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기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담실에서만이 아니라 상담실 밖에서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심리 상담사로서 성소수자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겠습니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심리 상담사들이 3월 11일 온라인 페이지를 열고 연대 메시지를 띄웠다. 17일 오전 10시 기준, 페이지에는 포스트잇 메시지 1746개가 올라왔다. 심리 상담사들은 지난 10일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심리 상담사들이 공개적으로 성소수자 지지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상담심리학회와 한국상담학회 소속 심리 상담사 600명과 심리 상담 단체 5곳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심리 상담사들은 이은용 작가, 김기홍 전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변희수 하사 등 최근 잇따른 죽음을 추모하며 연대하고자 나섰다고 했다. 이들은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고 회복을 돕는 심리 상담사로서 세 분의 죽음에 슬픔과 책임을 느낀다"며 "성소수자의 자살은 개인적 선택이 아닌,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모든 사회 구성원과 구조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할 사회적 타살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명에 동참한 이들 중에는 기독교인 심리 상담사도 있다. 15년째 내담자를 만나 오며 현재 개인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50대 상담사 A다. 성소수자 혐오 1번지로 꼽히는 교회에는 여전히 '동성애=죄'라는 인식이 팽배한 상황. 그럼에도 기독교인으로서 성소수자를 지지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궁금했다. 한국교회의 혐오가 성소수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심리 상담 전문가는 어떻게 설명할까. 16일 오후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A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내용은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기독교인 심리 상담사 A는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을 대했던 것처럼 교회가 성소수자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기독교인 심리 상담사 A는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을 대했던 것처럼 교회가 성소수자를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성명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뭔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심리 상담사는 성소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말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이다. 성소수자가 너무 힘들어서 상담실에 왔는데 상담자가 받아 주지 않으면 엄청난 상처이지 않겠는가. 물론 상담사 중에도 여전히 성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상담사가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나처럼 기독교인이면서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 성명을 낸 과정과 이후 반응이 궁금하다.

변희수 하사 사망 후 심리 상담사 단체 채팅방에서 한 상담사 분이 '우리 상담사들이 그들을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성소수자 지지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싶거나 성소수자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이 방을 따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100명이 넘는 상담사가 모였고, 그 후로도 많은 상담사들이 모여 성명을 냈다. 성명을 보도한 기사에는 부정적인 댓글이 많이 달렸다. 나는 당사자도 아니고 단지 서명만 했을 뿐인데 혐오 댓글을 보니 몸이 다 떨리더라. 성소수자들이 왜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하게 되는지 이해했다.

- 상담을 하며 성소수자 내담자를 만난 적이 있나.

출산·육아로 쉰 시간을 빼고도 15년 이상 상담을 해 왔지만 자신을 성소수자로 정체화한 사람을 만난 적은 없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성소수자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내 주변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성소수자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내담자를 만난 적이 있다. 2년 반 동안 상담을 진행했는데, 어릴 때부터 지속적인 따돌림을 당해 우울증과 대인 관계 공황까지 겪고 있었다.

- 어떤 계기로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

다행히 상담이라는 일의 특성상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심리 상담사들이 모인 채팅방에서 성소수자 관련 정보가 오가는 것을 봤다. 처음에는 나도 불편했다. 소수 의견이라고 여겼다. 내 신앙과 성소수자 관련 정보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상담사로서 성소수자 이슈를 잘 알고 신앙적으로도 정립해야 어떤 성소수자를 만나더라도 편견 없이 상담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이후 여러 자료를 공부하며 생각을 바꿨다.

- 과학적으로 받아들여도 신앙적으로는 여전히 '죄'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렸을 때부터 보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그때는 예배당에서 드럼을 쳐도 되는지, 주일에 소비해도 되는지 같은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교회를 보면 모든 악기를 동원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일에) 점심도 사 먹는다. 한국교회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이를테면, 성경에서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할 바에야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뛰어들라고 하는 말씀을 읽고 진짜 바다에 몸을 던지는 사람은 없다. 오른쪽 눈이 죄를 저질렀을 때 실제로 눈을 빼내 버리지도 않는다.

남색하지 말라는 구절이나, 사람을 여자와 남자로 만들었다는 창세기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당연히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성경이 현대사회 모든 문제를 다루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는 과학적 지식이나 상식 또한 모두 성경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다. 교회에서 유독 여성성·남성성·반동성애에 집착하는 이유는, 다른 이야기를 했을 때 기독교 혹은 자기 신앙 기반이 흔들린다는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기독교인들은 동성애를 자신들이 유일하게 '저지르지 않을 죄'라고 여긴다. 다른 죄는 저지르고 살면서 정작 십계명에 나와 있지도 않은 동성애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취한다. 교회는 죄 문제를 건드려서 교인들을 권위에 복종하게 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절대 짓지 않을 죄를 짓는 대상으로 성소수자를 상정하고 이들에게 분노를 쏟아 내는 것 같다.

2019년 퀴어 문화 축제에서 한 기독교인이 퍼레이드 트럭을 막아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2019년 퀴어 문화 축제에서 한 기독교인이 퍼레이드 트럭을 막아 경찰의 제지를 받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학계에서는 이미 기각됐지만, 보수 기독교계에서는 여전히 성적 지향이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상담, 성령 체험, 성경 공부 등을 통해서 변화가 가능하다고도 한다. 상담사로서 이러한 치료(전환 치료 등)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성적 지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타고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과학적 지식을 받아들이려는 용기가 없어 계속 성경에 근거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자료를 접해 보면 이미 통계적·과학적·의학적으로 반증된 정보가 너무 많다. 결국 무지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들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 성적 지향 때문에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을 겪는다는 주장도 있는데.

성소수자의 정신 질환은 성적 지향 그 자체가 아니라 주변 환경에서 오는 차별과 폭력 때문인 경우가 많다. 성별을 여성·남성으로만 분류하는 사회 분위기 안에서 성소수자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수용받지 못하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당연히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성소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다.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소수자 기독교인들은 교회 공동체에서 자신을 부정하는 말을 끊임없이 들으며 정신 질환이 심화되는 경우가 있다.

- "반대하지는 않지만, 동성애는 죄다", "사람을 미워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 옆에 나타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도 있다.

일단 성소수자와 관련한 전문 서적 딱 한 권만 읽고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동성애를 왜 죄라고 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어떤 근거로 동성애를 반대하는지 그들의 생각을 들어 볼 필요도 있다. 아마 분명히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성경이 천지창조, 여자와 남자 창조, 동성애 금지를 말하고 있다고. 그러면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죄는 안 짓고 사는지, 성경에 죄짓고 살면 네 몸을 상하게 하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한 번이라도 자기 눈을 찔러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 성소수자들을 대하는 교회의 태도는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은 그 시대 문화 속에서 죄인이라 지탄받고 소외당한 자들 곁에 계셨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간음한 자이므로 예수님은 그를 돌로 쳐 죽여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을 달라 하시며 사람대접해 주셨다. 그 시대에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세상에 함께 어우러져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했던 것처럼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해야 한다. 특히 교회라면 갈 곳 없는 성소수자를 더 수용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그 길조차 차단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하지만 드럼 사용 여부로 논쟁하던 교회가 변한 것처럼,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태도도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2019년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무지개예수 성직자들은 성소수자 축복식을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2019년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무지개예수 성직자들은 성소수자 축복식을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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