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한상희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는 헌법·인권법 전문가다. 사법 개혁, 인권 이슈 등 사회 현안에 적극 목소리를 내 왔다. 한 교수는 최근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는 올해 10월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발행하는 <민주법학> 74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법학자들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헌법의 눈으로 본 차별금지법 - 혐오 표현의 문제와 함께'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 내용 중 절반을 개신교 반동성애 진영 법학자들 주장을 팩트체크하는 데 할애했다. 차별금지법이 법체계에 혼란을 불러온다는 주장이나, 동성애자와 동성 성행위를 구분하며 반대를 정당화하려는 주장, 차별금지법 때문에 동성혼과 일부다처제·수간 등이 합법화해 보편 윤리가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반동성애 진영 법률가들은 '복음법률가회'라는 단체까지 만들어 차별금지법 반대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 주장에 반대하는 크리스천 법률가들도 있지만, 교계 안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아닌 한상희 교수가 논문까지 써 가며 이를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그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12월 10일, <뉴스앤조이> 사무실에서 한 교수를 만났다. 마침 이날은 '세계인권선언의날'이었다.

또 이날은 더불어민주당이 발의를 준비 중인 차별금지법안 내용도 보도됐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 대표 발의안이나 국가인권위원회 평등법 시안과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사회 상규에 반하지 않는 특정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집회, 단체 또는 그 단체에 소속된 기관에서 해당 종교의 교리·신조·신앙에 따른 그 종교의 본질적인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위"는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보수 개신교계 반발과 우려 때문에 넣은 게 명백했다.

한상희 교수는 반동성애 진영 법률가들 주장을 비판하는 논문을 <민주법학> 74호에 실었다. 한 교수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한상희 교수는 반동성애 진영 법률가들 주장을 비판하는 논문을 <민주법학> 74호에 실었다. 한 교수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그동안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 온 한상희 교수에게, 민주당 발의안이 한국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인지,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물었다. 이미 논문에 자세히 나와 있어서 반동성애 진영 법학자들 주장에 대한 논박은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반동성애 진영이 펼친 주장에 워낙 황당한 내용이 많아 다시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상희 교수와의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종교인 예외 조항이야말로 위헌 가능성
차별을 차별이 아닌 걸로 하자는 말"

- 민주당에서도 차별금지법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특정 종교의 교리·신앙과 관련한 행위는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갔다는데. 어떻게 보는가.

차별은 헌법에 반하는 것인데, 이 조항은 차별을 차별이 아닌 걸로 하자는 말이다. 조문 자체가 위헌일 수 있다. 법을 만들면서 예외를 인정해 차별을 허용한다면 위헌을 방조하는 것 아닌가. 예외는 되도록 좁게 인정해야 하는데, '특정 종교의 교리'는 무엇인가. 예외를 인정하는 폭이 너무 넓다. 더 나아가 종교라는 것도 엄밀히 보면 법적 개념은 아니다. 이런 부분은 세밀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항은 사실 들어가면 안 된다. 지금 상황은 찬반 어느 한쪽이 빠져나갈 길 없는 외길 싸움이다. 처음부터 차별 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2개 사유를 넣었다는 이유로 예외 조항을 또 넣었다. 발의자가 '양보했다'. 양보했다는 뜻은 결국 "당신들은 이 집단을 마음대로 차별하라"고 인정하는 게 돼 버린다. 역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 보수 개신교 반대 때문에 이런 조항을 넣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인데, 이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것이 과연 개신교에도 좋은 일일까.

