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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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이에요?

정은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민규가 다가온 것이다. 율주제일교회 담임목사가 주일 오전 9시에 가쁜 숨을 내쉬며 정은을 찾아온 것 자체가 정은에겐 의문이었다. 그건 정은만이 아닌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민규는 신애원에서 이곳 율주제일교회로 한걸음에 찾아오면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정은에게 다급하게 요청할 일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가쁜 숨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민규가 말을 이었다.

- 지금 신애원에 같이 가요. 가서 문을 열어야 해.

- 지금요? 무슨 일인데요?

- 당신이… 당신이 전화했잖아. 아니야?

민규가 그렇게 말하자 정은은 여전히 의문 가득한 얼굴로 민규를 바라봤다. 정은의 의문을 해소해 주기 위한 방법으로 민규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통화 기록을 보여 주었다. 김정은 선생이란 연락처가 적혀 있는 최근 통화가 나타났다. 통화 기록을 확인한 정은이 뭔가 짐작하겠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서주군요.

- 서주?

- 목사님이 오늘 만났던 서주란 아이, 그 친구가 전화한 거라구요.

- 그럼… 이 전화는 뭐죠?

- 제 전화… 맞아요. 하지만 어제 신애원을 나온 이후로 보이지 않았어요. 자주 있는 일이에요.

- 뭐가 자주 있는 일이란 말이요?

- ………

- 도대체 뭐가?

그때였다. 정은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슬픈 기색을 띄며 민규과 눈을 마주하던 그때, 민규는 오히려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정은이 앉아 있는 자리만 텅 비어 있었다. 주위 다른 자리는 유년부 아이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김정은이 앉아 있는 자리는 주일 유년 예배가 진행되던 지하 소예배실이었다. 하지만 정은은 홀로 유년 예배의 한 자리에 홀로 앉아 있었다. 정은은 분명 유년부 교사란 명패를 가슴에 달고 있었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은의 곁에는 누구도 오지 않았다.

민규는 주위 소예배실을 둘러보며 자신도 모르게 주춤했다. 유년부 교사인 율주제일교회의 여성 집사와 청년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자신과 정은에게로 향한 것이 뒤늦게 느껴진 것이다. 주위 교인들의 시선이 의식된 이후였지만 민규는 더 이상 움츠리지 않았다. 신애원, 그 안개로 뒤섞인 곳에서 벌어질 끔찍한 비명 소리, 아우성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은이 침묵을 지키는 동안 민규는 더 참지 못하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 신애원에서 아이들의 비명이 들렸어. 그냥 비명이 아니야. 한 사람의 소리도 아니고.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게 틀림없어. 빨리 들어가 봐야 해.

민규의 말이 다급하게 이어졌지만 그럴수록 정은의 표정은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무겁게 침묵하는 정은을 민규는 더 두고 볼 수 없었다. 결국 참다못한 민규가 정은의 손을 붙잡고 그녀를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소리치듯 말했다.

- 지금 당장 갑시다. 가 보면 알 거야. 내가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거.

정은의 손을 붙잡고 일으킨 민규가 그녀를 데리고 소예배실을 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한 여자 집사가 입구를 가로막았다. 민규가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 굳게 잡은 정은의 손을 놓으려 하진 않았다. 여자 집사가 다소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 안 돼요. 목사님.

-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전 지금 급한 일이 있어 여기 김정은 선생과 함께 나가려는 겁니다. 비키세요.

- 목사님도 소문 들으셨잖아요. 김정은 선생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요.

- 지금은 소문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확인해야 할 게 있다구요.

- 목사님.

- 비키세요!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민규는 결국 여자 집사까지 밀치고 정은을 데리고 나온 뒤 한 참을 걸었다. 제일교회 정문을 박차고 나와 신애원으로 한걸음에 걸어왔다. 주일 아침. 시간은 이제 9시를 넘어 10시로 넘어서고 있었다. 오전 예배까지는 1시간도 채 남지 않은 상황. 하지만 민규의 시간은 바로 새벽에 보고 들었던 비명과 안개에 멈춰 버렸다.

하지만 신애원에 도착했을 때였다. 민규의 마음 한구석에 황망함이 몰려왔다. 신애원 입구 정문을 강철 뱀처럼 휘감았던 사슬은 오간 데 없었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입구 앞에서는 허름한 작업복 차림을 한, 율주제일교회에서도 종종 모습을 보이던 사찰집사인 최 집사가 비질을 하며 낙엽을 치우고 있었다.

그 사이 스르륵 하고 정은의 손이 민규의 손으로부터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게 끝나지 않았다는 걸 정은은 무거운 침묵을 깨고 말을 여는 것으로 대신했다.

- 늘 이래요. 악마가 다녀간 이후 신애원은 평온한 시설로 돌변해 버리죠.

- 그 말은… 내가 들었던 그 소리가 거짓이 아니란 뜻이요?

민규의 질문에 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은이 민규의 손을 잡았다. 정은이 신애원 안으로 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선천적으로 등이 굽은 최집사가 비질 막대를 손으로 맞잡고 둘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민규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시간도 확인되었다. 오전 10시 30분이었다. 예배가 시작되기까지는 30분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아니나 다를까. 민규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 저기 김 선생… 난.

정은이 민규를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 그 비명… 이곳의 안개. 확인해 보고 싶지 않아요?

- 김 선생.

- 보고 가세요. 확인시켜 드릴게요.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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