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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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기도는 신을 향한 깊은 성찰과 이웃을 향한 조건 없는 사랑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때론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기도의 화살이 신성의 기반과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되면 그 기도는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14년 전, 국내 유수의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율주제일교회 전도사로 부임할 때의 민규는 거룩함에 대한 범접할 수 없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거룩함과 세속에서의 성공이 동일시될 수밖에 없는 20대의 피 끓는 청춘, 그 흥분은 민규의 신앙 열정을 욕망을 향한 추구로 탈바꿈시키는 데 분명한 역할을 감당했다. 민규는 기도했다. 자신이 이런 대형 교회에 다 일궈 놓은 담임목사의 카리스마에 의해 놀아나는 부속품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더 크고 더 깊은 신학을 공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런 민규에게 미국이란 땅은 기회의 땅으로만 보였다. 신앙의 위인들이 일궈 놓은 세계 제1의 패권국. 열강 중에서도 열강인 세계의 지배자인 미국은 민규에게 신앙과 신학의 끝으로 보였다. 그곳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현지에서 사역한다면 신의 뜻을 더 크고 효율적으로 확장시킬 것으로 믿었다. 적어도 이 지방 도시에서 개척 아니면 담임목사가 될 방법이 거의 없어 보이는 막연한 현실은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민규 혼자만의 힘으로 미국 유학을 준비하다는 건 너무나 막막했다.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전도사 월급을 모아 미국에서 신학대학교를 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에서 사역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연고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홀어머니가 가족의 전부인 민규를 지원해 줄 인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 민규는 김정은과 결혼을 약속했다. 둘만의 조촐한 언약식도 치렀다. 교회 청년들이 함께 축하해 주고 기도해 준 그 자리에서 민규는 신대원 졸업반 시절, 지방대학 음대를 졸업하고 교회 반주 봉사를 하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던 피아노 선생님이던 김정은과 미래를 약속한 것이다.

김정은은 민규의 가난에 대해 아무 불만도 얘기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고 함께 밥을 먹고, 그렇게 함께 성장한 민규는 정은에겐 신뢰하고 아끼고 싶은 찬란히 빛나는 별이었다. 정은의 마음속에 들어온 민규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언약식을 끝내고 전도사 직임을 시작한 민규의 생각은 급변했다. 정은이 자신의 큰 뜻을 이뤄 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절망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절망감이 정은을 바라보는 민규의 마음을 점점 차갑게 만들었다. 가난한 홀어머니, 홀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민규와 정은에겐 미국 유학과 그곳에서의 사역을 기대할 수 있는 어떤 청사진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한국에 사업차 체류 중이던 정묵환 장로. 20여 년 전 미국 뉴욕으로 이민한 뒤 자수성가해 준재벌에 가까운 재력가가 된 뉴욕제일교회의 일등 공신 장로인 그가 민규에게 당신의 특별한 신학적 재능을 눈여겨봤다는 소회를 털어놓던 그때였다. 민규는 자신이 걷는 길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기도했다. 자신의 욕망을 신의 뜻과 동일시하는 기도를.

그 기도는 악마의 기도였다. 정 장로의 입에서 뉴욕 증권사에 근무하는 자신의 외동딸에 대한 신앙 상담을 요청했던 그때, 민규는 이 기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달았다. 그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정 장로님의 딸을 향한 기도와 상담에 열중했다. 그 모습에 감복한 정 장로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딸을 민규에게 소개하고자 했다. 혼담을 주선한 것이다.

정 장로로부터 결혼 제안을 받았을 때였다. 그때, 민규의 귀와 눈, 심장, 그의 마음 어디에도 정은은 없었다. 10여 년 이상을 교회에서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봐오던 정은이 민규의 타오르는 욕망 속에선 한 줌 재가 되어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민규는 정은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데 있어 아무 망설임이 없었다. 수많은 청년들의 축하를 받으며 언약식도 하고 결혼도 약속했다. 하지만 민규는 그런 식의 약속 따윈 안중에도 두지 않을 정도의 강한 신앙심으로 불타올랐다.

'하나님이 나의 길을 더 깊고 더 강한 곳으로 나아가게 이끄시는 거야. 난 이러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의심하지 않아. 결코.'

이별 통보는 정은이 아니라 민규가 먼저 꺼냈다. 민규는 가증스럽게도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파혼을 통보했다.

- 여러 날을 기도하고 고민했어. 정은아. 너와 나는 가는 길이 다르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았지. 이건 말이지. 너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그러니까 우리 서로가 모두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우리 이걸 헤어지는 걸로 생각하지 말자. 서로 더 좋은 길로 나아가는 신의 뜻에 더 뜨겁게 순종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믿어 보자. 정은아. 우리 그렇게 믿자. 응? 응?

민규는 정은이 어떤 말이라도 해 주길 바랐다. 참으로 이기적이지만 정은도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정은은 어떤 동의도,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민규의 파혼 통보를 잠자코 듣고 있던 정은은 말 없는 침묵의 결을 타고 하염없이 맑은 눈물만 쏟아 냈다. 민규는 그 눈물이 견딜 수가 없었다. 구차하고 초라해 보였다.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 너도 나 같이 가난하고 배경 없는 전도사와 결혼해 무슨 미래가 있을 거라 생각해? 난 여기에 계속 처박혀 있는 이상 아무 희망도 찾지 못하는 실패한 목회자로 늙고 말거야. 너도 그런 배우자를 원하는 건 아니잖아. 그러니 우리 기도하자. 우리 서로 더 좋은 배우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응. 그러자? 그렇게 하자. 정은아.

그 순간 정은은 단 하나의 질문만을 건넸다. 맑은 눈물을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그때였다. 정은이 떨리는 입술을 조심스럽게 열며 한마디, 단 한마디만 남겼다.

- 알고 싶어.

- …… 뭘? 뭘 말이야?

- 왜 이러는지.

- ………

- 왜 이러는지 알고 싶어.

민규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자신이 왜 이러는지. 왜 이래야 하는지. '왜'라는 질문이 14년 전의 그때에는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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