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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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한 장로와의 만남에서는 신애원으로 실제 연결되는 통로, 그 너머까지 다가가지는 못했다. 비약이 허락된다면 신애원으로의 문, 그 문의 열림을 볼 때 민규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을 보는 심정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가져야 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보다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는 정은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의 그늘을 쉬 지우지 못했다.

민규보다 앞장서서 일정한 속도로 걸음을 옮기던 정은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름다리의 끝, 겹겹이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철문을 열었다. 정은의 행동은 건물 구조에 대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찰집사의 그것보다도 더 능숙해 보였다.

철문이 열리고 나타난 세계는,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 운운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평범했다. 저녁 9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대여서 그런지 신애원 시설, 3층 복도를 사이에 두고 빼꼭히 도열되어 있던 방마다 야간 점호를 준비 중이었다. 철문을 열고 신애원 3층으로 들어선 순간, 정은과 그 뒤를 따른 민규를 가로막는 이가 있었다. 야간 점호를 진행하던 지도선생이었다. 50대 초반의 전형적인 아줌마 파마머리가 인상적인 중년의 지도선생은 교회로 이어진 철문을 열고 들어선 정은을 향해 앙칼진 목소리로 경고했다.

- 그 문, 사용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요!

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민규가 깜짝 놀라 짐짓 걸음을 멈출 정도로 지도선생의 목소리엔 험악한 원망, 날카로운 경계가 한가득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정은은 이러한 선생들의 반응이 일상이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했다.

- 저 문을 닫아 놓으라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어요.

- 이곳의 규칙이잖아요. 이건 원장 선생님의 명령이에요.

- 원장 선생님의 명령이 규정이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원래 신애원은 율주제일교회와 연결되어 있어요. 그런 취지에서 구름 다리도 만들어 놓은 거구요. 자 보세요.

그렇게 말한 정은이 자신의 손에 쥐고 있는 자물쇠를 보여 준 뒤 다시 말을 이었다.

- 모든 선생님들이 이 열쇠를 사용할 수 있어요. 이 열쇠. 신애원 사무실에서 가져온 거라구요.

정은의 말엔 감정의 흥분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차분히 자신이 품은 생각을 담담히 털어 내는 데 집중했다. 그런 정은의 말에 지도선생의 풀이 죽어 버렸다. 하지만 지도선생은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정은의 뒤를 따라 들어온 한 남자, 민규를 보며 더 거칠게 불만을 쏟아 냈다. 정은의 뒤에 숨은 듯 서 있던 민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 그럼 저렇게 외부 사람들을 함부로 들이는 것도 규정에 있는 거예요?

지도선생이 그렇게 말하자 정은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침묵하는 정은의 태도에 기가 오른 지도선생이 더 목소리 높여 말했다.

- 말 좀 해 봐요. 아까는 잘도 말하더니만 지금은 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셨대.

자신을 추궁하는 지도선생을 향해 정은이 세차게 한마디 내뱉었다.

- 이분은 율주제일교회 담임목사님이세요. 지도선생님도 교인이면서 담임목사님 얼굴도 모르세요?

- 뭐라고?

- 이번에도 신애원 규정을 잊은 건 아니겠죠. 율주제일교회 담임목사는 부속 산하 사회복지시설 신애원의 감사, 관리의 의무를 가진다고요.

지도선생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민규를 향해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그저 물러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 지도선생은 이어지는 정은의 말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서둘러 3층에서 벗어났다. 야간 점호도 생략한 채.

- 지금까지의 목사님들이 신애원을 둘러보지 않았던 것뿐이지 이곳은 원래 담임목사님의 지도와 관심을 받아야 하는 곳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정은의 말은 어느새 대상 없는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지도선생은 더 이상 말을 섞지 못하고 퇴장해 버렸다. 그리고 이제 남은 건 정은과 민규, 그리고 둘을 숨죽여 바라보는 방 안의 아이들, 신애원 원생들이었다.

지도선생을 몰아낸 정은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민규도 그녀와 보폭을 함께하며 걸었다.

야간 점호를 위한 조치인 듯 양옆으로 도합 열 개가 넘는 방문은 모두 열려 있었다. 그와 함께 민규의 눈에는 결코 크지 않은, 방이 더더욱 비좁다고 느낄 정도로 많은 아이가 앉아 있었다. 적게는 초등학교 갓 입학한 연령대로 보이는 남자아이에서부터 많게는 스무 살로 봐도 오해가 없을 정도로 성숙한 몸을 가진 여자아이도 눈에 뜨였다. 그 많은 아이가 놀랍게도 정신지체라는 몸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하지 않은 무릎 꿇은 자세로 점호를 기다리고 있는 게 민규의 시선에 강하게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민규는 아이들의 시선을 살폈다. 아이들의 시선과 표정에는 피하기 어려운 대상을 향한 공포와 두려움이 들끓고 있었다. 민규를 차마 똑바로 올려다보진 못하고 흘깃 치켜뜬 눈으로 바라보던 그들의 흔들리는 눈동자엔 공포의 그림자가 강하게 배여 있음을 민규는 거부하지 못했다.

그런 민규가 한 아이 앞에서 멈춰 섰다. 복도의 끝 마지막 오른쪽 방에 앉아 있던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긴장의 끈을 놓아 버린 듯 그 여자아이만큼은 무릎을 꿇지 않고 방구석에 기대고 앉아 있었다. 민규의 시선은 팬티를 훤히 노출시킨, 민망함을 일으키는 남루한 원피스 차림의 두 다리를 향했다. 여자아이의 민망함에 대한 관찰이 아니었다. 그 아이의 두 허벅지와 무릎, 그리고 종아리, 어디 하나 여지를 찾아볼 수 없이 시퍼렇게 배어든 멍 자국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다리에 한가득 시퍼런 멍 자국을 남긴 여자아이 앞에 멈춰 선 민규를 따라 정은도 멈춰 섰다. 그리고, 정은은 이제껏 침묵을 지키던 그녀 자신만의 규칙을 어기고 민규가 바라보는 그 여자아이를 함께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 이게 여기 모습이에요.

- 응? 그게 무슨 뜻이에요?

- 지금 본 그대로가 현실이라고요.

정은의 차갑게 가라앉는 목소리가 민규의 마음에 고요한 파문을 일으킬 때였다. 그때, 민규의 눈에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복도 계단을 슬그머니 밟고 4층 계단으로 올라선, 폐쇄된 터미널 역사에서, 철도 건널목에서 마주했던 소녀와 마주하고 만 것이다.

거역할 수 없는 거부의 눈길로 타오르는 윤서주란 이름을 가진 소녀. 민규는 그녀, 윤서주와 가만히 눈을 마주했다. 윤서주도 민규를 피하지 않고 맞서 바라봤다. 윤서주는 마치 민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긴… 왜 왔어?'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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