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2030 연구원들이 만든 '요즘 팔복' 포스터. 뉴스앤조이 곽승연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2030 연구원들이 만든 '요즘 팔복' 포스터. 뉴스앤조이 곽승연

[뉴스앤조이-곽승연 기자]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홍보연 원장) 20~30대 연구원들이 2월 7일, '요즘 팔복'을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마태복음 5장에 등장하는 팔복을 차용해 톡톡 튀는 풍자와 해학으로 재구성했다. 기성세대와 남성들은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지만, 젊은 여성 신자들이 품고 있는 생각을 알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104회 공유될 만큼 공감을 샀고, '마태복음 5.5장 말씀'(?)이라는 댓글도 달렸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은 지난해 12월 23일, 새로운 20~30대 연구원 13명을 모집했다. 여성 리더십 세대교체를 준비하고 새로운 여성 지도자를 발굴하겠다는 취지다. 연구원들은 2월 6일 처음 모여 여성주의 시각으로 다양한 분야를 논의했고, 그날 처음 만든 결과물이 바로 '요즘 팔복'이었다. <뉴스앤조이>는 18일 이은재·장근지 상임연구원을 포함한 2030 연구원 7명을 만나 '요즘 팔복'을 만들게 된 이야기를 들어 봤다.

- 왜 하필 '요즘 팔복'인가.

장근지 / 마태복음 5장에 나온 팔복의 긍정문 형식은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안전장치였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많은 여성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8개로 간추렸다.

A / 제목을 어떻게 지을지 고민했다. '평등 팔복'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오다가, '요즘 애들'이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요즘'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요즘' 시리즈로 20~30대가 공감할 수 있는 부담스럽지 않은 내용을 만들고 싶었다.

이은재 / 만든 김에 교회를 대상으로 만들어 보자고 했다. 페미니즘에 동의하는 청년들이 교회에 포스터를 붙여 놓고 어른들에게 '우리는 이렇다'고 말할 수 있게 해 보자고 했다.

- 1절부터 뜯어 보자. '결혼을 하든지 안 하든지 복이 있나니, 본인들이 알아서 할 것이오(자매품: 아이가 있든지 없든지 복이 있나니)'는 어떤 의미인가.

이은재 / 처음엔 데이트 폭력에 대한 팔복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한 연구원이 "20~30대에게 연애 담론이 필수인가. 나는 연애에 관심 없다. 비혼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결혼하든지 안 하든지 상관하지 말자는 의미로 적게 됐다.

B / 교회에서는 아이를 안 낳는 부부를 이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들의 주장은 '한국의 출산율이 낮아서 문제인데, 둘만 행복하기 위해서 아이를 안 낳는다'는 거다. 둘이 행복하기 위해 한 결혼인데, 둘만 행복한 게 도대체 왜 문제가 되나.

A / 아이는 낳으라고 하면서, 임신 계획이 있는 여자 전도사를 사역지에서 뽑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는 전도사님이 교회 몇 군데 이력서를 넣었는데 "일하다가 임신하는 거 아니냐. 남편이 목사이니 사역하지 말고 그냥 사모 해라"는 말을 들었다.

장근지 / 그러면서 교회는 아직도 "아이 낳아서 전도하자"고 말한다. "이슬람이 왜 부흥하는지 아느냐"고 하면서.

연구원들은 "단톡방 안에서 가만있는 것이 아니라 성희롱의 흐름을 끊고 분노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연구원들은 "단톡방 안에서 가만있는 것이 아니라 성희롱의 흐름을 끊고 분노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 2절 '성희롱 발언에 분노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이 의롭다 여길 것이오'다.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C / 단톡방 성희롱에 초점을 맞췄다. 그 안에서 가만있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그런 흐름을 끊고 분노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작성했다. 또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의롭게 여길 거라고 생각한다.

- 3절 '패션 철학을 존중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시험 들 일이 없을 것이오'에서 '패션 철학'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은재 / 너무 많아서 '패션 철학'이라고 묶었다. 머리가 짧으면 선머슴 같다고 하고, 머리가 길면 귀신 같다고 한다. 화장을 안 하면 생기가 없다고 하고, 립스틱을 빨갛게 바르면 쥐 잡아먹었다고 말한다.

A / 그런 식으로 지적하면 바뀐 부분을 알아차렸다고, 본인이 센스 있다고 생각한다.

장근지 / 여름에 입는 옷차림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짧은 바지를 입었을 때 본인이 불편해서 담요를 가져다 덮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데도 '은혜 담요'라며 건네주는 것은 불편하다. 형제들이 시험에 드는 것을 여자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그 은혜 담요는 누가 세탁하겠나. 아마 권사님들이 하시겠지.

D / 우리 어머니가 세탁하셨다.

- 4절은 '살찌든지 안 찌든지 복이 있나니, 건강 걱정은 너나 할 것이오'이다.

E / 살이 찌고 안 찌고를 요즘은 인사말처럼 사용한다. 살이 찌면 "보기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처럼.

장근지 / 여자는 근력을 키우기보다는 다이어트라는 압박 때문에 살을 빼기 위해 운동한다. 솔직하게 "살쪄서 안 예뻐"라고 이야기하면 되는데, 왜 "건강 때문에라도 살 빼야지"라고 포장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이면에 담긴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내 건강은 내가 알아서 챙긴다. 헬스라도 끊어 주든지, 영양제를 사 주든지….

