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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같은 사람에게서 희망을 볼 수 있을까
[대담] '트랜스페미니즘' 신학자 드류대학교 캐서린 켈러 교수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7.11.03 18:36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사람마다 페미니즘을 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갈린다. 최근 한국에서도 '생물학적 여성'만 페미니즘을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논쟁이 인터넷을 달궜다.

미국에서는 이미 20여 년 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백인 여성이 외치는 페미니즘의 한계를 넘어 생물학적 성별과 상관없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여성'으로 받아들이는 다양한 사람이 새로운 페미니즘을 말하기 시작했다. 현재 미국 학계에서는 페미니즘을 '성별 차이'(sexual difference)가 아닌 '젠더'(gender)에 입각해 연구하는 흐름을 보인다.

한국은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활발한 논의가 한창지만 남과 여, 성별 이분법을 중요시하는 교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요즘 교계에는 '젠더'에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를 붙여 이것이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상이라는 주장도 통용된다.

이 모든 논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트랜스페미니즘'(transfeminism)을 주장하는 신학자가 있다. 미국 드류대학교에서 구성신학(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교수다.

캐서린 켈러 교수(오른쪽)가 10월 29일 왕십리 꽃재교회에서 열린 대담에서 박지은 박사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켈러 교수는 페미니즘과 포스트페미니즘이 안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의 대안으로 트랜스페미니즘을 제시한다. 그는 다양한 소수자들, 주변화한 사람들과 연대를 도모하면서도, 여전히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을 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캐서린 켈러 교수는 10월 마지막 주 한국을 방문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장로회신학대학교·연세대학교를 돌며 이 시대에 트랜스페미니즘이 시사하는 바를 강연했다. 일정 마지막 날에는 이번 방한을 주도한 교수, 제자들과 함께 대담을 열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높아지고 있는 페미니즘, 성소수자 이슈와 관련해 신학적·목회적 대안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였다.

대담은 전현식 교수(연세대), 김성복 목사(꽃재교회), 최순양 박사(이화여대), 박지은 박사(이화여대), 박일준 박사(감신대), 강도현 대표(<뉴스앤조이>)가 참석한 가운데 10월 29일 꽃재교회 역사자료실에서 열렸다.

아래는 대담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박일준 / 당신의 신학을 간략하게 한두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해 달라.

켈러 / 신학은 사랑의 신비를 명상하는 것이다. 사랑의 신비는 세 가지 방향성을 갖고 있다. 첫 번째 개인주의에 반해 관계성으로 나아간다. 관계성은 신비의 측면을 담고 있다. 두 번째 방향성은 '힘' 혹은 '권력'이다. 이는 때로 '권력을 향한 사랑'으로 도착되기도 하는데, 불행히도 미국이 현재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힘이라는 방향성은 신학적으로 '사랑의 힘'으로 나아가야 한다. 성서는 이런 점에서 하나님을 매우 명확하게 전하고 있다. 하나님은 '권력'이 아니다. 오히려 성서는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세 번째 방향성은 앎 혹은 지식(knowledge)이다. '신비'를 말했는데 이 신비는 바로 우리 지식의 한계를 가리킨다. 사랑은 지식의 한계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말하는 것인데, 우리의 앎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서 일어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희망은
깊은 절망과 상처에서 나온다"

김성복 / 인간은 자신의 이기심을 통제하기 위해 자기 집단의 도덕을 세우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언제나 타자를 악마화하는 현상을 목격한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일, 이민자에 관대했던 프랑스가 이민자를 적대시하는 현상을 목격한다. 더불어 희망을 세워 가는 일이 가능할까.

김성복 목사(꽃재교회)는 관용이 사라지는 사회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물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켈러 / 인간의 모든 언어와 행위는 무언가의 투사(projection)일 수 있다. 우리의 제한된 언어로 표현한 것을 진리 혹은 사실로 확정할 때, 이것은 투사가 아니라 우상숭배(idolatry)가 된다. 이렇게 우상화한 언어가 하나님을 표현하기보다는 언어의 한계에 한정할 때가 많다. 인간의 모습을 대할 때도, 하나님의 신비한 측면을 다룬 부정신학의 전통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니까.

인간의 모습에도 우리의 정형화한 언어를 뛰어넘는 측면이 내포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남자, 여자, 한국인, 미국인 등의 정형화한 이미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정형화한 이미지에 얽매이는 것이 '우상숭배'다. 이런 잘못된 얽매임은 우리가 지니는 하나님의 형상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계성은 무한한 사랑의 신비에 기초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조차도 그런 정형화한 틀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의 고결한 가르침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바로 이 인간 됨, 즉 인간성의 신비에 근거할 때 가능하다.

그 원수 같은 사람에게도 내가 생각하거나 내가 갖고 있는 그의 이미지를 뛰어넘는 신비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매우 교묘하다(tricky). 특별히 그 원수가 나에게 인간 됨을 보여 주지 않을 때 말이다. 바로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갖고 있는 문제다.

