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비친족 가구원은 58만 3438명에 이른다. 2010년에 발표한 47만 9120명에 비해 10만 명 가까이 증가했다.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들은 이 비친족 가구에 해당한다. 함께 살고 있지만 혼인 및 혈연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민법 제779조 및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에 명시한 가족의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회 변화와 함께 사실혼에 대한 법적 보호는 점차 확대해 왔다. 하지만 민법에서 인정하는 혼인과 동등한 지위를 지니는 건 아니다. 양육과 돌봄, 아동 학대, 가정 폭력 등 실생활과 밀접한 영역에서 차별받는 지점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여성가족부는 2018년부터 관련법인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2003년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은 우리 사회의 가족 정책과 관련해 '기본법' 역할을 한다. 여성가족부가 5년마다 '건강 가정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도록 하는 근거가 된다. 또 위기 가족 긴급 지원, 가족 문화 발전 등 가족과 관련한 사회제도 보완과 체계적인 가족 정책 추진의 근간이 되는 법이기도 하다.

법 제정 직후부터 여성·시민사회 단체들은 법안 개정을 요청해 왔다. 먼저 법안 이름에 있는 '건강 가정'을 수정해야 한다고 했다. 부모와 미혼 자녀들로 구성된 이른바 '정상 가족'만 건강한 가정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한부모·미혼모 가정 등은 온전하지 못한 가정으로 비춰지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도 이 같은 이유로 법안 이름 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보수 개신교계와 반동성애 진영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직후부터 반대 운동을 벌였다. 개정안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보수 개신교계와 반동성애 진영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반대 운동을 벌여 왔다. 개정안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이 법안 3조 1항 '가족'의 정의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조항을 보면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종 사유로 결혼하지 못한 동거 커플, 즉 사실혼 관계에 있는 비친족 가구나 집단생활을 하는 이들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비친족 가구는 이미 가족처럼 친밀한 생활을 유지하고 납세의무를 다하고 있지만, 사회복지 제도 특히 양육·돌봄과 관련한 영역에는 혜택에서 제외돼 왔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정춘숙 의원은 각각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동안의 문제의식을 반영해 가족의 정의를 빼고, 법안 이름도 '건강 가정' 대신 '가족 정책' 혹은 '가족 지원' 같은 구체적이고 중립적인 용어로 대체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부모·미혼모 가족이 받는 낙인과 차별을 예방하고자 '가족 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 금지' 조항도 넣었다.

개정안 놓고 또 '확대해석'
이미 있는 용어도 "LGBT 위한 것"
한교총도 성명 발표하고 국회 압박

복지 구멍을 메우기 위한 법안 개정 작업은 부침을 겪고 있다. 보수 개신교와 반동성애 진영이 조직적 반대 운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족 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 금지'가 동성 커플 차별 금지를 위한 포석이라고 주장하면서 남인순 의원의 개정안을 반대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1일 입법 예고한 이 법안에는 의견 제출 마감 기한인 같은 달 20일까지 1만 2000건이 넘는 반대 의견이 달렸다.

반동성애 진영은 법안이 개정되면 동성 결혼 합법화의 문을 열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적극 반대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에 앞장서 온 진정한평등을바라며나쁜차별금지법을반대하는전국연합(진평연)은 2월 8일 자 <조선일보>에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반대 광고를 게재했다. 9일에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홍익대 법대 음선필·강봉석 교수는 기자회견에서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명시적 규정은 없다", "개정안 자체를 보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는 근거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도 "이 법안의 몇몇 조항 및 개정 방향으로 볼 때 향후 동성 결혼 합법화로 가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앞뒤 안 맞는 주장을 펼쳤다.

'다양한 가족'이라는 말이 결국 동성 커플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건강가정기본법에는 이미 '다양한 가족'이라는 단어가 4번이나 등장한다. 그동안 정부 정책집에서는 '다양한 가족'을 미혼·한부모·조손·다문화 등 말 그대로 '다양한 가족'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윤성 미국변호사는 "다양한 가족 형태의 차별 금지는 결국 LGBT 가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공동대표회장 소강석·이철·장종현) 역시 반동성애 진영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 성명을 15일 발표했다. 한교총은 성명에서 "(여성가족부는) 가족의 구성 방식을 혼인·혈연·입양으로 규정한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에 '사실혼'을 추가해, 비혼·동거 가정도 가족 범주에 포함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법이 여성가족부의 의도대로 개정되면 동성 동거자는 사실혼 관계로 해석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반동성애 활동에 열심인 개신교인들은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조직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반동성애 활동에 열심인 개신교인들은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조직적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과 궤를 같이 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반대 운동은 국회의원들에게도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에는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 연락처와 함께 "동성 결혼 합법화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막아 달라고 연락하라"는 메시지가 떠돌았다. 실제로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반동성애 진영이 직접 행동을 나선 기간 매일 수백 개가 넘는 문자 폭탄을 받았다.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는 2월 18일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다룰 예정이었지만, 보수 개신교 반발에 미뤄야 했다.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19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이 안건 자체가 쟁점이 많은 법안이라 이번에는 다루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동성애 진영은 지금까지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 법안은 무조건 '또 다른 차별금지법', '동성혼 합법화를 위한 법' 등으로 매도하며 논의 자체를 막아 왔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권수현 대표는 특정 집단을 배제하고, 낙인찍는 방식의 운동은 차별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권 대표는 19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누군가를 차별·혐오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순간, 자기 자신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으로부터 똑같은 차별·혐오·비난을 받게 될 때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방식의 운동을 멈추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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