된다는 말이 돌아왔죠." (김혜연)

"구남로광장이 도로라서 축제를 열 수 없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돼요. 차가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마술 축제라든지 코믹 축제 같은 것들도 열었거든요. 나중에는 해운대구청이 '공익성 있는 행사만 가능하다'고 불허 이유를 추가하더라고요. 근데 2017년에 구남로광장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의 토크 콘서트가 열렸어요. 저희가 '이건 공익이 아니라 특정 정당의 의견이 아니냐, 이런 행사는 어떻게 허가를 해 주는 거냐'고 물으니까, 구청에서는 '그 당시 시장이 허가해 줬기 때문에 공익 행사다'라는 식으로 답변하더라고요. 이건 형평성에 맞지 않죠." (하람)

부산 퀴어 문화 축제는 2017·2018·2019년 모두 해운대구 구남로광장 도로점용을 불허받았다. 사진 출처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
부산 퀴어 문화 축제는 2017·2018·2019년 모두 해운대구 구남로광장 도로점용을 불허받았다. 사진 출처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

2019년 3회 부산 퀴어 문화 축제는 열리지 않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혐오 세력의 방해 수위가 거세지고, 구청과 경찰도 축제 부스가 설치되면 행정대집행을 하겠다고 예고할 정도로 비협조적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축제를 강행했다가는 참가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기획단은 2019년 8월 19일로 예정됐던 제3회 퀴어 문화 축제를 취소하고, 대신 한 달 후 '전국 퀴어 총궐기'를 열어 구남로광장을 무지개로 물들였다.

이 같은 지자체 불허의 배경에는 보수 교계의 민원과 압력이 있었다. 당시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퀴어 문화 축제에 대해 반대하는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기독교 단체에서 반대 집회를 예고했고, 양측이 충돌할 경우 이들의 안전을 담보할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 반대 민원의 주된 내용은 퀴어 문화 축제가 외설스럽고 선정적이어서 아동·청소년의 정체성에 혼란을 준다는 것이었다.

2018년 열린 '제2회 레알 러브 시민 축제'에서도 보수 개신교인들은 어김없이 '동성애 음란 축제'라는 구호를 외쳤다. 몇몇 보수 언론은 한 부스에서 제작한 적도 없는 성기 모양 쿠키를 만들었다며 허위 보도를 했다. 경찰은 '옷을 벗지 말라. '하네스를 착용하지 말라'는 참가자 복장 지침을 기획단 소셜미디어에 올려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2018년 레알 러브 시민 축제에 참가한 개신교인들이 '동성애 음란 축제 NO!'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2018년 레알 러브 시민 축제에 참가한 개신교인들이 '동성애 음란 축제 NO!'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퀴어 문화 축제는 외설스럽다'는 주장은 성소수자가 문란할 것이라는 편견에서 나온다. 성소수자를 성적인 시선으로만 바라 보기 때문이다. 김혜연 사무국장은 이 같은 시선이 결국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라고 생각한다. 모든 성소수자가 외설스럽고 문란하다면, 이성애자는 플라토닉하기만 한가. 그는 되묻고 싶다. 또한 이는 무성애 등 다양한 성적 지향 스펙트럼을 가진 성소수자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혐오 세력의 눈에 우리의 사랑은 이탈, 반항, 성욕에 불과한 것 같아요. 성소수자들은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서로를 탐하기 때문에 죄라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성욕이 없을 수도 있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좋아할 수도 있어요. 사랑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런 것들은 다 제하고 무조건 '너희들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이랑 다르니까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거죠. 하지만 이성애자분들도 사랑의 형태와 이유는 다 다른데, 그 다름에 대해서는 서로 잘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왜 굳이 성소수자의 사랑은 그렇게 다 낱낱이 쪼개서 얘기를 해 줘야 하는 걸까요? 우리는 무조건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걸까요?"

성소수자를 이해해 달라고 요구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하람·운주는 퀴어 문화 축제가 선정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축제에 와서 직접 보고 판단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축제의 주인공들이 축제 장소에서 마음껏 즐기는 것을 두고 외부인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운주는 휴대폰을 꺼내 잠시 검색해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2019년에 제27회 대관령 눈꽃 축제 국제 알몸 마라톤 대회가 있었네요. 그런데 여기 기사를 보니까 조건이 '남성 참가자들은 반드시 상의를 벗어야 하며, 여성 참가자들의 복장에는 제한이 없다' 이렇게 돼 있어요. 지자체에서 진행한 듯한 이 국제 알몸 마라톤 대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외설스러운 게 도대체 뭔가요?"

하람·김혜연 사무국장과 운주를 6월 1일 부산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하람·김혜연 사무국장과 운주를 6월 1일 부산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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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퀴어 문화 축제는 올 한 해 더 쉬어 간다. 그동안 개인의 역량과 시간, 돈을 할애해 축제를 이어 왔다. 매번 혐오 세력의 방해와 지자체의 차별에 부딪히며 많이 지쳤다. 기획단은 축제를 왜 열어야 하는지, 축제가 아니라 성소수자 차별적인 법과 제도에 맞서 싸우는 게 급선무가 아닌지 고민과 토론을 거듭했다. 당분간은 그 고민을 견고히 다져 가려 한다. 김혜연 사무국장이 말했다.

"부산 특색에 맞게끔 축제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것도 하나의 일이잖아요. 처음에는 뭘 고민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니까 하나하나 다 찾아서 만들어 나가는 작업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축제를 계속하면서 '우리가 축제를 왜 열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됐어요. 내부적으로도 '축제가 아니라 사실 나가서 싸워야 하는 건 아닐까' 같은 토론이 많이 이뤄졌죠. 축제에 많은 품이 들어가는데, 어쩌면 그 품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등에 집중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해서요. 근본적으로 부산 퀴어 문화 축제의 특징은 '운동성'이라고 생각해요. 운동의 한 방식으로 축제를 선택했고요. 그냥 놀기만 하는 축제가 아니라 잘 싸우기 위해, 어떻게 축제를 구성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퀴어 문화 축제는 성소수자들이 미래를 발견하고 함께 꿈꾸는 장소다. 2018년 부산 퀴어 문화 축제에서 퍼레이드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 출처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
퀴어 문화 축제는 성소수자들이 미래를 발견하고 함께 꿈꾸는 장소다. 2018년 부산 퀴어 문화 축제에서 퍼레이드하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 출처 부산퀴어문화축제기획단

언제 어디서든, 반드시 축제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부산 퀴어 문화 축제는 지속될 것이다. 하람 사무국장은 존재가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명제가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교육되고 법률로 보장되는 날까지 퀴어 문화 축제가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와 관련해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제가 부산 퀴어 문화 축제에서 기억이 남았던 게, 축제가 끝날 때쯤 할아버지 두 분이 손을 잡고 가셨어요. 그 모습에서 저는 삶의 지속성, 가능성을 봤어요. '내 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요.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들을 보면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나이대가 되게 다양해요. 그럼 청소년 퀴어분들도 '내가 살아도 괜찮구나' 혹은 '성장한 퀴어도 있구나'라는 걸 보게 되는 거죠.

 

흔히 저희 말로는 '퀴어뽕'이 찬다고 하는데, 이 축제가 단순히 즐겁게 놀고 끝나는 것이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는 삶이 계속 이어질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도 있어요. 물론 사회에서 예전보다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가 많이 공유되고 있죠. 하지만 성소수자 개개인의 삶이나 본질적인 고민에 대해서는 아직 한국 사회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청소년 퀴어뿐만 아니라 서로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장이 아닌가 싶어서, 저는 축제가 계속 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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