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구을)이 평등법(차별금지법)을 발의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 의원이 준비 중인 평등법안은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최영애 위원장)가 제시한 시안에 "사회 상규에 반하지 않는 특정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집회, 단체 또는 그 단체에 소속된 기관에서 해당 종교의 교리·신조·신앙에 따른 그 종교의 본질적인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위"는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을 추가한 형태다.

십수 년간 차별금지법 제정을 극렬히 반대해 왔던 보수 개신교계를 염두에 둔 조항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에는 이 같은 '종교 기관 예외 조항'이 포함된 적 없다. 종교에 기반한 행위를 차별로 볼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종교를 빌미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실제로 이 조항을 넣은 경우는 없었다.

보수 개신교계 반발을 줄이기 위해 이렇게 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할까.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는 이 조항의 문제점을 짚는 토론회를 12월 23일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종교 기관의 차별 행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경우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추진하는 평등법안을 비판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는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진행됐다. 사진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추진하는 평등법안을 비판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진행했다. 사진 제공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법 적용 영역도 아닌 종교 행위,
굳이 예외 조항 만들 필요 없어"

법리적으로 종교 기관 예외 조항은 불필요하다는 지적이 먼저 나왔다. 차별금지법은 사회 모든 영역이 아닌 공공성이 높은 네 가지 영역에서 차별 행위를 제재한다. 차제연 공동집행위원장 조혜인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종교 집단 내부의 행위, 특히 종교 행위는 애초에 차별금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어차피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서 굳이 예외 조항을 둘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조문 중 '종교 단체에 소속된 기관'은 이야기가 다르다. 사회복지 시설, 의료원, 요양원, 종립 학교 등 종교 기관이 운영하거나 설립한 공공 서비스 제공 기관이라면 문제가 된다. 인권위는 △서울시의 위탁을 받아 교회가 운영하는 사회복지 시설에서 직원이나 이용자에게 예배 참여 혹은 헌금을 강요하는 경우 △고등교육법에 따라 설립해 국가의 보조금을 받는 사립대학에서 종교와 무관한 직무인데도 교직원 지원 자격을 특정 종교인으로 제한하는 경우 △입사 지원서에 종교를 쓰게 하는 경우 등이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문제는 인권위가 차별이라고 판단해 시정 권고를 내려도 해당 기관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조혜인 변호사는 "현재도 심각한 상황인데, 종교 기관을 예외로 둔다고 하면 결국 종교 기관은 차별 행위에 있어 예외로 본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하게 된다. 실존하는 차별을 심화하고 구제를 어렵게 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 입법 취지 자체가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조 변호사는 독일·영국 등 과거 종교와 국가가 일치했던 나라에서 제정된 평등법에는 종교 기관 예외 조항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애초에 다종교 사회였던 한국에서는 종교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종교와 종교 사이의 조화를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실제적으로 규율하면서 '모두를 위한 평등'의 정신을 명확히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재하는 장애인·성소수자·이주민 차별
"종교 기관 예외 두면 차별 정당화할 것"

장애인·성소수자·이주민 등 다양한 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실제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언급하며 종교 기관 예외 조항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지금도 종교를 이유로 명백한 차별 행위가 발생하는데, 차별금지법에서 예외를 허용하면 '차별해도 된다'는 그릇된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기관에서 다양한 차별을 목격할 수 있다고 했다. 종교 활동을 빙자해 지적장애인을 강제 노동에 참여하게 하거나 기초 수급 생활비를 갈취하는 사례를 적발해도, '종교 기관'이라는 이름으로 빠져나가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했다. 그는 "새롭게 제정될 차별금지법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보완해야 하는데, 이런 조항이 들어간다면 오히려 차별을 심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관련해서도 차별을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 인권위는 숭실대·한동대가 종교를 이유로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있다며 이를 시정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두 학교는 자신들 행위는 설립 이념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지, 차별은 아니라며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박한희 변호사는 지금도 두 학교가 종교를 이유로 시정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데, 차별금지법에 예외 조항이 들어가면 이를 정당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조문이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두 학교의 행위가 예외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은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되고, 여기에 어떤 예외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취지에 맞지 않는 조항은 삭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종교 기관의 차별 행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경우,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을 정당화할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2017년 3월 열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재출범 기자회견 모습.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종교 기관의 차별 행위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경우,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을 정당화할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2017년 3월 열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재출범 기자회견 모습.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차별금지법제정이주인권연대 우삼열 목사는 종교인 예외 조항이 일부 개신교인의 이슬람 혐오를 정당화할 것이라 우려했다. 타 종교 혐오는 국제사회가 제시하는 인종차별 철폐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한국 정부는 인종차별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했다. 우 목사는 "종교의 이름으로 이미 심각한 혐오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를 행하는 종교에 예외를 준다는 건 납득할 수 없다"며 이상민 의원이 특정 종교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배병태 사무처장 역시 이상민 의원의 차별금지법안은 보수 개신교가 자신들 입맛에 맞는 법안을 만들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배 처장은 누더기가 된 '종교인 과세'를 예로 들며, 보수 개신교가 개신교인 국회의원을 동원하고 정부 부처를 압박해 개신교 목회자는 일반 국민과 다른 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보수 개신교는 차별금지법에도 면책 조항을 추가해 법안의 입법 취지를 흔드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종교인 과세법의 개악 과정에서 그들이 주장한 '종교 예외' 주장과 같은 프레임이다. 보수 개신교가 이런 특혜의 성을 쌓을수록, 스스로를 가두고 국민이 개신교에서 멀어지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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