D /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몸집이 크셨다. 그런 상황을 오랫동안 겪어 와서인지 지금은 나를 먼저 방어해 주신다. "네가 뭔데 이렇게 말하냐. 보태 준 거 있냐"고 이야기해 주신다. 주변에서 "살 빼면 얼마나 예쁠까? 난리 날 것 같은데"라는 말도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살 빼면 난리 날까 봐 안 빼는 거다"고 말하신다.

- 5절 '자기가 마신 컵을 자기가 씻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지극히 상식이오'라는 말이 재밌다. 왜 하필 컵인가.

장근지 / 요즘 목사들이 드립 커피 많이 내려 마시지 않나. 교회에 드립 커피 문화가 들어오면서 '내가 원두 갈고 커피 내려서 봉사했으니 컵은 너희가 씻어'라는 인식으로 바뀌었다. 여전히 커피의 공적 영역은 남자가, 사적 영역은 여자가 수행하는 것이다.

- 6절은 '호구조사 하고 싶을 때 참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기다리면 차차 알게 될 것이오'이다.

B / 우리나라는 호구조사를 해야 친해진다고 생각한다. 궁금할 수는 있지만, 사적인 영역까지는 몰라도 된다고 생각한다.

장근지 / 처음 만난 사람에게 "몇 살이냐, 뭐 하는 사람이냐" 또는 "남자친구 있냐"고 질문한다. 밝히고 싶지 않아서 대답하지 않으면 무례한 게 된다. '그럼 교회인데 대화하지 말라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다. 정보 획득으로만 사람에게 다가가는 건 너무 협소한 방법이다. 더 많고 다양한 접근 방법이 있는데, 이런 질문은 상상력이 부족한 거다. 호구조사 같은 건 신뢰 관계가 쌓이면 저절로 알게 된다.

이은재 / 또 "왜 아직도 아이가 없어요?"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못 갖는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한 연구원은 "콘돔이라는 단어를 수면 위에 띄우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말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한 연구원은 "콘돔이라는 단어를 수면 위에 띄우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 7절은 '콘돔을 쓰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그가 사람이오'다. 아무래도 교회에 부착할 때는 이 구절이 가장 걸림돌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이은재 / 이 문장은 뒤가 가장 중요하다. 콘돔을 쓰는 건 당연한 거고, 안 쓰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장근지 / 아무리 진보적이고 페미니즘 지지한다는 남자들도, 다른 건 다 지켜도 이 구절을 안 지키는 경우가 많다. 이건 데이트 폭력이다. 그래서 더 의도적으로 '콘돔'이라는 단어를 명확하게 쓰자고 했다.

B /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다. 금기라고 생각하고 말 못 하게 하지만, 그런다고 (성관계를)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이 단어(콘돔)를 수면 위에 띄우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 / 교회가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보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중요했다.

- 8절은 '예쁘다 평가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늘에서 뭐라도 받을 것이오'이다.

A / '예쁘다'는 말 자체는 다양하게 쓸 수 있지만, 요즘에는 이 말이 많이 오염됐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름다움에 사용할 수 있는 말인데 예쁘다고 하면 여자가 생각난다. 요즘에는 '걸크러쉬'라고도 말하지만, 그 단어조차도 중성적이거나 남성적으로 파워풀한 느낌이다.

장근지 / 여성에게 예쁘다고 말하는 건 긍정이나 칭찬이 아니다. 여자를 평가하는 단어다.

B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2018)이라는 드라마에서 남자들이 여자 대학생에게 "너 예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대학생이 "내가 백화점에 진열된 가방이나 구두 같은 존재냐. 네가 뭔데 예쁘다, 안 예쁘다고 말하냐"고 했다. '예쁘다'는 말을 사물 대하듯이 본인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게 싫은 거다.

- '요즘 팔복' 포스터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후 반응은 어떤가.

이은재 / 인터넷상에서 공유는 많이 됐고 여론도 긍정적이었다. 공감하는 개인은 많았지만, 이 포스터를 붙일 만한 교회는 없는 것 같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크기를 조금 작게 만들어서 다른 굿즈를 만들까 생각 중이다.

- 앞으로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젊은 연구원들이 계획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

A / 잘못하고 있는 기성세대가 많지만, 요즘엔 젊은 꼰대도 많다. 어른의 생각을 그대로 답습해서 "너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교회는 바뀌려면 멀었어"라고 이야기한다. 잘못된 걸 인지한다면 끊어 내야 한다. 행동이 바뀌어야 한다. 젊은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이은재 / 20~30대가 모이면 논의가 빨리 되어 금방 결과물을 내서 바로 실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곳에서 시도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교회 눈치 보지 않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제 이건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연구원들이 들고 있는 '요즘 팔복' A3 사이즈 포스터는 온라인에서 신청할 수 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연구원들이 들고 있는 '요즘 팔복' A3 사이즈 포스터는 온라인에서 신청할 수 있다. 뉴스앤조이 곽승연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은 '요즘 팔복' A3 사이즈 포스터를 교회에 당당히(또는 몰래) 붙일 자매·형제를 구하고 있다. 포스터는 1장에 1000원이며 우편·택배 신청 시 추가 비용이 있다. 포스터 신청은 온라인에서 할 수 있다.

문의: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mwli2000@daum.net / 페이스북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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