김성복 / 동의한다. 우리는 내 한계와 부족함을 타인에게 투사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님에게도 투사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습을 이기적이고 질투스런 모습으로 그리기도 한다.

켈러 / 맞다. 성서에 있는 질투하는 하나님, 복수하는 하나님, 통제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분명 인간의 부족함이 투사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투사는 특별히 미국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 모두의 문제다.

한편으로 이 문제가 절망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창조적이 되도록 부르셨기 때문이다. 고유하고, 다른(different) 존재가 되도록 하셨다. 문제는 어떤 부분에서 이기적이지 않는다면, 각자 고유한 차이를 소유한 존재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투사는 인간에게 지속적인 유혹이다.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나 아빠에게서 떨어져 자신을 실현하고자 할 때처럼, 억압받는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할 때처럼, 이기적이 된다는 것 혹은 '자기 됨'(self-ish)이 된다는 것은 필요하다. 그래서 떨쳐 낼 수 없는 유혹이 된다.

서구 근대는 지난 500년 동안 '이기적' 본능에 기반해 인간 존재를 '개인'으로 간주하면서 개인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분리된 개인이라는 개념이 경제에서 자본주의와 연결돼 생존, 경쟁, 승자 독식을 조장하는 문화가 이어져 왔다.

켈러 교수는 우리가 트럼프 같은 사람과도 '얽혀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 홈페이지 갈무리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근대 개인주의가 실현된 정점을 상징한다. 물론 트럼프라는 개인이 이 자본주의 시대를 홀로 대표하지는 않는다. 모순되게도 범지구적 자본주의 경쟁의 희생자들이 가장 자본 친화적인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기 때문에 그는 선거에 이길 수 있었다. 자본주의적 구조 속에서 이기심이 체계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실현된 모습이 바로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이다.

그래서 종말(apocalypse)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성서에서 종말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바빌론의 창녀'에 주목하면서. 성차별적인 이미지가 가리키는 것은 당시 로마 시대에 구현된 세계 경제의 탐욕이다. 당대의 모든 지역 경제를 집어삼키면서 성장하는 거대 경제 말이다. 이것은 은유다. 예측이나 사실에 대한 진술이 아니다. '바빌론의 창녀'라는 은유는 2,000년 후 지금의 시대를 예고하면서 쓴 것이 아니다.

지구 경제 위기, 직업 상실의 위기 등은 민족주의 혹은 국수주의의 문제를 불러온다. 지구적 위기에서 백인 우월주의가 다시 등장하는 모습을 미국과 유럽에서 보고 있다. 이민자를 적대하는 반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1946년 한나 아렌트는 이런 현상을 예고한 것처럼 "이민자들에 대한 반대 운동은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이다"라고 적은 바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백인 우월주의다.

친구 윌리엄 코넬리(William Connelly)와 얼마 전 책을 출판했는데 제목이 <야심만만한 파시즘>(Aspirational Facism: The Struggle for Multifaceted Democracy under Trumpism)이다. 우리 시대 파시스트·국수주의자·백인우월주의자들은 야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다루어야 할 현실적인 문제다.

희망을 낙관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적 희망은 예언자 전통에서 온다. 세계의 그 어떤 문화·종교 전통도 기독교만큼 희망에 높은 가치를 두지 않았다. 이사야·욥기·예레미야에 나오는 기독교적 희망은 무엇인가. 깊은 절망과 상처에서 나오는 희망이다. 하나님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나오는 희망이다.

기대했던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자신들을 구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는 절망과 분노 속에서 기독교적 희망은 성장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성서는 희망 없는 절망을 품은 채 희망을 말한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애가는 극단적으로 절망스럽고 분노하는 상황에서 희망을 말한다. 성서에서 말하는 희망은 절망에 무척 가까이 놓여 있다.

진보주의자들도 연대해야 하는 이유

강도현 / 우리 모두가 얽혀 있음을 강조했는데, 이 관계성이 트럼프 같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얽혀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소통해야 하는 의무를 담고 있다는 뜻 아닌가. 현실에서는 원수와 소통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켈러 /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도 소통해야 한다. 내가 속한 학교와 학생들은 그런 노력을 잘 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 소수자와 소통하고 품고 연대하는 경우는 많지만, 보수적인 사람들과는 거의 소통하지 않으려 한다. '예외주의적 진보주의자의 태도'(exceptionalistic progressive mode)라 부른다.

