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과 나눔의집협의회가 11월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과 나눔의집협의회가 11월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개신교계 단체들이 정의당 차별금지법제정운동본부(공동본부장 장혜영·배복주)와 함께 릴레이 기자회견을 이어 가고 있다. 11월 16일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에 이어, 23일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천제욱 의장)과 나눔의집협의회(오상운 원장)가 나섰다. 이들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평등의 원칙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모두를 위한 법"이라며 "우리의 편견과 한계로 반복해서 드러나는 소외·불평등·혐오·차별 문제에 대항하고, 서로 환대·연대하는 구조를 만들어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이뤄 가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를 향해 '그리스도교가 혐오와 차별의 종교인지, 환대와 사랑의 종교인지' 물으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하라고 호소했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하느님을 혐오와 차별, 소외와 불평등의 하느님으로 만드는 이들이 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하느님 사랑과 은총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손발이자, 정의와 해방이 이뤄지도록 앞서 나가는 하느님의 길벗이 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대며 법 제정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도 촉구했다. "더 이상 '나중에'라고 미룰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은 사회적 합의라는 수사 뒤에 숨어 '나중에'를 연발할 게 아니라, 그 사회적 합의를 적극 주도해야 하는 책임과 힘을 가진 집단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의평화사제단 의장 천제욱 사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형태의 차별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사랑의 법을 배우고 따르고 실천하는 이들이다.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 중 하나가 차별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를 향해서는 "만일 성서 해석과 신앙적 확신과 교리라는 틀과 관점 때문에 누군가 배제되고 고통당하고 좌절에 빠지고 삶이 위축된다면 그 틀과 관점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정당을 향해서도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말라는 보편적 가치를 한낱 얄팍한 당리당략과 표 계산으로 저울질하지 말라. 모두의 삶을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온전하게 해 줄 차별 금지를 위한 법 제정에 진심을 가지고 동참해 달라"고 말했다.

대한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 원장 오상운 사제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대한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 원장 오상운 사제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금 이순간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수많은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임에도'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기독교인이기에'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것"이라며 "이 땅에 조건 없는 사랑을 내세우며 어려운 이들을 앞장서서 품었던 한국교회의 참모습이 절실히 필요하다. 더 많은 기독교인이 차별금지법 제정에 함께 나서 달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세간의 오해와 달리 차별금지법의 가장 큰 장벽은 개신교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교회 안에는 평등의 가치에 공감하고 실천에 나선 수많은 참된 교인이 존재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가장 큰 장벽은 (기독교가 아니라) 일부 보수 기독교계 목소리에만 선택적으로 귀를 기울이고 눈치 보는 현재 정부와 여당의 소극적 태도"라고 말했다.

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차별금지법에 대한 실질적 논의를 하루속히 시작하라고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도 "국가인권위원회 평등법을 한시라도 빨리 당론으로 발의하고, 나중으로 미뤘던 인권의 약속에 진심으로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정의당 차별금지법제정운동본부는 기독교계와 연계해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까지 매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독교계 릴레이 기자회견'을 이어 갈 예정이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

우리는 평등의 원칙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합니다

#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모두를 위한 법입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재난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때, 한국 사회에는 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분들을 '상대적 약자와 사회적 소수자'라고 부릅니다. 한국 사회에는 소외와 불평등으로 인한 경제적 약자를 비롯해 많은 취약 계층이 있고, 그 정체성만으로 혐오와 차별 대상이 되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분들이 재난 상황으로 인해 힘들어졌다고 얘기하지만, 재난 상황은 언제나 힘들고 어려웠던 이들의 상황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분들을 힘들고 어렵게 만드는 일상의 '소외와 불평등,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 중요한 일을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무가 정부와 국회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사회를 유기적이고 통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종교인들도 그 책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선 우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한국 사회와 종교 영역에서 큰 쟁점이 되었을 때, 한국 사회에서 이 법이 갖는 의미와 종교계에 끼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다각적이고 입체적으로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모두를 위한 법'이라고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 '우리들의 하느님'을 혐오와 차별, 소외와 불평등의 하느님으로 만드는 이들에게 질문합니다.

'소외와 불평등, 혐오와 차별'이라는 문제로 힘겨워하는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교 성서와 전통은 반복해서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들의 하느님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존재를 동등하고 독특하게 창조하셨고, 이 존재들이 서로 존중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공생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맡긴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편견과 한계로 인해 반복해서 드러나는 '소외와 불평등, 혐오와 차별의 문제'에 대항하고, '서로를 환대하고 연대하는 구조'를 만들어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이뤄 가는 건 교회의 중요한 사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너무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이와 같은 하느님을 '혐오와 차별, 소외와 불평등의 하느님'으로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그리스도교 성서와 전통에 대한 '과도한 해석과 적용'으로 문제를 만듭니다. 그와 같은 과도한 해석과 적용의 이면에는 대부분 그들의 이권이 감춰져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와 같은 해석과 적용 또한 일관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들은 종교는 사회의 전부가 아닌 일부임을 자주 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 땅에 작고 낮고 연약한 이들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좁고 험한 생명과 사랑의 길로 가라고 요구하신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선 우리가 속한 성공회는 그 오랜 전통에 따라 '그리스도교 신앙은 정직하게 질문하는 신앙'이라고 배우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 질문하는 신앙 전통에 따라,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정직하게 질문하고자 합니다.

정교회, 천주교, 개신교회를 비롯한 여러 그리스도인 여러분, 그리스도교는 소외와 불평등을 당연시하며 혐오와 차별을 확산시키는 종교입니까? 아니면 환대와 연대, 사랑과 은총의 종교입니까? 고대 사회를 향한 율법 자구字句와 근대의 문자주의적 관점에 갇혀 우리 가운데 실재하고 공존하는 사람들을 낙인찍고 편 갈라 정죄하는 종교입니까? 아니면 성서와 전통을 입체적인 역사의 맥락으로 읽고 은유적으로 이해해,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증언하며 은총과 해방으로 안내하는 종교입니까?

우리는 분명히 말합니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이 땅에 '서로를 환대하는 구조'를 만드는 이들이며,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고, 하느님의 정의와 해방이 이뤄지도록 앞서 나가는 '하느님의 길벗'이 되어야 합니다.

# 사회적 합의를 적극 주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여당과 국회에 요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분명한 목소리로 요구합니다. 정치권, 특히 사회적 합의를 주도해야 할 문재인 정부와 법 제정의 책임과 힘을 가진 민주당은 하루속히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십시오. 정부·여당은 차별금지법을 비롯해 쟁점 사항이 많은 이슈가 논란이 될 때마다 '사회적 합의'라는 수사 뒤에 숨어 '나중에'를 연발합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사회적 합의라는 수사 뒤에 숨을 게 아니라, 그 '사회적 합의'를 적극 주도해야 할 정치적 책임과 힘을 가진 집단임을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평등의 원칙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합니다. 더 이상 '나중에'라고 미룰 수 없습니다. 일부 종교 집단이 주장하는 것처럼 특정한 차별 금지 사유를 빼거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적용에 종교 영역만 예외로 해서도 안 됩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한국 사회를 환대하는 구조가 되도록 변화시킬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 하루속히 제정되어야 합니다. 그 가운데 평등의 원칙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하루속히 제정되어야 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요한의 첫째 편지 4장 18절, 공동번역개정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우리는 혐오와 차별, 소외와 불평등 없는 한국 사회를 원합니다.
그런 한국 사회와 그리스도교가 되도록 우리부터 앞서 일하겠습니다.

2020년 11월 23일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 나눔의집협의회
정의당 차별금지법제정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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