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서 여성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답이 없는 것 같다. 여성이 윤간당하고 살해됐지만, 구성원들은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하나님도 폭력을 용인하고 이스라엘 편을 드는 신처럼 나온다. 이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평화교회연구소(전남병 소장)가 기획한 '여성주의 이론으로 성서 읽기' 세 번째 시간에는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의 눈으로 '레위인의 첩'을 해석했다. 사사기 19~21장에 등장하는 레위인의 첩을 살펴본 참가자들은 순간 침묵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제정신으로 보이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레위인, 레위인의 첩, 베냐민 지파 사람들과 하나님이 나온다. 이야기는 레위인의 첩이 집을 떠나 친정아버지 집에 머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남편 레위인은 자신의 첩이 집을 나간 지 네 달 만에 여인을 찾으러 온다. 그곳에서 첩과 함께 며칠 동안 머물다가, 자신의 집으로 함께 떠난다. 집으로 가는 길, 한 노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다. 그 집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찾아온다. 레위인 남성과 상관(相關)하겠다고 한다. 노인과 레위인은 이를 거부하고 대신 첩을 내준다. 결국 첩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게 윤간을 당한다. 바깥에 버려진 첩은 남편이 있는 노인의 집까지 돌아왔지만, 집 앞에서 죽는다.

레위인은 자신의 '소유물'인 첩을 베냐민 사람들이 죽였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레위인은 노인의 집 앞에 놓인 첩의 시신을 열둘로 조각낸다. 이스라엘 11지파에게 첩의 시신을 보내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치르자고 한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베냐민 지파와 전쟁에 들어간다. 베냐민 지파는 멸족 위기에 처했지만,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이스라엘 지파들은 베냐민 지파가 존속되도록 이방 여인들과의 결혼을 허용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성서 읽기'가 세 번째 시간에 레위인의 첩 이야기를 살펴봤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전통 해석을 뒤집는 여성신학
남성에게 배신당한 여인의 삶
이스라엘 폭력성 드러내는 첩의 시신

세 장에 걸쳐 서술되는 '레위인의 첩' 본문은, 전통적으로 '남편 집을 나온 레위인의 첩에게 어떤 결함이 있었다'고 해석돼 왔다. '부도덕한' 베냐민 지파에게 첩을 내준 부분은, 레위인의 첩이 부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해 윤간당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베냐민 지파에게 이방 여인과의 결혼을 허용해 주는 부분은, 하나님이 사랑하기로 결정한 백성은 끝까지 책임지시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베냐민 지파가 윤간을 벌였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지파 중 하나인 그들을 돌보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신학은 다른 시각으로 이 사건을 본다. <여성들을 위한 성서 주석>(대한기독교서회)는 사건의 시작인, 첩이 집을 나간 원인을 레위인의 잘못으로 본다. 당시 사회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부모 집에 가 있는 일이 드물었다. 이 때문에 여성신학자들은 여성이 가정 폭력을 겪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가정 폭력이 아니라면 여성이 굳이 집을 뛰쳐나와 부모 집으로 갈 일이 없었을 거란 뜻이다.

첩이 윤간을 당할 수밖에 없던 이유도 남편인 레위인의 잘못으로 해석한다. 레위인은 자신이 베냐민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자신의 첩을 베냐민 지파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여성신학자들은 만일 레위인이 첩을 보호했다면, 여인이 밤새도록 집단 강간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최순양 교수는 싸늘하게 죽은 여성의 시체가 남자들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한 여성의 현실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여성이 가정 폭력에 노출됐다고 가정해 보면, 여성의 아버지조차도 그를 돕지 않았다. 남편을 피해 도망온 여성을 다시 남편 집으로 돌려보내기 때문이다. 남편인 레위인도 마찬가지다. 여성의 죽음을 슬퍼하고 연민하기보다, 소유물인 '첩'을 해쳤다는 사실에만 분노했다.

그렇다면 사회에서 목소리 낼 수 없는 서발턴(Subaltern·하위 주체)에게 관심을 둔 페미니스트 스피박은 어떨까. 스피박은 한 담론으로만 사람을 파악하지 않는다. 성별, 사회적 계층, 경제 상황, 인종 등 다양한 맥락 속에서 사람을 살핀다. 여러 관점에서 사람을 살피더라도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최 교수는 스피박 이론으로 레위인의 첩을 설명했다.

"우리는 레위인의 첩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레위인의 첩을 부적절한 행동을 한 여인으로 몰아갔다. 또는 왕이 없어 부도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연히 죽은 사람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여러 담론으로 서발턴을 읽는 스피박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여성이고 첩이었던 이 인물을 통해 레위인을 포함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폭력성을 읽어 낼 수 있다. 이 첩의 죽음을 계기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전쟁이 시작됐다.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아내를 찾기 위해 또 다른 이방 여인을 납치하는 이 모든 과정에 드러난 이스라엘 민족의 폭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폭력성을 용인하는 하나님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전쟁을 응원하는 하나님
왕이 없어 혼란했던 시절?
서발턴의 삶을 보여 주는 본문

레위인의 첩 본문에서는 하나님도 다시 보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는 그런 하나님을 찾아볼 수 없다. 이스라엘은 전쟁 전, 하나님께 "어느 지파가 먼저 베냐민 지파와 싸워야 하느냐"고 묻는다. 하나님은 "유다가 먼저일지라"고 성실히 답한다. 최순양 교수는 사람이 죽고 족속이 전멸하는 이 모든 상황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지파를 응원하고 정당화하는 존재로 등장한다고 했다.

"본문에서 사람을 죽이면서 승승장구하는 레위 지파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것도 문제지만 레위 지파가 믿고 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문제다. 사사기 20장 1절에서 여호와는 전쟁의 증인이 된다. 베냐민 지파를 죽이는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독려한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사사기 저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을 정당화하지만, 이해되지 않는다."

최순양 교수는 강의 중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용인하는 하나님을 어떻게 봐야 할지 물었다. 한 남성 참가자는 "우리는 지금까지 성경이 무오하다고 배웠다. 이 본문에는 '왕이 없던 시절'이라서 생긴 일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분명 '베냐민 지파를 치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직접 폭력을 지시한 장면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질문을 듣던 한 여성 참가자는 "여기에 나오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만들어 낸 하나님일 수도 있다.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정의의 하나님이다. 한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분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본문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기도하고 응답도 원하는 대로 받은 것 아닐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은 응답받았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최순양 교수 역시 이 점에 동의했다. 그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분이다. 그 관점에 비추어 본다면, 여기 나오는 하나님이 과연 그 하나님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이들이 자신들의 행보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잘못 해석한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습을 다 해석하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이 본문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고 했다.

"본문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이제 우리의 과제이고 몫이다. 희생된 사람들의 관점에서 읽을 것인지, 레위 지파와 이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하나님 입장에서 성서를 읽을 것인지 말이다. 설교자들이 이 본문을 설명하면서, '왕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혼란했던 시절'에 발생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 본문을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이 이야기는 현대사회에도 접목할 수 있다. 교회 안에서도 성범죄를 겪는 여성들이 있다. 레위인의 첩까지는 아니지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문제를 지적하는 2차 피해가 벌어지고 있다. 레위인의 첩은 불합리한 구조에서 폭력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 본문을 한국 사회, 한국교회 안에 서발턴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관점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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