동성애처럼 사회적 인식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 영역에 기독교가 깊숙이 개입할 필요가 있는지, 그게 성경을 실천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종교의 전제는 기본적으로 신이기는 하지만, 종교를 구성하는 건 사람 아닌가. 종교는 어떤 삶이든 그 사람이 지금 처한 상황에서 잘 먹고 잘 살자는 건데, 종교를 이야기하면서 특정 집단을 괄호 안에 가두고 나머지만 잘 먹고 잘 살자고 주장하는 꼴이다. 과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 혹은 앞으로 닥칠 미래에는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차별금지법은 한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지 말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함께 살아갈 사람으로 허용하고 존중하자는 것이다. 어쨌든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시민·국민이기 때문에, 설사 그 사람이 싫더라도 존재는 인정하자는 거다.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약속을 실천하는 게 그리 어려운 것인지, 이게 성경 말씀을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올해 7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독교에서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올해 7월,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독교에서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반동성애 진영 법학자들,
교인 아닌 법학자 언어 구사해야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해선 안 돼"

- 논문에서 반동성애 진영 법학자들이 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법리적 논증을 거치지 않았다고 평가했는데, 왜 그렇게 보는가.

우리나라 법학은 기본적으로 성경해석학과 비슷하다. 텍스트가 있으면 논리 체계에 맞춰 그 텍스트 속에서 의미를 끄집어낸다. 없는 의미를 창조하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학계 혹은 헌법재판소 같은 곳에서 쌓은 이론을 바탕으로 자기 주장을 펼쳐야 하는데,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법학자들은 그 부분에서 논쟁이 철저하지 않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어떤 해석론을 취하는 건지, 논증 구조가 뭔지 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혀 딴소리하고 있으니까 반박할 수가 없다. 학계에서 '당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할 수는 없지 않나. 아주 치밀하게 논쟁하고 논박해야 하는 주장인데, 멱살잡이하게 만든다.

법률가들의 차별금지법 반대는 정말 특이한 경우다. 교회 안에서는 성경을 근거로 차별금지법이 동성애자를 인정하니까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교인이 아닌 법학자로서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신기한 점은 반대론자들이 평소 자신들이 하던 법학 방법과 전혀 다른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법사회학 관점에서 법을 분석한다. 논문의 80%가 사회현상에 빗대 논리를 이끌어 낸 것이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반대를 외치는 교수들은 '법 도그마틱' 방법으로 연구해 온 이들이다. 법률의 해석·적용을 탐구하는 분야다. 법률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법률 자체의 의의와 본질 등을 연구한다. 법 자체에 집착하던 이들이 지금은 법사회학 방법으로 재조합·재가공이 아니라 창조 수준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으니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 그동안 차별금지법 제정 국면에서 이번처럼 법률가들이 전면에 나선 경우가 있었나.

사실 과거에는 심도 있는 논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대립과 충돌이 발생하면 국회의원들이 그냥 포기했다. 이번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계속 추진하니까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총대를 멘 의원이 나왔다. 덕분에 실질적인 입법의 장에 들어섰다. 이렇다 보니, 반대하는 쪽에서도 '우리는 무조건 반대'라는 말 이상을 해야 했다. 법학자들, 전 헌법재판관도 나와 말을 보태고 있는데 허점이 많다. 전문적으로 대응하려면 사전에 준비해야 하고 적어도 법리적 분석 틀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을 마련하지 못한 채 나온 것이다.

반대하는 쪽에서 외국 사례를 많이 가져오지 않나. 누구는 잡혀가고, 누구는 친권 박탈당했다고. 하지만 팩트체크를 해 보면 거짓 혹은 과장 해석이라는 게 드러난다. 논리적 측면, 팩트를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에서 몰리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반동성애 진영 내부에서도 과장된 이야기나 허위 주장은 먼저 검열하려는 것 아닌가.

'차별금지법은 위헌' 같은 그나마 조금 세련된 주장을 하는데, 이것도 문제가 있다. 위헌 주장을 하려면 그만큼 논리가 있어야 한다. 그냥 위헌이라고 주장만 하면 위헌인가. 표현의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는데, 그 침해받는 영역이 어디인지 따져 봐야 한다. 두루뭉술하게 개인의 표현의자유·신앙의자유가 침해받는다고 하면 안 된다.