켈러 교수는 "인간의 관계성은 무한한 사랑의 신비에 기초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진보주의자일수록 대화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서에서 예수는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주지 말라고 한다. 전혀 소통 불가능한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 대화는 상호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정치적으로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중간에서 흔들리는 계층이 많다. 이 계층과의 소통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진보라 분류하는 사람들끼리도 더 나은 연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 페미니스트, 생태주의자, 성소수자와 그 지지자, 탈식민주의자와의 연대를 공고히 수립할 필요가 있다. 각자 추구하는 구체적인 목표 때문에 진보 그룹은 자기만 예외적인 진리를 실현하는 사람으로 여기면서, 다른 활동가와 좋은 연대를 구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얽혀 있는'(entangled) 존재다. 우리가 그렇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모든 존재와 얽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한국과 얽혀 있는 것을 모르고 있다. 우리 모두가 얽혀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힘이다.

강도현 / 남성적 리더십의 전형을 넘어서, 여성들만 발휘할 수 있는 리더십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켈러 / 나는 젠더-본질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생물학적 여성들의 나쁜 리더십에 많은 실망감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페미니스트 리더'(leader who is a feminist)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물학적 성별과 상관없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지도자 말이다.

우리 사회에 (생물학적) 여성 리더가 증가하는 것을 목격하는데 이것은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 그 여성들이 남자와 똑같이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가 부여하는 젠더-관계를 변혁해 내는 일이 중요하다. 변혁의 과정은 매우 느리다. 그럼에도 지난 100년 사이 얼마나 많은 것이 변화해 왔는지 보면서 인내심을 갖고 희망을 품어야 할 것 같다. 더불어 하나님의 관점으로 시간을 조망하며,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20년 전이었다면 이런 질문조차 없었을 거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희망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율법은 사랑의 법과 충돌하면 정지"

박지은 / 트랜스페미니즘의 정의가 상당히 폭넓다. 이것이 어떻게 한국에 적용될 수 있고, 어떤 공헌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켈러 / 나에게 희망을 주는 질문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나의 작업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여성신학자들과 연대가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이미 미국에서 한국계 여성신학자들과 연대하고 있다. 나의 신학은 언제나 사랑의 신비 혹은 관계성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서구의 분리된 에고(ego)와 이기주의를 거부한다. 페미니즘의 개인주의적 에고 모방도 거절한다. 하지만 여성 관계성이 갖는 존재감 상실의 위험성도 거절한다.

분리된 자아도 아니고, 해체된 자아도 아닌 제3의 길을 추구한다. 이는 곧 '연결하는 자아'(connecting self)의 길이다. 페미니즘이 말하는 여성이냐 남성이냐의 이분법적 이해와 거리를 둔다. 나는 '얽힌 형태'의 자아를 주장한다. 연결성이라는 개념이 나를 과정신학자로 만들어 준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나는 생태신학자이기도 하다. 연결성은 인간 사이의 관계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비인간 존재, 더 나아가 지구 행성과의 연결도 의미한다.

이 관계성 개념은 한국 여성신학과 공명하고 있다. 내가 경험한 한국 여성신학은 백인 남성의 에고를 모방하는 것도 아니고, 백인 여성 중심의 페미니즘을 모방하는 것도 아니다. 한국 여성신학은 강건한 관계성(strength of relationality) 개념에 기반해 있다. 관계는 쉽지 않다. 부담스럽다. 하지만 한국 여성신학은 그 관계의 부담을 짊어지는 강건함을 지니고 있다. 즉 정(情)의 관계성이다.

켈러 교수는 성경을 '규율집'으로 보면 안 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은혜 / 트랜스페미니즘에는 성소수자를 위한 신학의 가능성이 담겨 있는가.

켈러 / 한국교회에서 성소수자가 어떤 위치에 처해 있는지 전해 들어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 강연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언급하는데,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미국의 문화적 상황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하자면, 성경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글이 없다. 동성애 행위를 비난하는 듯한 문구는 있다. 모두 '삽입'에 관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바울은 세 번 비판한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늙은 귀족 남성이 젊은 남성을 노예 삼아 삽입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 행위는 힘과 권력을 사용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고, 바울은 바로 그 행위를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성서의 구절을 현대사회 상황에 무조건적으로 적용하면 안 된다.

만약 성서를 현대인의 삶을 위한 규율집으로 보고 모든 구절을 행위 규범으로 삼는다면, 다음과 같은 구절은 우리가 어떻게 다루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결혼하는 여성은 처녀임을 증명해야 하고 만일 이 여성이 처녀가 아닐 경우, 아버지는 이 여성을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동성애 반대주의자들이 말하듯이 성서를 우리의 행동 규범집으로 삼는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처녀가 아니면서 결혼하는 여성은 돌팔매질을 당해야 하는데, 이러한 성서 구절을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제정신이라 볼 수 없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해 준 구약 규범집에 대한 전체적인 해석은 간단하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것이다.

분명하게 말씀드리는 것은 율법은 사랑이라는 법과 충돌할 때 정지된다는 점이다. 사랑이 궁극적인 판단 기준이라고 성서가 말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와 동성애 문제에서 사랑의 법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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