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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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은이 민규를 데리고 간 곳은 원장실이었다. 원장실은 문 앞에 붙어 있는 표어처럼 개방적이었다.

'신애원은 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수 있습니다.'

개방의 증거는 또 하나 있었다. 일요일의 원장실은 잠겨 있지 않았다. 적혀 있는 표어처럼 원장실 문은 언제나 열린 듯 보였다. 하지만 민규에겐 이런 식의 모습이 결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한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정은이 아무 조심성 없이 원장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민규는 열린 원장실 앞에 멈춰 선 채로 가만히 있었다. 잠시, 아주 잠시 망설였다. 더구나 민규에게 이곳 원장실의 기억은 끔찍했다. 불과 하루 전 민규는 이곳 원장실에서 원장 남궁숙애와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민규가 체감해야 했던 섬뜩한 악의 기운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정은은 문 앞에 서서 망설이는 민규를 돌아다봤다.

-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목사님은 살아 있었어요.

- ………

- 하지만 지금 본인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세요.

- ………

- 영혼이 말라 버린 시체 같아요. 아무 생기도 찾아볼 수 없는.

정은의 말을 듣는 순간 민규는 원장실 소파 옆에 있는 전신 거울에 노출된 자신을 바라봤다.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는 순간 나타나는 차가운 냉기를 민규는 외면하기 어려웠다. 그 냉기는 바로 자신의 자아에서 분출되어 나오는 것이었다. 민규가 자신의 절망적인 냉기에 주목하는 동안 정은이 말을 이었다. 단호하고 분명하게.

- 들어와요.

- 김 선생.

- 들어와 보세요. 봐야 해요.

정은의 말은 명령이었다. 이 명령은 누가 강요한 것도, 등을 떠민 것도 아니었다. 민규 자신이 직접 정은의 손목을 붙잡고 교회 지하 소예배실에서 이곳 신애원까지 데리고 왔다. 뱀의 사슬로 묶여 버린 철문 앞에서 문을 부술 듯 두드렸던 것은 다른 이가 아닌 민규 그 자신이었다.

결국 민규는 정은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두 어깨를 강하게 짓누른 자아의 공명심에 의지해 원장실 안으로 한발 내딛었다. 시간은 이제 11시 정각이다. 원장실 안에 설치된 오래된 괘종시계가 동작했다. 괘종시계의 종이 묵직한 울림을 일으키며 울려 퍼졌다.

*

민규가 원장실 안에 들어오자마자 정은은 원장실 문을 잠갔다. 문이 잠기기 직전 민규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복도 끝을 향했다. 4층엔 원장실이 전부였다. 그 원장실을 바라볼 수 있는 복도 끝 모서리에 신애원 아이들이 머리 하나씩만 꺼내어 놓고는 숨죽여 원장실 안에 있는 민규와 정은을 지켜봤다. 민규의 시선에 와 박힌 아이들의 시선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아이들 모두 공포에 질려 있었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빛을 띤 신애원 아이들은 이 끔찍한 시간을 민규와 정은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매우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그 지켜봄 속에서 원장실 문이 닫혔다. 민규가 물었다. 블라인드 커튼까지 내린 정은에게.

- 뭐하는 거예요?

블라인드를 내리고 불조차 켜지 않은 오전 11시의 원장실은 어두웠다. 빛이 스며들 여지라곤 굳게 내려진 블라인드 틈새가 고작이었다.

어둠이 굳게 내린 원장실 안에서 정은은 티브이 전원을 켰다. 그리고는 매우 익숙하게 이동식 디스크를 연결한 뒤 화면을 향해 더블클릭했다. 하지만 티브이 화면은 노이즈 가득한 잡음뿐이었다.

- 김 선생. 지금 뭐하는 거야? 난 지금 가 봐야 해요. 우리 예배 끝난 뒤 다시 이야기합시다.

그렇게 말한 민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꺼 놓지 않은 스마트폰의 진동이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원장실 문손잡이를 붙잡았을 때였다. 바로 그때, 다시 한 번 민규의 귓가로 오늘 오전의 그 소리, 심연의 끝에서 소리치는 바닥의 소리가 재연되었다. 아이들의 절규, 악마를 본 이들만이 내지를 수 있는 비명이었다.

티브이 화면에선 비명의 주인공들이 차례로 아우성치는 모습이 재연되었다. 두 팔과 다리가 묶인 신애원 지체 장애아들이 일렬로 묶여 있는 장면이었다. 더 끔찍한 건 아이들 모두 알몸이었다.

알몸의 아이들 중 단 한 명도 성한 몸이 없었다. 모두들 피투성이, 멍투성이였다. 그 상태에서 말쑥한 양복 차림의 남자 몇이 들어섰다. 성적 학대를 가했다. 여자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성기를 애무하게 했으며, 때론 알몸의 남자아이가 또 다른 알몸 차림의 여자아이를 강간하게 했다. 남자아이가 하기 싫다고 거부하면 할수록 그들의 손과 발을 묶은 악마들은 여자아이들 위에 뜨거운 물을 붓거나 거침없이 구타하면서 남자아이에게 협박했다.

'네가 하지 않으면 이 애는 끝나.'

'으으으으으'

'뒈지는 거라고. 알아들어? 죽, 는, 다, 고!'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단지 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더 이상 민규는 이 극사실적인 장면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더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민규는 그대로 티브이 전원을 껐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한동안 멍했다. 꼼짝할 수가 없었다.

잠시 수습할 수 없는 멍한 기분을 가라앉힌 민규가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난 뒤 말을 이었다. 정은을 바라보면서였다. 정은은 여전히 차분히 가라앉은 무표정, 그대로였다.

-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요?

- 본 그대로예요.

- 이게 어떻게 원장실에……?

- 원장실이니까 가능하죠.

- 뭐요?

- 저 양복 입은 남자가 누군지. 확인하지 않을 거예요?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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