국가가 개인의 사적 영역까지 개입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그렇다. 한번 따져 보자. 헌법 31조는 교육권을, 32조는 노동권을 규정하고 있다. 고용과 교육은 헌법의 영역이다. 서비스 영역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언론인데, 헌법 21조에도 언론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부분들은 이미 온전한 사적 영역이 아닌 공공 영역도 된다. 국가 영역도 아니지만 완전히 개인의 자율에만 맡기지도 않는 그런 영역은 얼마든지 규율 가능하다.

문화·광고 역시 법률에서는 절대 두루뭉술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에서 이야기하는 문화는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이 아닌 문화 산업 영역을 가리킨다. 광고도 옥외 게시물 등으로 구체화했다. 그런데도 마치 일상생활 전부를 규제받거나 설교까지 감시 대상이 되는 것처럼 호도하는 건 잘못된 주장이다.

한상희 교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법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때 법리적 논증에 더욱 철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한상희 교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법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때 법리적 논증에 더욱 철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차별금지법 제정되면 동성혼도 통과?
"법률과 제도 뒤섞어 논쟁
'자유'민주주의 내세우면서
정작 '개인 존엄'에는 관심 없어"

-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법률가들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향후 모든 법을 제정·개정할 때 차별금지법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우리나라 법체계는 제일 위에 헌법이 있고 그 밑에 기본법, 그다음에 특별법이 있다. 차별금지법은 기본법에 해당한다. 따라서 향후 차별을 다루는 다른 법을 입법하게 되면, 이 법을 참조하게 된다. 모든 법을 만들 때 차별금지법을 참고하라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기본법 지위를 가지는 법은 수십 가지다. 또 그 기본법마다 특별법이 수십 가지다. 그 사람들 논리대로라면, 차별금지법 제정할 때 부동산기본법도 참조해야 한다. 영역이 다르면 고려 대상이 아니다.

또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기본법과 다른 법을 만들 수도 있다. 차별금지법에서 차별을 금지해도, 차별해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그렇게 법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기본법 규정이 후에 만들어지는 법률을 구속하지 않는다.

- 차별금지법 제정을 동성혼과 연결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차별금지법은 법률이고 혼인과 가족은 제도다. 제도는 세대에 따라 문화·사회적으로 흘러오는 관례·관습의 집약체다.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혼인 제도를 정할 때 차별금지법을 참고할 수는 있겠지만, 차별금지법 제정했으니까 동성혼도 빨리 합법화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인권 단체는 동성혼 합법화를 주장할 수 있겠지만, 혼인 제도를 바꾸는 문제는 사회 분위기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동성혼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일부다처제·다부일처제·수간 등을 인정하게 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말이 안 된다. 인류는 공통된 상식 혹은 규범을 가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혼인은 성인 둘 즉 일대일이 하는 영구적 결합이다. 만약 이 부분을 깨려면 몇백 년은 걸리지 않을까. 그런데 왜 이런 걸 차별금지법 논쟁에 가져오는지 모르겠다.

- 반동성애 법률가들은 차별금지법이 개인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허용하면 안 되는 법이라는 주장도 한다.

자유민주주의 가장 밑바닥에 깔린 개념은 '개인의 존엄'이다. 민주주의 앞에 '자유'라는 말을 붙이는 순간, 기본적으로 우리는 공동체가 아닌 개인을 우선한다. 개인의 의지·자유·권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국가는 이것이 침해받지 않도록 보호한다. 신자유주의 같은 경우 더욱 그렇다. 자유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순간 차별금지법은 그들의 정전正典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거꾸로다.

