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반동성애 운동에 앞장서는 이들에게 개인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동성애가 (후천적) '선택'의 문제여야 자신들이 펼치는 각종 반동성애·탈동성애 운동이 정당성을 얻기 때문이다.

2019년 8월, 반동성애 진영은 흥분했다. 미국과학진흥협회가 발간하는 <사이언스>에 실린 연구 논문 때문이다. 영국·미국·네덜란드·스웨덴·덴마크 등 다양한 국적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동성 간 성적 행동이 단일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여러 유전자로부터 복합적 영향을 받는 것이라는 내용을 발표했다. 반동성애 진영은 이를 이용해 '동성애 유전자가 없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반동성애 운동가들은 연구 결과를 확대해석하기 시작했다. '동성애 유전자가 없다'는 말은 '동성애가 선천적이지 않다'는 뜻이고, 따라서 동성애는 '인간의 선택에 의한 중독 행위'이며, 중독 행위는 '치료가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이런 주장은 검증 없이 교계에 퍼져 나갔다.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생물학 연구 논문인데다가, 반동성애 운동가 중 의학 전문가들도 목소리를 보탰기 때문이다.

안드레아 가나 박사는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동성 간 성적 행동을 유발하는 다양한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DSGEL 홈페이지 갈무리
안드레아 가나 박사는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는 동성 간 성적 행동을 유발하는 다양한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DSGEL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앤조이>는 이런 주장이 연구 결과를 제대로 해석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논문 주저자인 안드레아 가나(Andrea Ganna) 박사를 12월 8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가나 박사에게 현재 한국 보수 개신교인들이 이 연구를 반동성애 운동에 어떻게 활용하는지 설명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 기사에서는 연구 결과와 가나 박사에게 받은 답변을 토대로 반동성애 진영의 주장을 팩트체크한다.

1. '단일한 동성애 유전자'(single gay gene)를 찾기 위한 연구가 아니다

이 연구의 간략한 내용은 이렇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와 하버드대학교가 공동 설립한 브로드연구소(Broad Institute)의 안드레아 가나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와 미국 23앤미(23andMe)에 등록된 47만 7522명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했다. 분석한 유전자 정보는 100만 개가 넘는다. 연구 대상자는 40~70세로 대부분 유럽계 조상을 둔 사람이었다.

그동안 학계에는 동성애 성향을 결정하는 특정 유전자가 있다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고, 몇몇 연구를 통해 유전자가 동성 간 성적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 연구들은 몇몇 가족 혹은 쌍둥이를 조사 대상으로 한 혈연 위주의 연구였다. 연구팀은 이전과 다른 무작위·대규모 조사를 통해 유전자와 동성 간 성적 행동의 상관관계를 더 객관적으로 밝히려고 했다.

연구팀은 GWAS(전장 유전체 연관성 분석)라는 방법을 사용해 수십 만 명의 SNP(단일 염기 다형성: DNA 염기 서열에서 한 글자가 변이하는 현상)를 분석했다. 그 결과 △동성 간 성적 행동과 연관된 5개의 유전자 표지자(genetic marker) 발견 △5개 유전자 표지자는 동성 간 성적 행동의 1% 미만을 설명 가능 △몇몇 유전자 표지자가 동성 간 성적 행동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 △인간 섹슈얼리티(성적 행동)의 복잡성을 발견했다.

연구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는 연구팀도 인정하는 바다. 연구팀은 5개 유전자 표지자가 동성 간 성적 행동에 어떻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지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이번 연구는 "동성 간 성적 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따라서 동성에게 끌리거나 성적 환상을 가졌지만 성적 행위까지 이어지지 않은 사람, 트랜스젠더, 간성(intersex)은 연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연구는 애초에 '동성애 유전자' 유무를 밝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유전학적 차원에서 동성 간 성적 행동과 유전자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데 주력했을 뿐이다. 연구팀이 명시한 '연구 목적'에는 "그동안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통해 인간의 섹슈얼리티는 단순히 한 가지 요소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중략) 이번 연구에서는 동성 간 성적 행동과 연관된 유전자 표지자들을 찾고, 이들이 행동 발달에 어떻게 연관되는지 밝힐 예정"이라고 나와 있다.

'동성애 성향을 결정하는 단일한 유전자가 없다'는 말을 '동성애는 선천적이지 않다'로 읽는 건 심각한 논리 비약이다.
'동성애 성향을 결정하는 단일한 유전자가 없다'는 말을 '동성애는 선천적이지 않다'로 읽는 건 심각한 논리 비약이다.
2. '단일한 게이 유전자'가 없다는 말이 동성애가 유전자와 관련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구 결과에서 '단일한 동성애 유전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동안 이를 발견하기 위한 학자들 노력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최근 10년 사이 연구 결과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를 '동성애는 선천적이지 않다'로 읽는 건 심각한 논리 비약이다.

'단일한 게이 유전자'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동성애에 유전적 영향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나 박사는 "이는 동성 간 성적 행동을 유발하는 다양한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눈 색깔은 한 가지 유전자가 큰 영향을 미치는 데 비해, 신장(height)은 여러 유전자가 작은 영향을 미쳐 결정된다. 동성 간 성적 행동도 신장과 유사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3. 이 연구는 '전환 치료' 가능성을 증명하지 않는다

사실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됐을 때 우려가 적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2019년 8월 29일 기사에서 두 가지를 지적했다. 아주 적은 확률이긴 하지만 유전자가 동성 간 성적 행동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밝혔기 때문에, 반동성애 운동가들이 유전자 편집이나 배아 선택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반대로 유전자가 성적 지향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를 빌미로 '전환 치료'를 주장하는 이들이 더 힘을 얻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연구팀 역시 연구 결과를 오독하지 않을지 경계했다. 이들은 연구 결과를 정리해 놓은 홈페이지에 "우리의 발견을 성소수자 개인의 경험이 '잘못됐다'거나 '장애가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데 사용하면 안 된다. 이 연구는 다양한 성적 행동이 인간 범주의 자연적 부분(a natural part of overall human variation)이라는 증거를 제시한다"고 밝혔다.

가나 박사는 전환 치료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이 연구는 전환 치료에 대한 그 어떤 지지도 제공하지 않는다. 전환 치료 가능성을 증명해 주는 연구가 절대 아니다"고 단언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나선 개신교인들은 동성애가 선천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게 해야 '치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바로알기아카데미 유튜브 영상 갈무리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에 나선 개신교인들은 동성애가 선천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게 해야 '치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바로알기아카데미 유튜브 영상 갈무리
결론: 이 연구 논문은 동성애가 후천적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이 연구 결과로는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알 수 없다. 애초에 연구 취지가 동성애의 선천성이나 후천성을 증명하려는 데 있지 않았다. 연구팀이 발표한 그대로, 동성 간 성적 행동과 연관이 있는 5개 유전자 표지자를 발견했으나, 이것만으로는 동성 간 성적 행동의 1% 미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동성 간 성적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다는 게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 가나 박사는 "다른 많은 행동과 마찬가지로 동성 간 성적 행동은 유전적 혹은 비유전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동성애 성향이 유전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할 수도 없고, 비유전적 요소, 즉 사회적·환경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결정된다고만 볼 수도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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