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성경 66권 중 여성 인물이 제목인 책은 단 2권이다. '에스더'와 '룻기'. 평화교회연구소(전남병 소장)가 6주간 진행한 '여성주의 이론으로 성서 읽기' 마지막 시간에는 룻을 다뤘다. 강의는 6월 29일, 서울 종로 기독교회관에서 진행됐다.

강의를 맡은 최순양 교수는 페미니스트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 이론을 중심으로 룻기를 살폈다. 최 교수는 참가자들에게 버틀러가 생각하는 '주체' 개념을 설명했다. 사람들은 대개 주체가 행위를 자발적으로 실천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버틀러에게는 근원적인 주체가 없다. 타인에게 호명되어 주체가 생길 뿐이다. 호명되지 않는 한 주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버틀러의 주체 개념은 김춘수 시인 대표작 '꽃'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버틀러에 따르면, 주체는 홀로 존재하지 않고 사회가 규정한 틀 안에서 해석되는 것이다. 성도 마찬가지다. 선천적으로 여성·남성이 결정되는 게 아니다. 사회에 의해 여성이라고 기호화한 몸을 갖고 태어났다고 사람들에게 해석될 뿐이다. 이외 여성다움·동성애·미인·노동자 등도 사회가 특성을 규정하고 이름 붙은 틀 안에서 설명되고 행동되기를 강요받는다고 했다. 버틀러는 이를 '수행성(performativity)'이라고 부른다.

최순양 교수는 주디스 버틀러 이론으로 룻을 해석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룻기는 가난한 이방인 과부가 존경받는 남자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아들을 낳아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충성하는 룻은 한국교회에서 이상적인 며느리로 그려진다. 이 때문에 룻의 이야기는 가정의 달 5월에 주로 설교되는 본문이기도 하다.

<여성들을 위한 성서 주석>(대한기독교서회)은 기존 해석과는 다른 시선으로 룻을 바라본다. 최순양 교수는 "훌륭한 서사 뒤에는 인종 문제, 젠더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성경 제목은 룻기이지만, 본문 속에서 직접적으로 룻의 생각은 알 수 없다. 결혼과 자녀에 대한 룻의 반응이 어땠는지, 보아스와 하룻밤을 보내고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한 이상한 보고는 무엇인지, 룻이 왜 모압을 떠나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전혀 나와 있지 않다"고 말했다.

최순양 교수는 룻이 예수 계보를 잇는 인물으로 언급되는 점도 짚었다. 이방인 룻이 다윗의 조상이 되고, 더욱이 예수의 족보에 이방인 여성 이름이 실린 것을 높게 사지만, 그 뒤에는 인종 문제가 있다. 룻은 족보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계약 공동체의 완전한 성원이 될 수는 없었다. 룻기 곳곳에서 저자는 룻을 '모압 여인'이라고 지칭하기 때문이다. 2장 5절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는 누구의 소녀냐"라고 물을 때도, 룻을 누군가의 아내·약혼자·종이 아닌 "나오미와 함께 돌아온 모압 소녀"라고 지칭한다. 룻기 4장 17절에는 룻이 낳은 아들을 오히려 '나오미의 아들'로 표현하기도 한다. 룻의 정체성은 모압에 갇혀 있다.

"룻기 초·중반에는 룻이 능동적인 주체로 묘사되지만, 후반에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한 이야기로 바뀐다. 4장 17절도 모압 여인 룻이 아니라 이스라엘 여인 나오미가 오벳의 어머니로 칭송받는다. 이 이야기는 룻의 능력과 충성에 대한 칭송이기보다는, 악의적이고 착취적인 글에 가까울지 모른다.

룻을 칭찬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룻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여성의 가치는 아들을 낳는 데 있고 이방 여인들은 성적으로 문란하고 위험하기에 이스라엘의 완전한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먼저 보아스 발치에 누운 룻의 행동이 용인되는 것도 그가 이방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여성이었다면 용인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고 이스라엘 여성은 룻이 보인 모습을 따라해서는 안 됐을 것이다."

'룻기'에는 실상 '룻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지 않다. 뉴스앤조이 현선

그렇다면 버틀러식으로 룻기를 읽으면 어떻게 될까. 최순양 교수는 버틀러의 주체 개념을 중심으로 룻이라는 여인을 해석했다. 최 교수 역시 여성주의 신학자들이 말한 것처럼, 룻기에서 룻이 주체로서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 동의했다.

"룻은 자신을 둘러싼 여러 호명이 있다. 나오미의 며느리, 모압 족속, 모압 소녀 등으로 표현되지만 정작 룻 자신은 남겨져 있지 않다.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오히려 그 호명은 왜곡되어 나타날 뿐이다. 여러 표현 중 특히 3장이 가장 문제다. 어떤 성경은 룻이 보아스와 동침하는 3장을 '유혹'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룻을 꽃뱀처럼 본다. 보아스 역시 룻의 요청을 따르고 있지만, 룻에게만 사건의 원인을 돌리고 있다. 룻에게 구체적인 상황을 지시한 나오미에게도 비난의 화살은 빗겨 간다. 룻을 둘러싼 여러 호명은 오롯이 그만을 비난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룻의 호명을 두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최 교수의 해석을 인정하는 사람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이방인이지만 그럼에도 예수의 족보에 올라간 것은 이방인들에게 해방의 의미가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최 교수는 "과연 그 점을 긍정적으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이방인임에도 다윗의 조상으로 쓰임을 받았다는 메시지에는, 결국 룻이 성공을 위해 남성을 사용한 여성, 명예를 위해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이라는 부정적 꼬리표를 그대로 가져가는 셈이다. 그 점이 옳은 것인지는 더 생각해 봐야 할 일"이라고 답했다.

강의를 마치며 최순양 교수는 "룻기만큼 여성을 자세히 다룬 성서가 없다. 그런 성서에서도 여성의 목소리가 왜곡되고 단편화되어 다르게 읽히고 있다. 이 때문에 (룻기는 우리에게) 성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과제를 주고 있다. 여성주의 성서 읽기를 하다 보면, 상상으로 해석해야 할 때가 많다. 상상이 나쁜 것만이 아니다. 룻을 포함해 성경 속 여성은 너무 왜곡되고 가려진 모습이 많다. 여성을 침묵으로 남겨 두는 게 최선일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숨겨진 주체를 상상으로 다르게 읽는 것도 하나의 성서 해석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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