자유민주주의를 내밀면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상의 자유시장론'을 펼친다. 혐오 표현도 용인하자는 거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중에 마침내 진리가 거짓을 이기게 하라는 논리인데, 여기에는 전제가 하나 있다. 모든 논쟁이 대등·공정하고 투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게 시장의 논리 아닌가.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런 시장은 형성되지 않는다. 나는 혐오 표현을 처벌까지는 아니어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번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에는 그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자유시장론을 주류 이론으로 삼으며 표현의자유를 절대화하는 미국 경우만 봐도 그 허점을 파악할 수 있다. 논문에도 썼는데, 과거 KKK가 자신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얀 옷을 입고 고깔을 쓴 뒤 횃불 들고 흑인 밀집 지역을 뚫고 행진하려 했다. 시에서는 당연히 이를 막았고 소송이 시작됐다. 그런데 미국 최대 인권 단체인 ACLU가 KKK를 지원하고 나섰다. 표현의자유를 지켜 주겠다는 거다. 혐오 표현에 대항하는 더 많은 발언을 통해 혐오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는데, 60년 지난 지금 미국 모습은 어떤가.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난무한다.

한 가지 의아한 지점이 있다. 표현의자유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왜 미국이 동성혼을 합법화한 것은 받아들이지 않나. 미국·스페인 등 해외에서 동성혼을 인정하는 기본 틀은 결국 개인의 존엄이다. '개인'의 의사가 우선한다. 당신 문제니까 당신이 결정하라는 거다. 미국이 표현의자유를 인정하는 것도 이 논리다. 똑같은 논리인데 왜 하나만 이야기하고, 하나는 무시하는지 모르겠다.

한상희 교수는 동성애를 죄로 보는지 아닌지를 떠나, 최소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한상희 교수는 동성애를 죄로 보는지 아닌지를 떠나, 최소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자 우대 의미 아냐,
정체성 때문에 공동체서 쫓아내지 말자는 것"

- "차별금지법 찬반 논쟁이 그저 진실 게임, 팩트체킹 양상으로 흐르고 있어 아쉽다"고 말한 적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차별금지법의 의미는 뭘까.

예전에 서울시 학생 인권조례를 만들 때 있었던 일이다. 학교 교목 선생님들 모임이 있어서 만나러 갔다. 그쪽에서 '집회의자유'를 꼭 넣어 달라고 하더라. 보수적인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셔서 좀 놀랐다. 이유를 물었더니 점심 먹고 한곳에 모여 찬양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교장 선생님이 못하게 한다는 거다. 집회의자유가 있으면 할 수 있으니까 넣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넣었는데 나중에는 그게 학생들을 빨갱이 만드는 거라며 난리가 났다.(웃음)

이렇듯 인권이라는 것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다. 다른 사람과 공존해 나가는 게 중요한 것이지, 인권 항목을 두고 누군가와 적대 관계를 만들어 싸우고 투쟁하자는 게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그 어떤 이유에서건, 한 사람이 자기가 속하고 싶은 공동체에서 쫓겨나 서럽게 울고 있는 상황을 없애자는 취지다. 그 사람에게 뭘 더 주라는 게 아니다. 그냥 배제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사회라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하는 윤리다.

쉽게 바꾸지 못하는 정체성을 놓고 어떻게 '너는 여기 있을 수 없으니까 저쪽으로 가'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저들의 행위는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하는 '난민', 즉 자기가 살던 집단에서 쫓겨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한 사람의 자기 정체성,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게 만든다. 감기 걸린 사람에게 감기 옮으니까 내 곁에 오지 말라고 해서, 그 사람이 살아야 할 이유를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성애는 질병도 아닌데, 동성애자에게는 더 심한 말을 내뱉는다. 나쁜 놈,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고 낙인찍는다.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을 바꾸지 않으면 당신을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할 수 있나.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당신이 어떤 사람이건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살아가겠다는 약속이 전제돼 있는데, 그 약속을 깨는 행위다. 이렇게 생각하면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인간적으로' 섭섭하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가 죄인지 아닌지 따지려는 게 아니다. 성경적으로 죄인이라고 할 수 있고, 회개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한 동료 시민으로 인정은 해야 할 것 아닌가. 측은지심일 수도 있고, 레비나스식으로 이야기하면 고통을 안고 있는 타자의 얼굴이지 않나. 왜 그걸 못 본 척하려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차별금지법은 이런 당연한 걸 하자는 건데, 논쟁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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