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과 나눔의집협의회가 3월 5일 최근 잇따라 세상을 떠난 성소수자들을 추모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의평화사제단·나눔의집협의회는 '故 변희수 하사의 별세를 애도하며'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자신들이 속한 대한성공회부터 성소수자 길벗에게 '안전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을 동등한 신자이자 교회 구성원으로 맞이하고 동행할 수 있도록 애쓰고,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공격받을 때 함께 분노하며 싸우겠다고 했다.

그동안 성소수자를 향해 반복돼 온 한국교회의 혐오와 차별, 삭제와 모욕, 저주를 기억한다고도 했다. 이런 혐오 때문에 동지의 죽음에도 마음껏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있을 성소수자 길벗을 기억하며 "대한성공회 안팎의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애도와 사죄의 마음을 전한다. 그대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숱한 사회적 타살 앞에서 슬피 울고 있는 하느님의 눈물과 더불어, 우리는 당신들 편"이라고 했다.

정의평화사제단·나눔의집협의회는 교회의 이름으로 혐오·차별·배제를 선택하는 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적극적 배신"이라고 했다. "교회의 이름 또한 혐오와 차별일 수 없다고 믿는다. 하느님과 동행하는 길은 '환대와 연대, 은총과 사랑'이라고 믿는다"며 "세계 성공회가 일관되게 지켜 온 '성소수자 길벗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반대한다'는 지향을 계속 지키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는 지지부진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리스도교가 지향해 온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도 어긋남이 없다. 그러니 '사회적 합의'라는 수사 뒤에 숨거나 주저하지 말고 법 제정에 앞장서라. 차별금지법 제정은 생명을 지키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아래는 성명서 전문.

"혐오와 차별, 삭제와 모욕으로 얼룩진 세계와 교회를 떠난 이들을 애도합니다."
- 차별금지법 제정은 생명을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는 별세한 故 변희수 하사를 기억합니다. 故 이은용 작가와 김기홍 활동가를 기억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단 한마디 말로 규정될 수 없는 사람들임을 기억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평등한 모두가 누려야 할 존엄과 권리를 위해,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임을 기억합니다.

또한 이런 성소수자 길벗들을 향해 신과 교회의 이름으로 반복되어 온 혐오와 차별을 기억합니다.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아무렇지 않게 반복되고 있는 삭제와 모욕, 저주를 기억합니다. 그 앞에서 마음껏 슬퍼하거나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고 있을 성소수자 길벗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 땅의 그리스도교 교회, 특히 대한성공회 안팎의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애도와 사죄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대들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숱한 사회적 타살 앞에서 슬피 울고 있는 하느님의 눈물과 더불어, 우리는 당신들 편입니다.

▹우리는 믿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믿고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믿는 우리. 우리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획일화가 아닌 다양성으로 이뤄져 있다고 믿습니다. 하느님은 물론, 그 하느님과 동행하는 교회의 이름 또한 혐오와 차별일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 하느님과 동행하는 길은 '환대와 연대, 은총과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들의 하느님'이 먼저 보여 주신 그 환대와 은총, 연대와 사랑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어 교회의 이름으로 사는 우리가 혐오와 차별, 배제를 선택하는 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적극적인 배신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세계 성공회가 일관되게 지켜 온 '성소수자 길벗들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반대한다'는 지향을 계속 지키겠습니다. 나아가 하느님의 창조 세계 안에 존재하는 성소수자 길벗들과 차별 없이 동행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돌아보겠습니다.

▹우리는 행동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한 대한성공회부터 성소수자 길벗들에게 '안전한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 시혜적 태도나 허용적 입장이 아닌, 동등한 신자이자 교회 구성원으로 맞이하고 동행할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또한 성소수자란 이유만으로 목소리를 빼앗기거나 공격 받을 때 함께 분노하며 싸우겠습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의 언어와 개념 가운데 '성별 이분법과 성 역할 고정'을 강화하는 요소가 없는지 살피고 토론하며 변화시키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길고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그리스도교는 어쩔 수 없이 길고 긴 한계와 편견을 갖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일하심을 통해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은 당신의 환대와 은총, 사랑과 연대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렇게 세계 성공회는 '사람들의 찬반과 다수결'로 결정해야 한다고 믿었던 노예 제도 폐지, 여성의 참정권, 인종차별 철폐 등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늦은 결정으로 부당하고 억울한 날들을 보냈던 상대적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에게 깊은 사죄와 반성을 전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대한성공회에서 그와 같은 늦은 결정과 후회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하며 행동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참 하느님은 참 사람'이심을 믿는 우리는 '인권은 다수결이 아닌 존엄과 평등의 문제'임을 기억하며 인권을 위해 행동하는 이들과 함께하겠습니다. 최근에 반복되는 애통한 소식들 앞에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에 기억하며 추모해야 할 이름이 더 많아지지 않도록, '환대와 사랑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함께 싸우겠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생명을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요구합니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한시라도 빨리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십시오. 평등의 원칙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그리스도교가 지향해 온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회적 합의'라는 수사 뒤에 숨거나 주저하지 말고 법 제정에 앞장서십시오. 차별금지법 제정은 생명을 지키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앞장서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호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유를 통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대우 받는 사람'에게 한 것이 바로 당신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평등한 존재인데, 우리 사회와 교회, 당신이나 나의 한계와 편견으로 인해 '보잘것없는 취급 받는 사람'에게 한 것이 바로 '우리들의 하느님'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한 것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40)

다시 한번 그리스도교 교회, 특히 성공회 안팎의 성소수자 길벗들에게 깊은 애도의 마음과 하느님의 눈물을 전합니다. 그리고 대한성공회부터 성소수자 길벗들에게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도록 앞장서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3월 5일(금), 故 변희수 하사의 별세를 애도하며.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나눔의집협의회(노원·성북·인천·봉천동·수원·포천·용산·동두천·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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